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4 - 완결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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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CIX / 문학동네 24번째 리뷰] 그간 마스다 미리의 만화책을 몰입해서 읽어보았다. <내 누나 시리즈>를 시작으로 <수짱 시리즈>, <사와무라 씨 시리즈>, <주말엔 숲으로>, 그리고 <치에코 씨 시리즈>까지 국내에 번역된 만화책의 상당수를 읽은 것 같다. '에세이' 책들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글쎄..읽기 시작한 김에 독파해보려 한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마스다 미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는다. 그냥 '여자들의 평범한 수다'를 다루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 '말속에 뼈'를 감추고 있는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그도 아니면, 내가 '여자'가 아니라서 '여성작가'의 주제의식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부쩍 의심이 들기 시작하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마스다 미리' 작가에 대한 호불호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크게 실망한 것은 분명 아닌데, 그렇다고 딱히 내가 좋아라하는 내용의 책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딱히 일본작가의 책을 선호하는 편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그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안 읽은 것도 아니고 시오노 나나미, 다치바나 다카시 작가의 책들은 '전작(全作)'을 거의 다 읽었을 정도이고 웬만한 책들은 '소장'까지 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나에게 꽂힌 작가'는 어김없이 송두리째 다 읽어 재끼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습성 덕분에 이번엔 '마스다 미리'가 걸려들었다. 그런데 어느 작가든 이만큼 읽어재끼면 '이런 류의 작가구나'하는 느낌이 들곤 하는데, 마스다 미리는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그냥 여성 특유의 잡담인 것 같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은 수다속에 뭔가 철학적 사유를 담아 놓은 것 같기도 하고, 그도 아니면 사회문제에 대한 나름의 '깊은 고찰'을 담아 놓은 것도 같은데, 그런 꼬투리를 잡고서 뭔가를 써보려고 하면 얼마 못가서 흐지부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묘하게 계속 그녀의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보고 있으면, 뭔가 '친숙한 느낌(?)'을 받고 있다는 느낌도 얼핏 들곤 한다. 어쩌면 초식도 아니고, 육식도 아닌 '잡식성'과 일맥상통한 내 리뷰의 성향과 비슷하기 때문일까? 한 우물만 파면 그래도 뭔가 '깊이'라도 자랑할 만할텐데, 수십가지 종류의 책들을 두루두루 읽고 써온 탓에 이도저도 아닌 '잡탕맛 리뷰'에 그치고 마는 품이 딱 그런 느낌이 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조금 풀리긴 하다. '도플갱어 전설'처럼 나 자신과 꼭 닮은 것을 마주하면 긍정적인 느낌보다 부정적인 느낌이 앞서는 것과 같은 이치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마스다 미리의 책'을 아주 좋아할 수 없다.

헛소리는 이쯤하고, 어느 덧, <치에코 씨 시리즈>도 완결편을 독파했다. 딱히 소감을 말하자면, 심히 부러웠다는 점이다. 나도 결혼생활을 한다면 '사쿠짱과 치에코 씨'처럼 알콩달콩하면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치에코 씨처럼 직장 동료와 식사를 하면서 '배우자 자랑'만 늘어놓고 있는 나를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험담으로 시작하지만 다 듣고 나면, 은근 자랑질만 실컷 한 셈이 되는 그런 이야기를 나는 정말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결혼은 미친짓'이라는 굳은 신념을 내세우는 선배들도 많이 보았지만, 그들도 결국엔 마누라 자랑, 자식 자랑을 하는 모습으로 귀결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 부러움 덕분이었는지 '사쿠짱의 현명함'과 '치에코 씨의 귀여움'이 정말이지 보기에 좋았다.

물론, 간혹 투닥거리는 모습이나 눈물을 찔끔거리고, '만약에~'라는 이야기로 시도때도 없이 귀찮게 하는 모습을 보일 때면 질색하긴 했지만, 그런 모습을 보이고 난 뒤에는 어김없이 '하트 뿅뿅'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작가의 배려(?) 덕분에 질식할 것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는 씁쓸했다. 치에코 씨가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습은 좀 거북했다. 물론 치에코 씨는 그런 죽음의 이야기에서조차 "내가 먼저 죽더라도 사쿠짱은 오래 살어"라는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 꺼낸 말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처럼 불쑥불쑥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는 40대 부부에게는 그닥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고독사 문제'가 심각하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함과 동시에 '빈집 문제'가 불거지기도 하고,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로봇도우미가 등장할 정도라고 하니,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듯 싶다. 그런데 치에코 씨가 말하는 '죽음'은 그런 류의 문제의식에서 나온 발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치에코 씨는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맞이하는 슬픔'을 감당하기 힘들 것 같으니, 사쿠짱은 자신보다 더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자신은 그런 슬픔이나 아픔, 고통을 감당하기 힘들 것 같으니 그냥 내가 먼저 죽는 것을 택하련다. 이런 식으로 가볍게(?) 죽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에코 씨의 말속에는 뼈가 없다. 그저 듣는 사람을 황당케 하거나 당혹스럽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것은 좋은데, 남편의 물건까지 싹쓸어서 다 갖다 버리고 싶어하는 것은 좀 그랬다. 내 성격이 물건을 잘 쌓아놓고 잘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집안 곳곳에 오래된 물건들이 먼지를 켜켜이 쌓은채 자리보전하고 있다. 그런데 사쿠짱은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저 물건 하나마다 '추억'을 간직하고, 그 추억을 소중히 여기며, 무엇보다 '메모'를 대신하는 실용적인 면까지 있다. 그런데 치에코 씨는 그런 것을 결코 용납치 않았다. 집안에 물건이 쌓이는 꼴은 절대로 못 봐준다는 식으로 보이는 족족 다 갖다버린다. 이런 사람들이 돈 씀씀이도 헤픈 편이다. 자질구레한 물건조차 남기질 않으니 '적은 쓰임새'가 필요할 때에도 쇼핑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결국 '푼돈'으로 나가는 비용조차 차곡차곡 쌓이면 결국 '목돈'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 결론적으로 '미니멀 라이프'를 잘 실천하려면 '정리정돈'을 잘하면 된다. 그런데 치에코 씨는 정리정돈을 잘하는 것보다 무조건 '버리는 쪽'을 선호하고 있다. 이건 사쿠짱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래도 <치에코 씨 시리즈>는 다른 시리즈보다 읽기에 수월했다. <수짱 시리즈>처럼 '40대 독신여성'이 주인공을 내세워서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두려움과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보다는 '40대 부부의 알콩달콩한 일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직 '두 사람'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끌어가다보니 '시댁과 처댁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언급도 없어서 고민이 덜했고 말이다. 다음엔 또 어떤 작품으로 마스다 미리를 만나게 될까? 일단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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