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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평점 :
[My Review MCMXCII / 민음사 22번째 리뷰] 목련꽃이 아직 지지도 않았는데 벚꽃이 만개했다. 그 사이에 개나리가 노랗게 물들이고 매화도 드문드문 꽃망울을 피우더니 요사이에는 철쭉까지 꽃봉오리가 솟아올랐다. 바야흐로 '사랑의 계절'이 찾아왔다는 말이다. 물론 나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홀로 독수공방을 하고 있을 때 읽으면 딱 좋은 책이 바로 '사랑이야기'다. 그 가운데 유독 '자신'을 지독하게 사랑한 작가가 있다. 바로 프랑스와즈 사강이다. 그녀의 책과는 별개로 그녀의 인생 자체가 온통 '독선, 그 잡채'이기 때문이다. 금지된 것들을 즐긴 댓가로 법정에 선 그녀는 자기 자신을 문학적으로 변론하고 만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정말 멋들어진 문구 아닌가. 그런데 그녀는 그런 말할 권리가 없다. 이미 저 말을 할 당시에나, 그 후에나 '주변 사람들'을 너무나도 힘들게 했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없이는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지경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그녀가 20대 초반에 쓴 <슬픔이여, 안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등과 같은 작품들은 어떤가? 지독히도 아름답다. 물론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뭐, 개인적인 아픔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버지니아 울프'도 있는데, 새삼스레 '프랑스와즈 사강'이 겪은 고난 정도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일 것이다. 암튼, 작가의 생애와는 별개로 '사랑이야기'에 푹 빠져본다.
여기 한 여자가 있다. 서른아홉 살의 폴은 한 차례의 이혼 경력이 있지만, 아주 오랫동안 로제라는 남자와 사귀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권태기'에 빠졌는지, 둘의 사랑이 영 시원치 않다.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둘 만의 저녁시간인데도 로제는 '회사일'을 핑계로 저녁을 먹고 오거나 약속시간에 늦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처하자 폴은 심드렁해진다. 더구나 로제는 '다른 여자'와 바람까지 피우고 있다는 정황도 포착했다. 뭐, 그것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로제는 꼬박꼬박 다시 돌아오긴 했으니까. 그런데 정작 문제는 폴이 '고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분명 연인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던 어느날 폴은 사업차 젊은 남자를 만났는데, 이 젊은 남자가 좀 잘 생겼다. 그리고 대놓고 폴에게 '플러팅'까지 갈기면서 폴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있다. 그 존잘남의 이름은 '시몽'이고,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다. 무려 14살이나 어린 남자가 대놓고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여기서 폴은 고민에 빠진다. 분명 자신은 사랑하는 남자가 있으니 '철벽'을 쳐야 마땅한데, 존잘남의 사랑고백이 싫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폴이 로제가 싫어진 것도 아니기에 시몽의 대쉬를 살짝 밀어내긴 하지만, 젊은 남자는 거침이 없다. 그는 첫 눈에 사랑에 빠졌다며 폴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기꺼이 하겠다고 말한다. 이건 정말 너무 달콤하잖아!
한 여자를 두고서 두 명의 남자가 서로 밀고 당기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로제는 그런 '밀당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 늙었다. 로제는 그런 밀당보다 '단 한 번의 유혹'에 섹스까지 오케이하는 헤픈(?) 여자와의 육체적 놀음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메지라는 여자가 그렇다. 물론 로제 입장에서는 절대 '사랑'이 아니다. 로제가 사랑하는 여자는 '폴' 뿐이다. 그런데 폴은 이미 '잡힌 물고기'이기 때문에 굳이 애정공세를 할 필요가 없는 여자가 되어 버렸다. 로제에게 폴은 그런 여자였다. 언제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편안하고 안락함을 주는 여자'말이다. 약속시간에 늦어질 것 같으면 전화를 걸어서 '회사일'을 핑계 삼아 이야기할 수 있는 편한 상대 말이다.
그런데 로제도 위기감을 느꼈다. 폴이 시몽과 함께 지내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과 결별한 것도 아닌데, 새로운 남자를 받아들인(?) 폴에게 배신감마저 들 정도지만, 로제는 폴에게 화를 낼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저 '편한 여자'를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빠졌을 뿐이다. 물론 그런 상실감을 회복하려 '섹스파트너(메지)'를 찾아가 서로의 몸을 밀착하지만, 로제도 결코 회복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로제는 폴을 찾아간다. 둘의 사랑을 재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자, 이쯤 되면 '상황파악 완료'다. 독자인 당신은 어떤 결론을 내렸는가? 폴의 사랑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옳다'고 생각하는가? 나라면 당연히 '시몽'을 선택해야 옳다고 본다. 바람을 피운 것은 둘째치고, '편한 여자(?)'라니 이건 정말 최악 아닌가? 언제고 다시 돌아가면 항상 받아줄 게 확실한 '사랑'만큼 안심이 되는 것도 없겠지만, 그건 '연인 사이의 사랑'이 아니다. 99.9% '모성애'일 수밖에 없다. 자기가 낳은 아들이 아니고서야 '잘못'을 저지른 연인을 무조건 용서하고 다시 받아줄 수 있느냔 말이다. 그건 아니라고 본다.
근데 이 책의 후반부를 읽다보면 의아해진다. 폴이 다시 로제를 받아들이고, 폴도 로제에게로 다시 돌아가기 때문이다. 어째서 '시몽'이 아니라 '로제'가 결론이란 말인가? 이건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폴의 수많은 '변명'과 '핑계'를 읽고 또 읽어야 한다. 그 첫 번째 이유로 '시몽'이 너무 어리다는 점이다. 둘째는 뚜렷한 직업이 없이 빈둥거린다는 점, 셋째는 로제가 자꾸 주변에서 알짱거린다는 점이다. 그 결과, 폴은 다시 '로제'에게도 돌아간다. 시몽과는 이별을 통보하고 말이다.
근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폴은 로제에게 '이별'을 통보한 적이 없다. 그냥 시몽과 사귀기 '시작'했고, 잘 사귀다가 '싫증'이 나서, '이별'을 통보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로제와는 그런 것이 없다. 그냥 저냥 지내다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예전처럼 둘은 다시 사귄다. '폴의 마음에는 변화가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로제와 '이대로'는 안 돼! 시몽으로 갈아탈거야! 근데 시몽은 너무 어려! 로제랑 있을 때가 마음 편했는데...다시 로제와 함께 있어야겠다! 시몽, 잘 가! 로제와 다시 '뜨밤'...다음날 저녁, 로제는 또다시 '회사일' 핑계를 대고 저녁약속을 펑크낸다!! 아마도 폴은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로제와 사귀고 있겠지만, 다시 '고독'을 느끼는 관계로 말이다.
이걸 무슨 감정이라고 해석해야 할까? 폴의 사랑을 과연 '정답'이나 '옳은 결정'으로 볼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랑을 지속하는 커플들이 꽤나 많다. 뜨겁게 사귀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다시 식고...결국엔 '사랑'이 아닌 '우정'보다도 못한 '믿음'으로 유지는 하는데, '새로운 사랑'이 나타났더라도 다시 '컴백홈'을 하는 일이 무한도돌이표 사랑을 하는 커플들 말이다. 이런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가 <사랑과 전쟁>, <이혼숙려캠프> 같은 방송에서 꾸준히 회자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은 아닐런지 의심해본다.
나는 이런 사랑을 감당하지 못한다. '감정소모'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충분히 모자란 시간인데, 왜 저런 바보같은 짓을 한단 말인가? 그런데 '사랑의 유효기간'이 아무리 길게 잡아봐야 3년이라고 주장하는 '유경험자들의 증언'을 참고해보면, 또 말이 된다. 안정적인 사랑은 결코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이 '진리'라면, 주기적으로 '사랑의 위기'를 조장해야만 한다. 바람도 피우고, 불륜도 저지르고, 지지고 볶고 싸우고 해야 '찐사랑'이 새록새록 솟아나면서 '짧기만한 사랑의 유효기간'을 연장하고 또 연장할 수 있다고 본다면, 또 이게 맞는 말이다. 이렇게 보면, 폴의 결정이 또 이해가 되기도 한다. 로제와 오랫동안 사귀는 동안 시들해진 '사랑의 감정'을 시몽이라는 젊은 남자를 통해서 '재확인'하고 난 뒤에, 시몽의 쓸모는 다 했으니 갖다버리고, 다시금 로제와 안정적이고 불같은 사랑을 이어갈 수 있었노라고 말이다. 그래서 작품의 후반부에 '희생양'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언급된다. 결국 시몽은 '폴과 로제의 사랑'을 위한 희생제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젊은 남자의 순수한 사랑을 짓밟으면서 말이다.
사랑, 너무 어렵다. 시들해진 사랑을 다시 '소생'시키기 위해서 풋풋한 사랑을 뗄감으로 삼고서 하얗게 불태운 뒤에 재만 남게 되면 버리고, 둘의 사랑은 소생되어 다시 뜨겁게 온기를 나누고, 또다시 '소생'이 필요할 때쯤에 또 다른 '희생양'을 찾으면 그뿐이라는...어째 점점 '사기공갈단'으로 보이지만, 폴과 로제, 그리고 시몽, 이 세 등장인물 모두는 '사랑'에 진심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게 '문제작'이란 것이다. 프랑스와즈 사강이 고작 '스물네 살'에 써낸 소설 한 편이 '평단'을 들썩이게 만들고 '천재작가의 등장'이란 수식어가 난무했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결론은 '시몽'을 선택했어야 한다. 그게 옳다. 그래야 '사랑의 종착역'이 보인다. '로제'를 선택하는 것은 '순환선'을 탄 것과 다를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