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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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의 인생, 에브리맨


이 책 역시, 얼마전에 읽은 다른 책처럼 죽음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번에는 주인공의 죽음이다. 주인공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죽은 이와 달리 건강했던 형은 그를 회상하는 내용의 이야기를 하고, 흙이 흩뿌려진다.
몇 분이 안 되어 모두 가버렸다. 지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우리 종이 가장 좋아하지 않는 활동으로부터 떠나가버렸다. 그리고 그는 뒤에 남았다. 물론 다른 누가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비통해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거나 자기도 모르게 안도했다. 또는 좋은 이유든 나쁜 이유든 진정으로 기뻐하기도 했다. (p.23)

뒤에 남은 그는 오래된 기억을 떠올린다. 그가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마주했던 그 시간. 어렸을 적 그는 수술을 받아야만했고, 당시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옆에 있던 소년의 죽음을 느꼈다. 그리고 수술을 무사히 마친 그는 살아남았다. 그 소년과 다르게.
생각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그는 소년에서 어른이 되었고, 불행했던 첫번째 결혼 이후 두번째 부인으로 맞아들이게 된 피비. 그녀와, 딸 낸시와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는 신뢰를 저버린 데다가 거짓말을 했고, 결국 피비는 그를 떠났다. 그녀를 잃고 나서야 그는 그녀가 얼마나 그에게 필요한 존재였는지를 느낀다. 그러나 이미 늦어있었다.

이제 그는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나이가 들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건강은 점점 악화되었다. 여러가지 의료조치들을 받아야만했고, 그 의료조치 덕분에 그는 그래도 젊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보는 이에게 그것은 안타까운 자기 합리화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노년의 삶에 중심으로 둔 것은 '그림'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 때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림 속에서 자아를 찾는 것도 한계에 이르렀다. 어쩌면 그것은 그가 운영하던 그림교실을 통해 만난 인물들의 죽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죽음이 두려워졌던 걸까? 아마 그랬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남아있을 것만 같았던 그의 부모님의 죽음, 그가 알았던 인물들이 나이가 들어 각종 병과 살아가는 모습, 먼저 배우자를 잃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여자. 그를 둘러싼 것은 그런 것들이었다. 게다가 그의 몸은 자꾸만 문제를 몰고 왔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해가 없어졌다. 죽음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책은 제목처럼 평범한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노년'의 모습에 대해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평범한 삶을 살다보면 언젠가는 도달하게 될 그 때.
노년이 된 주인공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계속해서 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젊음을 갈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허상 같은 것일 뿐. 그를 둘러싼 인물들은 대부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때문에 그는 여전히 건강한 형에 대한 질투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생동감, 건강함. 회색빛이 아닌, 푸르고 밝은 그런 것들에 대한 갈망.
책은 꽤 몰입감있게 읽힌다. 에브리맨. 보통 사람. 사실 중간에 그가 불륜을 저지르는 것에서는 분노가 잠시 휘몰아치기도 했으나, 결국 후회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걸 보니 좀 누그러지며 계속 읽을 수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는 과거의 일을 떠올리고, 후회한다. 잘못된 선택에 대한 후회.
그의 가족의 보석상으로부터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몇 명 되지도 않는 친족, 아무리 열심히 쫓아가도 도저히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친족을 소리쳐 부르는 자신의 모습. "엄마, 아빠, 하위, 피비, 낸시, 랜디, 로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만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내 말 안 들려? 나 떠나고 있다고! 다 끝났고, 나는 이제 당신들을 모두 다 떠나고 있어!" 그가 그들에게서 사라지는 것과 똑같은 빠른 속도로 자신에게서 사라지고 있는 그 사람들이 고개만 돌려, 너무나 의미심장하게 소리쳤다. "너무 늦었어!" (p.171)

리뷰를 쓰다보니 뭔가 두서없어지는 느낌이지만, 책은 정말 누군가의 삶을 따라가는 것처럼 차분히 절제된 상태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끝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모든 죽음이 그렇듯이, 갑작스럽게 다가온 죽음. 한 남자의 삶의 마침표가 곧 책의 마무리였다. 더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을 때 비로소 죽게 되는 삶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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