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요? 작은 곰자리 76
시드니 스미스 지음, 김지은 옮김 / 책읽는곰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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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는 소년의 얼굴이 하나가득 그려져있고 기억나요? 라는 제목만 적혀있는 단순한 디자인이다. 소년의 얼굴은 어린시절 같기도 하지만 꽤 자라 과거를 회상하는 얼굴 같기도 하다. 알라딘 메인에 떠 있고 추천으로도 자주 노출되어서 어떤 책인지 궁금했다. 어떤 매력의 책일까?

어두운 밤 한 침대에 누운 엄마와 아들의 얼굴이 화면 가득 나온다. 엄마와 아들이 서로
- 기억나니?
- 기억나요?
하며 그들의 공통된 기억을 회상하고 있다. 그 기억들은 대체로 다 환하고, 아름답고 즐거웠다고, 그들은 회상하고 있다.

들판으로 나들이 나간 날, 산딸기를 한웅큼 따 엄마 아빠한테 달려갔던 기억.
생일날, 부모님 선물로 받은 자전거를 타다 건초더미 위에 넘어져 웃음을 터뜨리던 기억,
폭풍우 치고 정전이 되었던 날의 기억도 나쁘지만은 않다. 할아버지가 쓰던 오래된 석유등 냄새.

그리고... 짐을 싸서 트럭에 싣고 살던 집을 떠나던 날의 기억. 무슨 일인지 아빠랑 이별하고 엄마가 운전대를 잡은 채 고속도로를 달려 둘만 이 낯선 도시로 들어섰다. 한참을 헤매다 지금 누워있는 이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어스름 새벽빛에 아직 풀지 못한 짐들이 보인다. 이사 첫날, 낯선 곳에서의 첫 밤인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는 살며시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이제부터 열릴 새 생활의 터전이 눈에 보인다. 그건 어떤 장면이며 어떤 느낌을 주었을까?

『버스가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어요.
길 건너 빵집에선 빵 굽는 냄새가 올라왔고요.
도시 위로 해가 떠오르는데
마치 마법 같았어요.』

도시는 아직 어둡고, 저 너머로 해가 뜨기 시작하는 주황빛이 보인다. 아직 이른 새벽이다. 아이는 곤히 잠든 엄마를 돌아본다. 그리고 그 품에 들어가 눕는다. 아까 아이는 미래의 기억을 예언했다.
“걱정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어요.
우린 잘 지낼 줄 알았으니까요.”
그 믿음으로 잠시 후, 가족은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고되고 힘들 수 있겠지만.

굉장히 튼튼한 마음이 이 이야기를 받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의 이런 마음은 어디서 왔을까? 나보다 낫네. 쓸데없이 예민한 마음이 싫다. 우리가 걱정하는 일들의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걱정을 하며 걱정거리를 생산해 낸다. 그리고 결국에는 걱정에 파묻히고 불행해 한다. 현대의 많은 이들의 패턴이다.

어떤 상황인지 자세한 설명이 없었지만, 이 가족은 어려움에 처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전보다 좋지 않은 곳으로 옮겨와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하지만 비관하는 느낌은 없다. 낯선 집 창문에서 본 새벽 어스름의 빛에서 약간의 벅참과 설렘을 느낄 정도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엄마랑 나랑. 그리고 상황은 점점 좋아질 거야.

마음이 무너져가는 아이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그 엄마들 또한. 그럴만한 상황은 다 있다. 그들에게 이 책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이 책의 모자가 ‘기억나요?’ 라는 말로 추억을 소환한 것은 과거에 연연하며 청승을 떨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들이 쌓아온 사랑의 시간들을 상기하기 위함이다. 그 힘으로 얼마간 버틸 수 있고, 그러다보면 다른 힘이 또 생겨나 있을 것이다.

나또한 무너지기 쉽고 불안에 취약한 심리를 갖고 있는데, 내 생에 슬프고 힘겨웠던 순간에는 오히려 침착했던 기억이 난다. 돌아보면 그게 참 신기했다. 그순간 하나님이 나에게 마취제를 놓아주신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난 진통 중에 있는 아이 한 명과 대화로, 어머니와는 톡으로 상담을 했는데.... 누구도 자신의 상황을 다 드러내 말하진 않는다. 내가 다 알아야 할 이유도 없고. 그저 그들이 조금은 둔감하길, 서로에 대한 애정이 서로를 옭아매고 할퀴기보다 서로를 든든히 받쳐주는 기둥이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이삿짐도 채 풀지 못한 낯설고 거친 방에 스며들던 새벽빛의 느낌. 그걸 희망이라 부르고 싶다. 희망은 다 갖춰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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