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책을 읽었다 - 세계문학 전집을 읽으며 나를 찾아가는 시간
최에스더 지음 / 사부작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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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책을 읽었다>  최에스더 / 사부작북스 (2025)
[My Review MMLXXII / 사부작북스 1번째 리뷰] 책을 읽고 리뷰한다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중노동'에 빗댈 수 있을 정도로 고된 업무(?)였다. 대한민국의 '독서인구'가 선진국 가운데 최저인 상황에서 취미 삼아서 책을 읽는 분들은 그나마 많아졌지만, 책을 읽고 그에 따른 감상까지 일일이 독후감으로 쓰는 분들은 개중에도 드문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각종 '온라인서점'에서 블로그나 사락을 운영하는 분들이 써대는 리뷰를 보면 정말 많이 쏟아내듯 쓰고 있긴 하지만, '리뷰'에 쏟은 정성의 차이는 정말이지 하늘과 땅 차이를 방불케 하고, 그런 리뷰를 꾸준히 써내는 분들 또한 '편차'가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다. 한마디로 '읽고 쓰는 이'들 중에서도 읽는 사람만 읽고, 쓰는 사람만 줄곧 쓰고 있기에 차이가 극명하게 보인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평생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고, '단 한 편의 리뷰'도 쓰지 않고 잘만 살고 있지만, 어떤 분들은 평생동안 '일만 권의 책'을 읽으려 들고, 읽는 족족 '리뷰'로 자신이 살고 갔다는 흔적을 남겨 놓기도 한다. 그 가운데 정말 글을 맛깔나게 잘 쓰시는 분들이 이 책 <그 남자는 책을 읽었다>와 같은 '독서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한다. 나도 리뷰어로 20년 간 2000편이 넘게 쓰긴 했지만, 그런 행운(?)은 아직 만나지 못해서 참으로 부럽기 그지 없다.

  책 속에도 언급되긴 했지만, 나이 50살이 넘어가면 '세계 명작'이라 불리는 고전소설들의 내용이 느닷없이 이해되기 시작하는 경험을 받게 된다. 물론 어릴 적부터 꾸준히 고전소설을 즐겨 읽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충족해야만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꼭 책을 많이 읽어야만 가능한 경험이 아니라 삶을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겪었다면 누구라도 어느 정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고전 명작'을 쓴 작가들도 자신이 겪은 파란만장한 경험을 했어야만 자신의 작품 속에 잘 녹여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 어릴 적에도 어른들은 "만화책 같은 시시껄렁한 책만 읽지 말고 '한 사람의 인생'이 잘 녹아 있는 고전 소설을 많이 읽어라"라는 말을 종종 한 것이다. 어릴 적에는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내가 그때의 어른의 나이가 되고 보니 저절로 이해가 되었던 것이다.

  이게 '평범한 사람'이 깨닫는 지혜일 것이다. 그렇다면 '위대한 사람'이라면 어떨까? '지천명'의 나이(50살)가 넘어서야 겨우 깨달을 수 있는 인생의 참진리를 10대와 20대의 어린 시절에 깨우친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게 깨달은 진리로 30대에 세상을 환히 밝힌 사람들이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위인들의 삶'일 것이다. 이게 바로 고전 명작을 가까이에 두고서 즐겨 읽어야 하는 명백한 이유다. 학교 성적은 엉망이어도 세계 명작으로 손꼽히는 책들을 어린 시절부터 즐겨 읽었던 이들이, 훗날 어른이 되어서 세상에 펼치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역사'에 족적을 남긴 사례는 각종 '위인전'의 단골 스토리이기도 하다. 왜냐면 그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명작 소설을 잘 읽지 않는가? 사실 잘 읽지 않는 것보다는 '읽어도' 뭔 내용인지 갈피를 잘 잡지 못한다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고전 소설 좀 읽어보셨다고 자부하는 분들조차 한 번 읽기에도 버거운 '벽돌책'이 있는가 하면, 원체 어려운 내용인데다 따분하기까지 한 '딱딱한 어조'로 인해서 단 한 줄만 읽었을 뿐인데 졸음이 쏟아지게 만드는 '지루한 책'도 읽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전 소설치고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다고 깔깔대면서 읽는 독자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지겹고 따분하지만, 그걸 꾹 참고 끝까지 읽으니 참 좋은 책인 것 같더라는 막연한 느낌만 받을 뿐이기에 접하기를 꺼리는 분들이나, 그렇게 읽기를 꺼리는 책도 있다. 그래서 '고전 소설'을 그럭저럭 재미나게 읽을 수 있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법이다. 바로 이 책 <그 남자는 책을 읽었다>의 저자처럼 말이다.

  하지만 착각은 금물이다. 아무리 재밌게 풀어서 설명해준 '리뷰'를 읽었다하더라도 '원작'을 읽어서 얻는 감동에 비하면 '새 발의 피'보다도 못한 아주 미세한 감흥 하나를 겨우 얻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전 소설'을 읽을 자신은 업으니, 남들이 써놓은 '짤막한 리뷰'를 대신 읽고 고전 소설을 읽은 척한다면 정말이지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는 허튼 짓(!)에 불과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면 아무리 잘 쓴 리뷰일지라도, 그건 그저 '한 사람의 견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해하기에 너무 난해해서 '약간의 귀띔'을 받을 목적이라면 남이 써 놓은 리뷰가 정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리뷰만으로 '원작의 깊이'를 모두 이해했다거나 통찰할 수는 없는 법이기에 그렇다. 이는 '전문가'가 쓴 리뷰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답게 그들이 써놓은 '평론'이 아무리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고 이해가 쏙쏙 되는 문장 해독을 거쳤다고 하더라도 '평론'은 평론일 뿐, 결코 '대작'이라 불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된 말로 아무리 독설로 유명한 '평론가'라고 하더라도 일류는 될 수 없다고 한다. 왜냐면 평론가들 가운데 '일류'가 있다면 남들이 써 놓은 글에 대거리만 늘어놓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대작'을 써 놓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를 비유해서, 일류는 '명작'을 쓰지만 삼류는 '평론'을 쓴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리뷰어(평론가)를 폄하하기 위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리뷰'에 감동해서 읽기를 그치지 말고, 반드시 '원작'을 읽고서 대작의 깊이를 스스로 느껴보기실 권하기 위해서 한 말이다.

  한편, 이 책의 제목이 <그 남자는 책을 읽었다>다. 후속작도 곧 나올 듯 한데 <그 여자는 길을 찾았다>로 잡은 듯 싶다. 이 때문에 '남자'는 책을 읽을 뿐이고, '여자'는 책 속에서 진리를 찾아낸다는 식으로 독자를 '성별'에 따른 차별을 심화시킨 것 같은 선입견을 주기도 한다. 또는 책을 읽는 행위가 주는 '남녀간의 차이'를 선별적으로 나눠서(?) 주는 것이라고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남자는 책을 읽는 것으로도 충분한데, 여자는 굳이 책 속에서 '살 길'을 찾아나서야 할 정도로 절박한 것 아닌가 싶은, 그런 느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후속작에서는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책들을 따로 골라서 리뷰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적어도 우리가 '고전 명작'이라고 부르는 한에는 말이다. 책 내용의 깊이와 '성별'은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시대적 배경'에 따른 한계점이 부각되느냐 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소위 '전근대적인 사회'에서의 여성의 삶이 남성에 비해서 형편없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지 아닌 지에 따라서 '여성의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에 대한 고찰만 구분될 뿐이다. 그리고 애써 이런 구분을 할 필요도 없이 오직 '인간문제'만이 있을 뿐이라는 올바른 시각만 가지고 있다면, 굳이 편견을 가질 것도 없다고 하겠다. 애초에 모든 소설 속 주인공들은 '문제의 원인'을 유발하는 존재일 뿐이다. 문제가 없다면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도 없고 말이다. 단지 그 주인공이 다수인 '남자'이냐, 소수의 '여자'이냐일 뿐이다. 이는 작가도 어쩔 수 없이 '경제적 여유'를 가진 독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으로도 보인다. 그러니 그런 구분을 애써 나눌 필요는 없었을 텐데, 뭐, 굳이 책 한 권에 모두 담을 수 없어 '나누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볼 수도 있겠다. 이런 구분보다는 '주제별' 구분을 해서 나눴으면 더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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