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아프다 - 교사 위기의 원인과 해법
송원재 지음 / 살림터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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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두루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리뷰를 딱 한 문장으로 하라면 이렇게 하겠다. 이런저런 교육도서들을 읽어보았는데, 교사들끼리 마음을 터놓고 공감할 책도 있고, 수업에 도움과 힌트를 줄 실용적 책도 있고, 학부모에게 권하고 싶은 책도 있다. 이 책은 각계각층 모두가 읽었으면 좋겠다. 교사, 학부모, 정치인, 모든 시민들.

송원재 선생님과 직접 만나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맘대로 지인의 범주에 넣었다.페친인데다 가까운 사람들의 지인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일단 친인척이 전교조 해직교사이던 시절, 같은 지회에서 활동하던 선배님이라는 인연. 또하나는 절친의 은사님이라는 인연이다. 송선생님은 얼마전 퇴임하셨고 나의 퇴임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는데 은사님? 중등교사라서 그게 가능하구나. 어느날 내 페북글에 선생님이 댓글 다신걸 보고 친구가 놀라서 전화를 했다.
"너 송원재 선생님이랑 아는 사이야??"
얘길 들어보니 친구 고딩때 사회선생님이셨는데, 수업이 좋아서 친구가 무척 존경했고 선생님이 맡으신 동아리에도 들었다는 것이다. 우린 어렸고 선생님은 젊었던 시절, 참 오래된 이야기다.^^

이후 선생님의 교직인생은 가시밭길 그자체였다. 한국 교육현대사의 질고를 모두 체험하신 분이라 하겠다. 하지만 내가 이분의 견해를 신뢰하고 글과 저서를 챙겨읽는 건 단지 고생을 하셔서만은 아니다. 고착된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상황에 따른 판단을 하시는 균형감각과 용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논리는 '내편 논리' 이기가 쉽다. 나도 툭하면 그러고 안그런 사람을 만나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논리에서 벗어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게다가 선생님은 약자와 후배들의 눈물에 귀기울여 주시고 진심으로 함께 아파하고 못된 자들의 입방아와도 싸워주셨다. 작년여름 그 뜨거운 광화문과 여의도의 아스팔트에서 함께있음을 느낄 때, 선생님의 존재가 정말 감사했었다. 나라면 '아 퇴직했는데 내가 왜? 이젠 알 바 아닌데 내인생이나 즐기자.' 할 텐데 말이다. 그 함께함의 결정판이 이 책이다. 이 책을 쓰느라 애쓰신 시간들이 그려지며 감사하다. 우리 공교육에 대해 이만큼 고민하는 사람 얼마나 있을까? 현직에 있는 나도 못한다. 삶아진 개구리처럼 분노할 줄 모르는 이들도 있고, 분노만 했지 방향을 모르는 이들도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시야가 좁아서 눈앞의 것밖에 안보이기 때문에... 이 책은 그런 이들의 눈을 넓게 틔워줄 것이다.

이 책의 출발은 2023 7월의 그 아픈 사건과, 거기에서 촉발된 검은 점들의 유례없는 집회였다. 거기서 우리는 확인했다.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누군가 떠밀고자 마음만 먹으면 나를 보호해줄 장치는 어디에도 없는 낭떠러지 끝에 내가 서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터무니없이 휘두를 수 있는 칼자루를 제한하고 교권을 보호할 수 있는 입법을 해달라고 외쳤다. 매 시간이 추모였고 매시간이 절규였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문제인식을 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이 책이 그 길에 길잡이 역할을 하게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1부-거리로 나온 교사들]은 문제상황에 대한 서술이다. 학교는 각종 횡포에 손쓸 방법이 없이 무력해졌다. 무법자들의 천국이 됐고 그것에 맞서려 했다가 만신창이가 된 교사들의 죽음이 잇따랐다. 자살율이나 정신건강 통계는 놀랄만한 위기상황을 경고한다. 일본의 사례에서 반면교사를 삼아야하는데 전철을 밟아가고만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2부-교사위기의 원인을 찾아서]는 오랫동안 넓은 시야로 교육의 숲을 보아온 저자의 분석이 돋보이는 장이다. 5.31 교육개혁이 가져온 '교육시장화 정책'을 첫번째로 꼽는다. 김영삼 정부부터 시작하여 진보, 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한결같이 유지되어온 이 정책에는 매우 위험한 요소가 깃들어 있었으나 그런 지적에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교사들의 얘기는 볼멘소리 취급하며 문대버리면 그만이었고 교사때리기 판만 슬쩍 깔아두면 알아서 신나는 스포츠가 펼쳐졌으니 그보다 쉬운 일도 없었다. 집단적 가스라이팅이었다고 할까. 나도 여기 오랫동안 당했다. 되돌아보면 나는 최선을 다해왔고 완벽한 교사는 아니라도 자학할 만큼 부족한 교사는 아니었는데도 늘 나의 부족함을 탓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였더라면 더 좋은 교육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와서 그런 생각을 한다.ㅠ

교육시장화는 교육당사자 간 권리와 책임의 불균형을 가져왔다. '소비자'가 된 학부모와 학생에겐 권리만 강조되고 의무는 묻혔다. 여기에 불을 붙인 건 신중하지 못한 학생인권운동이었다. 교육을 방해하는 행위들까지 인권이라는 미명으로 정당화되었다. 교사에겐 권리는 증발되고 의무와 책임만이 어깨를 짓눌렀다. 학생인권은 중요하다. 하지만 현명하게 펼쳐갔어야 했다. 도취된 이들은 그늘을 보지 못했다. "권리 못지 않게 의무를 가르쳐야 한다. 자신이 행사할 권리 못지않게 내가 침해하면 안되는 남의 권리를 중요하게 가르쳐야 한다." 는 나의 글에 "아이들은 존중받은 경험이 있으면 존중하게 됩니다. 선생님이 먼저 아이들의 인권을 존중해 보세요." 라는 댓글이 달렸다. 그런 원론을 누가 모르나? 깊지 못한 사상으로 학교를 몰아치는 동안 그 허점을 파고드는 인간의 본성이 활개를 치는데는 그리 많은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거기에 아동학대 처벌법은 미친 칼춤을 추어 교육을 마비시키고 교사를 사지로 내몰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입법의 본래 취지보다는 부작용과 억울한 피해자를 훨씬 많이 양산했다. 특히 정서학대 조항은 귀에걸면 귀걸이법이라 할 만했다. 교사는 그저 학부모의 은혜에 기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됐다. 내가 바로 그렇다. 상식적인 분들만 만나왔기에 지금껏 무사히 온 것이다. 그러나 인간사회에 일정비율 있기 마련인 몰상식자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게 올해일지 내년일지 알 수 없다. 만성적 불안이 교직을 뒤덮고 있다.

저자의 연구와 혜안이 돋보이는 장, 이 책의 차별성을 확실히 보여주는 장은 3부와 4부다. [3부-교사위기의 해법]에서 저자는 '교육의 공공성' 회복을 역설한다. 2장에서 다룬 교육시장화의 폐혜로 우리 공교육의 공공성은 심하게 훼손되었고 공교육의 의미와 기본원칙마저도 혼란스럽게 되었다. 이 부분 사회적 설득과 인식 공유가 필요하다.
"공교육은 민주공화국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공적권리이지, 특정집단이 자기 욕망과 이익을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다." (158쪽)

이를 위해 권리만 부각된 현재의 구도에서 의무와 책임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저자는 뉴욕시 학생장전의 내용을 소개해 주셨는데, 여기에도 책임을 중시한 것이 명확한데 왜 우리는 권리 부분만을 참고했는지 의문이고 유감이다. 학부모의 의무도 마찬가지다. 학부모들 중엔 교사를 '국가교육과정을 실행하는 공적인 업무자'로 생각하지 않고 '내가 부리는 고용인'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이 주장하는 '세금론'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 대꾸하기도 치사할 지경이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을 때 대노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종한테 대노하는 양반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자식이 물의를 일으키면 학교에서 뭘 가르쳤냐고 화를 낸다. 특수교육 또는 심리치료가 시급한 학생이 있어도 부모가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 학급 구성원만 피를 본다. (교사는 물론 골병) 학부모는 물론 학교 운영에 의견도 내고 참여도 할 수 있지만 그에 앞서 학생의 보호자로서의 의무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저자는 무분별한 민원에 교사개인이 먹잇감으로 던져지지 않도록 민원처리 시스템을 제안하고 있는데, 좋은 논의가 이어져 실효를 봤으면 한다.

"교사들은 가르치고 싶다.
학생들은 배우고 싶다."
지난 여름 가장 많이 외쳤던 구호다. 가르치기 위한 권리, 우리는 그것을 '교권'이라 생각했고, 보장해달라 주장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지금까지 교권의 개념조차도 명확히 서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장에서 저자는 외국의 다양한 교권보호제도들을 소개했다. 외국의 것을 무조건 따라할 순 없지만 참고하여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는 서둘러야 한다.

[4부-교권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 에서는 현재까지 되어온 상황을 알기 쉽게 잘 정리해주었다. 이전보다는 개선의 움직임이 없지는 않구나도 알수 있지만 아직도 멀었구나도 알 수 있다. 일단 0보다는 1이 훨씬 나은 것이니 다음 발걸음을 재촉하며 지켜보아야 하겠다.
또한 교권보호를 위한 정책 제안도 해놓았다. 소제목을 보면 아동학대 신고 오남용을 막아야 한다, 아동학대처벌법 이렇게 바꿔야 한다, 학교폭력 개념부터 바꾸자, 학교가 할 일과 경찰이 할 일을 구분하자 등등 조금이라도 학교의 현실을 아는 이들은 바로 느낌이 오는 내용들이다. 이 논의가 확산되어 납득되게 정립되고 상식적인 교육환경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저자는 맺는 말에서도 책 전체를 관통하는 통찰을 보여주었다.
"근본적 해법은 교육시장화 정책이 뿌려놓은 잘못된 교육 관념과 편협한 권리의식에서 벗어나, 교육활동의 주체인 교사, 학습의 주체인 학생, 교육의 협력자인 학부모가 자신의 권리와 책임을 자각하고 학교교육의 성공을 위해 서로를 존중하는 가운데 협력할 방법을 다시 찾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교육의 대원칙에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다." (282쪽)
이어 예시하신 다섯 개의 대원칙에 하나같이 크게 공감했다. 이 내용을 널리 공유하여 확산시키고 싶은 마음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연대를 당부했다. 그것은 선한 연대다. 여기에서 빠질 수 없는 멤버는 물론 교사다. 교사들의 지치고 괴롭고 억울한 마음을 알지만 (당연히. 나도 교사이니) 그렇다고 외면하고 흐린눈 하고 냉소만 하면 달라질 것은 없다. 퇴직교사도 이렇게 애를 쓰시는데! (물론 나는 퇴직하면 학교 쪽은 돌아보지도 않을꺼야;;;) 아직 우리 인생의 남은 날이 학교에 있을 거라면, 되어가는 일을 외면해선 안된다. 지난 여름의 그 거대한 물결이 체념과 냉소로 사그러들지 않고 반드시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길 바라며, 고생해서 책을 써주신 은사님 감사합니다. (내맘대로, 친구의 은사님은 나의 은사님ㅋ)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이 책을 진심으로 읽어보시길 부탁드리고 싶다. 추천하기에 조금도 주저되지 않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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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란 무엇일까? 나를 키우는 질문 1
호소카와 텐텐 지음, 황진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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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요시타케 신스케 작품들에서 맛보았던 느낌도 살짝 나고, 영화 인사이드 아웃도 연상되었다. 연상이 되었다고 해서 비슷한 것은 아니고 이 책만의 느낌이 분명히 있다. 그림은 단순하고 간결하고 귀여운데, 내용은 조곤조곤 차분하고 깊다. 나는 이런 느낌을 좋아한다.

제목 그대로다. 마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아이들 눈높이에서 설명해주는 책이다. 마음이 무엇인지 나이 든 나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른이라고 아이들에게 뭐든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런 책이 얼마나 고맙냐고! 눈높이 설명. 이것도 고민과 수고 끝에 나오는 것이니.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 그러나 생애 초기에는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말을 배우고 말로 마음을 전하면서, 나만 아는 비밀, 즉 나만의 세계가 생긴다. “그때 마음이 태어났어.”라고 이 책은 표현한다. 그리고 마음의 속성은 ‘움직인다’는 것이다. 가장 크게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움직인다. 거기서 파생되는 것을 ‘기분’이라고 이 책은 설명한다.

기분은 ‘감정’의 다른 말일 것이다. 여러 감정 책에서 보았던 내용이 나온다. 여기선 가장 크게 기쁜 기분과 슬픈 기분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슬픈 기분도 꼭 필요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걸 ‘알아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조언도.

다음은 기분의 표현이다. 그 도구는 ‘말’이다. 많은 책들이 이렇게 감정에서 언어로 넘어가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흐름이기 때문인 것 같다. 언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표현과 소통일 테니까. 그러면서 포근한 담요도, 무시무시한 칼도 될 수 있는 말의 힘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일단 이 세 마디만 할 수 있어도 괜찮다며 제시해 준 말들에 동의한다. 도와줘. 고마워. 미안해.

다음의 비유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기억서랍’이라는 비유다. 이 부분이 바로 인사이드 아웃을 연상했던 대목이다. 기억서랍은 마음에서 생겨나는데 서랍에는 내가 경험한 일들이 담겨있다고 설명한다. 나의 기억이 나의 감정과 행동패턴을 결정하는 것이고, 기억서랍이 늘어나고 안의 내용물이 추가, 수정되면서 나의 대응도 점점 정교해지는 것이다. 매우 탁월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어른의 입장에서 자녀나 아이들의 기억서랍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상당히 두렵고 떨리는 일일 수도 있다. 생애 초기일수록 부모가 제공해주는 기억이 서랍의 대부분을 차지할 테니까. 이후의 기억서랍도 믿을만한 어른들이 옆에 있다면 더 깨끗하고 아름답게 저장할 가능성이 높아질 테니까. 열어보기 싫어 방치한 서랍 하나가 그 사람의 인생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를 우리는 많이 보기도 했으니까.

다행인 건, 마음이 어려운 과제인 건 누구나 마찬가지라는 사실 아닐까. 어른들도 힘든 이 작업이 아이들에게 쉬울 리는 없지만 그래도 알려줘야 한다. 이왕이면 이렇게 예쁘고 다정한 책으로 알려주면 더욱 좋겠지.

“마음이 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니까.”
마지막 문장이다. 우리 아이들이 부디 건강한 마음을 잘 가꾸어 자신의 세계를 행복으로 채워 나가기를. 인간이 늘 행복할 수야 없겠지만 적어도 마음에 짓눌려 신음하지는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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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선생님 북멘토 그림책 20
김은비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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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때 아들은 읽은 책을 계속 읽어달라고 했었다. 어린 아이들은 보통 그렇다고 한다. 이 책이 딱 그런 책일 것 같다. 다시 보면서도 또 웃는 책.

산으로 소풍나온 아이들이 곰을 선생님으로 오해해 우루루 쫓아다니고, 곰은 난감해하며 어떡하든 도망가려 하는 상황이 웃음을 자아낸다. 모두가 착하고 무해한 이 이야기가 너무 사랑스럽다.

앞면지에 있는 입산금지 팻말부터 좋았다. 물론 '입산금지'라고 써있지 않고 이렇게 써있었다.
"산에 들어오지 마시오.
- 사람들이 산에 많이 왔다갔다 하면
나무와 동물들도 피곤해서 쉬어야 함."

자연과 인간은 상극인 건가, 인간의 발길이 닿는 곳은 필연 자연이 훼손된다. 이렇게 닫아두는 것은 인간이 그나마 주제파악을 하는 것이라 하겠다. 대체로는 이게 안돼서 문제지.

그렇게 2년간 산은 쉬었고, 오늘은 2년만에 산이 열리는 날이다. 연두와 친구들은 선생님과 산에 왔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동물들은 쉬는날이 끝났다는 걸 몰랐다는 점이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척척곰은 화장실을 좋아했다. 오늘도 사용중. 하지만 사람들이 오는 줄 알았다면 절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 갑자기 설사가 난 선생님이 옆칸에 들어오신 것! 당황한 척척곰은 선생님이 벗어놓은 조끼와 모자를 쓰고 사람인 척 달아나려 했다. 이때부터다.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사실 추격전은 곰의 입장인 거고, 아이들은 선생님을 따라가는 것뿐이다. 곰을 따라 달리던 아이들은 숲의 놀이를 한껏 즐기게 된다.

그 추격전은 곰과 선생님이 맞닥뜨리며 끝이 난다.
"곰 살려!"
"사람 살려!"
서로 놀라는 곰과 선생님. 착하게도 곰은 선생님 조끼와 모자를 벗어두고 달아났어! 그리고 혼이 빠진 선생님을 아이들이 챙기며 내려온다.

곰은 무사히 산속으로 돌아갔고, 선생님인 줄만 알았던 아이들의 추억 속엔 함께했던 즐거운 시간만 남겠지. 앗 그런데, 곰이 한군데 자취를 남겨버렸구나. 마지막장을 보면.^^

우리 서로 이렇게 무해한 존재일 수가 있다면 이 책처럼 즐겁고 평화로울 수 있을텐데. 본의아니게 '오늘만 선생님'이 된 척척곰의 난감한 표정과 아이들의 천진한 표정, 진짜 선생님의 당황한 표정 모두가 친근하고 재밌었던 책. 학급문고와 가정 소장용으로 모두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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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교사의 사회 - 영화, 교사에게 말을 걸다
차승민 지음 / 케렌시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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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민 선생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영화수업이다. 첫 저서도 영화수업이었고 초등교사들의 커뮤니티 사이트에 혜성같이 등장한 것도 영화수업 관련이었다. 그게 벌써 10년이 넘었으니 나처럼 오래된 교사가 아니면 모르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차쌤의 영역은 영화라는 매체에 갇혀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정확하고도 유연한 통찰력을 가졌고, 그 통찰력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잘 파악하며 지도법을 잘 찾아간다. 흔하고 단순한 표현을 쓰자면 '생활지도의 달인' 이랄까. 학생들의 내면에 대한 이해와 조언을 담은 <학생사용설명서>나 <열두살 나의 첫 사춘기> 등의 책들도 그래서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차쌤이 이번에는 교사와 교육에 대한 성찰을 책으로 펴냈다. 제목과 목차를 보고 놀랐다. 제목과 표지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바로 연상시킨다. 목차에서는 25편의 영화제목과 연결된 에세이 제목들을 볼 수 있다. 교육에 대한 고민과 성찰, 고백과 제언을 이렇게 영화와 연결지어 할 수 있다니, 차쌤 내공의 결정체인 책이라 할 만했다.

내 개인적인 한계는 영화에 취미가 적어서 본 영화가 거의 없다는 것인데, 읽다보니 큰 상관은 없어보였다. 오히려 글을 통해 보고싶은 영화가 생기는 거꾸로 효과가 있었다. 나는 본 영화 자체가 적기도 하지만 교육에 대한 영화는 더욱 잘 안 본다. 차쌤이 성찰의 텍스트로 삼은 영화들 중엔 교육이 전면에 드러난 영화도 있고 교육 소재가 전혀 아닌 영화도 있는데, 다양한 소재의 영화에서 길어올린 교육적 사색이 나로서는 놀랍기만 하다. 또 교육영화를 외면한 나의 성향에 회피하려는 태도가 숨어있음도 발견하게 되었다. 저자의 직면은 용기있다.

제목의 모티브가 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대한 글을 페북에서 읽고 크게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그 영화를 이해하든 아니든, 동의하든 아니든 공식처럼 되어 굳어진 가치를 삐딱하게 보긴 쉽지 않다. 그 가치가 보수적 가치에 대한 반작용에서 형성된 가치일 때 더더욱 그렇다. 나도 멋있는 포지션에 있고 싶고 비난받기 싫다. 하지만 교사의 역할은 매우 섬세하고 유동적이라 한가지 상황이 절대적일 수 없다. [키팅 선생님이 불편하다]라는 글은 그래서 용기있다.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너네는 왜 키팅 선생님이 아니냐고 가스라이팅 하는 이들이 바로 '페리의 아버지'라는 일갈은 후련하고도 슬프다. 이 글을 페북에서 봤을 때, 나는 짐작하지 못했지만 이 책의 작업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던 중이었구나.

이 책의 25편의 영화와 그에 따른 에세이는 한 편 한 편 토론이 가능할 정도로 이야깃거리가 많다. (저자는 언변도 좋으시니 북토크 하면 재미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리뷰에 각 편을 다 다룰 수 없어서 몇 편만 골라 이야기해 보겠다.

[학교가 망가지면 안전판이 사라진다-고독한 스승]
모건 프리먼이 교장으로 나온 오래된 영화다. 실화 기반이라고 한다. 총체적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손쓸 방법이 안 보이는 미국 공교육 어느 곳의 모습이다. 우리보다 훨씬 심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미국의 공교육이 겉으로 망가진 외상이 많이 보인다면, 우리의 공교육은 안에서부터 망가지고 있는 내상이 더 크다." 라고 평한다. 작년에 그 내상이 폭발하고 피가 철철 흘러 모두가 알게 되었음에도 달라진 것은 거의 없는 상태다. 영화에서 교장은 기본교육을 세우기 위해 극단처방까지 쓰며 강하게 밀어붙이지만 수많은 반발에 부딪치며 고전한다.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짐작만으로도 약간 벅찼던 장면은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울려퍼진 'Lean on me' 였다. 나 이 노래 무척 좋아하는데.... 그러고 보니 이것이 바로 영화의 원제다. ('고독한 스승'이라고 번역한 이유도 알 것 같긴 함) 이 노래가 한방에 분위기를 반전하는 건 영화에서나 가능하겠지만, 이 노래가 서사의 클라이막스에 연주되고 영화의 제목이 된 것에 난 감동받을 것 같다. 영화를 꼭 보고싶다.
"We all need somebody to lean on."
맞잖아. 아닌 사람 없잖아. 그게 이번엔 너고, 다음엔 나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상처주고, 마음의 문을 닫고, 마음의 감각을 모두 마비시켜야 겨우 생존할 수 있는 곳이 학교가 된다면.... 너무 슬픈 일이다. 이 비극은 이미 진행형이다.ㅠ

[가르침의 새로운 엔진을 얻기까지-선생 김봉두]
나는 이 영화 너무 싫어했다. TV에서 해줘도 안봤다.ㅎㅎ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차쌤이 하신 성찰에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네. 바로 이런 대목이다.
"아이의 성장은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은 순간에 나타난다. 이 순간 교사가 쓴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가 성장한 아이를 통해 교사에게 전달된다. 아이의 성장은 교사에게 새로운 연료가 된다. 더불어 아이에게서 새로운 가르침의 엔진을 얻는다." (91쪽)

교사라면 교직인생에 크고 작게 이런 장면들이 있을 것이다. 배터리가 꺼질 것 같던 순간에 나를 충전해 주었던 그 아이. (그 아이는 자신이 그 역할을 했다는 걸 꿈에도 모를 것) 그렇게 우리는 함께 나아간다. 이게 앞에서 말한 'Lean on me'의 한 장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갈수록 닫히는 걸 느낀다. 그게 진정한 위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신사 없이는 시민도 없다-코치 카터]
이 영화는 위기에 빠진 고등학교 농구부를 되살리기 위해 투입되었던 카터 코치의 이야기다. 카터는 선수들에게 '기본소양'을 가르치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 안해도 될 고생을 많이 하다가 결국은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저자는 '신사'와 '시민'을 논한다. 그리고 제목처럼 신사가 전제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얼핏 들으면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찬찬히 보면 너무나 맞는 이야기다.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신사의 자질을 갖추고 난 이후 비로소 저항권을 바르게 행사할 수 있다. 그러기에 신사교육을 거치지 않고 바람직한 민주시민 교육을 하는 것은 어렵다." (111쪽)

난 이 대목에서 나의 해묵은 의문 하나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교과전담으로 각 교실을 떠돌던 해의 이야기다. 인권친화를 표방하는 쌤(A)이 계셨고 다소 강압적이라는 평을 듣는 쌤(B)이 계셨다. A반에서는 수업을 할 수가 없었다. 교사에게 결정권이 없었다. 일방적인 지시에 분개했다. 도를 넘고 주제넘은 행동들이 판을 쳤다. B반의 수업은 차분하면서도 따뜻하고 활기있었다. 100을 준비하면 120을 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수업의 내용 뿐 아니라 마음까지 주고받는다고 느꼈다.

A반의 문제가 바로 이 장에서 차쌤이 지적한 그 문제다. 신사가 되지 못한 아이들에게 섣불리 저항권만 가르친 것이다. 아이들은 그것을 신나게 휘둘렀다. 요즘 B교사가 되기는 매우 어렵다. 내 신변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학교에 A를 요구하며 동시에 실력을 키우고 인성도 훌륭한 민주시민을 육성하라고 한다. 천원 주면서 31에서 아이스크림 큰 통으로 사고 300원 남겨오라는 요구보다 더 부당하다. 많은 교사들이 이 틈바구니에서 염증과 환멸을 느끼고 마음의 문을 닫은 것 같다. 사회 전반적인 고민이 필요한 일이다.

[가르침 속에 내재된 채찍질-위플래쉬]
이 영화의 서사를 대충 들었는데 영화는 안 봤다. 보기 싫었다. 플레처 같은 지도자(교사)에게 동의할 수 없다. 성과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위에서처럼 학생들의 기본소양을 엄격히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도, 이토록 비인간적으로 한계로 모는 것까지는 할 수 없다. 타고난 성품이기도 하고.
그런데 차쌤의 성찰을 읽어보니 이건 우리 교사 모두가 조심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고난 성품이 유약한 나조차도, 채찍질의 조절을 잘못하는 순간이 있을 수 있겠다는 깨달음. 서늘한 느낌이었다.
"가르침에 담긴 폭력성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을 통제하는 것이 가르치는 자의 의무다." (198쪽)
교단은 어찌보면 평균대나 외줄인지도 모른다. 늘 균형잡기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하는.

이 외에도 많지만 이정도에서 마무리를 써야겠다. '이 책은 네모다'를 공모한다면 나는 '동전물티슈'라고 응모해서 상을 받고 싶다.ㅋㅋ 그 특징은 '응축'이다. 200여 쪽 보통 두께의 책이지만 물을 부으면 쭉쭉 부풀어 오르는 압축티슈처럼 수많은 이슈와 키워드들이 들어있다. 많은 건설적 대화의 소재가 되어 꽃을 피우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초등교육에 차쌤처럼 외면과 내면 모두가(ㅎㅎ) 듬직한 존재가 계신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다. 많은 후배님들이 차쌤의 통찰을 기반으로 열정적으로 토론하고, 고민하고, 바꾸어나갔으면 좋겠다. 그러기 어려운 상황인 거 알지만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 난 열심히 응원하다 조용히 물러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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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스웩이 넘칠 거야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강경수 지음 / 우리학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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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을 떠나보내는 행복한 주말에 아주 골때리는 책을 읽었다.
송언 선생님 동화책 주인공의 표현을 빌자면 '기분이 아주 브라보'였다. 스트레스를 잠시 잊을 수 있는 어이없는 웃김.ㅎㅎ

근데 이 골때리는 책은 많은 사람들을 품어준다.
방황하는 청소년,
걔네들을 보고 한숨짓고 잔소리하고 실랑이하는 평범한 부모,
이 넓은 세상에서 내 자리 하나 잡지 못해 젊은 날을 다 꼬라박고 있는 취업준비생,
이렇듯 모자란듯 평범한 모든 사람들, 단 못되고 악독하지 않은 사람들.

세상은 이런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도 그중의 한사람이면 된다. 그러면 대략 행복한 사회에서 살 수 있는 것인데, 하지만 이 사회는 그렇지가 않지. 불안감에 빠져 방향도 모른채 박차를 가하고, 머리좋은 누군가는 그 불안감을 조종하고 증폭시킨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달리기의 대열에서 약간 이탈한 듯한 고딩 두 명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솔직히 보수적인 내 관점에서 한심한 면이 없지는 않은 녀석들이다. 화자인 김준호는 영화감독을 꿈꾼다지만 걸맞는 노력은 하고 있지 않다. 영화 좀 봤다고 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공부하기 싫고 빈둥대고 싶은 핑계를 그렇게 대는 것이라는 엄마의 의심이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의 친구 달리(본명 이승철)는 힙합을 좋아하고 래퍼를 꿈꾼다지만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똥폼 하나는 잘 잡는다. 그가 추구하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스웩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겐 모르겠지만 뭔가 멋지다, 간지난다 이런 뜻인것 같다. 하지만 얘야, 스웩이 말로만 되니? 똥폼 잡는걸로 당연히 안되지. 공부는 아니라 해도 니 안에 가득찬 생각과 창의의 결과여야 고개를 끄덕여 줄만하지. 말끝마다 '유남생?'만 붙인다고 될 일이니? (난 이 말을 몰라서 검색해보고 알았다.ㅋㅋ)

'시덥잖은 청소년소설인가?' 하며 넘겨버릴 수도 있었던 이 책의 책장을 잔뜩 기대하며 넘긴 건 작가의 이력 때문이었다. 이분은 원래 그림책 작가가 아니셨나? 라가치상을 받은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물론이고, '꽃을 선물할게' 같은 책들도 너무 좋았는데. 그리고 '코드네임' 시리즈. 두권쯤까진 도서실에 수서하면서 읽었는데 이후로 몇권까지 나왔는지는 세보지 못했다. 이제 소설로 진출. 그림과 만화를 잘 그리는 분이 스토리 능력이 이렇게 뛰어나고 대사도 찰지고 웃기다는게 정말.... 몰빵 능력을 가진 분들은 참 인생이 재미나시겠다. 아니 힘드시려나?^^;;;

이 책은 그 두 청소년에서 시작되어 역시 그들로 끝나는데, 대부분의 서사가 그렇듯 뒤의 그들은 앞의 그들이 아니다. 그들은 같은 자리에 있고 겉모습은 변함이 없지만 속은 달라졌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게 스토리의 관건이다.

그런데, 길지도 않은 그 며칠의 서사가 넘나 버라이어티하고 스펙터클해.ㅎㅎ 준호는 엄마와의 거래 때문에 억지로 시작한 과외에서 첫사랑의 미인을 만났고, 동네에선 괴이한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너무나 아름다운 그녀는 동시에 너무나 미스터리한 인물이었고.... 그녀의 뒤를 쫓았던 준호와 말리는 믿을 수 없는 일에 휘말리게 되는데... 그녀는 소시오패스 범죄자인가, 그녀의 주장대로 외계인인가? 전자라면 스릴러고 후자라면 SF가 되겠다.

하룻밤 사이에 두 청소년은 범죄물과 SF 사이를 정신없이 오가는데, 결국 그들의 몸과 마음은 '신의'와 '도움'을 따라갔다. 그래, 그게 스웩이 넘치니까! 철없는 청소년들의 좌충우돌은 결국 지구에 좋은 일이었고 스스로의 정신도 차리게 되었으니 더할나위 없는 해피엔딩이라 하겠다.

주연은 아니지만 준호의 할아버지가 특별출연하시는데
"이게 진짜지."
가 그분의 주요 대사다.
과연 뭐가 진짜일까? 우리의 시간들은 진짜를 위한 일들로 채워지고 있는 걸까? 어리든 젊었든 늙었든, 새삼 돌아봐야 할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로, 이게 진짜지. 스웩이 넘치잖아, 유남생?
(이 말투를 내가 흉내내기는 영 어렵구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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