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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베트남
심진규 지음 / 양철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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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싶었다. 왜 그랬냐고. 전쟁의 광기가 눈을 멀게 했던 것일까. 그들도 자상한 어머니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아들이었거나, 꼬물꼬물 귀여운 아기의 아버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전장도 아닌 마을에서 어머니 같은 노인들을, 자식 같은 아이들을 그렇게 무참히 학살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읽으니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전우는 죽어가고, 나 또한 언제 죽을지 모르고 적들(베트콩)은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작전과 명령에 의한 일이었다는 것을. (물론 그 작전과 명령 자체에 문제가 있고, 필요 이상의 잔인함을 발휘한 개인도 있었으리라 짐작되지만) 병사 개인으로서 어찌할 수는 없는 일일 수도 있었겠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으로 합리화할 수 없는 고통이 그곳에 있었으며 아직도 남아 있다.

"무서워서 그랬어.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니 무서웠어. 그래서 닥치는 대로 총을 쐈어. 죽을까 봐 무서웠고, 내가 사람에게 총을 쐈다는게 무서웠어."
할아버지는 손자 도현이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이책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가 평생을 미루어왔던 사죄를 하러 손자를 데리고 베트남으로 떠나는 이야기다.

도현이가 그 과거의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이 등장인물들의 회상일거라 짐작했는데 뜻밖에도 판타지였다. 주인공을 현장에 갖다 놓는 방법이기 때문에 또래의 독자가 현장을 이해하고 느끼기에는 가장 좋은 서사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어른인 나는 왠지 그 판타지 안으로 쉽게 들어가지지 않아서 약간 애를 먹었다. 공항 활주로에서, 쌀국수집에서 도현이 눈에만 띄는 티엔의 환영은 판타지로 이끄는 복선일 텐데도 왠지 뜬금없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어색함이 내게는 약간 옥의 티로 작용해서 몰입을 방해하긴 했지만, 전체 내용에 작용할 정도는 아니었다. 일단 이렇게 들추기 두려운 역사를 정면으로 다룬 첫 동화라는 점에서 큰 획을 그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도현이가 판타지의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50년 전 과거의 현장이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곳. 거기에서 만난 젊은시절의 할아버지는 다행히 좋은 분이었다. 전쟁고아가 된 티엔을 최대한 보살펴주려 애썼다. 하지만 그 또한 한국군의 만행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고 티엔을 끝까지 책임져 줄 수도 없었다. 평생 그 마음의 짐을 혼자서만 지고 살아왔던 할아버지는 이번 여행에서 티엔을 찾으려 한다. 한국군이던 자신을 삼촌이라 따르던 아이, 하지만 한국군에 의해 모든 것을 잃게 된 아이....

우여곡절끝에 만난 티엔은 할아버지와 다름없어보일 정도로 늙은 모습이었다. 그는 호아쓰(peace)꽃을 가꾸며 살고 있었다. 추모비(한국군에 대한 증오비) 주변에 평화를 상징하는 꽃을 심고 가꾸며 한국이 진정한 사과를 하리라 믿어왔다고 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할아버지는 이들에게 용서를 빌 방법을 찾아 애쓴다.

우리도 전쟁의 피해를 많이 겪은 나라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못하고 남아있다. 이분들이 온전한 사과를 받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누군가에게는 가혹한 가해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몇 년 전 마포구에 있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방문한 적 있는데 관람 동선 마지막에 베트남 여성 피해자들에 대한 실상과 사죄의 내용도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 책과 같은 생각에서 그런 전시 구성을 한 것이 아닐까. 마땅한 생각이라고 여겨진다. 좀 더 많은 이들이 그런 인식을 공유해야 될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를 지키고 전쟁을 막는 것이다. 인간의 악마성이 가장 극명하게 발휘되는 곳이 전쟁터일 것이다. 내가 사는 이 땅에, 그리고 지구상에 전쟁의 불씨를 없애는 일이라면 인간으로서 힘을 다해 동참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과거의 가해를 전쟁이어서 라는 이유로 얼버무려서도 안 될 것이다. 그 태도는 이 책의 할아버지가 잘 보여주시고 있다. 평상시에 손자보다도 철부지 같았던 할아버지였기에 더 실감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어보시기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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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신부 문지아이들 154
김태호 지음, 정현진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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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거나, 혹은 거리끼는 생명들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고 하면 "그럼 바퀴벌레도 소중하냐?", "파리도 소중하냐?" 이런 반박이 나오곤 하는데, 진짜 그런 얘기가 나왔다. 아하하하하하.... 풀벌레가 아닌 집곤충들을 극혐하는 나로서는 솔직히 동의하긴 어렵다. 근데 이야기는 작가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재밌다. 어쩜 이렇게 능청스럽게 진지하며, 심각한듯 우스울 수가!!^^

야무지고 사려깊은 파리신부와 인내심이 부족하고 뭔가 얼뗘 보이는 파리신랑은 함께 비행중이다. 먹이를 찾지 못해 고생을 겪던 중 천국과도 같은 곳에 당도했다.
"신이시여, 힘없고 불쌍한 우릴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하자마자 발견한 그곳은 사람의 집이었다. 그중에서도 한 남자아이의 방. 거기엔 이미 많은 파리들이 아무 걱정없이 기거하고 있었으며 남자아이를 '신'이라고 불렀다. 그 신의 캐릭터인즉, 간식을 아무데서나 먹고, 잘 흘리고, 아무데나 버리며, 치우지 않고, 잘 씻지도 않는다. 그곳에서 파리들은 서로 경쟁할 필요도 없이 느긋하게 만찬을 즐겼다. 그 만찬의 묘사가 정말이지 리얼하다. 우엑~~~~

그러나 그곳에 다리가 여섯개밖에 안남은 늙은 거미가 함께 살고 있었으니.... 그 거미는 이런 수수께끼 같은 노래를 불러주었다.
"빨간 나무는 시작이고
거꾸로 비는 끝이다.
거꾸로 비가 내리면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라."

그것은 일종의 재앙 예언 같은 것이었지만 누구도 미리 그 뜻을 알지 못했다. (내가 아무리 스포에 개의치 않고 리뷰를 쓴다지만 이런 것까지 말하진 말자^^;;) 동료들을 잃고 겨우 살아남은 파리신부는 그 '신'에게 할 수 있는 대로 복수를 하고 그곳을 떠나려 한다. '신'은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방을 치우기 시작하고.... 그러나 그곳을 떠나는 파리부부에게 더욱 화려한 천국이 펼쳐지는데 그곳은.....ㅋㅋㅋ

이 책을 읽으며 "작은 생명을 사랑하자"의 효과가 클까? "으헉, 방 좀 치우자." 의 효과가 클까?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난 후자라고 생각한다. 왜냐고? 내가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파리의 사랑을 받는 건 사양하겠어. 뽀뽀도 물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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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렙이 알렙에게 환상책방 9
최영희 지음, PJ.KIM 그림 / 해와나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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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내 취향이 아닌가보다. 200쪽도 안되는 책을 읽는데 한참 걸렸다. (피곤해서 그런 탓도 있음) SF를 많이 안읽어봐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새롭고도 상당히 잘 짜여진 작품인 것 같다. 지구의 멸망, 새로 정착한 세계, 그 세계의 모순과 음모, 해결 등 장대한 이야기가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 속에 잘 들어있고 작가의 메세지도 묵직하다.

여름방학 때 최영희 님의 <인간만 골라골라풀>을 읽고 오호~ 했더니 여러 분들이 우리나라 SF계의 주목받는 작가라고 추천해 주셔서 마침 신간이 나왔길래 읽어보았다. 모든 작품이 고뇌의 결과물로 나오겠지만 특히 SF는 과학적 지식도 갖추어야 하고 상상력도 뛰어나야 하며 허무맹랑하되 허무맹랑해선 안되는, 조건이 까다로운 장르라서 쓰기가 매우 어려울 것으로 짐작된다.^^ '작가의 말' 맨 끝에 고인이 된 스승님께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장하는 과학소설가가 될 테니 지켜봐 주세요." 라고 하신 걸 보니 앞으로도 작품이 계속 나오겠다. 일단 이번 작품에서 작가가 설정한 미래는 이렇다.

1. 지구멸망은 핵무기 : 지구는 핵무기로 인해 멸망했다. 생태계가 끝장났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생존할 가능성이 없어 지구를 탈출했다.

2. 다음 세계의 지배자는 인공지능 : 생존자들은 테라 행성에서 마마돔을 짓고 그 안에서 최대한 환경을 조절하며 살아간다. 그들의 지배자는 마마. 그는 인공지능이다.

3. 그들이 대를 잇는 방식은 인간복제 : 마마돔은 정확히 200명의 인구로 유지되며 100세를 채우면 그의 유전자를 배양한 새로운 인간으로 교체된다. 사고 등으로 일찍 사망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 마마는 이 세계를 존속할 모든 정보와 기술을 지닌 존재다. 그는 마마돔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그가 주는 정보 외엔 알 수 없다. 마마돔의 바깥 세계에 대하여 다른 사실을 눈치챈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고를 위장한 죽음에 이르고, 그 사실을 알게된 주인공들은 피할 수 없는 길을 떠난다.

주인공 소녀 이름 알렙이나 마마돔 밖의 생명체 이름 룩스 등의 작명에도 작가의 심사숙고가 느껴진다. 책 전체에 작가가 담고자 한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내용이 허술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인 것 같다.

"알렙과 알렙이 만나면 빛이 비치리라.
그날이 오면 세상은 지혜를 되찾으리라."
수수께끼 같은 약속의 노래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그 속에 작가는 지구를 지킬 지혜를 담아놓기도 했다.

이 책은 절대악에 맞서 악을 무찌르고 정의를 지키는 영웅적 이야기는 아니다. 극적인 대결은 없지만 뭔가 희망적인 가능성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끝난다. 지금의 지구에도 이만큼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인가? 작가의 다음 책도 꼭 읽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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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소연진아일 동안 황선미 선생님이 들려주는 관계 이야기
황선미 지음, 박진아 그림, 이보연 상담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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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한 문장 한 문장 차분히 꼼꼼히 세심하게 읽을 수가 없었다. 난 정신없이 책장을 넘겼다. 어떻게 되었는지 빨리 알아야 해서. 그렇게 읽고 났더니 다시 꼼꼼히 읽을 기운이 없다. 그래서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이 많을 것임을 인정한다.

이제 세계에 널리 알려진 작가가 된 황선미 님은 작명 센스도 남다르신 것 같다. '내가 김소연진아일 동안'. 화자는 진아다. 이진아. 그리고 그 반엔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느린 친구 김소연이 있었다. 보다못한 선생님은 그 반의 야무지고 딱부러진 이하나에게 도우미를 부탁하셨다. 하지만 하나는 그 성격대로 딱부러지게 거절한다. 그 역할은 말없고 소심한 진아에게로 온다. "역시 이진아, 착해. 잘할 거라고 믿어." 이렇게 상황은 이진아를 '김소연진아'로 몰고 갔다.

진아의 수락과 함께 선생님은 어쩌면 한시름 놓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끝이 아니다. 선생님의 시름이 진아의 시름으로 옮겨갔을 뿐인 것. 아니나다를까 진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무거운 임무에 힘겨워졌고,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스트레스는 터질 듯이 쌓여 갔다. 이젠 나 이진아가 아닌 '김소연진아'로 몰아붙여진 현실, 진아에게만 떠밀어놓고 모두다 나몰라하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현실에 억울함과 분노, 슬픔이 솟구쳐 어쩔 줄을 모르는 진아. 친구들의 태도는 어이가 없을 뿐이고 좋아했던 선생님의 태도는 원망스럽고, 내 감정을 쏟아놓았던 비밀일기장을 훔쳐본 새엄마에 대한 분노는 끓어오른다. 결정적으로, 이제 한몸이자 짐짝이 된 소연이에 대한 짜증은 소연이를 붙잡은 손에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아 그러면 안되는데.... 하지만 내 마음은 또 이해를 할 수밖에 없어 가슴이 아프다.

이 잘못된 구조를 짠 결정적인 책임은 선생님에게 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이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닌 평범한 교사로 보인다는 점이 나를 두렵게 했다. 선생님은 빠지기 쉬운 함정에 빠졌다. 하지만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 마음을 놓고 싶었겠지만 그래서는 안되었다. 늘 깨어 관찰해야 했지만 한동안 그 시기를 놓쳤다.

지난 여름 나는 일본 군마대학교 특수교육과의 임용재 교수님을 모시고 말씀을 듣는 공부모임에 나가봤었다. 그분 자신이 양팔이 없는 장애인이었다. 여러 말씀 중에 이제 특수교육과 일반교육의 경계는 의미없어질 것이라는 말씀, 학급 아이들에게 장애 친구를 다양성 중의 하나로 인식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 또 장애아동을 도울 때 이렇게 한 명에게 전담시키는 방법은 삼가야 한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 실수가 가끔 현장에서 벌어지곤 한다. 친한 선배님이 얘기해 주셨던 이전 학교에서의 가슴아픈 사연이 있다. 수학여행 중 숙소에서 장애아동에 대한 집단 괴롭힘 사건이 있어 학폭이 벌어졌다. 놀랍게도 가해학생 중의 주동자는 그 장애아동의 도우미를 오랫동안 해 온 아이였다. 선배님은 선생들이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탄식을 하셨다. 물론 하기 싫다는데 억지로 맡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계속된 일일 수도 있고, 진아처럼 착한아이 컴플렉스가 작용된 것일수도 있다. 그래도 교사는 그것까지 살펴야 한다.

다행히도 진아의 상황은 폭발되기 직전에 진정될 수 있었다. 짖궂은 말썽쟁이 친구가 이럴 때는 한 몫을 했다.(그러니 교실 안의 다양성은 정말 소중한 것) 진아의 심상찮은 변화를 알아채고 공으로 얼굴을 가격당하는 수모를 겪고서도 진아에게 화내기보다 그 상황을 선생님께 알려준 정우가 참 고맙다.
그리고 새엄마....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지 않는 딸의 심상치 않은 상황을 눈치채고 일기까지 읽어보고(이게 객관적으론 좋은 일 아니지만) 선생님과 이성적인 상담을 하신 걸 보면 참 현명한 사람이다. 친딸이 아니라서 이성적일 수 있다고?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람 나름일 뿐.
소연이 엄마는 좀 아쉽다. 엄마가 자식의 도우미를 이토록 알뜰히 이용하면 안된다. 최소한의 도움 외에는 사양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선물공세는 오히려 상대방을 모욕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자기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이다.
선생님. 이 모든 사단의 책임자라 할 수 있어서 보는 내내 원망스러웠지만 나 또한 이분보다 나은 점이 없는지라 안타깝기만 했다. 그래도 상황파악 후의 대처는 잘하셨다.

이제 짓누르는 슬픔에서 벗어난 진아의 발걸음에 내 마음도 가벼워진다. 진아는 이제 학급에서 훨씬 더 당당한 존재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선생님과의 관계도, 친구들과의 관계도 좀 더 건강해질 것 같고 특히 정우라는 녀석이 짖궂은 듯 든든한 응원군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소연이.... 소연이와의 관계는 끝난 게 아니다. 그동안은 종속자였지만 이젠 친구가 될 것이다. 과학실 유리 파편 사건 때 진아에게 달려와 안아주었던 소연이를 생각하면.... 그래, 어떤 상황에서도 학급 아이들은 '친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친구가 언니가 된다거나 엄마가 되어야 한다면 당연히 관계는 이상해지지 않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동화를 읽고 하는 말 치고는 이상할 지 모르겠지만 인력의 문제다. 소연이를 도와 줄 사람이 선생님과 친구들 외에도 있어야 하는 거다. 왜 선생님이 나쁜 사람이 되고 진아가 친구를 이끄는 손에 힘이 들어가 친구 몸에 멍자국을 남겨야 했을까? 요즘 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입에 올리자니 이야기는 한도끝도 없겠고, 정말 좋은 인력들을 현장에 주어야 한다.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도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고 그들 또한 그림같이 앉아 있는 존재들이 아니며, 아이들은 때로 제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든 존재들이다. 물론 이 안에도 돕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지나친 책임은 이와 같이 관계를 어그러뜨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문학+상담수업의 구성으로 되어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사족같다. 문학만으로 충분하다. 설명과 해설과 설교가 필요하다면 그건 문학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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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 고양이 창비아동문고 294
김중미 지음, 이윤엽 그림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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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삶이 반영된 이야기는 더 특별한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소외된 이들이 엮어가는 김중미 작가의 작품에서 늘 가슴이 들먹한 감동이 느껴지는 것은 작가의 삶 자리도 그 안 어디쯤 위치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널리 읽히던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나온 지도 거의 20년 가까이나 된다. 이번 작품에서 보니 작가는 강화도의 산골짜기에 살고 계시다고 한다. 그곳에서도 사라져가는 것들, 버림받는 것들, 그들끼리 이어져 버티는 모습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것이 또 이렇게 작품이 되어 나왔다. 얼마나 바탕이 단단한지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치만..... 단단한데 슬프다. 단단한데 외롭고, 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소리없이 눈물이 흘렀다.

개와 고양이가 등장하는 4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눈물은 아마 그래서 흘렀을 것이다. 그들이 화자인 이야기(안녕 백곰, 장군이가 간다)에선 인간에게 버림받는 아픔과 환경의 고통, 그 가운데서도 인간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인간이 화자인 작품(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에선 지극한 주인의 사랑을 뒤로 하고 병의 고통 속에 떠나는 하양이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눈물이 났다.

이 책에는 깜찍한 순종 개는 한 마리도 나오지 않는다. 파양되었다 다시 입양된 수민이에게 환대와 사랑의 느낌을 알게 해 준 하양이는 백구와 리트리버 잡종이고, 아빠 친구 집에 얹혀 사는 다문화 아이 미나의 유일한 친구 백곰은 시베리안 허스키와 백구 잡종이다. 혼자 사는 할머니의 혈육같은 장군이는 슈나우저 잡종이었다. 모두다 덩치가 컸다. 말티즈나 요크셔테리어 같이 작고 귀여운 아이들은 집안에서 귀염받으며 크기 좋지만 인간의 쓸모에 위배되는 짐승들은 제 명대로 살기 어려운 게 세상인 것이다. 나도 우리 개 푸들 잡종이 쬐끄만 개인 줄 알고 허락했다가 나의 예상치를 훌쩍 넘기며 무럭무럭 크는 통에 엄청 당황했었다. "이렇게 클 줄 알았으면 안 데려왔다." 는 나의 말에 딸은 개의 귀를 틀어막곤 했다.^^;;; 이제는 큰지 작은지 별 느낌 없이 함께 뒹굴며 살고 있지만....

첫 편 표제작 [꽃섬 고양이]에서 노랑이에게 마음을 주는 인물은 다리를 저는 최씨다. 세상 쓴 맛 다 본 최씨가 동사의 잠에 빠져들기 직전에 그를 깨운 노랑이. 세 개의 다리로 씩씩하게 살아가는 노랑이를 응원하고 돕는 최씨. 인간과 동물을 떠나서 서로의 처지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그들은 진정한 친구다.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에서 친부모에게 버려지고 파양까지 당한 수민이를 재입양한 아주머니는 알고보니 두 아들을 근육병으로 떠나보낸 아픔이 있는 사람이었다. 인생이 얼마나 힘들고 원망스러웠을까. 그들 부부에게 사랑은 고통과 동의어였을 것. 하지만 다가오는 사랑을 마다하지 않는다. 수민이를 품에 안았을 뿐 아니라 버려진 개들까지도. 심플라이프를 포기하고 성가심과 고단함 구질구질함 모두를 끌어안는 이런 이들을 나는 존경할 수밖에 없다. 이들에 비하면 나는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다. 나는 내 심간 편한게 첫째니까.ㅠ

[안녕, 백곰]에서 백곰은 끝내 떠나간 미나를 만나지 못했다. 미나가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지만 철거되는 그곳에서 백곰은 떠나야 했다. "살아 있어야 만나지." 그래, 미나는 언제고 다시 돌아올 것 같다. 그때까지 잘 버티고 있길.

[장군이가 간다]의 슈나우저 잡종 장군이의 모습은 내 눈에 선했다. 이윤엽 님의 판화는 거친듯 어찌 이리 생생한지. 할머니와 끌어안고 잠든 모습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한 모습도... 할머니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아들 며느리는 장군이를 섬에 버렸다. 떠돌던 장군이는 그곳에서 만난 해피와 함께 바다 위로 난 다리를 다시 건넌다. 선량한 인간 친구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은 채.....

인간은 어떻게보면 거기서 거기인 듯하면서도 어찌보면 천사부터 악마에 이르는 스펙트럼을 가진 존재인 것 같다. 약자와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가 어디쯤인지가 어느정도 보인다. 나는 어떤 모습일까. 중간쯤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친구가 되자. 함께 살자.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할 이 책의 메시지다.

(아이들과 이 책을 읽어도 참 좋겠다. 지금 우리반 4학년은 넘 애기들인데다 글씨 많은거 힘들어해서 좀 그렇고, 5,6학년과 읽으면 아주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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