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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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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곳을 여행한 두 사람의 시선,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이 책은 신혼 부부인 두 저자가 호주 시드니에서 머무른 시간동안 생각한 내용들을 각자 적은 글로 구성되어 있다. 여자의 시선과 남자의 시선. 같은 곳을 같은 시간 동안 머물렀지만 글의 분위기는 약간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평행선을 달리다가도 문득 마주치게 되는 교차점들을 만나 흥미로워지는 에세이였다.

 

이 책은 '걸어본다' 시리즈에 속한 에세이이고, 제목에서도 '걷기'와 관련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책 초반에서는 이 책과 '걷기'의 연계성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차근차근 읽어가다보니 결국은 걷기에 대해 생각하게 된 여행에세이였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라는 제목은 박연준의 글 속에 있던 글귀였다. 하지만 그 글귀는 스쳐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여행 에세이에서의 시드니 여행은 '걷기'를 목적으로 하는 여행은 아니었다. 하지만 '걷기'라는 행위가 주는 것, 그로부터 비롯되는 '사색'이 가득 담겨있는 에세이였기에 결국 제목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먼저 나오는 것은 아내인 박연준의 글들이었다. 그녀의 글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프레데리크 그로의 <걷기, 두발로 사유하는 철학>의 한 구절이 담겨 있다. 이미 그 책을 읽었기 때문에 반가웠고, 자연스레 그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걷기가 주는 사색의 느낌들을 떠올리면서 책을 읽기 시작할 수 있었다. 이것이 책 속의 분위기에 젖어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결국 심심하다는 것은 쓸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것을 맘껏 할 수 있는 시간, 모험을 할 수 있는 시간! '시간이 없어서'라는 말을 그동안 얼마나 많이 해왔던가. 시간이 많아서, 심심해서, 빈둥거릴 수 있다니! (p.31)

 

박연준의 글은 여행의 내용이 많이 담겨 있었다. 마지막에는 사진들과 설명을 담은 컬러 페이지도 있어서 여행의 느낌을 전해받을 수 있었다. 여행 중에 만나고 느낀 것들이 가득한 여행 에세이를 읽어가는 느낌이었다.

 

한편 남편인 장석주의 글은 다비드 르 브로통의 <걷기 예찬>의 구절로 시작한다. 아쉽게도 이 책은 아직 읽지 못했지만, 걷기에 대해 규정한 글귀를 읽으며 역시 '걷기'를 통해 하게 되는 사색과 경험에 대해 생각하며 글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갔던 박연준의 글과 달리, 장석주의 글은 좀더 인문적인 내용이 많았다. 특히 '걷기'와 관련된 책에서 언급한 부분들이 다시 재인용되거나 재언급되었던 것들을 읽어가면서 '걷기'와의 연관성을 더욱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걷기'와 그 행위가 주는 경험적 요소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내용도 읽을 수 있었다.

 

걷는 자들은 숲길이건 들길이건 해변을 끼고 있는 길이건 시내 한복판 길이건 상관없이 걸음을 뗄 때마다 그 길에서 자신이 몸으로 존재함, 즉 존재의 느낌을 돌려 받는다. 걷기는 몸의 잠든 감각들을 일깨운다. 걸을 때 오감 속에서 느낌들이 풍부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p.170)

 

한편 이 책의 디자인적인 요소와 책의 분위기도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저자에 따라 책 속 본문 내용의 글자 색에 차이를 둔 것도 좋았고, 내지의 재질이나 약간 빛바랜 듯한 색이 좋았다. 또 이 시리즈의 표지 색도 무척 마음에 드는데, 이번에 읽은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의 경우 짙은 남색 바탕에 아래쪽에는 비오는 날 물이 고여있는 거리의 모습을 찍은 흑백 사진이 담겨 있다. 차분하면서도 미묘하게 톤다운된 느낌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들과 비슷했다. 또 제목과도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내용과 디자인, 제목 이 세 가지가 잘 맞물려서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었던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읽을수록 점점 더 잔잔하게 스며드는 느낌을 준 여행 에세이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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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어깨를 빌려줘 - 이용한 여행에세이 1996-2012
이용한 지음 / 상상출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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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 남아있던 글귀들, 잠시만 어깨를 빌려줘

 

이 책, 예전에 읽을까 말까 하다가 결국 안 읽었던 책이라고 생각했다.

책 초반을 읽어나가며 정말 그랬었다고 느낄만큼 내용이 생소했다.

그런데 어느 부분을 읽는 순간, 기억이 화악-하고 되살아났다.

아마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 내용을 너무 좋아해서 여러 번 읽었고 여기저기 적어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글귀는 다소 길지만, 이 내용이었다.

여전히 공감하며, 여기에 또 한 번 적어본다.

 

자동차는 우리에게서 산책의 즐거움을 앗아갔고,

오락기는 우리에게서 높이의 즐거움을 빼앗아버렸다.

TV는 좀 더 많은 것들을 봐야 할 우리의 시야를 근시안으로 만들었고,

휴대폰은 만남의 소중함과 뜻하지 않은 인연을 밀쳐버렸다.

컴퓨터는 우리에게 독서의 순간을 앗아갔으며,

러닝머신은 우리에게 길의 질감을 느낄 기회를 박탈해버렸다.

그 모든 이기들은 우리를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고,

감정의 이완을 차단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더 행복해졌는가, 라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p.75)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저 문명의 이기없이 살아갈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는 것이다.

더 행복해지지는 않았지만 분명 더 편리해졌고, 우리는 그 편리함에 익숙해져버렸으니까.

아날로그적이면서도 디지털적인 것을 원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있다.

예전에는 단순히 아날로그적인 것만을 그리워하고, 원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흐른 후 이 글을 다시 만난 나는 좀더 계산적인 세상의 물이 들어버린 것 같다.

 

신기한 일은 또 한 번 있었다.

꽤 오랜 기간 인상 깊은 글귀라고 생각하며 기억하고 있던 글귀가 있었다.

존재하는 건 단지 그 글귀를 찍어둔 사진 뿐.

책에서 본 글귀라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그 책이 무엇이었는지는 사진 속에 담겨 있지 않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글귀가 이 책에 쓰여있었다!

정말이지 뜻밖의 발견이라 신기하고 놀라웠다.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딸이며,

누군가의 빛나는 첫사랑이고,

누군가의 잊지 못할 제자이자

누군가의 존경받는 선생이고 믿음직한 제자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이지 않은 적이 없다. (p.257)

 

이제 이렇게 써두었으니, 어느 책의 글이었는지 앞으로는 확실히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기억에 담아둔 글들이 새록새록 생각나는 다시 읽기였다.

읽으면 읽을수록 살아나는 기억.

예전에도 참 포근하고 따뜻하게 읽었던 여행에세이였는데, 여전히 그래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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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살아보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한 체류 여행
김남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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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떠나고 싶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설 연휴를 지내는 동안 감기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침, 콧물도 자꾸 나더니만 결국 한쪽 코는 꽉 막혀버렸다. 머리는 지끈지끈 아프고 미열이 살짝 있는 듯도 했다.

어렸을 땐 그러지 않았던 것 같는데, 요즘은 왜 이리 추위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기후가 변한걸까, 아니면 내 체력이 약해진걸까.

어쨌거나 독하게 감기에 걸려버린 와중에 이 책을 읽어서일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무지무지하게 저자가 부러웠다!

 

책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여행'이라기엔 조금 길게 머물렀던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러니까, 너무너무 추운 겨울 날씨를 피해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겨울을 나고 온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 '남쪽 나라'는 총 네 곳이다. 처음부터 차례대로 발리, 스리랑카, 태국의 치앙마이, 라오스였다.

남쪽 나라라고 해서 먼 나라들일거라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익숙한 나라들이어서 조금은 신기하기도 했다.

 

사실 이 넷은 '따뜻한 남쪽 나라'라는 공통점으로 묶이고 있지만, 저자가 각 나라에서 경험한 것들, 생각한 것들은 꽤 달랐었다.

독자의 입장에서 읽어가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곳은 역시 발리에 관한 이야기였다.

가장 처음 접한 이야기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약간은 들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새로운 것, 의외의 면을 많이 알게 되서인 것 같다.

저자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발리'는 신혼여행지로 굉장히 유명해서 가족과의 여행이나 혼자 떠나는 여행에는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그건 또 하나의 '편견'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발리를 어머니와 함께 여행했다. 발리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관광명소들은 어머니와의 여행에도 충분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뿐 아니라 어머니가 먼저 한국으로 귀국한 후 발리에 홀로 남아 마주하는 발리의 모습들 또한 소소하면서도 따뜻한 여행에 어울리는 것들이었다.

발리의 수많은 신들에 대한 이야기나, 여자들에게 불합리한 결혼제도 이야기들, 사람보다 차가 우선인 길들에 대한 이야기들... 뭐든지 처음 접하는 것들이라 호기심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발리에 대한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 구절이었다.

 

개발과 성장을 추구하다 전통적인 가치를 잃어버린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발리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플란플란'하게 흘러가는 삶의 속도 속에서 지킬 것은 지키는 의연함이 엿보이니 한마디로 발리는 자연을 파괴하며 돈에 영혼을 판 그런 흔한 휴양지가 아니다. (p.116)

 

이제까지 생각했던 '발리'에 대한 이미지가 그러했었다. 흔한 휴양지의 하나. 하지만 아니었다. 그렇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편견이 생겨버린 여행지들이 사실은 엄청 많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직접 가지 않고서는 모르는 건데. 하긴,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발리'의 이미지 또한 타인에 의해 알게 된 것이다. 실제로 가보면 또 실망하게 되버릴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스리랑카에서의 이야기. 스리랑카는 '홍차' 때문에 궁금했던 나라였다. 저자 역시 스리랑카에서 차를 마실 기대를 했었다고 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곳에서 품질좋은 차를 찾기는 힘들었다고. 좋은 찻잎은 모두 수출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찻잎을 따는 모습을 사진 찍는 사람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돈을 받는 여인들. 그런 모습들에 어쩐지 슬퍼졌었다.

태국의 치앙마이 여행은 저자의 편안함이 전달되어서 나까지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느긋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잘 느껴져서 태국도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전혀 생각도 못했던 나라였는데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라오스.

라오스의 이야기는 안타까운 부분이 있었다. 그건, 아마도 라오스 뿐 아니라 많은 여행지들이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겪어야할 운명 같은 부분이다. 보석같은 여행지가 발견되고, 알려진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변질되고, 몰려온 사람들은 생각과 다르다는 말을 토해낸다. 사실 그 변화는 여행자들이 가져온 것인줄도 모르고.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한참 전,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에 관한 여행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었다. 잔잔하고 느린 삶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라오스는 변화와 마주했다. 인기있는 여행지가 되면서, 갑작스레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변할 것을 은연중에 강요받았는지도 모른다. 오래전 읽었던 그 책에서의 느리고 잔잔한 분위기, 순박한 사람들의 마음씨는 찾기 힘들어진걸까?

이제까지 책을 통해 마주했던 많은 여행지들, 그래서 언젠가는 꼭 직접 가서 마주하겠다고 다짐했던 많은 나의 이상적인 여행지들은 이미 오래전에, 벌써, 결코 만날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을까?

조금 두려워지던 중에, 저자의 이 이야기를 읽고서 조금은 안도해본다.

 

이 거리의 변하지 않은 풍경 속에는 이 도시 사람들의 달라지지 않은 마음도 남아 있을 것이다. 단지 이제 이방인의 눈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을 뿐. 지금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는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기 위해 이 도시로 돌아왔나보다. (p.392)

 

입춘도 이미 지났다. 겨울은 끝나가고 봄이 다가오고 있다. 다가올 봄이 아주아주 따뜻했으면 좋겠다.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날 마음은 잠시 접어둘 수 있도록, 그러다 다시 추운 겨울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미뤄둔 고민을 해야지, 과연 어느 곳에 가면 추운 겨울을 조금이라도 따스하게 날 수 있을까, 하고.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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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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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관점으로 깊이 파고들어가는 독서,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책읽기는 수십년을 지속해도 질리지 않는 오락이었다. 목이 뻣뻣해지거나 눈이 뻑뻑해져서 책을 덮은 적은 있어도 독서 자체에 물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냥 평생 파묻혀 책이나 읽고 지냈으면 좋겠다, 한참 게을러질 때는 태평한 꿈을 꾸기도 했다. (서문, 이동진)

 

서문의 이 부분을 읽어가는 순간, 나는 이 책이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분명 즐겁게 읽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이 부분에 엄청나게 공감을 했기 때문이었다. 책읽기는 이전도,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는 취미 내지는 스트레스 해소의 방편인데다, 나 역시 평생 파묻혀 책이나 읽고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팟캐스트 방송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소설가 김중혁과 한 권의 책에 대해 대담한 내용을 엮어낸 책이다. 그 방송이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아직 들어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 방송에서 또 어떤 책을 다루었을지 궁금해질만큼, 참 매력적인 대담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룬 책은 총 일곱 권이다.

그 일곱 권은 이언 매큐언의 <속죄>,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해>이다.

모두 유명한 작가 내지는 유명한 작품들이지만 이 중 내가 읽은 책은 두 권.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었다. 그 외의 책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제외하고는 대충 줄거리 정도는 아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스포 때문에 책에 대한 비평을 읽기 조심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스포일러를 알고 읽는 것도 선호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그런 망설임없이 이 책을 읽어갈 수 있었다.

일곱 권만 다루고 있으니 이 책의 분량이 생각보다 적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이 책은 적은 수의 책을 다루고 있지만 그만큼 한 권 한 권을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한 권의 책에서 생각할 수 있는 여러가지 주제들을 끄집어내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담을 하는 두 사람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점으로 책을 읽은 감상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이다.

 

책에 대한 감상을 나눈다는 점에서 이 책 역시 독서 에세이의 한 유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정말 잘 쓰인 독서 에세이를 읽게 되면 원래 관심이 없었던 장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 책 역시 원래는 끌리지 않았던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특히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궁금해졌다. 이 책을 읽고 얼마 후 서점에서 그 책을 봤는데 생각보다 분량이 많아 보여서 아직 읽는 시기를 약간 보류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나와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추천하는 이야기들을 읽는 것은, 고정관념이나 이전의 기억에 사로잡혀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기 두려워하는 마음을 완화시키는 데 참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이 소설은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 또는 가벼운 것인가를 묻고 있지만 둘 중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라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가벼운 건 가벼운 대로 인간 실존의 딜레마를 빚는 것이고 무거운 건 무거운 대로 멍에나 족쇄로 작용할 뿐이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 책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한 굉장히 인상적인 언급이 있어서 특히나 인상깊게 남았던 것 같다.

 

책이라는 게, 소설이라는 게 그래서 중요한 것 같아요. 한 사람이 두 개의 삶을 살 수는 없지만 소설은 두 개의 삶을 보여줄 수 있잖아요. 우리가 소설을 쓰거나 읽는 이유는 수많은 삶을 볼 수 있기 때문이고 그 삶으로부터 배울 수 있기 때문이거든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만 관심이 갔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미 읽은 책에 대한 언급들이 더 관심이 가기도 했다. 같은 부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점에 공감을 느끼고, 또 나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을 언급하는 것에 호기심을 갖고 집중해서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경우가 특히 그랬다. 이 책은 2번 읽게 되는 책으로 유명하다. 한 번 읽었을 때는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지만, 두 번째로 읽으면서 비로소 어그러져 보였던 부분들이 착착 맞춰지면서 새로운 감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2번을 읽었음에도 배경지식이나 경험의 부족으로 놓친 부분들이 있었고, 이 책을 통해 그 놓쳤던 부분들을 다시 짚어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초반부에 역사 수업 시간 장면이 자세하게 나옵니다. 처음에는 장황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전체에 대한 거대한 복선과 밑그림을 제공하는 것이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역사 시간 처음에 에이드리언은 이런 얘기도 합니다. "모든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우리가 진실되게 할 수 있는 말은 '뭔가 일어났다'는 것뿐입니다."

전 그게 이 소설의 단 한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어떤 사건의 원인과 결과라는 게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때 그 사람 개인의 역사가 되는 것이지 그 사람을 멀리서 바라보는 다른 이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 있거든요. 이런 점도 이 소설의 중요한 핵심인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만약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미리 생각해서 행동하는 게 가능한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할 때 훗날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특히 '역사 시간'이 그렇게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는 사실은 새삼 놀랍게 느껴져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꼭 다시 읽으면서 역사 시간 부분을 집중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명언은 독서에도 통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외의 다른 책들도 새롭게 깨닫게 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역시, 책은 어떤 배경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읽느냐에 따라 다 다르게 읽히는 것 같다. 모두 읽는 것은 동일한 텍스트지만 동일한 텍스트가 아니라고 했던 모순적인 말이 생각나기도 했다.

 

어쨌거나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글귀들을 써 두었다. 나중에 책을 읽고 나서 그 내용들을 다시 보면 또 어떤 기분과 생각이 들까.마지막으로 이 책의 편집 및 디자인적 요소에 관한 이야기도 하나 언급해두어야겠다. 사실 e-book으로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이야기할 것은 내지 편집 밖에는 없다. 이 책에서 공동저자라 할 수 있는 이동진, 김중혁이 한 말을 구분하기 위해 쓸 때, 흔히 축약해서 보여주는 '이', '김'으로 표기하지 않고 'ㅇ'과 'ㄱ'으로 이미지화된 그림으로 표기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글만 가득 채워진 게 아니라 약간의 기호 같은 이미지가 더해져서 지루함이 조금은 덜어지지 않았던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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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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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모여 삶을 바꾸다,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분명 요나스 요나손의 책이 가독성이 좋은 건 사실인 것 같다. 전에 읽었던 그의 전작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가독성만큼은 뛰어났었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역시 술술 읽혔다. 하지만 이게 저자의 능력인지 아니면 역자의 능력인지는 알 수 없다. 번역본을 읽었으니까. 그러고보니 역자가 같았는지도 한 번 알아봐야겠다.

이번에 읽은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는 지난 번 읽은 전작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보다는 마음에 들었다. 주요 캐릭터들에 좀더 애정을 쏟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공감까지는 힘든 캐릭터들이었지만, 그래도 이번 책의 주인공들은 동정의 여지가 더 많이 있어서 좀더 호감이 갔다.

그런데 같은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인지 몇몇 비슷한 특징들이 눈에 띈다.

 

가장 큰 유사점은 대부분의 사건이 '우연'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책에서도 대부분의 '결정적인' 사건들이 우연 때문에 일어난다.

처음에는 너무나 터무니 없는 일들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애초에 폭탄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어느 정도 흐른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실제 삶도 결국은 '우연'에 크게 좌우되고 있는 것 같다.

순간순간의 마주침, 작은 선택이 엮여서 결국 만나게 되는 인연들. 그리고 그 인연이 연인으로 바뀌어가는 순간들.

다만 이 책의 주인공 놈베코는 그 우연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똑똑함을 지니고 있었을 뿐이었다.

 

남아공의 청소부에 불과했던 소녀가 유럽에 와서 차근차근 성공의 단계에 오른 이야기.

이렇게만 보면 이 책은 일종의 신데렐라 스토리 같지만 그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했다.

그 과정 중 상당 부분이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이야기일뿐이라고 처음에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놈베코가 어린시절부터 사고 때문에 하녀가 되어서 지냈던 기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시피 하다.

다만 그 사이 제대로 된 음식도 먹기 힘들었다는 점이 암시될 뿐이다.

 

어쨌거나 전작과 비교했을 때 좀더 미소지으며 읽을 수 있는 책이었던것 같다.

물론 중간중간 분노가 생길 때도 있긴 하지만, 그건 그만큼 책에 빠져들어 읽을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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