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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ㅣ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7
무라카미 하루키.오자와 세이지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4년 12월
평점 :
음악의 통로로 안내하는 책,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전에도 어떤 책의 리뷰에서 이야기한 것 같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가 국내에서 꽤 유명한데다가 팬층도 두텁게 형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을 거의 읽어보지 않았다. 게다가 클래식 세계에 거의 문외한이기 때문에, 오자와 세이지가 어떤 인물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작가와 지휘자의 만남에서 어떤 이야기가 있었을지 궁금했다. 인터뷰 형식으로 대부분 구성되었다는 점도, 끌리는 요소 중 하나였다.
책은 총 다섯 가지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둘러싸고, 두번째 카네기홀의 브람스, 세번째 1960년대에 일어난 일, 네번째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을 둘러싸고, 다섯번째 오페라는 즐겁다, 여섯번째 "정해진 방식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때그때 생각하면서 가르치죠.". 두 사람의 여섯 번의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는 인터뷰와 기록을 하나하나 읽다보면, 점차 클래식 음악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중간중간 끼워져 있는 '막간'이라고 소개된 부분도,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초반에 자신을 음악 듣기를 좋아하지만 문외한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음악을 듣고 표현해 내는 말들을 읽어보면, 그를 그저 문외한으로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자와 세이지 씨도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그런 언급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주변 정보 없이 순수하게 음악만 감상했기 때문에 더 음악을 깊이있게 감상할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음악에 대한 묘사는 정말이지 그 음악을 듣고 싶어지게 만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음악 감상 이야기를 읽어가는 것도 좋았지만, 지휘자인 오자와 세이지 씨의 관점에서 듣는 클래식도 흥미로웠다. 그는 듣고 있는 음악을 전문가적인 시선에서 이야기한다. 특히 오케스트라 전체를 아우르는 지휘자이기 때문에, 체계적이고 넓은 해석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 자신이 겪은 에피소드들을 연결하여 이야기하니 이야기로서 읽는 재미도 충분했다.
책 처음부터 시선을 붙잡는 내용이었다. 같은 음악을 여러 가지 버전으로 듣는 모습이 나온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협연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 같은 곡인데 지휘자에 따라, 솔로 연주자에 따라 전혀 다른 스타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언급한다. 그들이 어떻게 곡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곡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 내용을 읽으면서 정말 그런지, 한 번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꼭 다양한 버전으로 들어볼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된 다섯 가지 스타일은 꼭 들어보고 싶다.
인터뷰 내용을 이렇게 재미있게 재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무라카미 하루키의 공이 크지 않을까 싶다. 역시 작가는 다르구나 싶었다. 자칫 딱딱하게 느낄 수도 있는 클래식 이야기를 매끄럽게 풀어낸다. 인터뷰 형식은 다소 낯설지만 마치 잡지를 읽을 때의 느낌도 있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던 것 같다.
두번째 인터뷰 내용이 끝나고 등장하는 막간 두번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와 오자와 세이지는 글과 음악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 쓰는 법을 음악에서 배웠다고 언급한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리듬으로, 글에 리듬이 없으면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음악적인 귀가 없으면 글을 잘 쓸 수가 없다. 흥미로운 관점의 생각이었다.
단어의 조합, 문장의 조합, 딱딱함과 부드러움, 무거움과 가벼움의 조합, 균형과 불균형의 조합, 문장부호의 조합, 톤의 조합에 의해 리듬이 생깁니다. 폴리리듬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음악과 마찬가지인 겁니다. 귀가 좋지 않으면 불가능하죠. 그게 가능한 사람은 가능하고, 불가능한 사람은 불가능합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요. 물론 노력해서, 공부해서 자질을 키우는 일은 가능하겠습니다만. (p.121)
그런데 이런 그의 주장을 읽다보니 묘하게 공감이 갔다. 이 책 자체를 읽어가며 그런 느낌을 받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과거에 잘 읽혔다고 생각했던 글들이 아마 그런 리듬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구성이 참 잘 짜여져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음악적인 내용과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적절하게 잘 어우러져 있다. 편집도 간결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또 마지막에 젊은 연주자들을 위한 아카데미 같은 것을 운영하는 내용이 실려있는데,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멋진 연주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 그리고 좋은 음악을 결국 만들어내는 모습이 참 멋졌다.
그곳에 있던 것은 진짜 '좋은 음악'에 대한 아낌없고 순수한, 진심어린 박스였다. 지휘를 한 사람이 누구건, 연주한 사람이 누구건, 그런 것은 관계없다. 그것은 틀림없이 '좋은 음악'이었다. 불꽃이 있고, 마술이 있었다. (p.317)
책 중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런 언급을 했었다. 문외한에 속하는 자신이 음악에 대한 자세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음악이란 것은 그 정도로 저변이 넓고 속이 깊기 때문이다. 벽을 통과하는 유효한 통로를 찾아내는 것, 그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작업이 된다. 어떤 종류의 예술이 됐건 자연스러운 공감이 있는 한, 통로를 반드시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p.92)
클래식 음악의 경우 어쩐지 '엘리트'적인 요소가 강하게 느껴져서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가 클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서로 공감할 수 있다면 그런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시도는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