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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의 세계사 - 역사를 만들고 미래를 이끈 50명의 여성 인물 이야기 ㅣ 지식곰곰 4
캐서린 핼리건 지음, 새라 월시 그림, 김현희 옮김 / 책읽는곰 / 2018년 11월
평점 :
'Herstory'라는 원제를 왜 '언니'들의 세계사라고 번역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여성울 '언니'라고 칭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하지만 제목은 좀 눈에 띌 필요도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50명의 여성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대단히 두꺼운 책인가? 했는데 100쪽이 조금 넘을 뿐이다. 대신에 판형이 매우 크다. 보통 동화책의 2배 이상일 것 같다. 이렇게 큰 지면의 펼친 페이지 두 쪽에 한 인물씩을 소개하고 있다. 사람의 일생을 다루자면 두꺼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텐데 2쪽이라니 읽을 것이 있겠나 싶겠지만 큰 판형 안에 요모조모 꽤 읽을 내용이 담겨 있다. 옮긴이는 "이 책에서는 한 인물의 기나긴 삶을 고작 두 페이지에 담아내야 하기에, 삶의 모든 부분들을 깊이 다루지는 못했답니다." 라고 전제했다. 인물에 대한 평가가 시대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짚어주었다. 하지만 이 50인 중에 모르는 인물도 꽤 많았던 내게는 간단히 소개하는 이 책으로도 꽤 많은 걸 알게 되었다.
지금도 여성들은 많은 부분에서 차별받는다고 느끼고 있지만 실제로 여성이 자유롭게 교육을 받고, 원하는 일을 하고, 참정권을 가진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았다. 그런 시대를 살아오며 자신의 뜻을 펼치고 세상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여성들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런 이들이 오늘날 여성들이 딛고 설 땅을 단단히 다져 준 것이리라.
여러 분야의 인물들 중 더 관심이 간 이들은 예술가들이었다. 프리다 칼로처럼 육신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인생은 존경스러웠고, 피터 래빗의 비어트릭스 포터나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 등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평생 발휘하며 살았던 인물들은 부럽기도 했다. 영화 <히든 피겨스>를 보고 "와, 수학도 아름답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 실제 주인공인 캐서린 존슨도 여기 나왔다. 그외 큰 족적을 남긴 중요한 여성 학자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펼칠 수 있었던 여성들은 비록 맞서야 할 어려움이 있었어도 행복한 삶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그러한 시도 자체가 생명의 위협이 되는 상황에 처한 이들도 있다. 탈레반 치하에서의 여성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여성은 아주 어린 아가씨였는데 출생연도를 보니 우리 아들 나이다. 말랄라 유사프자이라는 이 여성은 여성의 교육을 금지하는 탈레반 정권에 맞서 교육활동을 계속하다 십대의 나이에 총격을 받고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역대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기도 했고. "학생 한 명과 교사 한 명, 책 한 권, 연필 한 자루만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그녀의 말이 크게 다가온다.
그외 <사라 버스를 타다>의 주인공 로자 파크스도 나오고 여성 참정권을 위해 싸운 에멀린 팽크허스트도 나오고 가장 마지막에 안네 프랑크가 나온다. 안네가 15세에 나치의 손에 목숨을 잃었으니 이 책의 인물 중 최연소인 셈이다. "그러나 희망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 희망은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 우리를 다시 강인하게 만들어준다." 안네의 일기 속의 이 구절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세상은 계속 변화해 왔고 인간의, 그리고 여성의 권리는 꾸준히 신장되어 왔지만 아직도 나아가야 할 길이 남았다. 싸움의 방향은 여러가지다. 그 중에는 나 자신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찰 없는 싸움은 오히려 퇴보를 가져오기도 하기 때문에.
이 책은 오래 두고 조금씩 보면 좋겠다. 근데 판형이 하도 커서 학급문고에 똑바로 꽂을 수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