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사용법
캐럴 해이 지음, 강수영 옮김 / 인간사랑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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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남성이고, 페미니즘을 지지한다. 하지만 일부 페미니스트이 말하길, 여성이 아닌 '남성'은 결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물론 남성으로서 듣기에 좋은 말은 아니다. 그러나 듣기 안 좋은 말을 들었다고 해서 빈정 상하거나,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번복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면 여전한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주어진 '저항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권리인데도 그런 권리가 있는 줄도 모르고 상처 입은 여성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남성'인 나는 듣기에 기분 좋지 않은 말을 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런 사회분위기여야만 한다고 인정한다.

 

  인류의 역사는 '여성'에게 불리하기만 했다. '여자'라는 이름만으로도 주눅 들도록 '강요' 당했고, 최근까지도 여성이기 때문에 '희생'은 당연시 되었다. 페미니스트들의 당찬 활동으로 '여성인권'이 성장한 것은 환영할 만 하지만, 아직도 '농담'이안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비하하고 성적수치심을 일으키는 혐오스런 범죄(!)가 아직까지도 만연하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끔찍할 지경이다.

 

  우리는 여성 상위적이고, 여성만을 위한 '강도 높은' 페미니즘을 마주할 때 당혹스러워한다. 남성들은 이를 두고 '역차별'이라 반발하고, '양성평등'에 위배된다면서 노골적인 불만을 터트리지만 그간 당하기만 했던 '여성의 관점'에서 봤을 땐, '새발의 피'에 불과할 정도의 과격함일 뿐이다. 한편으론 '같은 여성'인데도 페미니스트들에 반감을 나타내고, 페미니즘을 '못생긴 여자들의 히스테리'로 취급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들의 주장은 '예쁜 여자'를 시기하고 질투해서 남성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분풀이를 하기 위해 '예쁜 여자'를 멍청이 취급하는 것이라며 페미니즘을 혐오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는 서로를 잘못 이해한 탓에 벌어진 헤프닝에 불과하다. 서로의 진심을 이해한다면 페미니즘은 결코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어떤 형태를 띠고, 어떤 활동과 주장을 하든 원칙적으로 '휴머니즘'을 표방한다. 진정한 양성평등을 이루길 바라고 '유리천장'이나 '기울어진 운동장' 따위가 완전히 사라지길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완벽한 세상이 되는 순간 '페미니즘'은 자연스럽게 소멸할 것이다. 남녀차별에 반대로 시작한 여성들의 운동이었기 때문에 애초의 원인이었던 '차별'이 사라지면 운동을 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이 찾아오기는 하는 걸까? 회의심이 들 정도로 '차별'은 심각하고, 차별로 인한 '문제'는 끝없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이순간에도 전세계 어디선가 '원치 않은' 강간, '원치 않은' 결혼,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 그리고 이어지는 '강요에 의한' 육아와 가사로부터 해방되길 간절히 바라는 여성들이 울부짖고 있다. 거기에 사회적 활동의 제약은 더욱 끔찍하다. 비교적 사회활동이 자유로운 사회에서도 '고위직'은 온통 남자들이 차지하고 있고, 내놓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공정한 선발기준에 의해 '합격통보'를 받았음에도 2차, 3차 선발 등으로 교묘히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만드는 음모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연애와 결혼, 임신과 출산을 하는 여성은 직장에서도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이고, 여성을 '죄인 취급'하는 원인으로 작동한다. 같은 이유로 남자는 직장에서 더욱 열심히 일할 '찬스'로 작용하고, 승진 기회로 작동하는 것을 보면 '차별'은 좀더 분명해진다. 상황이 이럴 진데, 페미니즘을 욕할 수 있겠는가? 이젠 인류를 위해서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만 한다.

 

  딴에는 페미니즘 대신 '휴머니즘'이나 '여성운동'으로 부르는 것이 운동의 진정성을 위하고 남성의 참여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아닌 게 아니라 나역시 '여성운동가'라고 부르는 것이 더 편했다.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페미니스트를 만나는 일보다 고역스런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든 남성을 예비성범죄자로 간주하고, 남성 혐오를 노골적으로 표방하기' 일쑤다. 누군가 그들에게 진정하라고 얘기하면, 자신들이 '정상'이고 당신들이 '비정상'이니 진정해야 할 대상은 우리가 아니라 '너희'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여성에게 일방적인 희생과 강요를 요구하면서, 그런 것이 '여성스럽다'거나 '여성이 지녀야 할 올바른 몸가짐', 심지어 그 부당한 것을 '여성이 지닌 아름다움의 원천'이라고 '가스라이팅' 해온 것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당신의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아내와 자매, 딸에게 희생과 강요를 '아름다워지는 비결'이라며 권할 것이냔 말이다. 그리고 그런 부당함을 당연한 듯이 요구하는 '사회' 속에 당신의 딸과 자매, 아내와 어머니, 할머니를 욱여넣고 안심할 수 있겠냔 말이다.

 

  이제 '여성혐오'를 멈추어야 할 때다. 여성이기에 '차별'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오직 '인간'이기에 누구나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에만 주목해야 한다. '양성평등'한 세상이 펼쳐지는 그날까지 페미니스트들을 응원해야 마땅하다. 그들 중 일부가 '남성혐오'를 이야기한다면 오히려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여성들의 불만에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너무 비약적이라고 여긴다면, 인류 역사에서 '혁명'이 일어났던 때를 집중적으로 파헤쳐보길 바란다. 불만은 '힘 없는 자들'의 무기였고, 그 불만이 일시에 터져나왔을 때 세상은 늘 바뀌었다. 그리고 '혁명은 피를 부른다'고 말하곤 하는데, 여성들은 원래 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류의 절반인 여성이 '또 다른 피'를 부르게 된다면, 그 피는 여자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 것이다. 물론 페미니스트들이 혁명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너무도 당연한 '양성평등'을 바랄 뿐이다. 정말 다행이지 않은가.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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