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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2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평점 :
[My Review MCMXCIV / 문학동네 22번째 리뷰] 마스다 미리의 책은 '남성독자'들에게 해롭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분히 '여성독자 편향성'을 띤 만화이고, 남성독자가 읽었을 때에는 '알아서 득이 될 것'이 없는 편이니 차라리 읽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해석을 내놓으려 한다. 왜냐면 사랑하는 남성과 함께 있을 때의 '여자들의 속마음'이 절묘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이런 속마음이 대부분 '남성들이 알아채면 상당히 기분 나쁨'을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시를 소개하겠다.
제36화 <최고의 두 사람>에 나오는 치에코와 사쿠짱의 대화 내용이다.
"있지, 사쿠짱"
"응?"
"만약 다시 태어나도 나랑 결혼하고 싶어?"
"응."
"흐음~"
"흐음~은 또 뭐야. 그럼 치에코는 어떤데?"
"나? 나도 사쿠짱이면 좋겠어. 근데...다음엔 20대 말고 마흔 살 정도에 만나고 싶어. 생각해봐. 나랑 사쿠짱이 너무 잘 맞는 거 이미 잘 알고 있으니 좀더 다양한 연애를 해본 후에 만나는 게 이득이지 않겠어?
"(이득이라...) 다양한 연애라면 어떤 걸 말하는데?"
"글쎄~ (이런 남자, 저런 남자 예를 든다) 그런 남자랑 연애하는 거지."
"치에코한테는 안 어울려."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나중에 사쿠짱을 만날 테니까. 좀 다른 느낌의 남자랑 많이 사귀어 볼거야."
"아, 그래. 근데.. 치에코가 그렇게 여유 부리고 있는 사이에 내가 다른 여자랑 결혼할지도 몰라."
"이 바람둥이!"
"누가 할 소리."
"괜찮아. 그때는 내가 빼앗으면 되니까. 후후"
"상대 여자가 엄청난 미인이라면?"
"그런 거 전~혀 걱정 안 돼. 내 최고의 라이벌은 나랑 닮은 여자야."
"어련하시겠어요."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걸까? 부부끼리의 대화이니 그저 평범한 수준의 대화일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식의 대화가 계속 자주 나온다. 이런 대화는 불공평하다. 왜냐면 승자는 어차피 '여성'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화를 하면서 남성쪽이 화를 내거나 토라지거나 기분 나빠하면 여성쪽은 '남자답지 못하다'고 폄하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또 이런 유의 대화가 계속 반복되면 투닥투닥 싸우게 된다. 그러면 끝내 여성쪽은 울음을 터뜨리고 남성쪽은 "미안해."라며 사과를 해야 끝이 난다. 여기서 치에코는 한술 더 떠서 "빨리 사과했으면 끝났을 것을. 너무해"라는 말로 한 번 더 확인사살(?)을 하곤 한다. 그러면 사쿠짱은 치에코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 꽤나 애를 쓰곤 한다. 왜 여성들은 이런 '불공평한 게임'을 조장하고, 거기에 '항상 이기는 쪽'을 선택할 수 있게 배려(?)해야 좋은 남친, 좋은 남편이라고 떼를 쓰는가? 이런 식의 '에피소드'를 몇 차례 거듭해서 읽었더니 사쿠짱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치에코도 사쿠짱을 무척 사랑한다. 마트에서 물건을 고를 때에도 '자신의 것'보다 '사쿠짱의 것'을 먼저 생각하고, 저녁식사를 준비할 때에도 '사쿠짱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려 애쓰고, 사쿠짱이 연말모임에서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올 때면, 따뜻한 물주머니를 사쿠짱의 이불속에 넣어놓아서 사쿠짱이 밤늦게 들어와서 춥다고 부들부들 떨때, 이불속으로 들어가니 생각밖으로 따뜻해서 스르륵 잠이 드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며 흐믓해하는 치에코의 모습을 통해서, 그 사랑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치에코가 "만약에 말야~"로 대화를 시작할 때면 어김없이 사쿠짱의 마음을 핥켜버리고 만다. 그때마다 사쿠짱은 "허허~"하고 웃어넘기지만, 남성독자인 나는 화가 났다. 이건 '작가의 짜여진 의도가 담겨 있다'고 말이다.
독일에서 법정소송까지 간 연인의 사례가 있다. 두 연인이 출출해서 피자를 주문하려고 했다. 근데 여자는 배가 그닥 고프지 않으니 자신의 것은 주문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남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치즈듬뿍피자'를 시키려 했단다. 그때 여자가 '치즈듬뿍피자'보다 '과일듬뿍피자'를 주문하라고 말했다. 그래서 남자가 피자 2판을 주문할까? 물었더니, 여자는 1판만 시키라고 했다. 자신은 배가 불러서 피자를 먹지 않겠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남자는 '치즈듬뿍피자' 1판을 주문했다. 그랬더니 여자가 화를 내면서 왜 '과일듬뿍피자'를 주문하지 않느냐고 했단다. 그래서 남자가 너는 먹지 않고 나만 먹을 건데, 내가 좋아하는 피자를 시키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했더니, 여자가 말하길, 내가 먹고 싶어져서 '한 조각'을 먹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럴 때를 대비해서 남친이라면 사랑하는 여친을 위해서 여친이 좋아하는 피자를 주문하는 것이 센스 아니냐고 따져 물었단다. 그렇다면 애초에 2판을 주문해서 서로 좋아하는 피자를 먹으면 되었지 않느냐고 남자가 말했더니, 여자는 화를 내면서 배가 불러서 많이 먹지도 못할 건데 왜 2판을 시키냐면서, 1판만 시키는 것이 정상적인 센스 아니겠냐고 답했다고 한다. 어이 없어진 남자가 그렇기에 애초에 1판을 시킨 것이 아니냐고 항변을 했더니, 여자는 근데 왜 주문한 피자가 '과일듬뿍피자'가 아니었느냐고 따져 묻더란다. 남자는 말문이 막혀서 겨우 대답했는데, 그건 네가 피자를 먹지 않겠다고 말해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내가 잘못한게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화를 내는 거냐고 말하자. 할 말이 없어진 여자친구는 화를 참지 못하고 남자의 뺨을 주먹으로 때렸고, 남자친구도 똑같이 주먹으로 여자친구를 얼굴을 때려서, 결국엔 법정소송까지 갔단다. 독일 법정의 판결은 '남자친구'의 승소. 판결이유는 애초에 불가능한 상황을 조장하고서 급기야 폭력까지 행사한 여자친구에게 귀책사유가 있으며, 남자친구의 폭력은 그에 따른 '정당방위'로 판결이 났다고 함.
물론, 이와 같은 사례는 극단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남자의 사고방식'과 '여자의 사고방식'이 서로 매우 다르다는 점을 인지할 수 있다. 남자는 '결과중심적 사고'를 하는 반면에, 여자는 '과정중심의 사고'를 한다는 점이다. 사쿠짱은 뭐가 되었든 치에코가 좋아하는 걸로 선택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치에코는 자신의 선택이 최상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사쿠짱의 입으로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자들은 치에코의 사랑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안다. 왜냐면 남자가 여자를 생각하며 준비한 것을 여자는 '자신의 마음에 딱 맞지 않는다'는 실망의 말을 듣기 때문이다. 이런 실망하는 모든 표현이 두려운 남자는 '선택권'을 여자쪽에게 일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여자는 또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왜 '내 마음에 쏙 드는 것'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느냐면서, 사랑이 식은 거냐, 혹시 딴여자가 생긴거냐, 등등등 오만가지 것들을 사유로 들면서 남자를 들들 볶아댄다. 이렇게 몇 차례 들들 볶이고나면 남자들은 십중팔구 '선택권'을 여자에게 넘겨버리고 만다.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싸우는 일을 만들기 싫어서 그렇다. 이게 남자의 사랑법이다.
그런데 마스다 미리는 온통 '치에코, 이 여자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만 몰두할 뿐, 사쿠짱이 치에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는 내용이 없다. 그저 치에코의 맘에만 관심을 두고 '치에코의 편'만 들기로 작정을 했다. 물론 이 '단행본'에 실리기 전에는 <앙앙>이라는 30대 여성들이 주로 보는 대중잡지에 연재를 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이런 여성잡지에 실릴만한 만화가 '남성독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조언을 해드리는 것이다. 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기에 '남성독자'는 배려의 대상이 아님을 말이다.
그런데 난 '남성독자'다. 그런데 왜 마스다 미리의 만화책을 연이어서 읽고 있는 것일까? 칼 융의 심리학이론에 나오는 '아니마(남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적 요소)'가 무의식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일까? 아닌 게 아니라, 내가 꽤나 페미니스트적인 관심으로 독서를 하는 경향이 없지는 않다. 그렇다면 그동안엔 무탈하게 읽다가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2>을 읽으면 열폭한 것인가? 어쩌면 말이다. 부러워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나에게도 치에코 씨와 같은 아내가 있었더라면 치에코 씨가 무뚝뚝한 사쿠짱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일따위는 절대로 없게 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에 다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치에코 씨'가 토라진 이유를 단박에 다 알아챘다. 그런데 그런 이유도 알아채지 못하는 둔탱이 사쿠짱은 치에코 씨 같은 아내를 만났는데, 왜 나는 이태껏 솔로란 말인가. 내가 분노한 까닭은 다름 아닌 이 부분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 이상형으로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늘 내 곁에만' 있어주면 된다. 그런데 그런 여자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원인은 나한테 있을 것이다. 못 생겼고 부자도 아니고 뚱뚱...아니다. 지금은 살을 쏙빼서 완전 날씬하다. 덕분에 잘 생겼다는 얘기도 부쩍 듣고 있고, 부자까진 아니어도 돈도 쓸만큼은 벌고 차곡차곡 모아서 불려가고 있다. 거기다 센스까지 장착했으니...소소한 행복을 꿈꿔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