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순대의 막중한 임무 사계절 중학년문고 34
정연철 지음, 김유대 그림 / 사계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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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유쾌한 이야기 4편이 들어있는 단편집이다. 그런데 주인공들의 상황이 그리 유쾌할 만하지 못하다. 나라면 그렇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나는 너무 비관적인가? 긍정적 에너지가 부족한가?

표제작부터 보면, 엄재범네 할머니는 개미시장의 유명한 순대맛집 사장님이다. (그래서 손자의 별명이 엄순대) '앗싸! 학원을 그만두었다!' 라는 환호성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유인즉, 엄순대에게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할머니를 돌보는 일이었다. 할머니는 순대장사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치매에 걸렸기 때문이다.

행복은 환경에 있지 않고 마음가짐에 있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한다. 근데 막상 입장을 바꿔 나의 상황이라고 생각을 해보면.... 나는 이 작품같은 낙관주의를 절대 유지할 수가 없다. 치매노인이 집에 계시다니.... 그래서 며느리가 순대장사를 맡고(아빠는 돌아가시고 없음), 손자는 학원도 못가고 할머니를 지키고 있어야 된다.... 우어어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할머니는 방금 드신 밥을 안드셨다 우기고 전기밥솥의 밥을 맨손으로 퍼먹는 수준인데 말이다.

그래도 이 무한긍정 손자는 할머니와의 생활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나름의 노하우를 깨쳐간다. 그건 1인 다역이었다. 할머니의 기억에 따라 손자도 되었다가 아들도 되었다가... 이 책에도 물론 위기와 절정이 나오지만 결말은 훈훈하다. 치매할머니, 엄마, 손자의 단촐한 가족에서 고생과 에피소드는 있어도 그늘과 외로움은 없다. 그게 잘 상상이 안 가는 나는 지독한 현실주의자.

이 책은 4편 중 2편에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나온다. 첫번째 작품 [빛의 용사 구윤발]과 마지막 작품 [아주아주 낙천적인 정다운]이다. 다운이는 너무 착한 행동특성을 가져서 민폐가 되지 않고 학급 친구들과 선생님이 모두 좋아하는데 반해 구윤발은 아랫집 아주머니가 매일 올라와 모진 소리를 퍼부을 만큼 행동이 과격하다. 그래도 하나된 가족의 모습이 든든하다. 화자인 동생은 오빠 때문에 골머리를 앓으면서도 야무지게 오빠를 챙긴다. 그러다 집에 둘이 있게 된 어느날, 지진이 일어났고 동생을 보호하려는 오빠의 몸짓이 감동적이다. 네 가족이 모두 웃으며 이야기는 끝난다. 이 집의 상황이 현실이라면 그것 역시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랬으면 좋겠다. 나처럼 걱정 사서 하지 말고, 있는 것을 즐기고 지금의 유쾌함에 웃고.

다운이의 학급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힘들게 하는 아이는 다운이가 아니라 다운이를 괴롭히는 박인태다. 심술궂은데다 말안듣고 뻗대기까지. 급기야는 궁지에 몰리자 왜 자기만 미워하냐고, 왜 정다운만 좋아하냐고 소리치며 운다. 이때 "니 모습을 보라"고 거울을 들이대고 싶은 나의 '자기인식충동'(주제를 파악하게 해주고 싶은 충동)이 꿈틀거린다. "다운이가 친구들한테 어떻게 하는지 알지? 너는 어떻게 하더라? 비교해 볼까?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단다."
아 그런데 이 학급의 선생님은 내가 아니었다. 선생님은 인태의 마음을 몰라주어 미안하다며 사과하셨다. 인태는 마음이 물처럼 녹아 눈물을 철철 흘렸다. 인태가 사과하기도 전에 다운이가 다가가 인태를 안아주었고, 그것으로 용서는 끝났다. 책임있는 행동을 중요시하는 나와는 좀 맞지 않는 감동적인 방식인데.... 나의 방식이 맞다고도, 이 선생님의 방식이 맞으니 난 반성해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겠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판단이 중요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겠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작품 [빼못모 회장 황소라]다. 황소라는 중고딩으로 오해받을 정도로 덩치가 크다. 인기가 없다. 그룹짓기 좋아하는 아이들 사이에 끼지 못한다. 주도하는 아이에게 노골적으로 거부당하기도 한다.

근데 이 책 주인공들의 공통점. 낙천적이다. 소라 또한 상처받거나 징징거리지 않는다. 빼빼로데이에 선생님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대부분 좋아하는 아이한테 줄 빼빼로를 사왔다. 소라는 본인의 특기대로 왕빼빼로를 직접 만들어갔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소라도 그룹의 회원모집이란 걸 해보게 된다. 바로 '빼못모'(빼빼로 못 받은 사람들의 모임)

엄순대 가족부터 구윤발 가족, 황소라 가족, 정다운 가족의 낙천성은 긍정에너지인가 대책없는 긍정성인가. 뭐라도 상관없겠다. 부정성, 비관성 보다는 나으니까. 평범하지 않은 존재로 산다는 건 힘이 든다. 그런데 바로 그 존재가 그걸 낙천적으로 바라본다는데 얼마나 복된 일인가. 그저 격려를 보내줄 일이다. 나도 낙천성이 1도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조금 더 갖고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저 제목 봐라. '정말 마음먹기 나름일까'가 뭐니.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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