미래가 온다, 기후 위기 와이즈만 미래과학 12
김성화.권수진 지음, 허지영 그림 / 와이즈만BOOKs(와이즈만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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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는 수많은 두려움을 극복하며 지금껏 생존해왔다. 날짐승처럼 날개도 없고 들짐슴처럼 이빨과 발톱도 없어서 '약한 존재'로 살아왔지만, '불의 발견' 이후에는 문명을 건설하며 '최상위포식자의 위치'에 군림하듯 두려운 것 없이 지내는 것 같았다. 허나 인류는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걱정거리를 만들어내곤 한다. 문명을 건설한 뒤에는 자연이 주는 재앙이 두려워졌다. 가뭄과 홍수, 화산과 지진, 그리고 온갖 것을 다 날려버릴 듯 몰아치는 태풍의 위력 앞에 인류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류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해도 자연이 가져온 재앙 앞에서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과학'이 발달하면서 자연이 몰고오는 재앙을 극복하는 기적을 일으키곤 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었던 것일까? 인류는 과학의 힘을 길러 자연을 정복하고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뿜어내기에 이르렀다. 신의 영역이라 여겼던 것을 하나둘 비밀을 파헤치면서 인류는 '창조의 능력'까지 가지게 되었다는 오만까지 갖게 되면서 자신감은 어느새 자만으로 바뀌어 갔다. 그러나 극복이라 믿었던 '과학의 힘'은 더 큰 재앙을 불어오고 말았다. 과학의 발전하면 할수록 위기는 더욱 크게 찾아왔고, 더욱 발전된 과학의 힘으로 극복하면서 '지속가능하다'고 믿었지만 끝내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음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 '기후위기'가 그것이다.

 

  사실, 기후위기는 지구적인 사이클로 보았을 때, 너무나도 자연스런 현상이다. 신생대 이후 지구는 '빙하기'와 '간빙기'를 여러 차례 반복해왔고, 그때마다 지구는 얼었다 녹았다는 반복해왔다. 다시 말해, 지구가 추웠다 더웠다 하는 '기후 변화'는 늘 있었던 현상이란 말이다. 그런데 인류의 등장 이후에 지구의 자연스런 변화에 '다른점'이 발견되었다. 늘 있었던 '기후 변화'가 너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100만 년~ 1억 년을 주기로 일어났던 '기후 변화'가 1만 년전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면서부터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더니 '산업혁명 이후' 폭발적인 변화를 보이더니 근래에는 도저히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른 '기온 상승'을 기록하더라는 것이다. 불과 100년도 안 된 사이에 평균 기온 1도라는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인류는 '화석연료'를 엄청나게 소비하면서 지구 나이 46억년 땅속 깊이 잠들어 있던 '온실가스'를 공기중으로 뿜어냈다. 그 결과, 바다의 온도가 100년 사이에 1도가 상승하고 말았다. 앞으로 10년 뒤, 20년 뒤에 바다의 온도가 1도만 더 오르게 된다면 인류를 비롯해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고작 1도 오를 뿐인데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지겠느냐고 되묻는다면, 곰곰이 상상해보길 바란다.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냄비에 물을 담고 팔팔 끓게 만드는 장면을 말이다. 무척 간단해 보일 것이다. 이제 그 냄비속에 '지구의 바닷물'을 몽땅 담고 끓여 보길 바란다. 1도 올리는 일이 쉬워 보일까? 아마도 쉽게 상상이 가질 않을 것이다. 더구나 '지구의 바닷물'을 끓일 정도로 큰 가스레인지도 없다. 오직 '온실가스'로만 바닷물을 데웠는데 무려 1도나 올라가버린 것이다. 인류가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온실가스'를 뿜어냈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해냈다. 70억 인구가 뿜어내는 '온실가스'의 양이 어마무시했다는 사실 말이다.

 

  그런데도 인류는 아무런 '위기'를 느끼지 못한다. 앞으로 10년 뒤, 아니 20년 뒤에 인류가 숨을 쉬지도 못할 정도로 '기온'이 상승하고, 해수면은 상승해서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땅조차 남지 않고, 뜨거워진 바닷물로 인해 태풍은 더욱 강력하고 더 자주 불어닥칠 것이며, 그로 인해 인류를 먹여 살릴 '경작지'는 찾기조차 힘들어져서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게 될 판인데도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마치 서서히 뜨거워지는 냄비속의 개구리처럼 말이다.

 

  뭐, 아직도 '기후 변화'는 자연스런 현상이기 때문에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떠벌리는 이들도 부지기수로 많다. 대홍수가 날 정도로 비가 쏟아져도 전지구적으로 볼 때 '균형'을 맞출 것이기 때문에 살짝 이사를 가면 더욱 살기 좋고 풍요로운 새로운 땅을 개척하며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학자들도 많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맞다하더라도 '대한민국 서울'을 사알짝 어디로 이사시킬 셈인가? 결국 정든 땅을 떠나 황량한 땅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그게 정녕 쉬운 일인가? 현재 남태평양의 섬 국가들은 '생존'을 위해 '국가포기선언'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도 뉴스에서는 지구 어디선가 가뭄이 들어 굶주리고 대홍수로 물난리가 났으며,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규모의 화산폭발과 대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잃어버리는 아수라장이 펼쳐지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정녕 '기후위기'가 아무 일도 아니란 말인가.

 

  화석연료 사용은 반드시 줄어야 한다. 지금 곧 맞이할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없을 지라도 변화를 극복하기 위해서 '대체에너지'를 빠르게 확보해야 한다. 온실가스로 일어난 끔찍한 비극인데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생명을 연명할 수는 없지 않느냔 말이다. 천만다행으로 '지구적 위기'가 찾아오지 않더라도 '청정연료'를 사용하면 우리가 사는 환경이 보다 깨끗해지기 마련이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마시며 살았던 추억을 떠올려보길 바란다. 우리의 후손에게 고스란히 물려주어야할 유산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 아니겠냔 말이다.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면 '기후 위기' 따위는 자연스레 사라지게 될 것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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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더 저널리스트 : 어니스트 헤밍웨이 더 저널리스트 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영진 엮고 옮김 / 한빛비즈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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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널리즘은 신문이나 잡지를 통하여 대중에게 시사적인 정보와 의견을 제공하는 활동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저널리스트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할 것이다. 그럼 요즘처럼 신문이나 잡지를 도통 읽지 않는 시대에는 누가 저널리스트라 할 수 있을까? 대중에게 시사적인 내용을 언급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제대로 된 '더 저널리스트'가 있기는 한 걸까? 순방길에 오른 현 대통령 전용기의 추락을 기원하는 사제일까? 그 사제들이 신부직위에서 해제되고 종교계에서 파문을 당한 것을 보도한 기자일까? 아니다. 뭔가 부족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는 '시사 내용'을 전달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단박에 알아챌 정도로 명쾌한 '기사'가 아니고서는 감히 '저널리스트'라고 입에 오르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는 '더 저널리스트'가 없다.

 

  헤밍웨이는 작가로 유명해지기 전에 '기자'로 활발히 활동했다고 한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에 직접 뛰어든 경험을 최대한 살려서 '현장감'이 뛰어난 기사를 쏟아낸 '저널리스트'라고도 전한다. 그가 '더 저널리스트'가 된 까닭도 바로 그 '현장감' 때문이다. 비겁한 기자들은 종종 자신이 직접 취재하지도 않고 증거를 찾기 위해 발로 뛰지도 않고 '누구인지 밝힐 수 없는' 정보원의 말만 믿고 섣불리 기사를 쏟아내기도 한단다. 기자들이 양심도 없이 이런 짓을 서슴지 않는 까닭은 '속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누구보다 더 빠르게 기사를 쏟아내야 한다는 중압감에 그런다고도 하고, '대서특필'로 남기 위해 누구와의 정보공유도 없고, 사실검증(팩트체크)도 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찍어내듯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낸 뒤에 나몰라라 하는 얌체라서 그런다고도 한다. 암튼 이유를 불문하고 이렇게 비겁한 기사를 써놓고서 뻔뻔스레 '유명세'를 거머쥐는 이들이 종종 발생하기에 너나할 것 없이 '거짓기사 경쟁(?)'에 뛰어든다고 한단다.

 

  이미저도 오늘날엔 '유사언론(너튜브, 포털사이트 등)'이 인터넷기사를 도배하다시피하는 까닭에 전통적인 신문이나 잡지는 아무도 보지 않고, 팔리지도 않는 처지에 내몰리면서 '무한경쟁'에 돌입한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무책임한 저질기사'가 온통 도배를 한 지 오래되고 말았다. 그래서 '저널'다운 저널을 좀처럼 찾아보기도 힘들고, 간혹 이슈가 된다 싶은 기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검증'에서 신빙성이 떨어지는 '추측성 소설'에 불과하다고 판명이 나는 등.. 정말이지 '정통 저널리즘'이 너무나도 그리워진다.

 

  그렇다면 이 책, <더 저널리스트>에 나오는 헤밍웨이의 기사는 눈여겨 볼 만한 저널리즘 기사들이었나? 무려 100여 년전의 기사들이다보니 '기사'가 갖고 있는 시사가 적절했는지 가늠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이를 테면, 1910년대 미국 어느 도시의 정치인이 '어떤 일'을 하고 있어서 주목된다는 기사를 남겼다할지라도 '기사의 배경'이 됨직한 미국사회의 전반적인 내용을 속속들이 알 수 없으니 '그 기사'가 적절한 시사성을 지니고 있는지 가늠하기란 매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헤밍웨이'가 꽤나 직설적인 화법으로 기사를 작성하면서 '권력가'와 '유명인' 들을 까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또한, 헤밍웨이가 직접 본 현장이 '전쟁터'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수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이탈리아'와 '스페인 내전 속 마드리드' 따위는 우리가 역사 속에서 접할 수 있는 배경지식이 있으므로 '간접적'이나마 헤밍웨이가 던지는 '시사점'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위험천만한 곳에서 직접 겪고 본 것을 사실 그대로 '기사'에 담으려는 진실된 마음이 절절하게 전달되는 느낌도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저널리스트'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은 '현장(르포)을 직접 탐방하고 사실검증을 마친 뒤'에 전하는 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이 벌어진 마드리드 한복판에 뛰어들어 취재를 하면서 '거짓기사'를 작성해서 대박을 터트릴 욕심에 동료기사의 생명까지 위태롭게 만드는 덜떨어진 기자를 '고발'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내전의 한복판인 마드리드였지만 '전쟁의 위협'은 잦아들고 모처럼 '평온한 일상'을 되찾은 마드리드였는데, 마드리드에 도착한 지 하루만에, 그것도 호텔방 한 구석에서 상상으로 써낸 '무시무시한 전쟁속에서 공포에 떠는 마드리드 시민들'이란 기사를 제 손도 아닌 동료 여기자의 손에 들려서 스페인 밖으로 송출하려 한 몹쓸 기자였다. 만약, 스페인군의 검열에 그런 내용의 기사가 들통이 났더라면 '그 기사'를 국외로 빼돌리려던 여기자는 그 자리에서 검거되어 총살을 면치 못했을 것이며, 무사히 국외로 빼돌려 미국시민들에게 '그 공포감'을 전달했더라면 모처럼 평온을 맞이한 마드리드는 '외부에서 찾아든 오해'로 인해 다시금 피비린내나는 전쟁터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로 인해 '스페인'에 남겨진 현장취재 기자들의 생명도 위험해졌을 것이고 말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연못을 흐린다는 속담은 이럴 때 딱 어울릴 것이다.

 

  그뿐 아니라 헤밍웨이는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우두머리인 '무솔리니'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돌려까며 이탈리아의 무능을 적나라하게 밝혀냈고, 독재자를 비호하는 여타의 강대국들의 검은 속내를 까발리며 '공산주의(볼셰비즘)'를 막기 위해 '파시즘(무솔리니, 히틀러)'을 감싸는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의 위정자들에게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더구나 '전쟁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에티오피아 전선에 파병된 이탈리아 병사의 주검을 선명한 사진으로 보여주며 하나하나 주석을 달기도 했다. 강대국(?) 이탈리아의 병사들이 전쟁터에 보내진 뒤에 벌어지는 사실들이라면서 이들은 분명 조국의 환호를 받으며 이곳으로 보내졌을 텐데, 환대를 받기는커녕 차가운 시신으로 눕는 것으로도 모자라 날짐승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손과 발, 심지어 얼굴의 일부까지 총탄과 포탄에 찢겨져서 날아가버린 채, 그곳에 방치되어 있다면서 전쟁은 애국하는 병사들의 주검조차 수습하지 않는 비정한 것인데도 '전쟁'에 환장한 이들은 전세계 어느 곳에나 있다는 역설적인 상황을 '날것, 그대로' 기사에 담아냈다.

 

  저널리즘이란 그렇다. '날것, 그대로' 전해져야 한다. 기자는 이런 생생한 정보를 모든 이들에게 알릴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물론 '생생한 정보'에는 기자의 '가치판단'으로 걸러낸 정수가 담겨야만 한다. 아무리 '날것'이라 해도 그냥 '전달'만 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생생한 정보에 기자의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 기사로 뽑아내야만 한다. 그 기사가 대박을 칠지 어떨지는 운에 달리긴 했다. 그럼에도 '날것, 그대로'의 기사에 독자들은 반드시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은 '저널리즘'이다. 물론 '저널리스트'도 중요하지만, 사람보다 먼저 양성해야 할 것은 '저널리즘'에 목마른 독자들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저널리즘'을 소비하기 위해선 교양을 쌓아야 한다. 시쳇말로 '옥석을 가릴 줄' 알아야 비로소 '저널리즘'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널리즘'에 갈증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져야 제대로 된 '저널리스트'들이 활동할 터전이 마련된다. 그 반대라면 저널리스트들이 아무리 입 바른 소리를 높이고 날카로운 기사를 쏟아낸 들 맥이 빠져서 금세 시들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용감하고 굳센 저널리스트라 하더라도 그들도 사람인지라 '먹고 사는 문제'가 결부되면 저널리즘을 쏟아내고 싶어도 못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기껏 용기를 내어 '밥줄 끊어질 각오'를 하고 저널리즘을 썼는데,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그 저널리스트는 끝내 굶어죽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널리즘에 목마른 교양있는 독자들이 먼저 양성되어야 한다. 그런 뒤에 '더 저널리스트'가 없는 현실에 대해 개탄을 금치 못한다는 성명을 내면...어디선가 스물스물 저널리스트들이 싹을 튀울 것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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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100리뷰 출판사'가 등장했다.

그간 '리더스클럽'을 통해서 꾸준히 리뷰를 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름 '나만의 탐독'을 할 정도로 매력적인 출판사였다는 사실이

이런 결과를 나은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한빛비즈'와의 첫 만남이 2018년 9월 27일이었는데,

100번째 리뷰는 2022년 11월 10일로, 대략 4년 2개월만이었다.

훨씬 이전부터 만났던 출판사와는 이제 고작 30여 권의 리뷰를 했을 정도였는데,

한빛비즈는 좀 달랐던 모양이다. 이토록 빠른 시일에 100리뷰 달성이라니...

솔직히 나도 놀랐다.

 

더구나 평소에는 잘 읽지도 않는

[자기계발]과 [경제경영], [에세이] 장르의 책을

도합 37권이나 읽었다.

한빛비즈의 '마법'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기적이었다.

리더스클럽 담당자가 말하길, 

"즐겨 읽지 않는 분야의 책이니 이번 기회에 즐겨보시길 바란다"는

말 한마디가 평소에 읽지 않는 책도 읽게 만들고야 말았다

정말 '미라클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지금까지 '한빛비즈'에서 출간한 책이 380여 권에 육박하니

부지런히 쫓아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ㅎㅎㅎ

앞으로도 좋은 책 출간을 부탁드려요^-^=

 

[과학] _ 6권

001 <우주에도 우리처럼> 아베 유타카, 정세영 (2018)

002 <오늘도 뇌는 거짓말을 한다> 알베르 무케베르, 정수민 (2020)

003 <세뿔돼지> 갈로아 (2019)

004 <이기적 유인원> 니컬러스 머니, 김주희 (2020)

005 <원소이야기> 팀 제임스, 김주희 (2022)

006 <협력의 유전자> 니컬라 라이하니, 김정아 (2022)

 

[교양툰] _ 20권

007 <만화로 배우는 의학의 역사> 장 노엘 파비아니, 김모 (2019)

008 <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 솔르다드 브라비, 맹슬기 (2019)

009 <퀀텀- 만화로 배우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로랑 셰페르, 이정은 (2020)

010 <만화로 배우는 와인의 역사> 브누아 시마, 이정은 (2019)

011 <까면서 보는 해부학 만화> 압듈라 (2020)

012 <할짝 심리학 1> 이한나 (2020)

013 <할짝 심리학 2> 이한나 (2020)

014 <만화로 배우는 곤충의 진화> 갈로아 (2018)

015 <만화로 배우는 공룡의 생태> 갈로아 (2019)

016 <중세1: 만화로 배우는 서양사> 플로리앙 마젤, 이하임 (2021)

017 <중세2: 만화로 배우는 서양사> 파니 마들린, 김수영 (2021)

018 <중세3: 만화로 배우는 서양사> 올리비에 보비노, 이정은 (2021)

019 <인문학 거저보기 : 서양철학 편> 지하늘 (2021)

020 <만화로 배우는 의학의 역사-개정판> 장 노엘 파비아니, 김모 (2021)

021 <만화로 배우는 조선 왕실의 신화> 우용곡 (2022)

022 <올림포스 연대기-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김재훈 (2022)

023<인피니티- 만화로 배우는 우주와 블랙홀의 비밀> 로랑 셰페르, 이정은 (2022)

024 <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 카린루 마티뇽, 이정은 (2022)

025 <만화로 배우는 불멸의 역사> 브누아 시마, 김모 (2022)

026 <만화로 배우는 요리의 역사> 브누아 시마, 김모 (2022)

 

[사회과학] _ 7권

027 <더 저널리스트 : 카를 마르크스> 카를 마르크스, 김영진 (2020)

028 <젠더 모자이크> 다프나 조엘, 김혜림 (2021)

029 <상식의 재구성> 조선희 (2021)

030 <눈 떠보니 선진국> 박태웅 (2021)

031 <대통령의 숙제> 한지원 (2022)

032 <알리기 전에 알면 좋은 사실들> 홍태화 (2018)

033 <나쁜 뉴스의 나라> 조윤호 (2016)

 

[자기계발] _ 10권

034 <미라클 모닝 기적의 공식>  할 엘로드, 김잔디 (2020)

035 <탄력적 습관> 스티븐 기즈, 김정희 (2020)

036 <바쁨 중독> 셀레스트 헤들리, 김미정 (2020)

037 <김불꽃의 불꽃 튀는 성인식>  김불꽃 (2019)

038 <돈 되는 기획> 김도균 (2021)

039 <다시, 배우다 RE:LEARN> 폴 김 (2021)

040 <뛰지 마라, 지친다> 이지풍 (2022)

041 <상식으로 상식을 배우는 법> 제바스티안 클루스만, 이지윤 (2022)

042 <때려치우기의 기술> 사와 마도카, 이효진 (2022)

043 <오늘도 시작하지 못하는 당신을 위해> 윤닥 (2022)

 

[인문학] _ 21권

044 <퇴근길 인문학 수업 : 뉴노멀> 백상경제연구원 (2020)

045 <청소년 인문학 수업 1> 백상경제연구원 (2020)

046 <청소년 인문학 수업 2> 백상경제연구원 (2020)

047 <북킷리스트> 홍지혜, 김나영 등 (2020)

048 <불안한 것이 당연합니다> 한덕현 (2020)

049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제이콥 M. 애펠, 김정아 (2021)

050 <생존 교양> 이용택, 김경미 (2020)

051 <저는 심리학이 처음인데요> 강현식 (2021)

052 <저는 인문학이 처음인데요> 박홍순 (2021)

053 <5리터의 피> 로즈 조지, 김정아 (2021)

054 <퇴근길 인문학 수업 : 멈춤 > 백생경제연구원 (2018)

055 <방구석 심리학 실험실> 마이클 A. 브릿, 류초롱 (2021)

056 <심리 읽어드립니다> 김경일, 사피엔스 스튜디오 (2021)

057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이주윤 (2016)

058 <을의 철학> 송수진 (2019)

059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 박윤진 (2022)

060 <예의 바른 나쁜 인간> 이든 콜린즈워스, 한진영 (2019)

061 <이그노벨상 읽어드립니다> 김경일, 사피엔스 스튜디오 (2022)

062 <4차 인간> 이미솔, 신현주 (2020)

063 <답답해서 찾아왔습니다> 한덕현, 이성우 (2022)

064 <손목시계의 교양> 시노다 데쓰오, 류두진 (2022)

 

[에세이] _ 3권

065 <별, 걔 다 그립네> 밤하늘 (2020)

066 <1년 후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시미즈 켄, 박소영 (2021)

067 <나 아직 안 죽었다> 김재완 (2021)

 

[경제경영] _ 24권

068 <바빌론 부자들의 돈 버는 지혜> 조지 S. 클래이슨, 사카노 아시히 (2020)

069 <게임 오버>  한스 페터 마르틴, 이지윤 (2020)

070 <부의 원칙> 래리 하이트, 노태복 (2020)

071 <성공 원칙> 레이 달리오, 고영태 (2019)

072 <원칙 Principles> 레이 달리오, 고영태 (2018)

073 <언택트 이코노미 2021> 최성근, 장두석 등 (2020)

074 <출근길 부자 수업: 트렌드 편 > 백상경제연구원 (2020)

075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한지원 (2021)

076 <기술의 시대> 브래드 스미스, 이지연 (2021)

077 <부동산 세금 사용설명서> 김성일 (2021)

078 <테슬라 웨이> 미카엘 발랑탱, 오웅석 (2021)

079 <감으로만 일하던 김 팀장은 어떻게...> 황보현우, 김철수 (2021)

080 <두 발로 선 경제> 이용우 (2021)

081 <비겁한 돈> 황현희, 제갈현열 (2021)

082 <슈퍼 석세스> 덴 페냐, 황성연 (2021)

083 <저는 주식투자가 처음인데요: 기본편> 강병욱 (2022)

084 <저는 주식투자가 처음인데요: 투자전략편> 강병국 (2021)

085 <저는 기업분석이 처음인데요> 강병욱 (2022)

086 <변화하는 세계 질서> 레이 달리오, 송이루 (2022)

087 <오늘부터 팀장입니다> 레이첼 파체코, 최윤영 (2022)

088 <트러스트 Trust> 벤저민 호, 조용빈 (2022)

089 <위코노미> 크레이그 킬버거, 이영진 (2020)

090 <10억이 열린다> 김민수 (2022)

091 <세븐 파워> 해밀턴 헬머, 유지연 (2022)

 

[교육] _ 2권

092 <서울대 아빠식 문해력 독서법> 이재익, 김훈종 (2021)

093 <게임세대 내 아이와 소통하는 법> 이장주 (2021)

 

[역사] _ 3권

094 <3분 삼국지 톡> 심 쌤 (2018)

095 <세금의 세계사> 도미닉 프리스비, 조용빈 (2022)

096 <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 로날트 D. 게르슈테, 이덕임 (2022)

 

[문학툰] _ 4권

097 <제인 에어> 샬럿 브론테, 김성은 (2022)

098 <주홍 글자> 너새니얼 호손, 정이립 (2022)

099 <빨강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양지윤 (2022)

100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정미선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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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3분 철학 2 : 서양 중세·근대 철학편 만화로 보는 3분 철학 2
김재훈.서정욱 지음 / 카시오페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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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은 왜 배워야 할까? 솔직히 철학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기왕 하는 공부라면 어려운 학문에 도전하는 것이 폼 나니까 '철학공부'를 한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것이 철학을 배우는 '찐 목적'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럴 듯한 이유는 뭘까? 그건 아마도 '삶의 목적'을 고뇌하는 학문이 철학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학문이 다 그렇지만, 철학은 '목적, 그 잡채'에 초점을 맞추는 학문이기에 참으로 매력적인 학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왜 사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철학'에서 찾아야 하는 법이다. 이는 다른 학문에서는 좀처럼 답할 수 없고, 애써 그럴 듯한 답을 하더라도 결국엔 '철학적인 답변'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에 대해 궁금해진다면 다들 '철학책'을 뒤적거리곤 하는 법이다.

 

  한편, 철학을 쫌 배웠으면 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는 '대통령'이 그랬으면 싶다. 과연 '그'도 정치철학이 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에서 탈피를 하겠다며 청와대를 떠난 대통령이 '더욱더 제멋대로 행동'하며 폭군으로 전락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질 않나. 긴 연설을 할 자신이 없어서 말을 줄이는 것은 좋은데 '내용'까지 빈약해서 들어줄 말이 없는 것이 문제고, 짤막한 회견을 할 때조차 어김없이 '말실수(?)'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평상시에는 얼마나 품위 없는 언행을 하는 것인지 가이 짐작조차 하지 못할 지경으로..한마디로 엉망진창이다. 결국엔 '공개적인 자리'에서 불쑥 튀어나온 욕설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고야 말았다. 국제적 망신은 둘째치고 '해명'하기에 급급한 모습에 뒷수습조차 휘뚜루마뚜루 해버리고서 '논란'을 더 키우더니 끝내는 '언론통제'까지 자행 하고야 말았다. 도대체 뭔 생각을 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희생자를 희생자라 말하지 못하게 하고, 참사 수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검은 리본 뒤집기'에나 신경을 쓰는 등...'우선 순위'도 없고, '일관성'도 없고..'철학'은 더더군다나 없어 보인다. 좋든 나쁘든 뭔가 '보여주는 것'이 있어야 제대로 비판이라도 할 것 아닌가. 이건 뭐 하나를 해도 '갈지 자'를 그리니 비판도 아까워 '비난'만 늘어놓게 만든다. 비단 '대통령'만의 문제는 아니고 말이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이 총체적 난국에 빠진 듯해 안타까운 심정일 뿐이다.

 

  이렇듯 철학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그렇다면 철학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질문을 바꿔서, '철학공부를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로 다시 묻고 싶다. 어렵고 복잡한 철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 시중에 많지만, 그런 책들조차 '난해'하기는 매한가지인 까닭에 드리는 질문이다. 이런 궁금증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이 더욱 눈에 띄었다. <만화로 보는 3분 철학> 말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만화형식'이라면 더욱 쉽고 한 눈에 이해하기 쉬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만화형식'이 마냥 달가운 것만은 아니다. 어려운 내용을 '한 컷'의 그림과 말풍선으로 단박에 이해시키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화가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복잡한 철학의 내용을 뭉뚱그리면서도 한 눈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노련한 실력을 갖추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만화'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3분 철학'이라는 제목도 쓰여 있다. 위대한 철학자의 사상을 꼴랑 '3분'만에 이해시킬 수 있을 정도라니, 얼마나 대단한 책일까 하는 '기대감'이 책을 보자마자 샘 솟았다. 과연 '가능'한 일이었을까?

 

  놀랍게도 결과는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비록 3분만에 완성하지는 못할 망정이라도 말이다. 왜 그런 경우 있잖은가? 컵라면은 '제대로' 익히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는 경험 말이다. 심지어 뜨거운 물을 붓자마자 뚜껑을 열어재끼고 젓가락을 들이밀면서 채 익지도 않은 면발을 갉아먹고 식지도 않은 뜨거운 국물을 입김을 호호 불며 들이키는 경우 말이다. 그렇게 먹어도 참 맛있지 않던가? 이 책이 그랬다. 비록 '철학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철학의 정수'를 맛보지는 못할지라도, '철학의 맛'만은 제대로 느낄 수 있었고 '철학하는 즐거움' 또한 든든하게 채울 수 있었단 말이다. 심지어 이 책은 1권도 아니고 2권이다. 아직 1권을 읽지 않은 상황에서 2권의 내용을 접했는데도 '철학의 재미'를 맛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철학적 호기심'은 부쩍 달아올랐다. 그래서 1권을 채 읽기도 전에 2권의 '리뷰'부터 쓰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빠른 시일 안에 1권 리뷰도 올릴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은 서양의 '중세철학'과 '근대철학'을 다루고 있다. 아시다시피, 중세철학의 정수는 '신학'이고, 근대철학의 진수는 '이성'이다. 이런 단편적인 개념만 알고 있어도 웬만한 철학적 지식을 나불거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부철학'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철학'이 중세철학의 핵심이고, 근대철학은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만 알고 있어도 대강의 '철학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고대의 철학자들은 '자연철학'을 했더랬다. 익히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거물급 철학자들의 사상은 '자연'에서 보이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철학적 사유'를 하면서 '통찰적 썰'을 풀어내었더랬다.(아마도 이것이 1권의 핵심내용일 것이다) 그러다 중세로 넘어오면서 '철학사상'은 암흑시대를 맞았다고들 떠든다. 그건 자유롭고 방대했던 '자연철학의 사유대상'들이 오직 하나인 '신앙'으로 대폭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중세철학'은 신앙을 '이성(철학)'으로 설명하려 애쓰던 노력의 결실이다. 그러던 것이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플라톤 철학'을 통한 '교부철학'으로 정립되었고, 아퀴나스 덕분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의한 '스콜라 철학'이 새롭게 떠올랐다. 그러다 '르네상스'를 맞아 근대 사람들은 '인본주의적'인 이성에 다시 집중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근대철학'은 이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열띤 논쟁을 벌이며 '철학적 사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가장 먼저 '데카르트'에 의해 더는 의심할 수 없는 '생각하는 존재'를 떠올리며 이성에 대해 논하게 되었다. 이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로 더 유명하게 만들었고, 철학은 '신학'에서 벗어나 더욱 자유로운 사상으로 '확장'되었다. 물론, 근대의 철학자들이 '신앙심'을 버린 것이 아니다. 서양은 '신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대철학자들은 '무신론자'가 되는 걸 꺼렸다. 더 정확히는 무신론자로 '낙인' 찍히는 걸 두려워했던 것일테고 말이다. 그래서 근대 서양인은 '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신'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다만, 중세철학자들이 '신의 존재'를 이성적(철학적)으로 증명하길 즐겼다면, 근대철학자들은 굳이 '신의 존재'까지 증명하는 것을 떠나 보다 더욱 '이성(생각)'에 집중하는 철학적 사유를 즐겼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런 '이성(생각)' 중심의 합리적 도출이 심화될 즈음에 '경험' 중심의 경험적 지식 습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자들이 등장했다. 바로 로크와 흄 등 '경험론'의 철학자들이다. 이들은 이성과 사유만으로 '실재 존재하지 않는 것'까지 이해할 수는 없다면서 '경험'을 통한 지식 습득만이 보다 완전한 '실존'을 이해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데카르트, 스피노자 등의 '합리론'과 로크, 흄 등의 '경험론'은 서로간의 논쟁을 통해 더욱 세련되게 다듬어지게 되었으며, 이후의 철학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던져주는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집대성한 위대한 철학자가 바로 '임마누엘 칸트'다. 그는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을 통해서 근대철학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업적을 남겼다. 이후 '헤겔'에 의해 서양의 철학은 '변증법'을 통해 '정-반-합'이라는 끊임없는 성찰을 하면서 밝게 빛나는 지성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이후의 '현대철학'은 더욱 세심하고 정교한 철학적 사유를 하게 될 것이다. 그 내용은 <이 책의 3권>에서 다루게 될 것이고 말이다. 역시, 리뷰 올리겠다.

 

  어느날 문득, 내 손에 들려진 책속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찾는 일은 유익함을 넘어 '기쁜, 그 잡채'가 되곤 한다. 이 책도 그렇다. 모쪼록 더 좋은 책이 많이많이 출간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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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배우는 요리의 역사 - 선사시대 불의 요리부터 오늘날 비건까지, 요리의 위대한 진화 한빛비즈 교양툰 20
브누아 시마 지음, 스테판 두에 그림, 김모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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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쳇말로 역사는 '승자가 남긴 기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패자는 말이 없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기록'은 승자, 패자, 양쪽 모두 남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역사는 '승자의 기록'만 유독 남기는 것일까? 두 가지를 추론해볼 수 있다. 하나는 '두 기록'이 서로 저울질을 하다 '승자'쪽의 입김이 점점 쎄지면서 승자의 기록만이 옳은 것이라 여겨지게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승자가 '고의'로 패자의 기록을 삭제하고 승자의 기록만 남는 것일게다. 물론, 대부분의 역사는 '후자'쪽의 방법으로 선택(?)되어 질 것이고 말이다. 그렇기에 후대의 역사가들은 기본적인 '사료'만을 곧이 곧대로 믿고 아무런 비판의식도 없이 써내려가는 것을 경계해야만 한다. 이는 독자도 마찬가지다. 책 속에 적힌 '모든 것'이 모두 진리일 거라는 맹신은 절대 금물이다. 우리가 '비판적 읽기'를 실천해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고 말이다.

 

  한편, <요리의 역사>라는 제목만으로도 책의 내용을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날까지 '요리'로 유명한 나라는 손으로 꼽힐 정도이고, 그런 나라 중에서도 '역사'를 운운할 정도의 나라는 '프랑스'와 '중국' 두 나라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양작가의 책이라면...이 책의 내용이 '프랑스 미식가'의 내용이 주로 담길 거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세 가지인 '의식주의 차원'에서 '요리'를 다루고 있었고, 말그대로 선사시대의 요리부터 오늘날 먹거리 문제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접근을 하고 있어서 참신했다. 그럼에도 책내용 곳곳에 '프랑스 궁중예법과 요리'를 소개하는 장이 꽤나 자세하게 나오며 오늘날 '고급요리의 대명사'는 서양(프랑스)에서 비롯되었다는 자부심이 은연중에 깔려 있는 것을 보면서 살짝 아쉬웠고, 그밖의 유럽 이외의 나라들의 요리를 소개할 때는 '위키백과사전'의 내용을 팩트체크도 하지 않고 올린 듯한 '설명식 나열'에 그쳐서 안타까웠다.

 

  하지만 '요리' 하나에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담겨 있어서 그것들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새삼 즐거움을 선사했다. 로마 공화정시절의 검소한 식문화가 제정시대로 접어들면서 '사치의 향연'이 되어 부와 권세를 자랑하는데 잔치(음식)를 빼놓을 수 없게 된 사연이나, 중세 유럽에서는 '하늘의 음식'과 '땅 위 음식', 그리고 '땅 속 음식'으로 나뉘어 신분에 따라서 먹을 수 있는 '음식재료'가 정해져 있었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식탁위에서 포크를 사용하면 편리했을텐데도 포크를 사용하던 공주가 결혼을 한 지 얼마 뒤에 흑사병으로 죽자 불경스런 도구(사탄이 쓸 법한 도구)로 알려져서 오래도록 쓰지 않고 손으로 음식을 먹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요리'를 역사적인 관점으로 살펴보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인류는 오랫동안 먹고 사는 것이 힘들었기에 불과 100년 전만해도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다 먹는 것이 미덕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먹거리가 너무나도 풍요로워져서 오히려 '다이어트'를 해서 수명을 연장하려고 한다. 쉽게 말해, 과거에는 너무 못먹어서 죽었다면, 현대에는 너무 많이 먹어서 죽는 진풍경(?)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그에 따라 인류는 '건강음식'을 찾게 되었고, 더 나아가 '비건(채식주의자) 음식'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현대인들은 '정크(쓰레기)푸드'를 너무 많이 먹기 때문에 수명이 늘어났지만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해 고통스런 질병에 시달리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지속할 수 없게 되는 비극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에 '건강한 음식'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미래의 음식과 요리는 어떤 식으로 바뀌게 될까?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과 같은' 풍요로운 식단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후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세계인구는 80억 명을 넘겼으며, 곧이어 찾아올 빙하기는 인류의 식단은 물론이려니와 요리법까지 싹 다 갈아치우게 만들 것이다. 운이 좋아 '빙하기의 도래'를 훨씬 더 늦추거나 '빙결상태'에 빠진 지구를 무사히(?) 탈출해서 '제2의 지구'로 찾아 떠나는 등등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해본다면, 반드시 '요리법' 또한 빼놓지 않고 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 미래라고 해도 인간이라면 반드시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뭐, 모든 인류가 '안드로이드화' 되어 전기충전만 해주면 그만이라든가, '식물화'가 되어 광합성만으로도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아무쪼록 먹거리에 관한 한 '인류역사상 최고의 풍요'를 누리는 현대에 살면서 <요리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져줘야만 할 것이다. 이 책이 살짝 아쉽게도 '한국의 음식'을 전혀 소개하지 않고 있고 있지만, 21세기엔 '한류의 바람'이 '한식'에까지 불어닥칠 것이 분명하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것 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건강까지 탄탄히 보장해줄 '요리법'이 한식에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비법'을 정갈하게 포장해서 세계에 알리는 일만 남았다. 믿지 못하겠다고? 요리의 천국으로 불리는 '중국'이 자국에서 난 요리로 만족하지 못하고 '한국'에서 맛나다고 소문난 '모든 것'을 자기네가 원조라고 박박 우기는 일을 왜 하겠냔 말이다. 뒤늦은 '원조논쟁'까지 벌이며 '김치'를 비롯해서 한국의 음식, 한국의 문화, 심지어 '한국인'조차 중국인이라고 사기(?)를 치고도 부끄러운줄 모르는 중국을 볼작시면 10~20년 뒤엔 '한국의 요리와 음식'이 전세계를 제패할 것이 분명하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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