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주 보러 도서관에 상상문고 7
이승민 지음, 김성연 그림 / 노란상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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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에 우리반 아이들과 이승민 작가의 책을 한권 읽었는데 아이들이 모두 재미있어 했다. <나만 잘하는 게 없어>라는 책이었다. '절대 일기 아님'이라고 표지에 써있는 그 책은 숭민이의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고 문장이 톡톡 튀어 분량에 비해 아이들이 쉽게 빨리 읽었다.

같은 작가가 쓴 신작이 나와서 반갑게 제목을 봤더니 이 책은 더욱 통통 튈 것 같은 제목이었다. <송현주 보러 도서관에> 딱봐도 짝사랑에서 시작한 썸타는 이야기라는 감이 왔다. 애들이 얼마나 좋아할까.ㅋ

의외로 숭민이 시리즈에서 본 톡톡 튀는 문체는 간곳 없고 평이했다. 동규가 송현주를 보고 반해버리는 장면도 그냥 그랬다. 하긴 첫눈에 반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엄마의 성화에 연체된 책을 반납하러 간 동규는 송현주를 보고 반했고, 독서모임의 존재를 알게 되어 책 한 줄 안읽는 주제에 독서모임에 들었고, 다소 먼 동네의 학교에 다니던 송현주가 전학을 와서 마침 동규네 반으로 들어왔고, 오해가 있어 애를 태웠지만 결국 풀려 다시 친해졌고, 마지막에 고백을 하려 두근두근.... 그런 이야기다.

그러고보니 내가 한 권 두 권 모아가고 있는 '초딩 연애 도서 목록'에 추가할 책이다. 근데 연애 자체로만 본다면 가장 후순위에 놓일 것 같다. 사랑이 사랑이지 뭐 그게 더 좋고 덜 좋은게 있나? 물론 그렇지만 내 마음 더 끌리는 게 있는 법. 러브스토리 자체로는 별 매력이 없다. 하지만 이 책에도 차별화된 소재가 있다. 그건 바로 '독서모임'이다. 동규는 책 한 장 넘기기가 돌덩이보다 무거운 아이인데 짝사랑의 힘으로 그걸 극복해간다. 그 설정이 재미있고 과정도 흥미로웠다.

첫 책은 <샬롯의 거미줄>. 이 책을 읽으려 발버둥쳤지만 결국 못읽고 참석해서 부끄러움을 느낀 동규는 다음 책부터 대단한 각오로 읽어나가기 시작하는데, 그러다 문득 책 속에 빠져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그림자 숲의 비밀>, <마틸다>, <팀 탈러, 팔아버린 웃음>으로 이어지는 독서과정이 흥미진진했다. 독서모임을 하게 된다면 동기유발 겸 이 책을 먼저 읽어도 좋겠다. 아니, 젯밥에 관심을 유도하는 결과가 되려나?^^;;;;;

독서모임을 본격 다룬 책도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는 모임 내용 자체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는데 모임에서 나눈 대화들, 주인공 각각에게 다가온 느낌들이 생생하게 표현된 작품이라면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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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먹지? - 권여선 음식 산문집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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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식가나 식도락가는 아니지만 먹을 궁리하는 건 좋아한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기 싫어서 그걸 실행에 옮기진 못하고 대부분 궁리에 그치고 만다. 남들보다 대단히 바쁜 것도 아니면서 음식을 준비하는데 들이는 시간을 아까워한다. 언제부터인가 김치와 밑반찬을 사먹기 시작했는데, 어느날 밥상위에 밥과 국 빼고 모두 남의 반찬인걸 깨닫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한다^^)

이 책은 참 재미있고 아름다운 '먹을 궁리' 이야기다. 먹을 궁리에 부여한 의미들이 자연스럽고 공감간다. 그래서 잠자던 나의 먹을 궁리에도 군불을 때 준다. 과연 알흠다운 먹을 궁리는 게으름을 이길 것인가?^^

소설가인 작가가 쓴 이 책은 제목으로는 꼭 요리책 같은데 그건 아니고 '음식 산문집'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그리고 책을 한 장만 넘겨도 알 수 있다. 작가는 애주가이고 특히 소주를 좋아하며, 제목에는 '안주'가 생략되어 있다는 것을. 이부분 술을 안마시는 나와 많이 다르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여기 소개된 음식들은 모두 군침과 함께 연상된다. 어느 요리책의 색감 뛰어난 사진보다도 더.

작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로 사연있는, 혹은 좋아하는 음식(=안주)들을 소개한다. 어려서 입이 짧고 육식을 못했던 작가가 술을 배우며 순대 같은 막육식(?)에 빠져드는 이야기는 참 흥미롭다. <김밥은 착하다>라는 장은 나랑 가장 많이 겹쳤다. '엄마 김밥이 젤 맛있다'는 딸의 평을 액면 그대로 믿는 나는 딸이랑 "엄마 퇴직하면 김밥과 샌드위치만 파는 집을 차릴까? 가게 이름은 윤이 피크닉."(윤이는 딸이름 끝자ㅎㅎ)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주고받은 적도 있었다. 그때는 아이들이 어려서 공휴일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김밥 또는 샌드위치를 싸서 친구네 아이들과 함께 놀러다닐 때였다. 참치김밥, 치즈김밥, 묵은지김밥 등 종류도 다양하게. 하지만 아이들 다 커버린 지금은 그냥 먹자고 김밥 준비를 하기엔 휴식의 유혹이 너무 크다. 그래도 작가가 소개한 샐러드김밥을 내 메뉴에 추가해보고 싶어졌다.^^

여름의 음식으로 죽과 젓갈을 소개했는데, 난 아무리 아파도 굶었으면 굶었지 죽은 먹기 싫고, 젓갈도 즐기지 않지만 이 글을 보니 먹고 싶었다. 직접 젓갈을 담가 먹는 과정을 보니, '소중한 일에는 들이는 시간도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땡초를 때려넣는 입맛은 좀 따라가기 힘들겠다. 매운 음식도 좋아하긴 하는데 땡초까지는....^^;;;

가을의 단맛, 그 중심인 가을무 이야기에도 공감. 작가가 즐겨하는 갈치조림이 내 몇 안되는 자신있는 음식 중의 하나라서 더욱 공감. 겨울 국물에 대한 글도 공감. 나트륨 섭취의 주범이라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국물의 (특히 시원한 국물의) 맛.^^

마지막에 소개한 마른오징어튀김은 절레절레. 왜 그랬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나도 젊었을때 한번 해먹어본 적이 있는데 배탈도 보통 배탈이 아니어서 식은땀 흘리며 죽을 맛을 겪은 경험이 있다. 추측컨대 마른 오징어를 물에 담가 불리는 과정에서 세균이 번식했을거라 짐작한다. 그럴 개연성이 너무 높지 않을까? 이 음식은 말리고 싶다. 작가도 결과물에 비해 과정이 너무 험난하다며 그리 추천하진 않고 있다.ㅎㅎ

먹는 일은 일상이며, 즐거운 일이고, 대개는 누구와 함께 먹기 때문에 음식과 추억은 연결되기 마련이다. 누구든 자신의 음식 추억을 쓰면 '음식 산문집'이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그게 재밌으려면 이 작가와 같은 필력과 내공을 갖추어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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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순대의 막중한 임무 사계절 중학년문고 34
정연철 지음, 김유대 그림 / 사계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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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유쾌한 이야기 4편이 들어있는 단편집이다. 그런데 주인공들의 상황이 그리 유쾌할 만하지 못하다. 나라면 그렇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나는 너무 비관적인가? 긍정적 에너지가 부족한가?

표제작부터 보면, 엄재범네 할머니는 개미시장의 유명한 순대맛집 사장님이다. (그래서 손자의 별명이 엄순대) '앗싸! 학원을 그만두었다!' 라는 환호성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유인즉, 엄순대에게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할머니를 돌보는 일이었다. 할머니는 순대장사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치매에 걸렸기 때문이다.

행복은 환경에 있지 않고 마음가짐에 있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한다. 근데 막상 입장을 바꿔 나의 상황이라고 생각을 해보면.... 나는 이 작품같은 낙관주의를 절대 유지할 수가 없다. 치매노인이 집에 계시다니.... 그래서 며느리가 순대장사를 맡고(아빠는 돌아가시고 없음), 손자는 학원도 못가고 할머니를 지키고 있어야 된다.... 우어어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할머니는 방금 드신 밥을 안드셨다 우기고 전기밥솥의 밥을 맨손으로 퍼먹는 수준인데 말이다.

그래도 이 무한긍정 손자는 할머니와의 생활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나름의 노하우를 깨쳐간다. 그건 1인 다역이었다. 할머니의 기억에 따라 손자도 되었다가 아들도 되었다가... 이 책에도 물론 위기와 절정이 나오지만 결말은 훈훈하다. 치매할머니, 엄마, 손자의 단촐한 가족에서 고생과 에피소드는 있어도 그늘과 외로움은 없다. 그게 잘 상상이 안 가는 나는 지독한 현실주의자.

이 책은 4편 중 2편에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나온다. 첫번째 작품 [빛의 용사 구윤발]과 마지막 작품 [아주아주 낙천적인 정다운]이다. 다운이는 너무 착한 행동특성을 가져서 민폐가 되지 않고 학급 친구들과 선생님이 모두 좋아하는데 반해 구윤발은 아랫집 아주머니가 매일 올라와 모진 소리를 퍼부을 만큼 행동이 과격하다. 그래도 하나된 가족의 모습이 든든하다. 화자인 동생은 오빠 때문에 골머리를 앓으면서도 야무지게 오빠를 챙긴다. 그러다 집에 둘이 있게 된 어느날, 지진이 일어났고 동생을 보호하려는 오빠의 몸짓이 감동적이다. 네 가족이 모두 웃으며 이야기는 끝난다. 이 집의 상황이 현실이라면 그것 역시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랬으면 좋겠다. 나처럼 걱정 사서 하지 말고, 있는 것을 즐기고 지금의 유쾌함에 웃고.

다운이의 학급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힘들게 하는 아이는 다운이가 아니라 다운이를 괴롭히는 박인태다. 심술궂은데다 말안듣고 뻗대기까지. 급기야는 궁지에 몰리자 왜 자기만 미워하냐고, 왜 정다운만 좋아하냐고 소리치며 운다. 이때 "니 모습을 보라"고 거울을 들이대고 싶은 나의 '자기인식충동'(주제를 파악하게 해주고 싶은 충동)이 꿈틀거린다. "다운이가 친구들한테 어떻게 하는지 알지? 너는 어떻게 하더라? 비교해 볼까?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단다."
아 그런데 이 학급의 선생님은 내가 아니었다. 선생님은 인태의 마음을 몰라주어 미안하다며 사과하셨다. 인태는 마음이 물처럼 녹아 눈물을 철철 흘렸다. 인태가 사과하기도 전에 다운이가 다가가 인태를 안아주었고, 그것으로 용서는 끝났다. 책임있는 행동을 중요시하는 나와는 좀 맞지 않는 감동적인 방식인데.... 나의 방식이 맞다고도, 이 선생님의 방식이 맞으니 난 반성해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겠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판단이 중요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겠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작품 [빼못모 회장 황소라]다. 황소라는 중고딩으로 오해받을 정도로 덩치가 크다. 인기가 없다. 그룹짓기 좋아하는 아이들 사이에 끼지 못한다. 주도하는 아이에게 노골적으로 거부당하기도 한다.

근데 이 책 주인공들의 공통점. 낙천적이다. 소라 또한 상처받거나 징징거리지 않는다. 빼빼로데이에 선생님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대부분 좋아하는 아이한테 줄 빼빼로를 사왔다. 소라는 본인의 특기대로 왕빼빼로를 직접 만들어갔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소라도 그룹의 회원모집이란 걸 해보게 된다. 바로 '빼못모'(빼빼로 못 받은 사람들의 모임)

엄순대 가족부터 구윤발 가족, 황소라 가족, 정다운 가족의 낙천성은 긍정에너지인가 대책없는 긍정성인가. 뭐라도 상관없겠다. 부정성, 비관성 보다는 나으니까. 평범하지 않은 존재로 산다는 건 힘이 든다. 그런데 바로 그 존재가 그걸 낙천적으로 바라본다는데 얼마나 복된 일인가. 그저 격려를 보내줄 일이다. 나도 낙천성이 1도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조금 더 갖고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저 제목 봐라. '정말 마음먹기 나름일까'가 뭐니.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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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재와 키완 - 두 아이가 만난 괴물에 대한 기록, 제1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75
오하림 지음, 애슝 그림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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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며칠째 리뷰를 못 쓰고 있었다. 첫째는 내가 제대로 읽었는지 알 수 없어서이고 둘째는 내가 제일 난감해하는 시간여행 이야기가 나와서이다. 상상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시간여행 이야기만 나오면 그 모순성 때문에 몰입이 안 된다. 그렇긴하지만 이 책을 그냥 흘려보내긴 뭔가 아쉬웠다. 느낌이 너무 색다르다. 난생 처음 본 곳에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른 채 헤매고 다니는데 깨보니 꿈이었고 그 꿈이 너무 생생한 느낌?

'나'라는 화자는 '오랜 친구'에게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넣어둘 수가 없는 이야기라 '나'는 쓴다고 했다. 대신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들은 그대로가 아닌 이것저것 바꿔서 쓴다고 밝혔다. 그래서 이 책은 진실이 아니지만 어쩌면 진실이 아니라는 게 진실이 아니어서 진실일 수도 있다는....?? 들은 이야기를 각색해 쓰고 있으므로 '나'는 전지적 시점에서 순재와 키완, 그리고 필립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가끔 엉뚱하게 본문에서 "내가 말했다" 하는 식으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아, 한마디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책이다.

순재는 전학 온 키완과 친구가 되었다. 키완의 본래 이름은 백기완이다. 부모님을 잃은 기구한 사연과 함께 키완이 된 아이에게 순재와의 우정은 너무나 소중하다. 하지만 순재는 늘 그렇지는 않았다.

기묘하고 불편한 인물 필립. 이 아이는 왜 순재를 못마땅하게 주시하다가 "너는 어차피..." "너는 절대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어." "너는 말야, .....너는 .....다른 애들 다 되는 열 살도 될 수 없어!" 라는 섬뜩한 소릴 못참고 내뱉는 걸까? 이 친구의 정체가 궁금한데 나중에 알고보니 미래에서 시간을 거슬러 온 로봇이었다. 제작자는 80대의 로봇공학자 백기완 박사. 박사는 무슨 임무를 지워서 이 로봇에게 시간여행을 시킨 걸까? 로봇은 임무를 완수했을까?

보통 시간여행자는 과거 시점의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다. 흐름을 바꾸지 않는(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르려면 필립은 박사의 지시에 불복해야 한다. 그것이 박사를 위한 길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박사의 의도대로 이루어진다면? 으아아아아 그때부턴 나도 모른다.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시간여행이니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 난 사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지만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끝에서 두번째 장, 순재와 키완이 끌어안고 목놓아 우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순재는 왠지모를 불길함과 공포에 지쳐 있었고 키완은 어린 나이에 당한 엄청난 고난에 질려 눌려 있던 슬픔과 외로움이 그순간 고개를 들었다. 키완은 "순재야, 죽지 마아!" 하며 순재를 안았고 순재는 눈물이 터진 키완을 "울지 마, 울지 마...." 하며 안아주었다. 그렇게 두 아이는 서로에게 가장 깊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사실 이전까지 순재는 키완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박사가 준 임무를 띠고 온 필립이나 '나'가 키완의 고마움을 일깨워줘도 순재에게는 다가오지 않았다. "나중에 나를 구해주는 사람은 꼭꼭 아주 많이 좋아해야 하는 거"냐고 물으며 힘들어 한다.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나도 좀 그랬다. 그 말이 맞아서.

하지만 둘은 그렇게 하나가 되어 눈물을 흘렸고, 마지막장엔 작가의 의도로 짐작되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인류 문명의 발전을 위해 아홉 살짜리 아이 하나를 잃어야 한다면 아주 나쁘지 않은 조건이야. 당신은 그걸 생각하면서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해."
- 순재가 진정 두려워해야 했던 것은 눈에 보이는 사람도, 로봇도 아닌, 비정함 그 자체였다. 괴물은 우리 안에서 이를 갈며 때를 기다린다. 잡아 먹히기는 쉽고, 떨쳐 내기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아, 쓰고 보니 작가의 육성이 그대로 들어갔다는 느낌. 굉장히 강하다.)

그러고보니 한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기 위해 앞에서 말한 시간여행의 모든 장치를 끌어들인 작가의 스케일이 정말 크다. 시공간을 넘어 소중한 한 생명. 이걸 부정하는 순간 우리는 '괴물'이 된다.

이 책은 퍼즐을 맞추는 기분으로 읽게 된다. 두 번째 읽을 때면 아마 많은 조각들을 고쳐 놓아야 할 것이라 짐작한다. (뭐 꼭 두 번을 읽어야 한다는 얘긴 아니다. 한 번 읽은 느낌도 중요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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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2018-12-03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음~~ 역시 글은 아무나 쓰는게 아니네요~~~ 읽을 수록 또 읽고 싶은~~~
 
언니들의 세계사 - 역사를 만들고 미래를 이끈 50명의 여성 인물 이야기 지식곰곰 4
캐서린 핼리건 지음, 새라 월시 그림, 김현희 옮김 / 책읽는곰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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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story'라는 원제를 왜 '언니'들의 세계사라고 번역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여성울 '언니'라고 칭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하지만 제목은 좀 눈에 띌 필요도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50명의 여성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대단히 두꺼운 책인가? 했는데 100쪽이 조금 넘을 뿐이다. 대신에 판형이 매우 크다. 보통 동화책의 2배 이상일 것 같다. 이렇게 큰 지면의 펼친 페이지 두 쪽에 한 인물씩을 소개하고 있다. 사람의 일생을 다루자면 두꺼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텐데 2쪽이라니 읽을 것이 있겠나 싶겠지만 큰 판형 안에 요모조모 꽤 읽을 내용이 담겨 있다. 옮긴이는 "이 책에서는 한 인물의 기나긴 삶을 고작 두 페이지에 담아내야 하기에, 삶의 모든 부분들을 깊이 다루지는 못했답니다." 라고 전제했다. 인물에 대한 평가가 시대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짚어주었다. 하지만 이 50인 중에 모르는 인물도 꽤 많았던 내게는 간단히 소개하는 이 책으로도 꽤 많은 걸 알게 되었다.

지금도 여성들은 많은 부분에서 차별받는다고 느끼고 있지만 실제로 여성이 자유롭게 교육을 받고, 원하는 일을 하고, 참정권을 가진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았다. 그런 시대를 살아오며 자신의 뜻을 펼치고 세상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여성들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런 이들이 오늘날 여성들이 딛고 설 땅을 단단히 다져 준 것이리라.

여러 분야의 인물들 중 더 관심이 간 이들은 예술가들이었다. 프리다 칼로처럼 육신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인생은 존경스러웠고, 피터 래빗의 비어트릭스 포터나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 등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평생 발휘하며 살았던 인물들은 부럽기도 했다. 영화 <히든 피겨스>를 보고 "와, 수학도 아름답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 실제 주인공인 캐서린 존슨도 여기 나왔다. 그외 큰 족적을 남긴 중요한 여성 학자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펼칠 수 있었던 여성들은 비록 맞서야 할 어려움이 있었어도 행복한 삶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그러한 시도 자체가 생명의 위협이 되는 상황에 처한 이들도 있다. 탈레반 치하에서의 여성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여성은 아주 어린 아가씨였는데 출생연도를 보니 우리 아들 나이다. 말랄라 유사프자이라는 이 여성은 여성의 교육을 금지하는 탈레반 정권에 맞서 교육활동을 계속하다 십대의 나이에 총격을 받고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역대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기도 했고. "학생 한 명과 교사 한 명, 책 한 권, 연필 한 자루만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그녀의 말이 크게 다가온다.

그외 <사라 버스를 타다>의 주인공 로자 파크스도 나오고 여성 참정권을 위해 싸운 에멀린 팽크허스트도 나오고 가장 마지막에 안네 프랑크가 나온다. 안네가 15세에 나치의 손에 목숨을 잃었으니 이 책의 인물 중 최연소인 셈이다. "그러나 희망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 희망은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 우리를 다시 강인하게 만들어준다." 안네의 일기 속의 이 구절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세상은 계속 변화해 왔고 인간의, 그리고 여성의 권리는 꾸준히 신장되어 왔지만 아직도 나아가야 할 길이 남았다. 싸움의 방향은 여러가지다. 그 중에는 나 자신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찰 없는 싸움은 오히려 퇴보를 가져오기도 하기 때문에.

이 책은 오래 두고 조금씩 보면 좋겠다. 근데 판형이 하도 커서 학급문고에 똑바로 꽂을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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