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맨 동시야 놀자 20
최문현 외 지음, 강은옥 그림 / 비룡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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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시집을 꽤 자주 접하게 하는 편이다. 일단 내가 소장한 동시집이 50권 정도 되어 학급문고의 개방형 서가를 차지하고 있고, 도서실 시집도 가끔 추가해서 활용한다. 아이들은 거부감 없이 시집을 접한다. 시를 싫어하는 아이는 못본 것 같다.^^

 

국어 수업과 연관해서 시집을 읽힐 때는 포인트가 크게 두가지다. 공감 위주인가, 말놀이 중심인가. 그에 따라서 시집 구성이 조금 달라진다. 그 구분에 따른다면 이 책은 후자다. 그런데 어떤 시들에서는 전자도 함께 보인다. 시를 쓰는 어린이가 그것까지 고려하진 않았겠지만 대단하다!

 

나는 사실 전자를 선호한다. <말의 재미> 같은 특별한 단원이 아니면 후자로 감상을 시키는 일은 별로 없다. 교직 초반에 영향을 받은 이오덕 선생님의 책에서 이오덕 선생님이 경계하고 싫어하셨던 시들이 바로 마음이 담기지 않은 말장난 시, 경험 없이 기존의 관념으로만 쓴 시였다.

거울은 바보

나만 따라하니까.

뭐 이런 류의 시들.

 

그러다가, 교과서에 말놀이 단원이 들어오고, 아이들과 수업도 해보고 하니 이런 것도 마냥 배제하기보단 잘 지도하는 게 좋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언어 유희는 센스의 영역이기도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 쓰인다. 예를 들면 라임을 맞추는 랩 가사 같은 것. 잘하면 언어유희에서만 끝나지 않고 진심이 담기거나 신선한 창의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책에서도 그 가능성을 보여줬듯이.

 

어떤 시는 내 눈에 아직도 저 거울은 바보~’ 수준으로 보여서 조금 아쉬운 시도 있었다. 똑같이 지도해도 해마다 아이들의 시 수준이 다른데, 작년 아이들은 무난해서 내 속을 크게 썩인 적이 없는 데에 반해 반짝반짝한 시가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하나마나한 소리만 늘어놓은 시. 그걸 나는 아이들에게 무맛 시라고 우스개소리를 하며 같이 웃기도 했다. 그러다가 서툴러도 느낌 포인트가 살짝이라도 들어간 시가 나오면 바로 이런 거야!” 하고 읽어주며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이 시집에서도 내 관점에서는 무맛 시가 몇 편은 보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정말 살아있고 톡톡 튀거나, 재미있고 기발하거나, 창의적이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시들이 가득 들어있다. 이건 순전히 주관적인 거지만 내 맘에 든 시를 몇 편만 소개하면,

전기 뱀장어라는 시에서 어린이는 자기 형을 전기뱀장어에 비유했다. 건드리면 찌릿찌릿 전기가 올라 아무도 건드리지 않지만, 그래서 외로운 형을 표현한 시이다. 몇 년 전 우리반 아이가 썼던 방의 문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좀처럼 열리지 않는 형의 방문을 표현한 시였는데, 정말 감탄한 기억이 난다. 이 시는 언어유희성은 다른 시들에 비에 좀 약하지만 내 마음에는 들었다.

그때가 좋았어라는 시는 초등학교 때는 유치원때가 좋았어”, 중학교 때는 초등학생 때가 좋았어.” 하고 한단계 전 과거를 좋았다고 회상하는 인생을 담았는데, 마지막 행이 인생은 다 좋은 날이다.”로 긍정적 결론이 난 게 인상적이다. 나라면 좋은 날은 영원히 오지 않는가?”로 할 것 같은데.ㅎㅎ

생각 화석이라는 시도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화석에 대해 배우거나 책을 읽고 쓴 게 아닐까 싶은데, 오랜 시간 딱딱한 암석 속에 잠겨 있는 화석의 특징과 내 생각의 공통점을 찾아 비유한 것이 훌륭하다. ‘언젠가는 암석을 깨서 내가 내 생각을 되찾을 거예요라고 했는데, 이 어린이의 사정은 모르지만 이런 시어가 관념이 아닌 진짜로 진정성에서 나왔다면 정말 휼륭한 시다.


겨우 세 편밖에 얘길 못했는데, 다 쓰자면 끝이 없을 것 같아 여기까지만... 이 시집은 공모에 의해서 모인 다양한 어린이들의 시집이며 공모 주제가 말놀이 동시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분명하다. 어린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만하다. 기성 시인들이 쓴 동시집도 물론 좋지만 어떤 시들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 시들은 정말 딱 어린이들의 눈높이다. 어른이 맞추려고 노력한 눈높이와 저절로 맞춰진 눈높이는 아무래도 조금 다르다. 이 시집을 학급문고 시집코너에 추가하면 금방 인기를 끌게 될 것 같다. 올해는 반짝이는 시어들을 조금 더 캐어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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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런 성격일까? - 에니어그램이 알려주는 온전한 나로 사는 길
정유진.임소연.추교진 지음 / 정신세계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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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에니어그램에 관심이 있었다고 해야할지 아니라고 해야할지 애매하다. 관심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연구해볼 열심까지는 없었다. 15년 전쯤, 이 책의 저자인 정유진 선생님이 인도하시는 원데이 연수에 참여해본 것이 전부다. 그 이후로 두꺼운 책을 한 권 읽다가 만 것 같고, 자녀교육용? 얇은 책을 한 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가장 최근으로는 3년쯤 전에 에니어그램 소설을 발견하고 재밌겠다 싶어서 읽어봤다. 예상대로 재미는 있었고 오래된 기억들이 떠올랐지만 소설의 특성상 지식을 더욱 넓혀주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페북 등의 SNS에서 남들이 성격검사 결과를 공유하고 링크를 올려주면 에이 이게 뭘... 하면서도 대부분 해보는 것 같다. 나도 그렇거든.ㅎㅎ 그리고선 오 신통하다며 좋아한다. 인간에겐 자신의 성격을 진단하고 규명해보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것일까. 부쩍 심해진 mbti 열풍도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초등학생들도 자기소개할 때 언급하고, 서로서로 묻기도 하는데 듣고있자면 고개가 갸웃해지기도 한다. 섣불리 접근하는 건 심심풀이 이상의 의미는 없겠다 싶어서.

에니어그램도 성격유형을 찾는 방법 중의 하나다. 단편적으로 보면 9개의 유형이니 16개인 mbti 등 다른 검사들과 비교했을 때 단순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개수로 비교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에니어그램의 깊이는 그 사람의 심연에 잠긴 근원을 찾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진단도 쉽지 않고 오랜시간 모르거나 잘못 알고서 살아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발견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딱 떨어지지 않는 것이 단점이라면, 일단 파악하고 난 다음에는 자신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 깊이는 여타의 성격검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9개의 유형 중에서 나의 기본성격이 있지만 그것이 나를 다 표현해주는 것은 아니다. 기본성격에서 출발하는 다양한 방향성이 있고, 그것들의 조합이 나의 성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성격을 찾아내는 것도 어떤 사람은 꽤나 오래 걸린다. 말하자면 애니어그램은 한번의 검사로 결정된다기보다는 자신을 찾아가는 탐구의 과정인 것 같다.

나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15년 전 연수에서 한 검사에서 나는 1,9번이 똑같이 매우 높게 나왔고 그 다음으로는 6번이 나왔다. 2,4,5는 중간 정도로 나왔고 3,8은 낮았고 7은 매우 낮았다. 이러한 전체적인 경향성은 평생에 걸쳐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아주 커다란 변신의 계기가 있는 게 아니라면. 나는 그때 동점으로 나온 1,9번 중에서 1번이 나를 더 잘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기본성격(대표 유형)은 1번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때 연수에서도 1번들의 모둠에 들어가 토의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해본 검사에서도 상중하의 전체적 경향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즐거움 추구가 가장 뒤로 밀리는 사람이고 남 앞에 나서기 싫어하고 성취 욕구도 그리 강하진 않다. 하지만 기본성격에 변화가 있었다. 15년 전 세 번째로 나왔던 6번 유형이 1,9번을 치고 튀어나와 단연 높게 나왔다.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보면, 이제 나의 직업을 접을 날이 몇 년 남지 않아서 직업적 마인드가 줄어들 시점이라는 점, 같은 맥락이긴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는 점도 영향이 조금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이 책을 통해서 나의 심연, 즉 잠겨있는 빙산 부분을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이 나의 근원과 뿌리를 보는 데 도움을 주었다.

15년 전 6번이 썩 끌리지 않았던 이유는 대표명칭인 ‘헌신가’라는 이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리 헌신성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빙산의 아랫부분, 즉 나의 두려움과 욕망, 집착 등을 보게 되니 나는 확실히 1번보다는 6번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6번의 근원적 두려움은 '안내받지 못하는 것'이고 핵심감정은 불안이다. 나는 혼자있는 것을 무척 선호하는 사람인데 그때도 한줄기 끈은 연결되어 있길 바라는 나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고립은 두렵기 때문이다. 나는 의지할만한 존재를 원한다. 그래서 내가 호감을 갖는 사람은 주로 이렇다. 속이 깊고 멘탈이 강한 사람, 호들갑스럽지 않으며 약속을 잘 지키고 한번 말해놓으면 두세번 말할 필요가 없는 사람. 한마디로 믿을만한 사람이다. 신뢰. 이게 내가 사람을 보고 관계를 맺는 절대기준이다. 이것이 나의 깊은 불안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다. 나는 나 자신도 불신한다. 내가 참 시원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주변에 누군가 든든한 사람이 있어서 불안감을 줄여주기를 바란다.

설명을 읽다가 너무 맞아서 허탈하게 웃은 부분이 있다.
"안전에 집착하는 6유형들은 미래에도 큰 기대가 없습니다. 크게 성공하는 것보다 망하지 않는게 더 중요하고, 앞서가는 것보다 뒤처지지 않는게 더 중요하다 여기지요. 머릿속에 최악의 상황을 그려놓고 그것을 피하는데 집중하는 삶을 사는 겁니다."
아~ 웃프다.ㅎㅎㅎ 하지만 다음과 같은 조언은 나를 안심시키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의 통찰력 인정하기(통찰력 있다는 소리는 가끔 들음),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글로 쓰기(이미 하고 있는 편), 할까말까 고민될 땐 일단 하기(가장 어려운 조언ㅋ) 등이다.

책의 리뷰에 개인적인 얘기를 너무 많이 한 느낌이라 꺼림칙하긴 한데... 나는 원래 리뷰가 독후감인 사람이라 어쩔 수가 없다고 해야겠다. 각 유형들의 독후감을 다 모으면 꽤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이 책의 1,2부는 애니어그램, 성격의 개념을 설명하는 장이고 3부는 검사, 4부는 각 유형을 자세히 설명한 장이다. 이 4부가 이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나는 4부에선 내 유형만 읽었으니 이 책을 다 읽었다곤 볼 수 없는데, 다른 유형들도 천천히 읽어볼 생각이다. 지인들과 관련지어 읽으면 더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에니어그램의 깊이와 넓이는 이후 5,6부에서 진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9개에 불과한 성격유형이 전부가 아니다. 기본성격 외에 다양한 성격 역동이 한 사람의 총체적 성격을 구성한다. 힘의 중심, 욕구의 사회적 충족 방식, 욕구 좌절 대처 방식, 인간관계 갈등 대처 방식 등이 새롭게 다양한 그룹을 이룬다. 그래서 성격이란 단순명료하지 않으며 쉽게 규정될 수도 없는 것이다. 뿌리가 같아도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남에게 보여질 수 있다.

에니어그램의 특징인 '날개'도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에니어그램의 최종 목적지, '온전한 통합'은 단순 성격검사를 넘어서 삶의 태도와 방향을 고민하고 성찰하게 한다. 인생이란 어쩌면 자신을 탐구하는 여정인 바, '나는 어떤 모양의 사람인가?'를 넘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길잡이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에니어그램을 높이 사고 싶다.

애니어그램에 대한 기존 저서들이 이미 여러 권 있지만, 저자들은 좀더 쉽게 체계적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안내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목표한 바를 충분히 달성한 책이라고 평하고 싶다. 480쪽에 달하는 이 책을 읽는데 부담이 거의 없다. 물론 하루만에 뚝딱 읽어지지는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고. 천천히 진단도 하고 생각도 하며 읽는 것을 추천한다. 그 과정에서 좋은 점은 끝까지 흥미를 유지하며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점,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도록 서술이 친절하고 상세하다는 점이다.

책의 디자인으로 볼 때 본문에는 그림이나 사진이 거의 필요치 않고 도표가 들어가 있는 정도인데 눈에 잘 띄고 알아보기 쉬웠으며 소제목들에 적당하고 깔끔한 색이 들어가 있어 가독성을 높여주었다. 특히 표지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표지의 연두색이나 책등의 노란색이 다 고상한 느낌을 준다. 은박으로 인쇄된 제목이 너무 작지 않나? 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왠지 적당하는 생각이 든다. 가운데 크게 들어가있는 애니어그램의 원이 제목의 역할을 크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받아들면 마음이 흡족하고 꼭 읽어서 내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다. 에니어그램을 좀더 알고 싶은 이들, 나에 대한 탐구 욕구가 있는 분들에게 자신있게 권해도 되겠다. 매우 흥미로운 독서이자 나를 탐구하는 여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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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만 특별한 교사의 언어 - 마음을 움직여 성장으로 이끄는 감정 대화법
김태승 지음 / 푸른칠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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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말은 참으로 그사람의 많은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도 그걸 알기 때문에 말에 대한 책도 강연도 많다. 어린이들을 위한 책도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아주 봇물터지듯 나와 있다.

그중에서도 교사의 언어는 특별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거의 입으로 먹고사는 직업이어서...는 아니고(입은 최종 출구일 뿐 교사는 말로만 하는 직업은 아니니까) 매우 다양한 상황에 직면하며, 그때마다 최선의 언어를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거의 모든 상황이 교육의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다.

교사의 언어를 다룬 책 중 천경호 선생님의 책을 감명깊게 읽었다. 그 책도 좋았고 이 책은 이 책대로 참 좋다. 뭐라 비교하긴 힘든데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 각자 참 좋다. 이제 퇴직을 몇년 앞두고 있는 나같은 경력교사도 읽으면서 쏙쏙 비어있는 구멍을 알차게 채운다. 경력이 적은 후배선생님들께는 뙤약가뭄에 시원한 비일 것 같다.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은 대체로 쉽게 술술 읽힌다. 특히 대화를 있는 그대로 기록한 부분은 현장감이 그대로 전해지며, 대화의 결말 부분에서 쾌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웃음도 나고 공감도 되고 아하~! 하고 무릎을 치게도 되고 다양한 감정들이 올라온다. 교사의 말은 색깔(초록색)로 구분되어 있어 더욱 가독성이 높다. 그러나 이 책의 성격이 단순 대화집인 것은 아니다. 상담심리 전공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하시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시는 저자의 학식이 드러난 부분도 있다. 각장 후반부에 있는 [교육전문가를 위한 대화의 기술]이 그것이다. 대화 부분도 읽기 쉽다뿐이지 내공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내용임은 물론이다. 이렇게 두가지 성격이 잘 짜여 구성되어 있는 점이 이 책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은 적어도 두 번 정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일단 쉽게 읽히는 곳부터 편하게 읽되, 정독도 꼭 한 번 하면 좋겠다.

1장은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교사의 언어]이다. 친구 관계의 다양한 역동에서 충돌이 있었을 때 중재하는 대화들이 주를 이룬다. 나도 나름 오랜 경력이 주는 능구렁이력으로 중재를 어느정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야말로 구렁이 담넘어가듯 스리슬쩍 넘어가기에 급급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초록색 부분, 즉 교사의 대사에는 괄호 안에 대화기술방법이 표기되어 있다. 확인, 질문, 수용, 공감, 탐색적 질문, 설명, 자기개방, 제안, 지지, 강조 등등이다. 어느 책에서도 보지 못한 이 책의 특징이면서 대화를 구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눈을 키워주며 치우치지 않은 적절한 구성으로 교사의 언어를 정련하는 연습을 하는데 큰 도움을 주겠다.

저자의 대화를 보니 기본적으로 침착하고 친절하나, 상황에 따라서는 아주 단호하게 교사의 감정도 전달하고(자기개방) 냉정하게 객관적 상황을 알려주거나 교사의 의지를 천명하기도 한다. 이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최대한 학생 스스로 선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조력하되, 그럴 의지나 능력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끌려가면 안된다. 위에 적은 다양한 대화방법을 상황에 따라 적절히 취사선택해야 하는데, 그게 몸에 배기까지는 복기와 성찰이 필요하다. 그때 이 책이 가장 적절하리라 생각된다.

대화 내용 중 내가 그동안 유의하지 못했구나 싶었던 것 중 하나는 저자샘이 학생들에게 ‘상대의 눈을 바라보라’고 지도하시는 부분이었다. 마침 오늘 중재할 일이 딱 생겨서 (사실 ‘마침’이라고 하기에는 거의 매일 생기니까 뭐ㅎ) 나도 이렇게 지도해 보았다. 그랬더니 한 아이가 “아니 그건 좀...” 하면서 몹시 어색해 하는 것이었다.
“왜요? 개똥이는 그게 잘 안돼요?”
“네, 제가 사실은 부끄러움이 많아가지고....”
이렇게 말하는 개똥이는 우리반에서 제일 나대는 녀석이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고, 개똥이도, 상대방도 다 웃었다.
“그럼 오늘은 선생님을 보면서 말하는 걸로 해요. 그래도 괜찮죠?”
상대방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개똥이는 처음에는 교사를 쳐다보더니 어느새 친구에게로 시선이 돌아가 있다. 화해는 잘 끝났다.^^ 생각해보니 나도 사람의 눈을 잘 보지 않는 것 같아서, 아이의 민망함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강요가 아닌 한, 눈을 바라보라는 조언은 필요한 것 같다. 수많은 팁이 있었지만 오늘 바로 적용해본 것은 이것이었다.

1장의 끝에 나오는 ‘교육전문가를 위한 대화의 기술’ 페이지에서는 “학생의 저항과 주저를 잘 다뤄 주세요”와 “효과적인 대화를 위해 메타인지를 활용하세요” 등의 전문적 조언이 나와있다. 이 부분도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나는 마음이 여린 편이고 표면적으로는 친절하지만 내면적으로는 팩폭의 욕구가 상당히 강해서 나도 모르게 그걸 내뱉을 때가 있다. 다행히 그게 약이 된 경우도 있지만 아마도 상처가 된 경우가 더 많았을 것이다. 특히 그 표현을 비꼼이나 비난으로 했을 경우에는 더! 이 부분을 매우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저자는 직면이 문제해결의 필요조건이지만 잘못 접근하면 비난으로 인식되어 방어와 부정으로 돌아설 위험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아이 입장에서 직면은 무거운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생이 저항하거나 거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교사가 지지하고 공감하는 만큼만 직면해 주어야 그것이 비난으로 들리지 않는다.」 (157쪽)
「대화 속에서의 직면은 행동이나 말, 행위에 대해서만 직면하는 것이 아니라 불일치가 될 수밖에 없는 상태, 그 마음을 느끼고 이를 공감적인 반영을 통해 직면하는 것이 가장 성장에 가까운 교육이 된다.」 (159쪽)
숙제를 하나 받았다. 수준 높은 직면. 이제 해오던 대로 대충 하다가 퇴직하고 싶은데 숙제라니. 하지만 왠지 기분은 나쁘지 않다.^^

2장은 [마음의 성장을 돕는 교사의 언어]이다. 교실에는 언제나 표현이 서툴거나 마음이 힘들거나 감정처리를 도와주어야 하는 아이들, 나아가 행동수정이 필요한 아이들도 있다. 내용 중 "괜찮아" 라는 말도 남용해선 안된다는 언급에 매우 동의했다. 좋은 말도 모든 상황에 좋을 순 없다. 학생의 감정의 물결을 존중하는 건 때로 기다려주는 일이다. 위로든 충고든 그 후에 해줘야 효과가 있다. 그리고 "너는 그 말에 동의하는 거야?", "네 생각이 궁금하다." 등의 말로 아이를 주체로 세우고 교사의 동의나 응원, 충고를 더해주는 방법이 정말 고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은 교사도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의 심리가 있다. 대부분 부정적으로 표출되기 때문에 교사는 불쾌해지고, 학생과의 관계가 나빠지는 결과를 낳게 되기 쉽다. 이때 그 너머의 심리를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 장에 다양한 사례가 있어 많은 참고가 된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뭔지 모르게 눈에 거슬려진 아이와의 대화도 매우 인상적이었고 핑계만 많고 행동수정이 안되는 학생을 설득하는 과정도 배울점이 많았다.

3장은 [진정한 만남으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교사의 언어]이다. 이 장은 교사의 내면에 좀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학급 안에서 교사는 때로 인간적으로 편안하게 솔직해도 되고, 실수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할 때도 있다. 학급 구성원에 따라 처신이 다르게 되지만 기본적 원칙은 건강한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력해도 안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전문가 수준이라 해도 마음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 드물지만 있을 수 있으며, 그럴때도 끝까지 노오오오오력하라는 부질없는 채찍질보다는 과제의 분리를 제안하기도 한다. 현실적이라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교직은 운이 조금은 작용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상황을 운에 핑계대어서는 안되지만.

교사가 가장 행복한 해의 교실에서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장이다.
"선생님이 많은 학생들을 지도하지만, 가르치고 지도하는 대로 잘 따라주어 성장하는 학생도 있고, 똑같이 지도했지만 그러지 못하는 학생도 있거든. 선생님과의 대화를 소중히 여기고 그 이야기들을 생활 속에서 잘 적용한 건 순수하게 너희들의 선택이고 너희들의 실천 덕분이야. 선생님은 단지 그 기회를 보고 말해주었을 뿐이야." (306쪽)

이 책의 수많은 대화를 읽으면서 결국 깨닫게 되었다. 열쇠가 누구한테 있는지를. 안타깝게도 나한테 없었다. 이런.ㅋㅋㅋㅋ 하지만 그 열쇠의 주인공들이 결국 문을 열도록 최선의 조건을 만들어주는 역할은 나의 것이다. 최종 선택은 열쇠의 주인에게 있지만.

이 책이 열쇠의 주인들에게 다가가는 지혜를 끌어올려 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많은 선생님들께 자신있게 권하며, 우리의 교실들의 성장과 평안과 행복을 빈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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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요? 작은 곰자리 76
시드니 스미스 지음, 김지은 옮김 / 책읽는곰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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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는 소년의 얼굴이 하나가득 그려져있고 기억나요? 라는 제목만 적혀있는 단순한 디자인이다. 소년의 얼굴은 어린시절 같기도 하지만 꽤 자라 과거를 회상하는 얼굴 같기도 하다. 알라딘 메인에 떠 있고 추천으로도 자주 노출되어서 어떤 책인지 궁금했다. 어떤 매력의 책일까?

어두운 밤 한 침대에 누운 엄마와 아들의 얼굴이 화면 가득 나온다. 엄마와 아들이 서로
- 기억나니?
- 기억나요?
하며 그들의 공통된 기억을 회상하고 있다. 그 기억들은 대체로 다 환하고, 아름답고 즐거웠다고, 그들은 회상하고 있다.

들판으로 나들이 나간 날, 산딸기를 한웅큼 따 엄마 아빠한테 달려갔던 기억.
생일날, 부모님 선물로 받은 자전거를 타다 건초더미 위에 넘어져 웃음을 터뜨리던 기억,
폭풍우 치고 정전이 되었던 날의 기억도 나쁘지만은 않다. 할아버지가 쓰던 오래된 석유등 냄새.

그리고... 짐을 싸서 트럭에 싣고 살던 집을 떠나던 날의 기억. 무슨 일인지 아빠랑 이별하고 엄마가 운전대를 잡은 채 고속도로를 달려 둘만 이 낯선 도시로 들어섰다. 한참을 헤매다 지금 누워있는 이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어스름 새벽빛에 아직 풀지 못한 짐들이 보인다. 이사 첫날, 낯선 곳에서의 첫 밤인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는 살며시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이제부터 열릴 새 생활의 터전이 눈에 보인다. 그건 어떤 장면이며 어떤 느낌을 주었을까?

『버스가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어요.
길 건너 빵집에선 빵 굽는 냄새가 올라왔고요.
도시 위로 해가 떠오르는데
마치 마법 같았어요.』

도시는 아직 어둡고, 저 너머로 해가 뜨기 시작하는 주황빛이 보인다. 아직 이른 새벽이다. 아이는 곤히 잠든 엄마를 돌아본다. 그리고 그 품에 들어가 눕는다. 아까 아이는 미래의 기억을 예언했다.
“걱정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어요.
우린 잘 지낼 줄 알았으니까요.”
그 믿음으로 잠시 후, 가족은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고되고 힘들 수 있겠지만.

굉장히 튼튼한 마음이 이 이야기를 받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의 이런 마음은 어디서 왔을까? 나보다 낫네. 쓸데없이 예민한 마음이 싫다. 우리가 걱정하는 일들의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걱정을 하며 걱정거리를 생산해 낸다. 그리고 결국에는 걱정에 파묻히고 불행해 한다. 현대의 많은 이들의 패턴이다.

어떤 상황인지 자세한 설명이 없었지만, 이 가족은 어려움에 처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전보다 좋지 않은 곳으로 옮겨와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하지만 비관하는 느낌은 없다. 낯선 집 창문에서 본 새벽 어스름의 빛에서 약간의 벅참과 설렘을 느낄 정도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엄마랑 나랑. 그리고 상황은 점점 좋아질 거야.

마음이 무너져가는 아이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그 엄마들 또한. 그럴만한 상황은 다 있다. 그들에게 이 책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이 책의 모자가 ‘기억나요?’ 라는 말로 추억을 소환한 것은 과거에 연연하며 청승을 떨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들이 쌓아온 사랑의 시간들을 상기하기 위함이다. 그 힘으로 얼마간 버틸 수 있고, 그러다보면 다른 힘이 또 생겨나 있을 것이다.

나또한 무너지기 쉽고 불안에 취약한 심리를 갖고 있는데, 내 생에 슬프고 힘겨웠던 순간에는 오히려 침착했던 기억이 난다. 돌아보면 그게 참 신기했다. 그순간 하나님이 나에게 마취제를 놓아주신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난 진통 중에 있는 아이 한 명과 대화로, 어머니와는 톡으로 상담을 했는데.... 누구도 자신의 상황을 다 드러내 말하진 않는다. 내가 다 알아야 할 이유도 없고. 그저 그들이 조금은 둔감하길, 서로에 대한 애정이 서로를 옭아매고 할퀴기보다 서로를 든든히 받쳐주는 기둥이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이삿짐도 채 풀지 못한 낯설고 거친 방에 스며들던 새벽빛의 느낌. 그걸 희망이라 부르고 싶다. 희망은 다 갖춰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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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알바 텍스트T 9
김태호 지음, 이예빛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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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작가님의 신간. 이번에는 청소년소설이고, 단편집이다. '제후의 선택' 같은 작가님의 고학년 단편에서 느끼던 몰입감과 다양하고 무거운 주제의식을 여전히 느낄 수 있다.

만화같은 그림체의 표지 느낌부터가 어린이용이 아니고, 이야기의 느낌도 대체로 다 서늘하다. 하지만 무거운 현실을 그려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주제를 담는데 공을 들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학년 동화들만 해도 "와 슬프다. 참혹하다. 근데 어쩌라고?" 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이 꽤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어쩌라고?"를 채우려고 작가가 무척 고민했다는 느낌이다. 실제 그러셨는지는 모른다. 그냥 내 느낌이 그렇다는 뜻.^^;;;

그러다보니 작품들은 모두 지향점을 갖는다. 일차적으로 그 지향점은 "살자"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나의 삶을 살아내자.

세번째 작품 [지박령 열차]에서 그려내는 지하철 순환선의 풍경은 어둡고 섬뜩하다. 삶을 버리려 할 만큼 아픈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고, 그들을 가슴에 묻은 이들의 고통은 또 얼마나 클까. 순환선에서 '지박령'이 되어 돌고도는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은 뭘까. 결국 "살아"가 아니겠나.
"널 까맣게 태워버린 사람보다 널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고." (71쪽)

네번째 작품 [선녀 콤플렉스]는 여러 느낌이 혼재되어 가끔 고개가 갸웃해지기도 하는 작품이었다. 선녀가 날개옷을 잃고 지상세계에 붙잡힌 옛이야기 '선녀와 나무꾼'을 연상시키는 내용이 수시로 나오는데, 그게 다정하고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고 지극히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아, 위험한 게 맞았어....ㅠㅠ 하지만 "엄마, 나 살고 싶어!"라고 간절히 말하는 해라. 작가는 이 작품을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걸까. 그 모두의 귀에 가 들리기를 바란다.

일차적이고 가장 긴박한 외침이 '살아!" 라면 그 다음은 "똑바로 살아" 내지는 "당당히 살아" 혹은 "충만히 살아"가 될 것 같다. 표제작이자 첫 작품 [신의 알바]에서 과거 자기 무리의 밥이었던 영지를 다시 만나 같은 방식으로 거리낌없이 셔틀을 시키던 수민은 단단히 덫에 걸려버린다. 그러게, 왜 그렇게 살았니. 비행에 대한 댓가는 누구나 치러야 한다. 스스로가 갚는다면 그나마 견딜 만할 것이요, 강제로 갚음을 당한다면 그건 지옥일 터이다. 난 세상이 이렇게 표나게 공평하고 잘못에 대한 응징이 눈에 보였으면 하는 욕구가 있나보다. 이런 생각에도 위험요소는 있고, 자력구제는 지양되어야 한다. 더글로리 드라마를 내가 좋아하지 않듯이. 하지만 나의 마음 한구석은 말한다. "그니까, 똑바로 살아!"

두번째 작품 [유학생 고준하]가 이 책에선 가장 덜 서늘하고 말랑하고 밝다. 어른(엄마)의 등장이 이렇게 다행스럽고 바람직하기 있음? 유혹과 본능을 거슬러 유예기간과 이성적 판단을 중시하는 것은 청소년기에 꼭 필요하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고, 아름답고 소중하게 가꾸기 위해서다. "섣부르게 살지 마" 라고 할까.

다섯번째 작품 [콩]에는 짧은 단편임에도 복합적인 이슈들이 담겨있다. 한국계 베트남인 '콩'의 고난, 딸을 사고로 잃은 엄마의 허전함과 아픔, 신체적로는 우세해지는데도 치국의 폭행과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호의 심리, 그리고 콩과 수호의 짧은 우정(사랑?)과 이별 등... 단편 대가의 작품이라 할 만했다. 왠지 영상으로도 보고 싶은 작품이기도 했다. 잘 만들고 연기를 잘한다면 영상미가 훌륭하고 심리묘사도 탁월한 작품이 나올 것 같은.

마지막 작품 [비의 경계선]에서 인물들이 거친 빗속을 헤매다니는 장면은 꼭 언젠가 꾸었던 꿈속 장면인 것처럼 느껴졌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 작품에 이르러 나오는 '경계선' 이라는 키워드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니 작가의 계산이 참 치밀하고 정교하다는 생각도 든다. 뒷표지에 보면 "삶의 어느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아이들은 각자의 성장통을 오롯이 겪어내고 끝내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는다." 라는 말이 쓰여있다. 공감하면서, 이중 어떤 작품은 성장통이라는 말도 사치일 만큼 극한에 몰려있는 인물들을 표현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태호 작가님 문장의 흡인력은 대단해서, 다음장을 저절로 넘기는 것은 기본이고 어떤 작품은 막 성큼성큼 건너뛰어지기도 했다. 눈이 막 앞서가서....^^;;; 그러다 다시 돌아와 읽었다. 그런 긴장감을 유지하고 작품을 이끌어간다는 건 엄청난 힘인 것 같다. 청소년소설은 솔직히 나랑 접점이 별로 없어서 굳이 찾아읽으려 애쓰진 않는데, 이 책은 궁금해서 덥썩 읽어보았다. 흥미롭고 의미있는 독서였고, 주변에 청소년이 있다면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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