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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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관점으로 깊이 파고들어가는 독서,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책읽기는 수십년을 지속해도 질리지 않는 오락이었다. 목이 뻣뻣해지거나 눈이 뻑뻑해져서 책을 덮은 적은 있어도 독서 자체에 물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냥 평생 파묻혀 책이나 읽고 지냈으면 좋겠다, 한참 게을러질 때는 태평한 꿈을 꾸기도 했다. (서문, 이동진)

 

서문의 이 부분을 읽어가는 순간, 나는 이 책이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분명 즐겁게 읽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이 부분에 엄청나게 공감을 했기 때문이었다. 책읽기는 이전도,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는 취미 내지는 스트레스 해소의 방편인데다, 나 역시 평생 파묻혀 책이나 읽고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팟캐스트 방송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소설가 김중혁과 한 권의 책에 대해 대담한 내용을 엮어낸 책이다. 그 방송이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아직 들어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 방송에서 또 어떤 책을 다루었을지 궁금해질만큼, 참 매력적인 대담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룬 책은 총 일곱 권이다.

그 일곱 권은 이언 매큐언의 <속죄>,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해>이다.

모두 유명한 작가 내지는 유명한 작품들이지만 이 중 내가 읽은 책은 두 권.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었다. 그 외의 책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제외하고는 대충 줄거리 정도는 아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스포 때문에 책에 대한 비평을 읽기 조심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스포일러를 알고 읽는 것도 선호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그런 망설임없이 이 책을 읽어갈 수 있었다.

일곱 권만 다루고 있으니 이 책의 분량이 생각보다 적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이 책은 적은 수의 책을 다루고 있지만 그만큼 한 권 한 권을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한 권의 책에서 생각할 수 있는 여러가지 주제들을 끄집어내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담을 하는 두 사람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점으로 책을 읽은 감상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이다.

 

책에 대한 감상을 나눈다는 점에서 이 책 역시 독서 에세이의 한 유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정말 잘 쓰인 독서 에세이를 읽게 되면 원래 관심이 없었던 장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 책 역시 원래는 끌리지 않았던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특히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궁금해졌다. 이 책을 읽고 얼마 후 서점에서 그 책을 봤는데 생각보다 분량이 많아 보여서 아직 읽는 시기를 약간 보류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나와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추천하는 이야기들을 읽는 것은, 고정관념이나 이전의 기억에 사로잡혀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기 두려워하는 마음을 완화시키는 데 참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이 소설은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 또는 가벼운 것인가를 묻고 있지만 둘 중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라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가벼운 건 가벼운 대로 인간 실존의 딜레마를 빚는 것이고 무거운 건 무거운 대로 멍에나 족쇄로 작용할 뿐이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 책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한 굉장히 인상적인 언급이 있어서 특히나 인상깊게 남았던 것 같다.

 

책이라는 게, 소설이라는 게 그래서 중요한 것 같아요. 한 사람이 두 개의 삶을 살 수는 없지만 소설은 두 개의 삶을 보여줄 수 있잖아요. 우리가 소설을 쓰거나 읽는 이유는 수많은 삶을 볼 수 있기 때문이고 그 삶으로부터 배울 수 있기 때문이거든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만 관심이 갔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미 읽은 책에 대한 언급들이 더 관심이 가기도 했다. 같은 부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점에 공감을 느끼고, 또 나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을 언급하는 것에 호기심을 갖고 집중해서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경우가 특히 그랬다. 이 책은 2번 읽게 되는 책으로 유명하다. 한 번 읽었을 때는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지만, 두 번째로 읽으면서 비로소 어그러져 보였던 부분들이 착착 맞춰지면서 새로운 감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2번을 읽었음에도 배경지식이나 경험의 부족으로 놓친 부분들이 있었고, 이 책을 통해 그 놓쳤던 부분들을 다시 짚어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초반부에 역사 수업 시간 장면이 자세하게 나옵니다. 처음에는 장황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전체에 대한 거대한 복선과 밑그림을 제공하는 것이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역사 시간 처음에 에이드리언은 이런 얘기도 합니다. "모든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우리가 진실되게 할 수 있는 말은 '뭔가 일어났다'는 것뿐입니다."

전 그게 이 소설의 단 한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어떤 사건의 원인과 결과라는 게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때 그 사람 개인의 역사가 되는 것이지 그 사람을 멀리서 바라보는 다른 이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 있거든요. 이런 점도 이 소설의 중요한 핵심인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만약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미리 생각해서 행동하는 게 가능한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할 때 훗날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특히 '역사 시간'이 그렇게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는 사실은 새삼 놀랍게 느껴져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꼭 다시 읽으면서 역사 시간 부분을 집중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명언은 독서에도 통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외의 다른 책들도 새롭게 깨닫게 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역시, 책은 어떤 배경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읽느냐에 따라 다 다르게 읽히는 것 같다. 모두 읽는 것은 동일한 텍스트지만 동일한 텍스트가 아니라고 했던 모순적인 말이 생각나기도 했다.

 

어쨌거나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글귀들을 써 두었다. 나중에 책을 읽고 나서 그 내용들을 다시 보면 또 어떤 기분과 생각이 들까.마지막으로 이 책의 편집 및 디자인적 요소에 관한 이야기도 하나 언급해두어야겠다. 사실 e-book으로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이야기할 것은 내지 편집 밖에는 없다. 이 책에서 공동저자라 할 수 있는 이동진, 김중혁이 한 말을 구분하기 위해 쓸 때, 흔히 축약해서 보여주는 '이', '김'으로 표기하지 않고 'ㅇ'과 'ㄱ'으로 이미지화된 그림으로 표기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글만 가득 채워진 게 아니라 약간의 기호 같은 이미지가 더해져서 지루함이 조금은 덜어지지 않았던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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