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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노을 맥주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5년 7월
평점 :
초절정 대충대충 아웃도어 어드벤처, 붉은 노을 맥주
리뷰 제목으로 쓴 '초절정 대충대충 아웃도어 어드벤처'는 책 표지에 실제로 쓰여있는 말이다. 이 책에 실린 에피소드가 자아내는 느낌을 잘 담아낸 문구인 것 같다.
사실 리뷰에 'ㅋㅋㅋ'를 쓰기가 좀 그래서 안 쓰려고는 하는데, 쓰는 말마다 이걸 붙이고 싶을 정도로 어이없을 정도로 우스운 얘기가 가득했던 책이다. 여기에 플러스 약간의 공포 이야기까지 더해져서 더운 여름 시원하게 읽기 딱 좋은 책.
차례를 보면 3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1장 아슬아슬했던 나날, 2장 틀에 갇힌 인간, 3장 그런 바보같은 탐험대로 구성되어 있다.
첫 파트 첫 에피소드부터 웃음이 터져나왔다. 저자가 찾아낸 비밀 동굴 묘사에 부러움을 느끼던 것도 잠시, 오랜만에 찾은 그 비밀동굴에 노숙자가 살게 되서 '스위트 룸'을 뒤로 하고 '세미 스위트'에서 지내게 되고, 맥주를 유통기한 지난 빵이랑 바꿔먹는 등의 일을 당하게 된 저자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그 황당한 상황을 묘사하는게 재밌어서 계속 웃으며 읽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제일 재미있었던 게 아니었다! 뒤로 갈수록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그래서 첫 파트에서 가장 웃겼던 것은 마지막에 두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던 UFO이야기. 특히 두번째 이야기가 진짜 웃겼다! 첫번째 이야기는 우연의 일치로 인한 약간의 공포(?)라는 게 있었다면, 두번째는 그냥 대책없이 웃겼다. UFO에 신기함을 느끼다가 나중에는 싫증내서 야유까지 하다니! 진짜 어이없어서 웃겼다. 그나저나 UFO는 그래서 진짜 UFO였을까? 쓸데없이 궁금해졌다.
이번 책은 사실 배경이 여름만 있는 것도 아닌데, 뭔가 캠핑하며 놀러다니는 이야기라서인지 자연스레 여름이 연상되는 것 같다. 지금 여름에 읽고 있기도 하고. 캠핑 철이 지났을 때 에피소드들 중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공포스러운 이야기.
어쩐지 스산한 캠핑장에 말벌시체와 불투명한 물이 나오는 수돗가. 아무것도 못먹고 잠든 저자와 친구. 밤중에 들리는 아이들 소리와 텐트에 부딪히는 소리. 기묘한 꿈. 그리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같은 소리를 들었음을 확인하고 느껴지는 공포... 등골이 서늘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 이어지는 게 또 어이없이 대책없는 여행 이야기라서 다행히 그 이야기를 통해 생긴 두려움은 금방 날릴 수 있었다. 한여름의 에피소드 중 하나로 느껴졌다.
사실 UFO 이야기가 이 책의 웃긴 얘기 중 최고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 생각을 수정하게 만든 것이 은어 이야기였다. 저자가 캠핑을 하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은어를 많이 잡아서 칭찬했더니 은어를 15마리를 두고 가서 그걸 억지로 먹는 모습... 처음엔 맛있다고 먹다가 나중에는 꾸역꾸역 밀어넣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억지로 먹는 심정이 공감이 되서... 다음날, 그 할아버지가 은어를 잘 먹는다고 생각하셨는지 또 은어를 두고 가셔서 또 먹게 되고... 저녁에도 또 두고 가셔서 또 먹는... 결국 은어를 먹는 것을 '작업'이라고 표현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그 꾸역꾸역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맛깔스럽게 묘사하고 있어서 재미있었다.
자, 작업 시작이다.
이제부터 담담한 마음으로 과제를 하나하나 처리할 것이다.
나 자신을 타이르면서, 담담하게 모닥불을 피우고, 담담하게 은어에 소금을 뿌리고, 담담하게 강변에 굴러다니는 돌로 작은 아궁이를 만들고, 담담하게 그 안에 숯불을 넣고, 담담하게 석쇠를 올리고, 이 순간만큼은 행복하게 맥주를 마시고, 다시 담담하게 은어를 굽고, 담담하게 은어를 먹고... 담담하게 은어를 먹고... 담담하게 은어를 먹고... 담담하게 은어를 먹고... 담담하게 은어를 먹고... 담담하게 은어를 먹고... 담담하게 은어를 먹고..., 살짝 서글픈 생각이 들려는 걸 꾹 참고, 담담하게 은어를 굽고... 담담하게 은어를 먹고... 눈물이 글썽거려도, 담담하게 은어를 먹고... 담담하게 은어를 먹고... 노력하는 나 자신을 칭찬하면서, 은어를 굽고... 마지막엔 오늘도 '왕근성'으로 다 먹었다. (p.228~229)
이 부분도 진짜 웃겼는데, 다음날 할아버지에게 더 이상 못먹겠다고 말했는데 커피를 주신다고 해서 따라갔다가 은어 또 먹게 되는 상황이 그려져서 너무 웃겼다. 결국 마지막에는 은어인간이 된 것 같다고 하면서 이제 집에 가서 보통 인간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하기까지 했다.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여행 에피소드를 만들어간 모습이다.
그 외에도 재미난 에피소드가 가득한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 모리사와 아키오가 참 멋지고 신나는 청춘을 보낸 것 같아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맘 놓고 편안하게 여기저기 다니며 캠핑할 수 있다니! 현실에 얽매여 있다보니 너무너무 부러웠다. 그래도, 대리만족할 수 있게 이렇게 글로 써줘서 고맙기도 하고. 하지만 역시 직접 가는 거에 비할 수 없겠지, 이런 대책 없이 자유로운 여행 해보고 싶다. 정말정말.
그나저나 작가 후기를 보니 이런 부분이 있다.
요즘 독자 여러분께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에세이 속의 모리사와 씨와 소설 쓰는 모리사와 씨의 이미지가 달라도 너무 달라요."
당연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폴로나 미야지마도 "네가 저런 소설을 썼다니 절대 믿을 수 없어!"라며 대필 의혹을 제기하니까요.(웃음) (p.262)
역시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게 아니었구나. 그래도 소설과 다른 친근하고 자유로운 매력이 돋보이는 에세이도 만족스러우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