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마음 사계절 만화가 열전 12
소복이 지음 / 사계절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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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말에는 학급 아이들과 쉽고 편한 독서를 해보고자 도서실에서 만화 바구니를 구성해왔다. 국어 마지막 단원의 텍스트가 만화인데, 몇장면만 제시된 만화로 수업을 하느니 전체를 제대로 읽게 하고 성취기준에 맞는 활동을 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아서다.

'**남매' 류의 가만 둬도 너덜너덜해지는 만화들은 다 빼고, 그래픽노블들과 남동윤 작가님 만화들을 주로 담았다. 그러다 이 만화를 발견했다. 수많은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린 소복이 작가님의 만화네? 나온지도 꽤 됐고... 그런데 어린이용은 아니구나. '사계절 만화가 열전' 시리즈의 한 권이네. 시리즈를 검색해보니 옛날에 읽었던 책들도 있다. 최규석 작가님의 '울기엔 좀 애매한' 등등. 시리즈 중에선 소복이 작가님의 이 책이 그래도 전 연령 가능한 만화인 것 같다.

'소년의 마음'이라는 제목이 평이하면서도 특별하다. 이 소년은 불특정 누군가일 수도 있지만 바로 '그 아이'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읽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맨 뒤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모델은 바로 작가님의 남동생이었다. 아마도 그 남동생은 좋은 어른으로 잘 자랐을 것이다. 하지만 외로움과 서러움에 잠겨있던 시간들은 위태로웠지.... 누구나 이 위태로운 다리를 건너 '무사히' 어른의 세계에 도착한다. 어른의 세계 또한 위태로움 투성이라는 것이 함정이지만......

소년이 작은 상을 펴고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곳은 문이 두 개 있었다. 문이 두 개인 방? 이라고 생각하려다보니 이곳은 거실이었다. 방이 두개인 작은 집에서 소년의 방은 없다. 방 하나는 부모님이, 하나는 누나들이 쓴다. 부모님은 늘 싸우고, 누나들은 자기들끼리 논다. 소년은 자기만의(?) 이 자리에서 계속 그림을 그린다. 부모님이 싸울땐 소를 그리고, 죽음이 두려워질 땐 말을 그리고, 깜깜한 밤이 무서우면 새를 그리고.... 그 동물들은 방을 가득 채웠다가도 어느순간 빠져나간다.

소년이 눈물을 후두두둑 떨어뜨리며
".....엄....마,
어차피 다 죽는데....
나를....
왜 낳았어?"
라고 묻는 장면에서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화가 난 채로 폭풍 집안일을 하던 엄마의 화를 더 돋구었을 뿐이었다. 이 부모는 싸우지만 특별히 나쁜 사람들 같진 않았다. 싸우는 평범한 사람들일 뿐....ㅠ 아이는 할머니를 그리워한다. 아이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드라마를 보던 할머니. 유일하게 따뜻한 품이던 할머니는 죽어서 땅에 묻혔다. 아이의 두려움의 근원인 것 같다.

하지만 두려움에서 시작된 아이의 상상이 결국 아이를 구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물고기를 잔뜩 그린 어느 밤 거실은 바다가 되었고, 자유롭게 헤엄쳐오는 할머니를 만난다. "난 할머니가 죽은 줄 알았어. 아니었구나~" 기뻐하는 아이에게 할머니는 말한다.
"할머니는 죽었지."
아이의 폭풍 눈물은 한참동안 이어진다. 할머니는 "나는 네 눈썹 사이에 있어. 내가 제일 귀여워했던 콧구멍 속에 있고...."로 시작되는 말로 아이를 위로한다. 아이가 그렸던 동물들이 나타나 한바탕 신나게 논 뒤 할머니는 다시 바다를 헤엄쳐 떠난다. 아이를 한참동안 꼭 안아주고.

바닷물이 다 빠져나간 집안에 아이 혼자 깨어 있다. 울다 잠든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고, 탱크 코골이를 하는 아빠의 코를 꽉 집어주고, 그리고 창문을 열어 작별의 손을 흔든다. 상상 속의 모든 것들에게....

가장 어린 막내의 마음 속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가족 누구도 그것을 알아주지 못한다. 그냥 그림을 잘 그리네. 신통하네. 그정도였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동안 아이는 아팠고 아픈 만큼 자랐던 것 같다.

그러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먹먹하다가도 가라앉는 이유다. 누구나 위태위태한 유년의 다리를 건너 어른이 된다. 하지만 그 다리가 갈수록 더 위태로워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아이들이 그 다리를 건널 수 있을까? 가다가 떨어져 버리거나 아예 발도 떼지 못하고 유년의 자리에 주저앉을 것 같아 불안해지는 내 마음. 이 마음이 괜한 기우였으면 좋겠다. '소년의 마음'은 이렇게 스스로 단단해질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다만, 때로 머리를 쓰다듬는 '할머니'의 손길은 있어야겠지.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어." 라는 확신을 주는 그 한 존재.

우리반에 지적장애에 가까운 한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가 고집을 피우면 아무도 못말리며, 역시 지적으로 약하신 아빠만을 무서워한다. 교실을 탈출하면 아빠한테 알려야 한다고 하자 아이는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했다.
"아빠한테 말하지 말라구요. 나는 사라져 버리고 싶다구요. 엉엉엉"

이 소년의 상상과 위로가 그 아이의 마음 속에도 일어날 수 있을까. 어차피 인생은 혼자야. 너무 서러워 마라. 상처엔 딱지가 앉고 혼자 아물기도 한단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라. 그래야만 되는데 그래야지 별수가 있겠니. 다만 너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옆에 있길 바랄 뿐.

인간은 태어나면 어찌어찌 살아내는 존재인 것 같기도 하고, 온 우주가 도와야만 겨우 버틸 수 있는 존재인 것 같기도 하다. 부디 전자였음 한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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