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은 이제 개를 키우지 않는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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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XIX / 이봄 13번째 리뷰] 작가의 '한결같음'은 매력일까? 권태일까? 딱히 '전작(全作)주의'를 표방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작가에 꽂히면 그의 저작물을 닥치는대로 읽고, 사 모으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오랜만에 '마스다 미리'가 걸려들었는데, 이 작가는 좀 한결같다. 그래서 좀 지루한 감이 있기도 하다. 그 까닭은 '3, 40대 독신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벌써 마스다 미리 작가의 13번째 리뷰인데 조심스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거 예전 리뷰에서 썼던 내용은 아닐까? 라는 의심을 하면서 리뷰를 쓸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지루하면 더는 읽지 않을텐데, 꾸준히 읽는 것을 보면 단순한 권태는 아닌 모양이다. 그 이상의 '무엇'이 있긴 한데, 그게 뭔지 딱 와닿지 않은 것 같다.

제목에서 '반려견'을 다루고 있지만, '치비(히토미가 어릴 적에 붙여진 반려견의 이름)'를 그리 많이 다루진 않았다. 그보다는 '사와무라 씨 댁, 세 식구'에 관한 일상이야기가 주를 이룰 뿐이다. 그리고 무려 결혼한 지 40여 년 간의 일상을 불쑥불쑥 꺼내들 뿐이다. 그런데도 비슷비슷한 '일화'들이 주를 이룬다. 참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세 식구들이다. 오죽했으면 1편에서는 '오랜만에 여행을 가다'가 제목이었겠는가. 그런데 뜬금없이 2편에선 '이제 개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궁금하겠지만, 특별한 것은 없다. '사와무라 씨 댁'의 가족들의 평균 연령이 60세인 탓이 가장 크다. 그렇다. 반려견보다 먼저 죽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개의 평균수명은 견종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작은 견종은 10~15년, 큰 견종은 20~30년을 산다고 하니, 아무래도 이제 고희(70세)를 맞이한 사와무라 씨에게는 "내가 돌볼테니 개를 키웁시다"라는 말을 내뱉기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일본인들은 가족끼리도 '폐'를 끼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하니,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피곤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마음씀씀이'다. 불편해도 가족이니 괜찮겠거니 마구 일을 벌이는 것도 실례지만, 가족끼린데도 불편을 꺼리고 눈치를 보면서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사는 것도 예가 아니기는 마찬가지라고 보인다.

암튼, 이 책의 주된 주제는 '노년의 삶'이다. 초고령화 사회로 돌입한 것 때문인지 한국과 일본은 연일 '저출생 문제'를 들이대고 '인구감소'를 크나큰 재난마냥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그나마 일본의 인구가 한국보다 2배 많은 것이 현재라서 조금 덜 심각하게 여기고 있긴 하지만, 우리보다 더 심각한 '경제문제(잃어버린 30년)'를 안고 있어서 '노후대책'에 대한 관심이 꽤나 높아진 것은 사실인 듯 싶다. 거기에 '고독사', '1인 가정',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노인' 등등의 문제가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종종 마주할 수 있는 문제가 되고 있는 현상이다. 그렇다고해서 이 책이 '노인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런 문제가 되기 '전'에 마주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을 다루고 있기에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을 정도로 '지루'하지만 계속 읽게 되는 것 같다. 딴에는 언제까지 '한결같을 것'인지 오기로 읽고 있는 느낌도 있고 말이다.

어쩌면 작가는 '늙음에 대한 평범한 고찰'을 시도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늙게 되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발상의 전환'같은 고도의 전략적인 '일상 탈출'을 계획하지 않게 된다. 그저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가는 것만 느낄 뿐,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그리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도 아주 장점이 없지는 않다. 아주 작은 변화도 금방 '눈치' 챌 수 있게 되고, 아주 사소한 즐거움도 놓치지 않게 된다. 젊어서나 어려서는 전혀 알아챌 수 없었던 '작은 변화'조차 늙은이의 삶에 포착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탓에 노인들은 재빠르게 움직이는 '동물'보다 느려서 움직임조자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식물'에 관심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계절의 변화도 '꽃'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잎사귀' 하나, '벌레' 한 마리, '바람'에서 느껴지는 냄새 하나하나에서 모두 '기운'을 느끼고 반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노인의 초능력'인 셈이다. 우리는 이를 흔히 '노련함'이라고 뭉뚱그려서 표현하지만 말이다.

나도 나이가 50살이 넘어가니 슬슬 그 초능력이 생기는 것 같다. 언제까지 그 초능력을 사용하며 살아갈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늘 내리는 봄비가 그치고 나면 좀 따스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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