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에 빠졌어! 돌개바람 56
김미애 지음, 다나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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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고 재미난 저학년 동화 한 편을 읽었다. 저마다 개성이 있으면서도 살짝씩은 모두 허당이고 우리와 많이 다른 것 같지 않아 친근한 4명의 친구들이 나온다. 아기여우, 아기토끼, 아기돼지, 아기곰이다.

엄청 착한 주인공도 없고 그렇다고 악역도 없고 의인도 없지만 이들은 함께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 위기는 제목에 나온 '구덩이'다. 네 친구가 소풍을 가는 길에 모두 구덩이에 빠진다. 여우와 토끼가 빠진 건 그런가보다 했는데, 다음에 등장한 돼지는 친구들을 꺼내주기는 커녕 "벌써 노는 중이야? 나도!!" 하면서 스스로 뛰어들었지 뭔가! 마지막 곰한테 기대를 걸어보았지만 곰 역시 허당이야. 넝쿨을 내려뜨려 친구들을 끌어올리려다 자기가 굴러떨어져 버렸어! 결국 네 친구 모두 커다란 구덩이 속에 빠지고 만다.

모두의 키를 넘는 깊은 구덩이에서 어떻게 나갈 수 있을까? 이 안에서 보이는 친구들의 모습이 평범하면서 귀엽고 아주 훌륭하진 않지만 나쁘지도 않다. 무심코 하나 갖고 있던 사탕을 입에 넣은 곰. 혼자만 먹는다는 친구들의 눈총에 어리둥절. 곧이어 돼지의 머리 위로 떨어진 알밤 한 개. 그걸 네 조각으로 쪼개긴 했지만 제일 큰 건 자기가 먹고 제일 작은 건 곰을 주네. 하지만 나눠먹은 게 어디야. 그정도면 훌륭하다.^^

그런데 더 큰 위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금세 구덩이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여우가 빠져나갈 방법을 찾았다! 가벼운 토끼, 여우 순서로 먼저 빠져나갔다. 돼지와 곰이 남았는데, 이때 곰이 돼지를 내보내 준다. 마지막 남은 곰은 내보내줄 친구가 없다. 이제 빠져나간 세 친구들의 차례다. 셋은 힘과 지혜를 합해 곰을 구해낸다. 네 친구는 깔끔쟁이 여우네 집에 가서 깨끗이 씻고 차를 마시고 함께 곤한 잠에 빠져든다.
"엉망진창 소풍이었어. 하지만 같이 있어서 참 좋았어."

특별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 없이 좀 어설픈 친구들이 협력하여 위기를 극복하는 이야기가 귀엽고 흐뭇해서 좋았다. 어린이들은 마지막 친구까지 구덩이에 빠져버리는 장면에서 탄식을, 물이 차오르는 장면에서 위기감을, 곰까지 무사히 빠져나올 때 안도감을 느끼겠다. 다 읽기전 구덩이에서 탈출하는 방법이나 곰을 구해내는 방법에 대해 자유롭게 발표해본 후 나머지를 읽어도 재미나겠다. 저학년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것 같고, 어른이 읽어도 읽는 맛이 있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도 이랬으면 좋겠다.
적당히 허당이고,
처음엔 몰랐더라도 가르쳐주면 배우고,
엄청나게 헌신적이진 않아도 친구의 어려움을 외면하진 않고,
힘든 일 앞에서는 같은 목표로 협력하는,
각기 다르면서 하나같이 귀여운
함께 있어 좋은
아이들.
원래 아이들은 대체로 이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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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한 B컷 문학동네 청소년 64
이금이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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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소재를 한 낱말로 한다면 '편집'이다. 편집 당했어, 할 때의 그 편집. B컷이라는 제목이 그걸 짐작하게 해준다.

남들의 A컷을 보며 살아가는 시대다. A컷이 필요한 매체는 우리 일상을 둘러싸고 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편집'한다. 자신이 선택한 매체에 'A컷'을 올려놓고 남들의 반응을 살핀다. 그러다가 그 편집에 자신마저 속아넘어가기도 한다. 자신이 휴지통에 담은 B컷. 그게 마치 없는 것처럼.

나는 나이도 있고... 매체를 많이 사용하진 않는다. 그 흔한 인스타그램도 안하고 유튜브 채널도 없으니까... 고작 하는게 페이스북인데, 그거 하나의 부작용도 만만치는 않다.ㅎㅎ 다들 너무 훌륭해.... 나는 너무 평범해...ㅠ 하지만 여기서 꽤 많은 정보를 얻고 있고, 같은 직종의 사람들과 위안을 나누기도 하기 때문에 당분간 그만둘 생각은 없다.

아주 사소하게 나의 B컷을 예로 들자면....
퇴근할 때 이미 모든 힘이 다 빠져서 오는길에 순대국이나 추어탕을 사와서 한끼 겨우 때운다. 냉장고에 먹을만한 반찬이 없다. 그러다 어떤 주말 모처럼 김밥 말아 바리바리 통에 담고 사진 찍어 올리면 나는 '요리도 잘하는데 나눠먹기까지 하는 부지런한 워킹맘'이 된다.ㅎㅎ
그날그날 겨우 준비해 수업하다가 모처럼 잘된 수업의 결과물을 올리면 나는 수업도 잘하고 결과물도 훌륭한 교사가 된다.
이런 식이다. 이렇게 해서 나의 A컷은 칭찬받고, 나자신마저 A컷을 나라고 믿게 되며 나의 진실이 담긴 B컷은 버려진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청소년소설이다. 이금이 작가님의 필력은 믿어도 된다. 초등 고학년부터 어른들까지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겠다. 중2에서 중3에 올라가는 학생들이 주인공이고 시기는 2019~2020년, 코로나가 발발하여 전국민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그 시기다. 화자인 최선우는 공부는 그닥, 학원도 많이 다니지 않으며 게임을 좋아하고 영상편집에 소질이 있는 평범한 중학생이다. 선우가 그반의 인싸그룹의 유튜브 채널 '써빈로긴'의 동영상 편집을 맡아 해주게 되면서 스토리가 전개된다.

그룹의 리더 격인 서빈이는 공부도 잘하고 매너도 꽤 괜찮다. 호구 노릇하는거 아닌가 하는 절친들의 우려에 선우가 "괜찮은 아이야."라고 변호를 할만큼 양호한 처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서빈이가 편집하라고 보낸 풀 영상을 보면서 선우는 가끔 쎄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결국에 나타난 실체는....ㅠ

결말이 심하게 충격적이거나 대단한 반전인 건 아니지만 끝까지 몰입감 있게 읽을 수 있다. 평범한 학생인 선우의 선택이 매우 건강하여 고맙다. 어쩌면 평범한 학생이 아닌 건지도 모르지....

책 속에 작가님의 손글씨 엽서가 들어있다.
"여러분의 B컷을 응원합니다."
솔직히 나는 A컷마저도 별 게 아니어서 그 갭이 크진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의 B컷을 한껏 응원하기로 했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버려진 B컷을 꺼내어 한번 보듬어본다면 훨씬 더 건강한 사람들이 되지 않을까. 어른들도 마찬가지. 영상편집 기술은 뛰어날수록 좋지만, 인생편집 기술은 없어도 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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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시험을 잘 보고 싶어 + 내 몸이 어때서 - 전2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가 되기 위한 파워 충전소 시리즈
최은영 지음, 김진화 그림 / 우리학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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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은 믿고 거르는 책 종류가 인성동화’ ‘가치동화를 표방한 동화들과 더불어 자기계발 동화였다. 읽어보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약간의 선입견과 심리적 거부감이 있다. 스토리가 훌륭하면 굳이 그런 단서를 붙이고 무슨무슨동화라고 내세울 필요가 없는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있었다.

 

이제는 그런 편견도 좀 깨 보려고 한다. 그런 생각 중에 만난 이 책은 내게 꽤 좋은 영향을 주었다. 뻔한 교훈을 들이대는 느낌 없이 스토리가 자연스러웠고 무엇보다도 전하려는 메시지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어서 욕심이 좀 났다.

 

파워 충전소! 이 시리즈는 앞으로 더 나온다고 하는데 일단 두 권이 먼저 나왔다. 바디 파워 충전소와 브레인 파워 충전소다. 몸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온 것이 순서에 맞는다고 동의한다. 어른들도 그렇지만 요즘 아이들의 몸은 형편없다. 아마 신체나이를 측정해보면 깜짝 놀랄 만한 아이들도 많을걸? 자연에서 뛰어놀며 자라고, 적절한 노동을 하고(어쩔 수 없이1), 건강한 채소를 먹고(어쩔 수 없이2) 자라던 옛날 아이들과는 너무 다른 환경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 저소득층에게 비만이 절대적으로 많다고 하듯이, 우리나라도 비슷해져 간다. 소득과 비례하지는 않지만 보호자의 관심과 관리에는 비례한다. 입맛에 맞는 것만 먹게 내버려두고 아무 시도도 하지 않는 경우 아이의 식습관은 한없이 나빠져 고정된다. 몸에 쓰레기를 담는구나 싶은 아이들도 보게 된다. 일단 5대 영양소에 맞춰 나온 급식 중에 일부만 골라 먹거나 거의 먹지 않고, 하교하면 편의점을 찾거나 라면을 먹는다. 이 책의 소율이가 이와 비슷하다.

 

그런가하면 먹는 양이 절대 부족한 아이들도 있다. 다이어트 강박 연령이 점점 내려오는 추세다. 이 책에서는 연예인 지망생인 세라가 그렇다. 파워충전소를 찾게 되는 아이들은 소율이와 훈이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이곳을 처음에는 의심하던 아이들이 결국은 파워 충전을 받게 되는데, 첫권에서는 소율이가 바디 파워를, 둘째 권에서는 훈이가 브레인 파워를 충전한다.

 

바디 파워를 충전한 소율이는 세 가지에 집중하게 된다. 바른 자세, 건강한 식재료, 충분한 운동이다. 이건 나이든 나에게도 너무 절실한 것이다. 내가 다니는 커브스에도 노후에 가장 중요한 저축은 근육 저축이라던가 뭐 그런 뜻의 문구가 붙어 있다. 이 책에서 근력운동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어른에게 더 적절해 보인다. 사실 아이들은 아무 운동이든 잘 뛰기만 해도 좋은 것 아닐까. 내가 너무 무식한 소리를 하나.ㅎㅎ 어쨌든 자세, 음식, 운동. 이 중요한 것을 균형있게 다루어 준 것이 아주 적절하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많은 어린이들을 바꾸어줄 힘이 있다면 세상에 유익한 일이 되겠다.

 

둘째 권에서 훈이는 학년이 올라가 어려워진 수학을 극복하지 못해 자신감이 떨어지고 친구관계에까지 위기가 찾아온다. 두 친구는 브레인 파워의 필요성을 깨닫고 충전소를 찾게 되는데, 노부부는 브레인 파워는 머리가 좋아지는 파워가 아니란다.” 라고 분명히 밝힌다. 그리고 머리에 필요한 힘을 주는 거야. 생각하는 힘, 몰두하는 힘, 그리고 그것을 단단히 지탱시켜 주는 힘 말이야.” 이 설명이 정말 맘에 들었다. 이건 정말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이다. 자꾸 이런 말을 하게 되는데, 나도 이거 충전 좀 받고 싶다. 나이들수록 왜이렇게 집중력이 떨어지는지... 왜 공부를 젊을 때 하라는지 알 것 같다니까. 에이고...^^;;;

 

나는 나이들어 이렇다지만 아이들 중에 이 브레인 파워가 필요한 경우가 정말 많다. 절반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주의를 빼앗길 것들이 옛날보다 훨씬 더 많아졌기 때문이겠지. 이 책에 제시된 방법들의 필요성과 효용성을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 인식하고 노력하다가 중등과정으로 가게 되면 공부에 훨씬 재미를 느낄 것 같다. 다만 책의 후반부에 짧게 제시되어 있으므로 한 번 읽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계속 동기부여를 시켜줄 조력자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 친구들과 함께 노력하는 것도 도전을 주는 매우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바디 파워도 브레인 파워도 남과 비교하기 위한 것이 아닌 오직 스스로의 기쁨과 성취감을 위한 것이며 결국 건강한 사회를 위한 것이다. 부디 아이들의 몸과 정신이 건강해지고 그만큼 이 사회도 건강해지면 좋겠다. 파워충전소 시리즈가 아직 다루지 않은 주제는 무엇일까, 그것도 매우 중요하고 솔깃한 것이겠지? 다음 책을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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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외로움이 다른 외로움에게 보통날의 그림책 5
나탈리 비스 지음, 쥘리에트 라그랑주 그림, 김윤진 옮김 / 책읽는곰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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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소설 속 무서운 주인공 말고, '투명인간 취급한다'고 할 때 그 투명인간.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고, 그 존재에 신경쓰지 않는 그런 사람.

'나의 아저씨' OST를 들으면 아직도 가슴이 아릿할 때가 있는데 이런 가사들 때문이다.

이 넓은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아무도 내 맘을 보려 하지 않고
아무도

웃는 사람들 틈에 이방인처럼
혼자만 모든 걸 잃은 표정
정신없이 한참을 뛰었던 걸까
이제는 너무 멀어진 꿈들

이 오랜 슬픔이 그치기는 할까
언제가 한 번쯤 따스한 햇살이 내릴까

버스 정류장에 언젠부터인가 '투명인간' 할아버지가 앉아있다. 앙리 할아버지는 마치 정류장의 한 부속품이 된 듯 언제나 거기에 있었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거기에 아기 코끼리가 바람을 피해 들어왔다. 아기 코끼리 또한 '투명'이었다. 그 둘만 서로를 알아보았다. 할아버지는 아기 코끼리가 걱정되어 모처럼 작심하고 마을로 들어갔다. 집집마다 다니며 물었다. 당연히 돌아오는 건 냉대와 험한 말들 뿐이었다. 둘은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하지만 작가는 할아버지의 삶이 달라졌음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바로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외로움'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마음만 달라진 것이 아니고 결말에 가면 상황도 많이 바뀐다. 할아버지는 더이상 정류장에 없다. 마지막 장면은 할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정류장에 앉아있는 것을 비추고 끝난다. 독자들은 그림엔 없지만 다른 곳에 있는 할아버지를 상상하며 끝날 것이다.

외로움은 인간에게 기본값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또 적당한 외로움은 그냥 즐기(?)는 편이지만 이게 나의 교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한마디로 배가 불러서 호강에 겨워 하는 생각이라는 거다. 완벽한 외로움 앞에서 나는 공포에 떨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 할 것이다.

언어를 몰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원제는 그냥 <버스 정류장>인 것 같은데, 제목 번역을 이렇게 한 것은 주제를 제목에 담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걍 너무 밋밋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한 외로움과 다른 외로움이 만나면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가 되는 마법. 사회를 이루는 모든 존재들의 공통적인 공식이 아닐지.

오늘도 외로움과 외로움이 눈이 맞아,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마법이 곳곳에서 일어나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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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마음 사계절 만화가 열전 12
소복이 지음 / 사계절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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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말에는 학급 아이들과 쉽고 편한 독서를 해보고자 도서실에서 만화 바구니를 구성해왔다. 국어 마지막 단원의 텍스트가 만화인데, 몇장면만 제시된 만화로 수업을 하느니 전체를 제대로 읽게 하고 성취기준에 맞는 활동을 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아서다.

'**남매' 류의 가만 둬도 너덜너덜해지는 만화들은 다 빼고, 그래픽노블들과 남동윤 작가님 만화들을 주로 담았다. 그러다 이 만화를 발견했다. 수많은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린 소복이 작가님의 만화네? 나온지도 꽤 됐고... 그런데 어린이용은 아니구나. '사계절 만화가 열전' 시리즈의 한 권이네. 시리즈를 검색해보니 옛날에 읽었던 책들도 있다. 최규석 작가님의 '울기엔 좀 애매한' 등등. 시리즈 중에선 소복이 작가님의 이 책이 그래도 전 연령 가능한 만화인 것 같다.

'소년의 마음'이라는 제목이 평이하면서도 특별하다. 이 소년은 불특정 누군가일 수도 있지만 바로 '그 아이'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읽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맨 뒤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모델은 바로 작가님의 남동생이었다. 아마도 그 남동생은 좋은 어른으로 잘 자랐을 것이다. 하지만 외로움과 서러움에 잠겨있던 시간들은 위태로웠지.... 누구나 이 위태로운 다리를 건너 '무사히' 어른의 세계에 도착한다. 어른의 세계 또한 위태로움 투성이라는 것이 함정이지만......

소년이 작은 상을 펴고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곳은 문이 두 개 있었다. 문이 두 개인 방? 이라고 생각하려다보니 이곳은 거실이었다. 방이 두개인 작은 집에서 소년의 방은 없다. 방 하나는 부모님이, 하나는 누나들이 쓴다. 부모님은 늘 싸우고, 누나들은 자기들끼리 논다. 소년은 자기만의(?) 이 자리에서 계속 그림을 그린다. 부모님이 싸울땐 소를 그리고, 죽음이 두려워질 땐 말을 그리고, 깜깜한 밤이 무서우면 새를 그리고.... 그 동물들은 방을 가득 채웠다가도 어느순간 빠져나간다.

소년이 눈물을 후두두둑 떨어뜨리며
".....엄....마,
어차피 다 죽는데....
나를....
왜 낳았어?"
라고 묻는 장면에서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화가 난 채로 폭풍 집안일을 하던 엄마의 화를 더 돋구었을 뿐이었다. 이 부모는 싸우지만 특별히 나쁜 사람들 같진 않았다. 싸우는 평범한 사람들일 뿐....ㅠ 아이는 할머니를 그리워한다. 아이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드라마를 보던 할머니. 유일하게 따뜻한 품이던 할머니는 죽어서 땅에 묻혔다. 아이의 두려움의 근원인 것 같다.

하지만 두려움에서 시작된 아이의 상상이 결국 아이를 구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물고기를 잔뜩 그린 어느 밤 거실은 바다가 되었고, 자유롭게 헤엄쳐오는 할머니를 만난다. "난 할머니가 죽은 줄 알았어. 아니었구나~" 기뻐하는 아이에게 할머니는 말한다.
"할머니는 죽었지."
아이의 폭풍 눈물은 한참동안 이어진다. 할머니는 "나는 네 눈썹 사이에 있어. 내가 제일 귀여워했던 콧구멍 속에 있고...."로 시작되는 말로 아이를 위로한다. 아이가 그렸던 동물들이 나타나 한바탕 신나게 논 뒤 할머니는 다시 바다를 헤엄쳐 떠난다. 아이를 한참동안 꼭 안아주고.

바닷물이 다 빠져나간 집안에 아이 혼자 깨어 있다. 울다 잠든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고, 탱크 코골이를 하는 아빠의 코를 꽉 집어주고, 그리고 창문을 열어 작별의 손을 흔든다. 상상 속의 모든 것들에게....

가장 어린 막내의 마음 속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가족 누구도 그것을 알아주지 못한다. 그냥 그림을 잘 그리네. 신통하네. 그정도였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동안 아이는 아팠고 아픈 만큼 자랐던 것 같다.

그러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먹먹하다가도 가라앉는 이유다. 누구나 위태위태한 유년의 다리를 건너 어른이 된다. 하지만 그 다리가 갈수록 더 위태로워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아이들이 그 다리를 건널 수 있을까? 가다가 떨어져 버리거나 아예 발도 떼지 못하고 유년의 자리에 주저앉을 것 같아 불안해지는 내 마음. 이 마음이 괜한 기우였으면 좋겠다. '소년의 마음'은 이렇게 스스로 단단해질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다만, 때로 머리를 쓰다듬는 '할머니'의 손길은 있어야겠지.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어." 라는 확신을 주는 그 한 존재.

우리반에 지적장애에 가까운 한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가 고집을 피우면 아무도 못말리며, 역시 지적으로 약하신 아빠만을 무서워한다. 교실을 탈출하면 아빠한테 알려야 한다고 하자 아이는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했다.
"아빠한테 말하지 말라구요. 나는 사라져 버리고 싶다구요. 엉엉엉"

이 소년의 상상과 위로가 그 아이의 마음 속에도 일어날 수 있을까. 어차피 인생은 혼자야. 너무 서러워 마라. 상처엔 딱지가 앉고 혼자 아물기도 한단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라. 그래야만 되는데 그래야지 별수가 있겠니. 다만 너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옆에 있길 바랄 뿐.

인간은 태어나면 어찌어찌 살아내는 존재인 것 같기도 하고, 온 우주가 도와야만 겨우 버틸 수 있는 존재인 것 같기도 하다. 부디 전자였음 한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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