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이야기 - 신들과 전쟁, 기사들의 시대
안인희 지음 / 지식서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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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세이야기

 : 안인희

 : 지식서재

 : 2021/08/07 - 2021/09/15


시대를 구분해서 역사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사실 시대를 구분하는게 쉽지는 않다.

보통은 시대의 특징이 서로 오버랩되면서 시대가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세라고 부르는 시대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476년부터 동로마제국이 멸망한 1453년으로 나는 알고 있다.

이 책에서는 콜롬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인 1492년까지로 보고 있다.

시대를 어떻게 나누든 중세는 중세만의 특징이 있다.

기독교 중심이라는 것.

기독교가 어떻게 유럽의 중심이 되었고, 그 안에서 삶과 문학, 그리고 전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두껍지 않은 분량에 꽤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어 저자의 필력이 대단함을 느낀다.

특히 그동안 잘 몰랐던 중세 문학, 특히 기사문학에 대해서 배웠다.

롤랑의 노래도 말만 들어봤지 내용이나 그 배경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는데 이 책에 자세히 나와 있어서 도움이 됐다.

유럽에 여행을 가게 되면 작은 시골 마을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설명이 중세를 그대로 간직한 동네라는 말이다.

막상 가보면 이게 중세마을인가 싶기도 하지만 내가 보고싶은 유럽은 사실 그런 모습이긴 하다.

지금이야 낭만적으로 보이는 중세시대지만 당시 살던 사람들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책을 읽으며 낭만만 생각한 내가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그래도 중세가 이뻐보이고 그런 유럽을 가보고 싶은 맘은 더 커지기만 한다. 


p16 르네상스가 시작할 때에는 중세의 많은 요소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그 마지막 국민인 미술적 전성기인 16세기는 이미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시작된 다음이었다

p22 인류의 4대 문명 발상지에 속하는 (호전적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평화로운) 나일 문명이 만나는 동부 지중해의 크레타 섬이 바로 고대 유럽 문명의 시작 지점이다(기원전 3000년경). 서로 이질적인 두 문명권이 만나는 곳이니, 고대 크레타 문명은 처음부터 매우 역동적이고 이동과 왕래가 빈번하고 활기에 넘쳤다

p34 그동안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이 문명인으로서 유럽 역사의 주역이었다면, 이제 새로 펼쳐지는 중세에는 로마 사람들이 "야만인"이라 불렀던 유럽 북방의 게르만 사람들이 주역으로 등장했다

p38 이베리아반도에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파죽지세로 북쪽으로 올라가던 아랍 세력을 막아낸 사람이 카를 대제(독일에서는 카를 대제, 프랑스에서는 샤를마뉴, 라틴어로는 카롤루스 대제)의 할아버지 카를 마르텔이다. 800년에 그의 손자 카를 대제가 황제가 되면서 서유럽은 조금 정신을 차리게 된다(이 시기를 카를 대제 시대의 르네상스라는 뜻으로 카롤링 왕조 르네상스라 한다)

p45 최근 연구자들은 주로 언어를 기준으로 문화를 가르고 있다. '프랑스 문화'란 프랑스어 문화를 뜻하는 것으로 본다

p55 메로빙 왕가가 힘없이 끝나고 카롤링 왕가가 시작되었다(751). 따져보면 피핀은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왕권을 찬탈한 인물인데, 유럽 종교 지도자인 로마 주교가 재빨리 그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현실 정치에서 도덕성이 뒤로 밀리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p65 프랑크 왕국의 카를 대왕은 이탈리아의 북부를 비잔틴 제국보다는 서유럽의 북부와 결합시켰다. 그리고 이 대관식은 비잔틴 제국과는 별개로 새로운 유럽의 시작을 알린 일이었다

p66 800년 카를 대제의 대관식은 이것을 상징하는 사건으로서, 이 해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기억하기에 편하고, 기억하면 매우 쓸모가 있는 연도이기도 하다

p68 하룬 알-라시드는 아바스 왕조의 황제로서, 이베리아반도에 자리 잡은 우마이야 왕조와 대립하고 있었다. 또한 이베리아반도의 이슬람 왕국은 앞에서 보았듯이 카를 대제가 정복하지 못한 적이었다

p81 이 문서는 위조의 시대이던 중세에 나타난 가장 유명한 위조문서의 하나다. 신앙심 깊은 수도사 한 명 도는 여러 명이 750~850년 사이에 교회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서를 천연덕스럽게 위조했던 것이다.

p83 강력한 통치권을 기반으로 한 왕이 황제가 될 경우에만 황제의 지위도 튼튼했는데, 이 경우에도 그의 힘은 황제라는 지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실질적으로 지닌 영통의 통치권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p84 8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서유럽에 출몰하기 시작한 북쪽의 해적들은 해안 지역에서 주로 수도원과 교회들을 약탈했다. 9세기가 되면서 그들의 출몰 횟수가 더욱 늘었고, 10세기가 되자 그들 중 일부가 약탈하던 지역에 차츰 눌러앉기 시작했다.

p108 1060년까지 14년동안 그는 거의 끊임없이 온갖 전쟁을 겪었다. 프랑스 왕과 앙주 백작의 합작 공격까지 막아내고 나서야 마침내 윌리엄은 확고한 승리를 거두었다

p117 이 전투에서 해럴드 왕과 두 형제가 노르만 기사들의 손에 전사했다. 윌리엄은 나중에 해럴드 왕이 쓰려져 죽은 바로 그 자리에 거대한 기념교회를 건설하게 했다. 이것이 배틀 수도원이다.

p122 그의 시대에 잉글랜드의 인구 및 재산 상태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나왔다. 이 기록은 원래는 왕의 두루마리라 불리는 것이지만, 자주 최후의 심판 책이라고도 불린다. 마치 최후의 심판을 위한 것처럼 그 무엇 하나 빼지 않고 기록했다는 뜻이다.

p129 프랑스 노르망디로 여행을 한다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외 자수 박물관을 찾아가 보자. 저 유명한 정복자 윌리엄의 이야기를 새로운 눈길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p138 로마에서 하인리히 4세(당시 독일 왕이자 이탈리아 왕)에게 밀린 그레고리우스 7세 교황에게서 다급한 구조 요청이 왔다. 교황의 봉신이던 로베르는 아드리아해안을 버려두고 서둘로 로마로 달려가서 하인리히 4세를 쫓아내고 교황을 구출했다. 대신 그의 부하들은 로마를 잔인하게 약탈해서 교황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p143 매우 뛰어난 교육을 받고 당대의 기독교와 아랍 세계에서 좋은 점을 모조리 받아들인 로저2세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통치자였으며, 서방에서는 예가 없는 하렘을 거느렸다.

p150 인기가 없는 교황이었다. 이 교황처럼 당대의 부자, 권력자, 왕 들과 대립하면서 그들의 권력을 제한한 개혁가가 고위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다. 다만 평신도들은 그의 개혁을 몹시 반겼다.

p165 로마카톨릭의 기틀을 세운 위대한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살레르노에서 쓸쓸히 죽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다. 나는 옳은 일을 사랑하고 불의를 미워했다. 그래서 나는 유배지에서 죽는다

p182 마라트에서 한 행위는 아랍 세계에 이교도(기독교) 침입자들의 야만성과 잔인성을 알리는 예로 널리 퍼졌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아랍의 노래에는 "인육을 먹는 자들"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그 옛날 십자군 전쟁 시기에 쳐들어온 프랑크 기사들을 가리킨다고 한다

p196 프랑스 왕 필리프 4세는 이렇게 큰일을 벌여서 마련한 권력과 재물의 이점을 그리 오래 누리지는 못했다. 자크 드 믈레가 죽던 같은 해에, 극히 우유부단하던 클레멘스 교황도 죽고, 필리프 왕까지 죽었기 때문이다

p198 카페 왕조의 필리프 4세는 중세 프랑스의 왕권을 강력하게 만든 왕으로서, 교황청을 프랑스 아비뇽으로 옮겨간 사건(아비뇽 유수, 1309~1377)과 성전기사단을 파괴한 일 덕분에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얻었다

p204 3차 십자군 전쟁의 마지막에 리처드가 귀국하다 같은 편에게 포로로 잡혔다는 사정은 십자군에 동참한 유럽 영주들의 개인적 이권이 기독교 공통의 전투라는 전체 이념과 동일한 것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p208 전 유럽에서 종교수호를 위해 모였들었다는 연합 군대가 성지 회복은 커녕 같은 기독교 도시를 공격하여 약탈하고 지배하는 깡패 집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미 한 번 시작된 약탈의 버릇은 더욱 고약한 방향을 잡았다

p213 프랑크 사람들은 황금 장식품의 약탈에 열성이었지만, 베네치아 공화국은 예술품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탐색조를 구성해서 가장 가치 있는 물품들을 베네치아로 가져갔다. 오늘날에도 베네치아의 총독궁전에 그때의 보물 일부가 장식 또는 전시되고 있다

p225 아키텐 공작 윌리엄 9세는 총 11편의 노래들을 남겼는데 이들이 모두 그의 작품인지 아주 분명하지는 않다. 어쨋든 그의 이름을 달고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p226 이런 모진 시험을 거친 끝에 여인들은 나그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전하지 않으리라 믿고 그가 마음에 들어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을 했다. 그러니까 목욕물을 마련하고 좋은 시간을 위한 준비를 했다. 그는 거기서 8일 이상을 머물며 그들과 188번이나 섹스를 했단다

p233 앞서 3차 십자군 전쟁 이야기에서 만나본 사자심장 리처드는 헨리와 엘레오노르 사이에 태어난 셋째 왕자다. 그의 이야기와 또 다른 유명한 전설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들 이야기의 상당수는 잉글랜드가 아닌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

p238 베네딕트 수도원 노래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카르미나 부라나의 중세 필사본이 발견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 수록된 작품들은 11,12,13세기에 쓰인 것들이다. 주고 (깨진) 라틴어와 중세 도이치어가 뒤섞여 있고, 많은 작품들은 일부 또는 상당 부분이 소실되어 몹시 불완전한 형태다. 옛날 필사본에 적힌 작품들이 지닌, 피하기 힘든 운명이다

p246 역사적으로는 기독교도들끼리의 싸움이던 것이 서사시 <롤랑의 노래>에서 갑자기 기독교와 이교도의 전투로 바뀌었다

p258 중세 시대를 논하려면 정교와 카톨릭을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 정교와 카톨릭이 중세 시대인 1054년에 나뉘기 때문이다.

p265 이교도 기사나 기독교 기사나 가리지 않고 중세 기사 이야기들은 판타지 요소를 띠게 되었다. 중세 문학의 특성 중 하나가 바로 이런 판타지 요소를 지닌다는 점이다. 진지한 역사인 듯이 꾸민 이야기들에도 대부분 판타지 요소가 많이 섞여서 등장한다.

p272 크레티앵의 작품들은 1190년 무렵부터 활발해지는 중세 도이치 궁정 기사소설의 내용과 형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도이치 소설 내용의 일부가 다시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작품인 에다에도 스며든 만큼, 크레티앵을 전성기 중세 유럽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선구자라고 부를만하다

p279 그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간통 이야기인데, 그들은 죽을 때까지 자기들의 사랑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죽은 다음 두 사람의 무덤에서 자라난 나무들까지도 서로 뒤엉켜서 굳건히 하나가 된다. 성직자 계층의 작가가 이런 간통 소설을 쓰고, 게다가 그 사랑을 찬미한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이상하고 이해하기 힘든 일이기는 하다

p284 오늘날 우리는 종교가 지배한 중세 시대 유럽 여성을이 억압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물론 억압을 받았지만) 중세 전문가 르 고프에 따르면 중세 시대는 전반적인 생활이 후세보다 훨씬 불편한 상황에서도 여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더 평등한 사회였다고 한다. 물론 완전한 평등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p286 운문 에다의 시편들은 대략 800년대부터 130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긴 시간 동안 스칸디나비아반도와 아이슬란드의 여러 시인들이 쓴 시편들을 수집하여 새로 정리한 것들이다. 여기에는 40편 이상의 장시가 들어있다. 그중 16편까지가 신들의 노래이고, 그 뒤는 영웅들의 노래다

p291 대부분 젊은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낭만주의 작가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와는 다른, 게르만 언어와 문화의 뿌리를 중세 문헌에서 찾으려 했다. 그리고 야코프 그림의 열혈 제자 하나가 에다 문헌을 번역해서 스승에게 헌정햇다

p292 잔인하고 난폭한데도 여전히 점잖고 게다가 죽지 않는다는 그리스 신들에 비해, 게르만 신들이 지닌 그로테스크한 야만성은 현대인이 가상 세계에서 폭발시키는 난폭함과 코드가 잘 맞는 모양이다. 어쨋든 이들 게르만 신들과 수많은 중세 이야기들은 현대의 판타지 세계에서 기묘한 모습으로 부활했고, 또한 각종 변형까지도 경험하는 중이다

p296 페스트는 1347년에 시칠리아와 제노바를 거쳐 유럽 대륙에 상륙했다. 이듬해에는 벌써 피렌체, 베네치아 등 북부 이탈리아와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이보다 몇 해 앞서서 인도와 중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괴질로 쓰러졌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p305 언제나 큰 재앙의 시기에는 생각 없는 인간들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고 싶어 하는데, 이 또한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덕분에 인간이 손쓸 수 없는 두려운 상황에다가 인간의 불필요한 잔혹 행위까지 더해져서 전염병 시대의 삶은 더욱 끔찍해진다

p308 많은 이들이 좋은 것들을 소중하게 아끼고 간직했으나, 전염병이 닥치자 즐기지도 못한 채 죽거나 도망쳐야 했다. 내일을 위해 비축해 둔 것이 아무 소용 없음을 거듭 목격하고 보니, 차라리 지금 이 순간을 과도하게 즐기자는 생각이 든 것도 이해가 된다

p320 그녀는 푸아티에에서 3주에 걸쳐 성직자와 고위직 인사들의 신뢰성 검사를 통과하고, 시녀들이 수행한 처녀성 검사도 통과했다

p321 2차 종교재판에서도 그녀는 다시 이단 판정을 받은 끝에 1431년 5월에 루앙의 시장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사후에 추종자들이 그녀를 순교자로 여겨 숭배할 성유물이 나올까봐 불에 타고 남은 재는 센강에 뿌려졌다

p340 이런 사유의 맨 앞장에 선 인물이 페트라르카다. 그는 섬세한 감수성을 소유했던 듯하다. 자연에 대한 미적 안목을 지니고 풍경과 자연을 즐기면서 그런 즐거움을 글로 남겼거니와, 유적지나 고전 서적에 대해서도 특별한 애착을 느꼈다

p348 출신을 가리지 않고 뛰어난 재능을 후원했다는 것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다

p350 르네상스 시대 전제군주들은 학자들과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일을 놓고 서로 경쟁을 벌였다. 이런 경쟁 상황에서 특별히 유명한 통치자 집안들과 통치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이 인문주의자와 작가들을 후원했고, 학자와 작가들은 그들의 업적을 기록하고 찬미하며 후세에 남겼다. 다만 그들이 행한 악행의 기록들도 비교적 상세히 남아있다. 자기 힘을 과시하기를 좋아한 통치자들이 건축가, 조각가, 화가 등 예술가들을 후원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p364 15세기 초에 태어난 마사초는 원근법을 거의 창안하다시피 하면서 미술에서 완전히 새로운 표현의 길을 열었다. 그때까지의 그림들이 2차원 화폭에서 2차원적인 표현만이 가능했다면, 28살에 요절한 이 젊은 화가는 그림에 깊이와 축을 만들어내면서 3차원의 모습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p384 이들 부부 카톨릭 왕들은 교황의 칙서에 따라, 통합된 에스파냐 왕국에 종교재판 제도를 도입했다. 그들의 뒤를 이은 에스파냐 왕들은 유럽에서 가장 지독한 종교재판과 이교도 및 이단 탄압 정책을 계속해서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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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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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 에릭 와이너

 : 어크로스

 : 2021/08/28 - 2021/09/05


요즘 아주 핫한 책..

철학자들의 나라의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쓴 철학 입문서이자 에세이. 

서양철학만 쓴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인지 두명의 동양철학자도 포함이 되어 있다.

그 두명이 중국과 일본이다. 

철학자라고 할 수도 없는 일본인을 끼워넣는걸 보면 역시 서양에게 동양은 중국과 일본인가보다.

나에겐 평범한 책으로 보이는데 게속 베스트셀러인걸 보면 다른 사람들에겐 꽤 재미있고 괜찮은 책인가보다.. 


2% 영국의 음악가 마일스 킹턴은 이렇게 말했다. "지식은 토마토가 과일임을 아는 것이다. 지혜는 과일 샐러드에 토마토를 넣지 않는 것이다" 지식은 안다. 지혜는 이해한다 지식은 소유하는 것이다. 지혜는 실천하는 것이다. 지혜는 기술이며,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습득할 수 있다.

5%마르쿠스는 제국을 통치하며 자신의 악마와 씨름을 했고, 나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며 나의 악마와 씨름을 한다

6% 흄은 꼭 그렇지는 않다고 말한다. 사실 명제에서 윤리 명제로 넘어가선 안 된다. 침대에서 나가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수익 창출에도 도움이 될 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7% 마르쿠스는 스스로에게 생각을 그만두고 행동에 나서라고 누차 촉구한다. 좋은 사람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관둬라. 좋은 사람이 되어라. 철학과 철학을 논하는 것의 차이는 와인을 마시는 것과 와인을 논하는 것의 차이와 같다

9% 철학자들은 거의 외계인에 가까운 이질성이 있다.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조차도 자신을 부적응자로 여겼다. 견유학파의 창시자인 디오게네스는 괴짜 중의 괴짜였다

10% 소크라테스가 인간 탐구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 오늘날에도 여전히 철학적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바로 그것은 이 순진한 무지, 철학자 칼 야스퍼스의 표현에 따르면 이 놀랍고 새로운 천진난만함을 도입한 것이다.

10% 이 세상에 소크라테스의 사상 같은 것은 없다. 소크라테스의 사고방식만이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수단만 있을 뿐, 그 끝은 없었다

11% 좋은 하루 보내세요나 이와 비슷한 무의미한 표현 대신 우리 서로에게 느긋해지세요나 천천히 하세요라는 말로 인사해보자. 이런 명령식의 표현을 자주 말하다 보면 정말로 속도를 줄이게 될 지 누가 알겠는가

15% 행복은 붙잡으려고 애쓸수록 우리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행복은 부산물이지, 절대 목표가 될 수 없다

16% 혼자서 두 발로 여행할 때만큼...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존재하고, 이렇게 살아 있고, 이렇게 나 자신이었던 적이 없다. 걷기는 루소를 살렸다. 또한 걷기는 루소를 죽이기도 했다

17% 루소는 글을 꾸며내지 않는다. 루소의 철학은 다음 네 어절로 요약할 수 있다. 자연은 좋고 사회는 나쁘다

21% 어떤 사람은 소로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소로가 되는 데 성공한다. 대부분은 억지로 소로를 떠안는다

22% 소로가 받는 혹독한 비난은 주로 위선에 관한 것이다. 소로는 숲속에서 홀로 자족하는 척하면서 몰래 엄마 집에 들러 파이를 먹고 빨래를 맡겼다

22% 소로의 한 추종자가 말했듯, 월든은 숲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에 관한 책이 아니다. 월든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 관한 책이다

24% 마르쿠스와 달리 소로는 아침형 인간이었다. 의식이 막 돌아온 순간 "꿈과 사색 사이의 그 모호한 지대"를 만끽했고, "모든 지성은 아침과 함께 깨어난다"라는 고대 인도 경전 베다의 한 구절을 즐겨 인용했다

25% 소로는 모두가 자신처럼 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월든은 각성제로 쓰인 것이지, 처방전은 아니었다.

28% 보는 데는 시간뿐만 아니라 거리도 필요하다고, 소로가 내게 말한다. 무엇이든 제대로 보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

28% 원래 가려고 했던 쇼펜하우어 기록보관소는 문을 닫았지만 분명 문을 연 곳이 있을 것이다. 아닌가 보다. 유럽인은 공휴일에 진지하다

29% 여태껏 염세적인 철학자는 여럿 있었지만 염세주의를 진정으로 파고든 철학자는 쇼펜하우어 단 한 명뿐이다

30% 철학계의 최하층민이었던 쇼펜하우어는 비판받는 것보다 무시당하는 것이 더 가혹한 운명임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였다. 거의 평생 동안 그의 책은 읽히지 ㅇ낳았고 그의 생각은 사랑받지 못했다

31% 쇼펜하우어는 여기서 아무 모순도 느끼지 못했다. 이 세계는 실재로 고통이자 엄청난 오류이지만, 그 고통이 일시적으로 유예될 때가 있다. 짧은 즐거움의 순간들

33% 좋은 철학자는 좋은 청자다. 지혜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므로 이들은 얼마나 낯설든 간에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이국의 고대 문헌에 숨은 지혜를 발견했다

33% 쇼펜하우어가 당시로선 드물게 불교를 깊이 이해하긴 했지만 자기가 배운 바를 실천한 것은 아니었다

34% 쇼펜하우어가 옳았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채우면 그들의 생각이 내 생각을 밀어낸다

36% 다른 학파는 오로지 아테네의 남성 시민만 받아들인 반면 에피쿠로스는 해방 노예와 여성도 환영했고, 테미스타에게도 여러 편의 글을 헌정했다

38% 정적인 쾌락이 더 우월한 쾌락인데,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바로 그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적인 쾌락은 목표지, 수단이 아니다

38% 1417년에 포지오 브라치올리나라는 이름의 용감한 학자가 사라진 고대 유물을 찾아 남유럽을 샅샅이 뒤지다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가 남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마지막 한 부를 발견했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사상을 정리한 책이었다

42% 몰입을 경험하기 위해 보트로 대서양을 항해하거나 에베레스트산을 오를 필요는 없다. 그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뿐이다

43% 배유의 급진적 공감 능력은 관심에 대한 배유의 급진적 견해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44% 관심의 반대말은 산만함이 아니라 조급함이다. 해결책을 찾아 나서지 말것, 기다릴 것

46% 8월 24일 저녁, 동료가 방문한 직후 배유는 코마 상태에 빠졌다. 그로부터 다섯 시간 후 시몬 베유는 사망했다. 향년 34세였다

49% 인도에서는 그 무엇도 마지막까지 끝난 것이 아니며, 심지어 마지막도 끝이 아니다. 모든 결말은 하나의 시작이다

50% 미국인 선교사 존 모트가 간디에게 평생 가장 창조적이었던 경험이 무엇이었냐고 묻자, 간디는 남아공에서 겪었던 기차 일화를 들려주었다. 조용한 결의의 순간을 창조와 동일한 것으로 본 것이다

51% 간디는 남성성에 집착했다. 그가 쓴 글에는 남자다움과 힘, 용기 같은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52% 간디는 인도의 아버지였지만 제 자식에게는 형편없는 아버지였다. 정계에서도 간디는 여러 실수를 저질렀다

52% 필요하다면 그것이 폭력이더라도 자기 의무를 다해아 한다는 것이 바가바드기타의 기존 해석이다

52% 바가바드기타는 노력과 결과를 분리하라고 가르친다. 모든 시도에는 100퍼센트의 노력을, 그 결과에는 정확히 0퍼센트의 노력만을 기울일 것

53% 다른 이를 잔인하게 대하는 사람은 곧 스스로를 잔인하게 대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혁명이 결국 실패로 끝나는 것이다

55% 나는 은밀하게, 깨긋하지 못하게 싸운다. 겉으로는 고분고분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전쟁 중이다

58% 노자가 중국 철하계의 서핑족이라면 공자는 땍땍거리는 선생님이다

62% 일본인만큼 좁은 공간에 사는 사람은 없다. 구석 인간들이다

62% 베갯머리 서책을 영어로 옮긴 메러디스 매키니는 짤막한 글과 생각과 일화를 누빈 불규칙한 퀼트라고 말한다

63% 소로가 가르쳐주었듯이, 우리는 볼 준비가 된 것만 본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작은 것을 볼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69% 니체는 여름에는 스위스에, 겨울에는 이탈리아나 남프랑스에 있었다. 니체가 가진 것이라곤 옷, 글을 쓸 종이, 옷과 종이를 담은 커다란 가방이 전부였다

70% 니체는 내게 고함을 치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물음표의 철학자였다면 니체는 느낌표의 철학자다. 니체는 느낌표를 사랑한다. 가끔은 두세 개씩 붙여 스기도 한다

74% 정원 벽 뒤에 편안하게 자리잡은 에피쿠로스 학파와 달리 스토아 학파는 모두가 지나다니고 상인들과 사제들과 매춘부들이 다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철학을 설파했다. 스토아학파에게 철학은 공적인 행위였다

75% 스토아철학을 실천하면 작은 기쁨을 더 섬세하게 느끼게 된다. 우리는 뜬금없이 우리가 우리라서, 우리가 우연히 살게 된 이 우주 안에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을 살고 있어서 기쁨을 느낀다

75% 스토아철학은 이처럼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과 성과를 무관한 것이라 칭한다. 이런 무관한 것들은 우리의 인성이나 행복에 티끌만큼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무관한 것들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79% 이성적 행동은 우주와 조화를 이루는 행동이며 거기에는 냉정한 점이 조금도 없다

82%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가 말했듯이 우리가 노화 탓으로 돌리는 많은 결점은 사실 인성의 문제다

86% 나이가 들면 특이하고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생각에 신경 쓰지 않게 되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애초에 다른 사람들은 내 생각을 안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87% 이 나이에 공공연하게 항의하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이게 바로 노년의 장점 중 하나다

89% 보부아르가 나이 듦에 집착한 것처럼 몽테뉴는 죽음에, 더 정확히 말하면 죽어가는 과정에 집착했다

91% 몽테뉴는 말했다. "문이 닫혔는지 알아보려면 먼저 문을 밀어봐야 한다"

92% 죽음과 절망 모두 같은 약을 필요로 한다. 수용이다. 보부아르처럼 몽테뉴도 결국 받아들였다.

93% 시인 호라티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새로 시작되는 매일매일이 너의 마지막 날이라고 확신하라. 그 뜻밖의 시간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니"

93% 내가 이번 여행에서 배운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인식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세계는 내가 만들어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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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화가들 - 살면서 한 번은 꼭 들어야 할 아주 특별한 미술 수업
정우철 지음 / 나무의철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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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사랑한 화가들

 : 정우철

 : 나무의 철학

 : 2021/08/21 - 2021/08/27


특별히 기대를 하고 읽은 책은 아닌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덕분에 책읽는 일주일동안 아주 즐거웠다.

피카소나 고갱 같은 화가의 내용만 들어서 그런지, 화가 하면 자유분방하고 생활도 난잡한 사람인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순정파도 많고 무하처럼 너그러운 사람도 많다.

첫번째로 소개한 샤갈의 그림은 몇년 전 전시회가 있어서 아이랑 다녀온 적이 있다. 내게 샤갈은 샤갈의 눈내리는 마을이라는 제목으로나 알려진 존재이지 누군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잘 몰랐다. 이 책에서도 날아다니는 그림을 보며 저게 무슨 뜻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샤갈과 그의 부인이고, 또 그의 그림에 날으는 사람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배웠다. 

제일 인상깊은 화가는 알폰소 무하였다.

체코의 성비타 성당에 가서 그의 모자이크 그림을 봤을 때 재미있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이렇게 너그럽고, 애국적이었던 좋은 사람인줄은 몰랐다. 무하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졌다.

책을 읽으며 새롭게 깨닫고 또 다른 무언가를 알고 싶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그 책에 대한 최고의 칭찬 아닐까?

좋은 책을 읽어서 참 좋았다. 


6% 샤갈의 인생을 따라가면서 느낀 건, 그는 스스로 희망을 선택하고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8% 샤갈의 어머니가 화가의 꿈을 지원해주었다면 어렸을 때부터 함께했던 연인 벨라 로젠벨트는 그를 세계적인 화가로 키워준 인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0% 그는 자신의 전부인 벨라에게 다가가 뜨겁게 키스합니다. 그림 속 강렬한 붉은색에서 그날 둘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나요? 이때 샤갈은 마치 자신의 온몸이 공중에 붕 뜨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해요

12% 유대인 숙청에 앞장섰던 히틀러가 샤갈을 콕 집어 제거해야 할 예술가로 언급했거든요. 1937년 퇴폐 미술전을 열어 샤갈의 그림을 걸어놓고 삐뚤어진 유대인 영혼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조롱하기도 했고요

16% 아버지의 바람대로 안정된 삶을 살던 청년 마티스는 결국 스스로 선택한 인생을 살기 위해 법률사무소를 그만두고 미술학교에 입학해요. 이런 여정을 보면 누구에게나 인생에 한번쯤은 운명을 바꿀 기회가 찾아오는 듯합니다

19% 나는 내 노력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고, 그저 내 그림들이 봄날의 밝은 즐거움을 담기를 바랐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22% 성당 내부에는 웅장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마티스가 추구했던 예술의 지향점이었던 단순함, 명쾌함을 살린 성 도미니크, 십자가의 길 벽화 등이 가득했고 창문에는 푸른색, 초록색, 노란색으로 표현한 생명의 나무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24%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몽마르트르는 예술가들의 도시이자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 시절 예술가들이 몽마르트르에 모여 살았던 이유는 집값이 가장 쌌기 때문이에요

27% 모딜리아니 하면 많이 떠오르는 초상화의 특징이 긴 얼굴과 아몯느 모양의 눈이죠

29% 모딜리아니의 전시회는 완전한 실패로 막을 내립니다. 그는 좌절한 나머지 이때부터 "나는 이 시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작가"라며 다시는 전시회에 작품을 내지 않았고 지인들에게 그림 몇 점을 판매하고 받은 돈도 병원비와 술값으로 모두 써버립니다

29% 파리로 돌아온 모딜리아니가 그린 잔 에뷔테른의 초상에는 예전의 작품들과 달리 눈동자가 선명합니다. 이 작품을 보고 잔은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고 해요

32% 그의 작품은 세일레문, 카드캡터 체리 같은 유명 애니메이션에도 영향을 끼쳤지요. 지금 활동하는 순정만화 작가들은 모두 무하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의 그림은 당대에도,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33% 무하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단언컨대 성실함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성실하게 그림을 그리면서 기회가 왔을 때 단단히 붙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에요

36% 무하는 가진 것을 베푸는 것에 아낌이 없었습니다

37% 현재 체코의 땅에 최초로 정착한 켈트인들의 이야기인 슬라브 민족의 원고향에서 시작해 슬라브 찬가까지 이어지는 이 거대한 작품을 완성하는 동안, 50대였던 무하는 어느새 70대 노인이 되었죠

38% 다음에 실린 체코 음악의 판테온에서 수염을 기른 사람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옆에 종이와 펜을 들고 있는 사람은 안토닌 드보르작입니다

38% 사람들은 "알폰스 무하는 죽어서 프라하의 별이 되었다"며 사랑하고 존경하는 예술가를 추모합니다. 민족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 데 인생 후반을 모두 바친 무하는, 결국 자신이 그렸던 위인들처럼 본인도 역사가 기억하는 위대한 화가로 자리매김합니다

41% 프리다는 이 사고로 왼쪽 다리 열한 곳이 골절되고 오른발이 탈골되었습니다. 골반, 쇄골은 골절되고 갈비뼈도 부러지지요. 하지만 가장 심각한 부상은 따로 있었습니다

43% 뉴욕은 디에고에게 열광했고 전시는 대성공을 거둡니다. 디에고는 대중의 사랑에 한껏 도취됐고, 수많은 여성이 그에게 접근하죠. 짐작했듯 디에고는 거부하지 않습니다.

47% 그녀의 일기장에는 "나는 1년을 앓았고, 척추 수술을 일곱 차례나 받았다. 자주 절망에 빠진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절망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다"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던데, 어떠신가요?

47% 프리다는 살면서 총 32회의 수술을 받았고 인생의 절반 이상을 침대에서 보냈죠. 그녀의 이름이 자유라는 뜻이었음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50% 오랜 방황 끝에 클림트는 세상의 요구보다 자신의 예술에 충실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예술성이 폭발하는 작품을 선보이죠. 바로 클림트의 대표작이자 빈 대학 천장화인 그려진 철학, 법학, 의학입니다

51% 너무나도 아쉬운 점은 이 벽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전부 불태우는 바람에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는 건데, 만약 이 작품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면 아마 클림트의 대표작이 되지 않았을까요?

53% 그림을 이렇게 잘 그렸던 클림트에게는 악필이라는 허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클림트는 평소엔 글을 거의 쓰지 않았는데 에밀리에게 보낸 편지만 약 400통이 넘었다고 해요

53% 클림트는 그리 잘생긴 외모가 아니었는데도 사망 후 친자 확인 소송만 14건이었다고 해요

54% 클림트의 풍경화는 황금빛 작품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작품의 4분의 1이나 되거든요

57% 그런데, 불행의 정점을 찍은 듯한 이 시기는 다행이 로트레크 인생의 전환점이 됩니다. 집에서 할 일이 없어진 로트레크는 연필을 들고 다니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그리기 시작해요

58% 인상파에 속하는 화가들치고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는데, 특히 로트레크는 포스터 작업을 할 때 우키요에의 두가지 특징인 원근법 무시와 사선구도, 독특한 신체 절단을 차용합니다.

59% 로트레크는 작가들의 뮤즈가 되어주면서도 천대받던 댄서들의 이름을 포스터에 넣었고, 개개인의 특징을 발견해 이를 부각합니다.

61% 판화집은 매춘부들이 청소와 빨래를 하는 모습, 슬퍼서 우는 모습 등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다르지 않은 그림으로 가득했거든요. 이것이야말로 로트레크의 진정한 시선이었던 거죠

67% 평화를 추구해야 할 성직자들이 전쟁을 독려했으며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보여줘야 할 학교는 전쟁의 필요성을 가르쳤죠. 페터가 전쟁에 자원했던 데는 학교와 친구들의 영향도 컸습니다

68% 콜비츠를 비롯해 반전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표현주의 예술가들과 정부의 갈등은 독일에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부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69% 그녀는 세상을 떠났지만 평화를 외쳤던,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려는 메시지로 가득했던 그녀의 작품들은 세계 각국으로 뻗어 나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콜비츠 또한 국제적인 찬사를 받으며 가장 유명한 독일의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고요

72% 대학에서 법을 공부하다 화가로 전향했던 세잔은 "내 아버지는 피사로였다"고 했을 정도로 피사로의 도움을 많이 받은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갱도 피사로의 화실에서 위로를 받으면서 그림을 그릴 원동력을 받곤 했어요

74% 폴 세잔 역시 후기 인상주의에 속하는 작가예요. 그의 작품이 지니는 가장 큰 의의는 과거 회화의 멱살을 잡고 미래로 끌고 왔다는 점입니다

84% 그림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몸을 녹이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고 고백했을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주변에서 재료를 선물해줘야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그마저도 아껴 써야 했기에 물감도 아주 얇게 칠했습니다.

84% 오늘날 우리가 감상하는 뷔페의 초기작들은 그냥 그림이 아니라 한 인간이 단지 살기 위해 그렸던, 절박한 생존의 흔적입니다

89% 뷔페는 누가 자신을 욕해도 거의 반박하지 않았다고 해요. 한창 평론가들에게 비난을 받을 때도 혼자 괴로워했을 뿐 맞서지 않았고요

92% 실레는 성병으로 괴로워하던 아버지에게 인간의 본성, 인간 안에 내재돼 있는 근본적인 고통을 봤거든요. 그때부터 그는 성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성욕 역시 인간의 본능인데 왜 유독 그것만 금기시하고 숨겨야 하지 라고 생각했던 거죠

93% 클림트는 이미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의 스승이 될 수는 없으니 친구로 지내자고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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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 - 세계대전부터 태평양 전쟁, 중국 근대사까지 전쟁으로 읽는 역사 이야기 썬킴의 거침없는 역사
썬킴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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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

 : 썬킴

 : 지식의숲(넥서스)

 : 2021/08/13 - 2021/08/17


20세기 현대 전쟁역사서.

전쟁좋아하는 남자들이 읽으면 술술 잘 넘어갈 책.

어렵지 않고 전쟁의 원인 및 뒷배경들이 나와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내가 잘 모르던 태평양전쟁 이야기와 국공내전은 유익했다.

그 짧은 시간동안 급격하게 성장해서 제국주의가 되고 유럽과 맞짱을 뜰만큼 발전했던 일본의 능력에 좀 놀랐다. 

매번 한국사에서 일본에서 정한론이 있었다는 말만 들었는데 누가, 어떻게 그리고 정한론을 이끈 자들에 대해서 새롭게 배웠다. 

책을 읽다보면 전쟁 좋아하는 지도자가 참 많았던 것 같다. 

1차세계대전의 빌헬름 2세, 2차세계대전의 히틀러, 태평양전쟁의 일본군부, 국공내전의 장제스등등...

그들의 선택은 수천만의 민중을 죽음으로 밀어넣었다. 

그런 참혹함을 겪고도 전쟁은 꾸준히 벌어진다.

잘못된 지도자의 선택은 민중의 고통과 죽음뿐...

오래전 과거가 아니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역사를 배우며 현재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p20 1차대전은 한마디로 모두 다 나쁜 놈이었습니다. 모든 참전국이 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 뛰어든 전쟁이었기 때문에 누가 나쁜 놈인지, 누가 착한 놈인지 구별이 안 되는 아수라장이었죠

p32 프랑스 왕궁에서 독일 제국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통일을 선언한 빌헬름 1세와 비스마르크. 이제 빌헬름 1세는 프로이센의 국왕이 아닌 통일 독일의 황제에, 비스마르크는 통일 독일의 수상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p36 비스마르크가 겨우겨우 유지해놓았던 유럽의 균형이 와장창 깨지게 돼요. 그런 상황에서 비스마르크라는 브레이크가 사라진 후 앞뒤 안 가리고 무섭게 독일을 팽창시키기 시작한 빌헬름 2세는 결국 1차 세계대전이라는 엄청난 아수라장을 일으키고 만답니다.

p50 각국 정부들이 전면전보다는 서로 군사적으로 무력시위를 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올 계획을 세워놓았기 때문입니다. 8월에 전쟁이 시작되면 아무리 늦어도 12월 크리스마스 전에는 고향 집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요.

p56 영국,프랑스 연합군에게 마른 전투의 승리는 기뻐할 일이었지만 앞으로 전개될 1차 대전의 시선에서 보자면 헬게이트가 열리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 마른강을 기준으로 영불 대 독일로 나뉘어 양편이 무려 4년동안 4개월 총을 쏘고 3킬로미터 전진하고 5개월 총을 쏘고 2킬로 후퇴를 하는 지루한 살육적인 서부전선의 참호전을 시작하게 되었으니까요

p58 독일군 찬호는 정말 1센티미터의 오차도 없는 정확함으로 건설된 반면, 프랑스군의 참호는 중간중간에 댄스홀도 있고 심지어 술집도 있었다고 해요.

p61 히틀러는 독가스에 너무나 심한 트라우마를 겪은 나머지, 2차 대전 때 나치 독일군이 상당량의 독가스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용을 꺼렸다고 해요.(하지만 유대인 학살에 독가스를 쓴 건 참 아이러니죠)

p65 베르됭 전투에서만 독일군은 약 34만 명이 전사했고 프랑스도 약 38만 명이 전사했어요. 한 번의 전투로 약 100만명의 목숨이 날아간 실로 어마어마한 살상의 전쟁이었습니다.

p93 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그 유명한 히틀러 자신의 자서전이자 나치 독일의 성경이라고 하는 나의 투쟁가지 쓸 정도로 여유가 있었습니다.

p100 이 수권법이 얼마나 미친 법인지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제1조 독일 법률은 의회 말고도 내각에서도 만들 수 있다. 이 말은 내각을 장악한 총리 히틀러가 마음대로 법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고요. 제2조 독일 내각은 헌법에서 정한 내용 말고도 다른 법을 만들 수 있다. 이 말은 히틀러가 독일 헌법을 무시하고 초헌법적 법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p104 설마 히틀러가 그 정도로 미친놈은 아닐 거라는 생각도 했을 테고요. 하지만 예상보다 더 미친놈이었죠

p112 1939년 9월 1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라는 선제공격 암호에 따라 나치 독일의 기계화 부대, 즉 탱크들이 일제히 폴란드 국경을 넘었습니다.

p126 인류 역사상 단일 전투로는 가장 많은 수의 사상자를 낸 비극적인 살육전,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서막이 오릅니다. 1942년 7월 17일부터 1943년 2월 2일까지 치러진 이 전투의 공식적인 독일군 수는 40만 명, 소련군은 100만 명 이상이었어요

p130 당시 빼앗은 독일군의 철모들을 모아서 거대한 크기의 어머니 조국상이라는 동상을 만들어 세웠어요

p153 정한론, 독도 정벌론 등의 이론을 가르치던 이 학교가 일본 아베 전 총리에 의해 2015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버린 것입니다. 당시 우리나라 언론은 보도조차 안했어요

p155 메이지 유신으로 집권한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 그중 이토 히로부미가 스승인 쇼인을 기리기 위해 1868년, 에도에 조슈신사를 세웠어요. 그리고 1879년에 야스쿠니 신사로 이름을 바꿉니다.

p171 당시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추진했는데 1907년 러일전쟁을 중재해줬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노벨 평화상까지 받습니다. 한반도를 일본에 넘겨준 그 중재자 역할로 세계적인 상을 가져간거죠

p197 이것이 바로 운명의 5분입니다. 미국의 급강하 폭격기의 단 5분간의 폭격으로 일본 항공모함이 무려 3척이나 격파한 사건을 일컫습니다.

p222 영국이 아무리 싸게 팔려고 해도 중국산 면직물이 훨씬 더 쌌기 때문이죠.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만들어낸 최신 방직기를 써서 저렴한 면직물을 만들다고 해도, 수억 명의 중국인구가 재래식 베틀을 돌려가며, 인해전술 가내 수공업으로 찍어내는 엄청난 덤핑 물량은 도저히 적수가 되지 않았답니다.

p243 기록에 따르면 조선 조정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청국 황제께서 몽진을 하셨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실꼬. 이럴 때일수록 더욱 사대의 예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했답니다

p251 위안스카이는 쑨원과의 약속대로 중화민국의 정식 대총통 자리에 오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위안스카이란 인물은 중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배신자가 됩니다.

p260 남편 역할을 했던 주문옹이 마지막 소원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옆의 이 여자와 위장 부부로 살아왔지만 죽을 때만큼은 진짜 부부로 죽고 싶다. 마지막으로 결혼사진 한 장만 남기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국민당은 이를 허락하고 둘은 형장의 이슬이 되기 전 철창 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결혼사진 한 장을 찍게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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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별자리 신화 - 선과 악, 성과 사랑, 욕망과 이성이 뒤얽힌 어른을 위한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림 속 시리즈
김선지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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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그림속 별자리 신화

 : 김선지

 : 아날로그(글담)

 : 2021/08/07 - 2021/08/13


이 책의 전작인 그림속 천문학을 읽었었다.

이 책은 그림속 천문학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12궁도의 별자리를 중심으로 몇몇 별자리 신화들이 추가되었는데 그림과 별자리를 엮어서 재미있게 설명이 되어 있다. 

12궁도의 별자리들이 익숙하기는 하지만 그 별자리가 신화와 어떻게 연관이 되었는지 잘 몰랐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잘 이해가 됐다.

내가 속한 물병자리가 신화로 따지면 물병이 아니라 술병이라는 것도 새롭게 알았다. 

작가가 여자라서 신화에 나오는 남성 착취적인 내용에 대해서 해석하는 부분도 신선했다.

어린이들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히는 게 맞느냐는 논쟁이 붙는 이유도 사실 이런 여성착취적인 내용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용을 알려주되 해석을 어떻게 해야할 지도 가이드를 가지고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청소년들에게 신화에 대한 해석을 이야기할 때도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좋은 책이고 재미있는 책이다. 


p20 청동시대가 되자 인간은 더욱 사악해졌고 청동으로 무기를 만들어 전쟁까지 벌였다. 이어서 철의 시대에는 불의와 폭력, 살육, 황금 숭배가 극도에 이르렀고, 끝까지 지상에 머물며 정의를 설파하던 아스트라이아마저 결국에는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가 되었다. 바로 순수와 결백을 상징하는 처녀자리다.

p29 살바토르 로사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경제적으로 귀족 후원자나 교회에 종속되어 있던 시대에, "나는 순전히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 나는 나의 열정에 이끌려 붓을 움직이며, 열정에 따라 그림을 그릴 때 엑스터시를 느낀다"고 선언했다.

p40 이렇듯 페르세포네 이야기는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자연 순환을 은유할 수도 있고, 개인의 심리적 성숙 과정을 상징하기도 하며, 고대의 결혼 풍습을 반영하는 동시에 성 착취 역사의 산물로도 볼 수 있다.

p51 레오나르도의 레다는 은은한 미소, 백조와의 미묘한 교감, 여성 신체 고유의 곡선과 S자 포즈, 윤곽선을 부드럽게 처리한 스푸마토 기법에 의해 다정한 느낌과 우아한 분위기가 감돈다.

p65 그의 음악에 반한 디오니소스의 여사제들이 주변을 맴돌며 구애하지만 오르페우스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이에 격분한 여자들이 그를 죽여 목을 자르고 시신도 갈기갈기 찢어 강에 버린다. 오르페우스의 머리는 강물을 흘러흘러 그리스 북부 지역의 레스보스섬에 다다르고, 이를 본 무사이(뮤즈) 여신들이 수습해 묻어준다.

p71 워터하우스는 처음에 아름다운 것을 먼저 보게 한 다음 끔찍하고 기괴한 장면으로 시선을 이동시킨다. 신화에 따르면 오르페우스는 머리가 잘려 강물 따라 흘러가면서도 계속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p80 겨울 별자리의 오리온이 밝은 1등성을 갖고 있어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는 반면, 헤라클레스는 한 개의 일등성도 없는 어두컴컴한 별자리다. 그러나 헤라클레스자리에는 밝고 아름다운 볼거리가 있는데, 일명 헤라클레스 대성단이라고 불리는 구상성단 M13이다.

p99 북반구에서만 매년 7월 중순부터 관측되기 시작하며, 8월 12일 밤부터 13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절정기에는 시간당 최대 100개가 넘는 유성우를 만날 수 있다.

p103 19세기 말부터 유행한 팜 파탈의 개념이 메두사에게 덧입혀지고, 막 싹이 트기 시작한 페미니즘과 동일시되면서 서구 가부장적 사회에서 메두사는 페르세우스 같은 선하고 용감한 남성에 의해 처단되어야 할 사악하고 파괴적인 여성의 상징이 되었다.

p114 재미있는 것은 별자리가 되어서도 전갈과 오리온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전갈자리가 떠오를 때면 오리온 자리가 서쪽 하늘로 달아나 져버리고 전갈이 하늘을 가로질러 쫓아 내려가면 오리온은 동쪽에서 올라오기를 반복한다. 전갈은 영원히 오리온을 죽이지 못하며 오리온 역시 끝도 없이 전갈을 피해 도망 다니는 셈이다.

p141 황금양털을 찾아 떠난 이아손과 아르고 원정대 이야기의 백미는 불세출 영웅들의 모험담이 아니라 팜 파탈의 최고봉 메데이아가 자신을 배신한 남편 이아손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식들을 살해하는 끔찍한 이야기다.

p149 어떤 이들은 메데이아를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본다. 남성 중심적, 가부장적 가치관이 그녀를 악녀, 혹은 마녀로 만들었고, 그녀는 이아손의 부당한 대우에 맞서 철저하게 복수한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이라는 것이다.

p158 강력한 왕권과 장엄한 문화 양식을 확립한 루이 14세 사후, 귀족들은 베르사유에서 파리로 근거지를 옮기고 자유롭고 감각적인 삶의 기쁨을 추구했다. 로코코 미술 양식은 이런 귀족들의 취향에 부합해 남녀 간의 사랑과 같은 유희적 소재를 중심으로 경쾌하고 쾌락적인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특히 부셰의 작품은 삶의 즐거움과 관능에 중점을 두었다

p161 고갱은 43세 때 13세의 타히티 소녀 테하아마나와 18개월동안 살았고 그녀를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1893년, 그는 잠시 함께한 현지인 아내를 버리고 파리로 돌아갔다. 1895년 다시 타히티로 돌아온 그는 여러 명의 10대 초반 소녀들과 동거해 아이들까지 낳았으나 역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p176 루벤스는 전성기 르네상스의 고전주의와 카라바조의 바로크 화풍, 사실주의적 플랑드르 전통을 결합해 장엄하고 역동적인 바로크 미술 양식을 완성했다

p180 쌍둥이 형제의 신부 납치나 테세우스의 헬레네 강탈은 고대사회의 약탈혼 모습을 보여준다. 남성이 폭력적으로 여성을 납치, 혹은 겁탈해 강제로 결혼하는 약탈혼은 인류사에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메리카 전 세계에 걸쳐 존재했던 풍습이다.

p188 인간 여성과의 사이에 난 헤라클레스는 힘이 세고 용맹했으며, 티탄족 여신 레토가 낳은 아폴론은 팔망미인형 미남이었고, 바다의 여신 메티스가 낳은 전쟁의 신 아테나는 아레스와 달리 지혜가 있었다

p195 사자자리는 별자리 이름과 형태가 아주 그럴듯하게 들어맞는 별자리로, 사자가 동물의 왕다운 위용으로 밤하늘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페르시아, 시리아, 인도, 바빌로니아 등의 고대 국가에서도 모두 이 별자리의 이름을 사자라고 불렀다.

p196 사자를 죽인 후 가죽을 벗기려 했지만 어떤 도구로도 도저히 찢을 수가 없어 전전긍긍하다가 사자 발톱을 사용해 겨우 벗겨내고 갑옷으로 입고 다녔다

p202 루벤스는 건장한 근육형 남성 누드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성서와 신화 속 영웅이나 왕, 지도자 등 강력한 남성을 주제로 하여 격렬한 신체적 움직임과 용맹성을 보여주는 남성 누드를 그렸다.

p211 케이론은 기품과 지혜, 의학 지식, 음악과 무예에 능한 학자이자 존경받는 교사가 되었다. 그는 헤라클레스, 페르세우스, 이아손, 태세우스 등 그리스 신화 속 수많은 영웅의 스승으로서 그들에게 말타기, 활쏘기, 레슬링, 달리기 창던지기 등을 가르쳤다

p218 케라우로스족은 과도한 성욕과 난폭한 성격 탓에 적의를 품은 이들에게 피살되는 경우가 많았다.

p229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친구로, 대체로 술과 노래, 춤을 즐기고 여인과 님프를 유혹하며 성적 쾌락을 쫓는 호색가로 묘사된다

p231 파도 위에 몸을 꼰 채 누워있는 그의 유명한 작품 비너스의 탄생의 인물과 비슷한 여인이 여기서도 등장한다. 세련되게 늘어진 머리채, 둥글고 탐스러운 무릎, 길고 날씬한 몸매, 도자기같이 매끄럽고 흰 피부, 나폴레옹 3세는 이런 유형의 여인에 대한 열광적인 팬이어서 이 작품과 비너스의 탄생 모두를 구매했다고 한다

p236 아테나 여신보다 자신의 직조 기술이 더 낫다며 신과 시합을 벌였다가 거미가 된 아라크네, 자신과 딸이 바다의 요정들인 네레이데스보다 예쁘다고 자만해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산 카시오페이아,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의 어머니 레토를 모욕한 대가로 14명의 아들과 딸을 모두 잃고 돌이 된 니오베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리스 신들은 잔인하다

p248 그리스인들은 이 별자리를 물병을 들고 있는 가니메데스의 모습으로 상상했는대, 물병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남쪽물고기자리의 입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신화속 내용에 따르면 물병이 아니라 사실은 술병인 셈이다

p259 대부분의 미술사학자는 그의 그림속에 가니메데스로 그려진 아기들이 유아기에 사망한 아이들을 의미한다는 데 동의한다. 마스의 그림들은 죽은 아기를 추모하고 슬퍼하는 부모들을 위로하는 순기능을 했다

p269 모든 문명권에서 배은 이로움과 해로움, 성스러움과 사악함을 두루 갖춘 복잡한 특성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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