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격 한중일 세계사 19 - 1904 러일전쟁 ㅣ 본격 한중일 세계사 19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2월
평점 :
<본격 한중일 세계사 19 : 1904 러일전쟁> 굽시니스트 / 위즈덤하우스 (2024)
[My Review MMXLVII / 위즈덤하우스 40번째 리뷰] 대한제국의 운명은 고종황제의 손을 이미 떠났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반도'를 이익선으로 삼고 만주를 넘보고 있었으며, 그 만주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러시아'와도 한판 승부를 벌이려 하고 있었다. 그럼 만주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물론 청나라땅이긴 하지만 청나라는 대한제국보다 훨씬 이전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할 처지에 놓이고 만다. '의화단 사건'으로 인해 청은 서양에 막대한 배상금을 무는 '신축조약'을 서명한 뒤에, 더는 힘을 쓰지 못하는 상태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때를 노리고 러시아는 만주를 점거하고 '시베리아-동청 철도'를 완성하며 실질적인 지배권을 확대해 나간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두고 볼 수 없는 처지다. 앞에서 말했던 '일본의 이익선'에 한반도를 넘어 만주, 더 나아가 동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야심에 불타올랐기 때문이다. 훗날 '대동아공영권'이라 허울 좋은 이름으로 붙인 야욕의 발판으로 '만주'를 손에 넣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럼 만주의 주인은 누가 될 것인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러일전쟁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지만, '러일전쟁'이 발발하기까지의 실제 과정은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책 <본격 한중일 세계사>시리즈가 참으로 유익한 까닭이다. '한국의 근대사'만 보아서는 결코 역사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없었는데, 이 책은 '역사속의 근대사' 가운데 '19~20세기 한중일 삼국'을 집중 조명하면서 우리가 익히 잘 알지 못했던 '근대사의 이면'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단순히 '러일전쟁 발발-일본의 승리-한국의 국권침탈'이라는 단순한 사건 나열만으론 절대 이해할 수 없는데, 이 책을 읽으면 '한중일 삼국'뿐만 아니라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서구열강들까지 속속 소환시켜서 차근차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론 매우 유익했다. 물론 '역알못 독자'도 웃음 짓게 만드는 굽시니스트의 촌철살인격 개그 드립도 이 책을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사실 '한중일 삼국의 근대사'는 서구 열강의 약탈적 침략과 무참한 학살이 자행된 아픔을 공통으로 겪었기에 결코 웃을 수 없는 일이지만, 굽시니스트의 개그 드립 덕분에 너무 '진지함'에 빠지지 않고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역사적 객관화', 가까운 이웃과 우리의 아픈 역사를 얼마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그 덕분에 역사적 통찰력을 기를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나 고마운 책이 20번째 책으로 시리즈를 마감한다니 정말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럼, '러일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먼저 일본이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으며 청나라로부터 엄청난 배상금을 받아낸다. 아쉽게도 청으로부터 할양 받은 '요동반도'를 삼국간섭(러시아, 프랑스, 독일)에 의해 다시 돌려줄 수밖에 없었지만, 일본 1년 예산의 3배가 넘는 배상금을 한 방에 받아낸 상황만으로도 일본 국민들은 환호했던 것이다. 그래서 청일전쟁 개전 초기만해도 '반전 여론'을 높이던 일본 언론도 '승전보'를 알리게 되면서 일본인의 자긍심을 북돋는 일대 사건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일본의 '국뽕 신드롬'이 시작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청일전쟁 승리, 러일전쟁 승리가 도화선이 되어서 '중일전쟁'을 본격화시키는데 일조를 했고, 급기야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키는 시작점이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현재까지 일본은 미국의 꼭두각시 국가가 되고 말았지만, 러일전쟁까지만해도 일본은 그야말로 '기고만장의 끝판'을 보여주었다. 그런 까닭에 일본이 '만주'를 호시탐탐 노리는 러시아를 그냥 냅둘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막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안착한 일본이 거대한 러시아와 한판 승부를 벌인다는 것은 여러 모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러시아는 일본의 전체 국력보다 5배 이상 거대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시의 국제 관계는 러시아와 프랑스가 한 편을 먹고 있었기에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게 되면 프랑스가 러시아를 도와서 일본을 협공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일본이 러시아 한 나라와 '만주'에서 승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데, 청나라와 베트남에 주둔하고 있는 프랑스 군대까지 일본의 본토를 공격하는 일이 발생하면 큰일이 나는 것은 물론, 전쟁의 승리를 절대로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일본은 서둘러서 '영일 동맹'을 체결하려 애쓴다. 만에 하나 러시아-프랑스 연합군을 일본이 혼자 상대해야 할 경우에 프랑스와 앙숙인 '영국'을 끌어들여서 전쟁의 양상을 대등(?)하게 이끌어가기 위해서다.
그런데 영국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왜냐면 당시 영국은 남아공에서 벌인 '보어전쟁'으로 기진맥진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딱히 '극동'에서 러시아와 일본이 맞붙어 싸우든 말든 크게 상관하지 않으려 했고, 실제로 도와줄 수 있는 여력도 없었다. 한마디로 영국의 재정이 고갈된 상태였기 때문에 굳이 '러일전쟁'에까지 관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영국은 프랑스가 관여 된 곳이면 빼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프랑스가 러시아 편을 들어서 일본을 공격해서 이득을 취한다는 것에 영국이 발을 뺄 수는 없는 법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영일 동맹'은 쉽게 체결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재정 고갈'이었다. 러시아는 만주에 터를 잡고 태평양으로 나갈 수 있는 발판으로 삼으려 들었고, 기회가 된다면 압록강 이남의 한반도까지 진출해서 확고한 세력권을 형성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영국도 이를 미연에 막기 위해서 한때 나마 '거문도 점거'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일본은 한반도를 넘어 만주까지 '이익선'으로 삼고, 동아시아에서 패권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뜨거운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렇기에 '러일전쟁'은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서로의 동맹국이 전쟁을 벌이면 동맹국은 '자동참전'이 된다. 그렇게 '러프 vs 일영'은 2:2 매치가 성사되고 만다.
이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나라가 바로 '독일'이었다. 독일은 네 나라가 서로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틈을 타서 '확고한 기반'을 다지고 '네 나라'가 모두 지쳤을 때 전세계 식민지를 차지하겠다는 원대한(?) 계산기마저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영국과 프랑스는 '러일전쟁'이 발발하더라도 영국과 프랑스는 참전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나누고 조용히 '관망모드'로 전환한다. 미국은 일찌감치 발을 빼서 '만주'를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의 한 판 대결이 성사된 것이다.
드디어 1904년 일본은 본토에서 병력을 실은 전함들을 '한반도'로 출격시킨다. 영일 동맹을 맺고 성사시키는 사이에 '고종'은 대한제국의 중립국 선언을 만방에 타전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만큼 대한제국의 운명은 이미 나락으로 떨어졌고, 일본의 '보호국'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더구나 러일전쟁 발발 직전에 '제1차 한일의정서'에 사인을 한 고종은 러일전쟁 발발시에 일본군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그나마 병력 지원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물량을 일본의 병참기지로 보내야 했기에 대한제국은 이미 일본의 수탈을 그냥 방치하고 있는 허약한 모습을 보여줬을 뿐이다. 그리고 한반도에 정박하고 있던 러시아 상선은 일본 전함의 피격을 받아 그대로 침몰하고 만다. 아직 '선전포고'도 하기 전이었지만, 일본은 서구열강의 경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승리의 목마름'을 보여주듯 결연한 자세로 황해를 누비고 요동반도 끝자락에 있는 '뤼순항'으로 진격한다.
초전은 일본의 승승장구였다. 뤼순항 앞에서 대치한 두 나라의 함대함 대전에서 기선을 제압 당한 러시아 태평양 함대는 졸전 끝에 뤼순항 안쪽으로 모두 퇴각을 하고 '버티기 모드'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러시아 군사력이 일본의 군사력보다 5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러시아 영토가 동서로 길게 늘어섰다는 점이 '병력이동'에 불리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총병력수에서는 앞서고 있지만, 당장 '뤼순항'과 '만주'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는 일본에 비해 열세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군대가 만주에서 일본군의 공세를 버티고만 있어도 전황이 유리하게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했다. 일본군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었는데, 바로 '시베리아 철도'가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완공을 앞두고 있었고, 러시아 해군의 주력함대인 '발틱함대'가 머나먼 극동의 전장까지 도착하기만 한다면 단번에 일본군은 '수세'를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본군은 속전속결로 서둘렀고, 러시아군은 버티다 후퇴하고, 버티다 후퇴하길 반복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군의 발빠른 진군이 초전의 승리를 장식할 수 있었다. 반면에 러시아군은 졸전을 거듭하며 '진지'를 버리고 후퇴하길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다 '뤼순항'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일본군의 무모한 돌격 명령으로 애꿎은 병력만 낭비하는 일이 벌어진다. 러시아군이 쌓은 '콘크리트 방어성채'를 목전에 두고 낮이고 밤이고 '돌격 명령'만 외치는 일본군 지휘부의 무지한 공격에 쌓이는 것은 젊은 일본군의 시체들 뿐이었다. 은폐, 엄폐할 곳도 없는 콘크리트 비탈길을 앞에 두고 왜 '돌격명령'을 내린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화력(?)으로 뤼순을 함락시키긴 한다. 엄청난 사상자를 만들고서 말이다. 굳이? 그러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는 수많은 전략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암튼, 1904년의 러일전쟁은 일단 양측 모두 엄청난 사상자를 남기고 일단락을 짓긴 하지만, 결과적으론 '러시아의 패배, 일본의 승리'로 마무리를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전쟁은 해를 넘겨 1905년으로 넘어간다. 아직 러시아의 주력 전함인 '발틱함대'가 아프리카 희망봉을 넘어 최종목적지인 블라디보스토크항으로 진격을 하고 있다. 과연 '발틱함대의 운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