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고민에 그림책이 답하다 - 24가지 수업, 생활 교육 고민을 현장 사례로 풀어낸
그림책 아틀리에 36.5 지음 / 교육과실천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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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식날 학교도서관에서 챙겨온 책들 중에 이 책만 못 읽고 남았다. 교사용 책에 잘 손이 가지 않았고 어린이책들을 주로 읽다가 가끔 교사용이 아닌 어른책을 읽었다. 이제 2월, 꼼짝없이 새학년을 맞이할 시기라서 그런지 마지막까지 남았던 이책을 펼쳤다. 와 진작 읽을걸? 참 좋은 선생님들의 참 좋은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육아의 끝무렵인 30대 중후반부터 교직의 전성기인 40대 때는 나도 모임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는 사람이었다. 50대가 되니 이제 기존의 익숙한 모임 외에는 찔러보지도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성격탓도 있고 나이탓도 있는 것 같고 체력도 딸리고 하여튼 그렇다. 수많은 교사모임이 있는데 특히 그림책 관련 모임이 많은 것 같다. 페북에서 본 것만 해도 여러 개인데 이 모임 이름은 또 처음 듣는다. (그림책 아틀리에 36.5) 이름을 참 잘 지으신 것 같다. 뭔가 예술성과 온기가 느껴지는 이름.

책의 구성에 통일성이 있으면서도 작위적이지 않고 각 장마다 진정성이 느껴진다. 고민샘과 저자샘의 대화로 도입을 하고, [그림책 이야기]와 [그림책 수업활동]이 이어진다. [그림책 이야기]는 책 내용 등의 정보만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고 저자들의 감상이 자연스레 배어나오며, [그림책 수업 활동]은 길거나 자세하지 않은데도 생생하여 이해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해당 그림책으로 나눌 수 있는 질문이 두세개씩 제시되어 있는데 이게 굉장히 유용하다. 그리고 함께 읽으면 좋은 그림책을 세 권씩 적어준 것도 참고하기 좋다.

나는 '나'라는 장벽이 강해서인지 책을 대충 읽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교사용 책을 읽고 적용이 잘 안되는 편이다. 그래서 어떤 책을 읽고 단 한가지라도 적용점이 생기면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아, 이책 궁금하다 하고 장바구니에 담는다든지, 이 활동 좋겠다 하고 메모해 둔다든지. 더 알아보고 싶은 주제가 생겨 다른 책으로 넘어간다든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내게 읽은 보람이 있는 책이라 할 수 있었다. 가까운 시일 내로 써먹을 것을 세 가지만 적어보면 이런 식이다.

1. 미술 단원 중 요즘은 사진 단원이 들어있어 1년에 한두번 정도는 사진 수업을 하게 되는데, 이 책 1부 1장 <구름공항>의 수업 사례가 좋은 아이디어를 줬다.
2. 국어 언어예절 관련 단원에서 '비언어적 표현'에 대한 설명을 하게 된다. 그때 이책에서 소개한 <아진짜> 책이 풍부한 사례를 끌어낼 것 같다.
3. '게임의 고수 6단계'를 학년초에 지도한다. 승부욕을 다스리고 결과에 승복하며 활동 자체를 즐기게 하는 교육의 출발이다. 이때 <졌다!>라는 책의 수업사례를 참고할 수 있겠다.
더 있지만 3번까지만. 교사들마다 꽂히는 부분이 각자 다를 것이다.

이런 생각도 든다. 그림책의 입장에서 '이럴 땐 이 책을' 하고 규정지어지는게 좋을까? 자신이 어떤 레시피가 되는게 좋을까? 좋지만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교사들이 꽉막힌 바보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일단 먼저 해보신 사례를 따라가 본 후에 확장이 일어난다. 이렇게 활용하려고 책을 읽어주었는데 저렇게 문이 열릴 수도 있다. 이 확장성을 경험하는 게 중요하고, 실용성을 넘어서는 감상으로까지 나아가는 단계도 중요하다. 한 책에 모든 것을 다 담을 수는 없으니 이 책은 기획한 대로 자신의 역할을 우수하게 해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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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마리솔 Wow 그래픽노블
알렉시스 카스텔라노스 지음, 마술연필 옮김 / 보물창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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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창고 출판사의 'wow 그래픽 노블' 시리즈에 재밌게 읽은 작품이 많다. 도서관에서 신간을 발견하고 대출해왔다. 앗, 말주머니가 없는.... 그림으로만 해석해야 되는 책은 문자의존도가 높은 나에게는 난이도가 있다. 다행히 이 책은 이해할 만했다. 이해 뿐 아니라 꽤 관심있게 읽게 되었다.

책을 대출하려 대충 살펴볼 때 '쿠바'라는 나라 이름을 봤다. 나에게는 정치적 어려움이 큰, 다소 위험한 나라로 각인되어 있다. 그 외 아는 것은 거의 없다. 페친들의 여행기에서 아름다운, 또 가고 싶은 나라로 손꼽혔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쿠바가 배경이라니 내용이 궁금했다.

역시나 내용은 쿠바의 정치적 역경과 관련이 있었다. 쿠바도 독재와 쿠데타로 험난한 시기를 보냈고 많은 희생자들이 있었다. 바티스타의 독재와 폭정이 오래 이어지자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이 일어났으나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랬듯이 이 정부 또한 국민들에게 자유와 평화를 주진 못했다. 이 책의 배경은 이 시기다. 불안한 부모들이 자선단체의 힘을 빌려 자녀를 미국으로 보냈다. 마리솔 또한 그렇게 미국으로 넘어와 위탁가정에서 지내게 되었다.

아무런 보장도 없이 딸을 홀로 먼 타국으로 보내야 했던 부모의 심정을 나는 다 짐작하지 못하겠다. 우리나라도 역경이라면 꽤 겪은 나라지만 이런 장면들을 보면 나는 좋은 시절 편하게 살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보내졌던 아이들 중엔 우리가 우려할 수 있는 더 큰 어려움을 겪은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리솔은 운이 좋았다. 성품이 고운 위탁부모에게 보내져서.... 그렇더라도 적응 문제는 쉽지 않았다. 집에선 말이 통하지 않았고 학교에선 괴롭힘을 당했다. 한창 사춘기가 시작된 소녀가 홀로 감당해야 할 두려움과 슬픔, 외로움은 너무 컸을 것이다. 이 책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따뜻하게 보여준다. 마리솔이 홀린 듯 따라들어간 곳은 학교의 도서관이었는데, 거기서 마리솔의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사려깊은 위탁부모는 마리솔이 책과 식물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되고 적합한 환경을 꾸며주며 배려한다. 학교에서 마리솔은 용기를 내어 호의적이지 않은 친구들에게 다가가 "안녕, 나는 마리솔이야." 하고 손을 내민다.

이 책은 불행중 아주 다행스러운 이민자의 사연이라 하겠다. 픽션이긴 하지만 실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하지만 이런 행복한 결말보다는 고난이나 불행으로 끝난 결말이 더 많았고 지금도 많을 것이다. 세계가 함께 행복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없는지, 생각해보게 되는 그래픽노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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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우리는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84
이나영 지음, 해랑 그림 / 시공주니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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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서사 자체는 크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그것을 구성하고 연결하는 데서 이나영 작가님의 내공을 느끼게 됐다. 다양한 시선에서 사건과 관계를 조망하고, 긴장감을 갖고 마지막까지 책장을 넘기게 하는 힘이 역시 대단하다.

 

사춘기 여학생들의 관계 이야기는 이미 많이 읽어서 약간은 식상한 느낌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많이 읽어서라기보다는 그 상황 자체가 멀미나도록 싫은 내 성격 탓인 것 같다. 아니, 관계... 거기에 왜 목 매냐고... 애고 어른이고 간에 그런 사람 너무 피곤해. 피곤하니까 되도록 안 만나고 싶고. 그러나 높은 확률로 만날 수밖에 없지.

 

이 책은 6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 다른 아이들이 화자다. “이레가 폐가 지붕에서 떨어졌다.” 라는 한 문장이 서문처럼 나오고 그 다음에 민아, 희서, 나정, 주미, 가은, 마지막으로 이레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뒤로 갈수록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고 마지막 이레 장에서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구성이다.

 

첫 장 민아. 내가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이 바로 얘다. 자존감이 낮으면서 약한 아이에게 갑질하는 걸로 눈속임을 하는 아이. 무리를 만들어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아이. 무리의 결속이 깨질까봐 속으로는 두려워하는 아이.

 

희서. 민아보다 약하지 않지만 부모끼리 가깝고 어릴 때부터 절친이라 바늘과 실처럼 붙어있는 아이. 이 아이가 독자 노선을 걸으며 두루두루 친구를 사귀었다면 건강한 관계가 되었을 텐데 좀 아쉽다.

 

나정이. 나는 이런 애도 싫어. 삼총사가 깨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눈치보며 갑질을 유발하는 아이. 갑질의 토양이자 영양분이 되어주는 아이.

 

이 삼총사의 학급에 이레가 전학 왔다. 당당하고도 센스있게 자기소개를 하는 이레는 첫날부터 돋보였다. 민아가 바로 손을 내밀었다. 이레는 고마운 마음으로 그 손을 잡았고 사총사에 편입되었다. 자유로운 영혼인 이레가 이렇게 무리에 고정되어 있어서 좋을 게 없는데. 본인도 힘들고 속상할 때가 많았는데 전학 온 이레로서는 처음의 구도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던 걸까. 참 아쉬운 점이다.

 

4장과 5장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4총사 멤버가 아닌 제 3자이며, 객관적인 시각을 제공하는 아이들이다. 먼저 주미는 공부벌레이고 부반장이다. 부모님의 강압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성취욕도 보통이 아니라서 11초를 쪼개가며 선행학습을 비롯 온갖 공부를 하는 아이다. 이 아이의 숨막히는 일상에 잠깐의 여유로운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그건 이레와의 만남이었다. 물론 4총사가 함께하지 않는 늦은 시간에.

 

다음은 가은. 육상부 선수라 교실에서는 거의 잠만 자고 존재감이 없는 학생이다. 달리기가 너무 좋지만 생각만큼 성과는 나지 않아 힘들다. 교실에선 친구가 없다. 그러다 우연히 이레와의 시간을 갖게 되면서 마음이 가까워졌다.

 

이런 관계들 속에, 중심사건은 앞에서 나왔듯이 이레의 추락 사건이다. 이레는 왜 폐가에 갔을까? 지붕에는 왜 올라갔으며 거기에서 왜 떨어졌을까? 이야기는 이레가 추락하고 병원에 입원한 후 며칠동안 서술한 각 화자들의 회상과 심리를 담았다. (아참,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는 설정) 이레는 민아가 내민 손을 잡고 사총사에 들어갔지만 얼마 못 가 따돌림을 당하며 조용히 상처받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추락사고는 누군가의 계략인가? 우연인가? 사총사의 나머지 세 친구는 왜 병문안을 가지 않는가?

 

모든 해답은 마지막 이레 장에 다 나온다. 사건의 전모가 걱정한 것만큼 악한 것은 아니어서 한시름을 놓았다고 할까. 하지만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정도의 아이들의 못됨과 욕심, 시기, 비겁함 등은 다 들어있다. 하지만 우리들의 희망은 아이들의 저런 모습이 고정불변은 아니라는 점. 아이들에게는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 문을 열면서 이 작품은 바로 끝난다.

 

인간이 각양각색인 것을 어찌하랴. 그들이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다 가진 바, 사람들 사이에선 다양한 화학반응들이 일어난다. 이야기를 읽는다고 나에게 일어날 일이 안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조금 더 멋있게 대응할 수는 있겠지. 내가 선 위치를 파악하고 거기 머물러야 하는지 빠져나와야 하는지 좀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겠지. 나는 어떤 친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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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해 주는 멋진 말 스콜라 창작 그림책 74
수전 베르데 지음, 피터 H. 레이놀즈 그림, 김여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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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가 당연한 진리인 것처럼 휩쓸었던 시기가 있었고, 그에 대한 반론이 고개를 들었던 시기도 있었다. 솔직히 난 전자에 처음부터 동의하지 않았고, 그 반론에 대체로 동의한다. 나는 교사로서 교실에서 칭찬거리를 부지런히 찾는 사람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거 없는 치켜세움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이건 내 성격상 한계이기도 한데, 맘에 없는 소리는 애들일지라도 못하겠고, 때로는 팩폭의 욕구를 참느라 고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맥락없이 이 책을 대충 읽으면 난 할 수 있어!” “난 세상에 하나뿐이야. 기적처럼 빛이 나. 눈부시게 아름다워.” 이런 말들이 부질없이 느껴진다. 할 수 있긴 뭘 할 수 있어? 그렇게 애타게 당부하고 신경을 써줘도 날마다 늦잠 자고 지각하면서 뭘 할 수 있는데?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라고? 안 그런 사람 있니? 너는 우주만큼 소중한 존재인 동시에 바닷가의 모래알 하나 같은 존재야. 너만 소중한 게 아니니까 결국 다 똑같은 거야. 빛이 나고 눈이 부시다고? 어 그래 그럴 수 있는데 단, 그런 모습을 니가 만들어 가야지. 이런 생각이 앞서간다.

 

하지만 천천히 생각해보면 뒤따라가는 생각은 좀 다르다. 소위 자뻑에 빠져서 남을 무시하거나 주제파악을 못하고 나대거나 모두 심연을 들여다보면 자존감 부족이라는 문제를 담고 있다. (드물게 자의식 과잉인 경우도 있겠지만 그건 논외로 하고)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아이들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 우선적으로 부정적인 말을 던진다.

나는 원래 그래.”

사람들이 날 싫어해.”

나는 못 해.”

거 봐, 안 될 거라고 했잖아.”

해봤자 뭐 해.”

아이들에게 자주 듣게 되는 마음 아픈 말들이다.

 

이 책을 차근히 읽어보니 아이들에게 무턱대고 좋은 말을 해준다기보다 아이들의 마음의 길을 안내해준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힘들거나 슬픈 날, 화가 나고 불안한 날 나에 대해 좋은 생각을 하기는 힘들다. 그럴 때 마음을 가라앉히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해주어서 좋았다. , 남에게 걱정 끼치기 싫어서 끙끙 앓는 아이에게 누구나 걱정거리가 있어. 서로에게 털어놓아도 괜찮아.” 라는 말이 사려깊고 고맙게 느껴졌다. 실수할까 봐 두려워하거나 실패해버린 아이에게 용기를 주는 말도 좋았다.

 

용기를 주고 거기서 끝나지 않은 점이 가장 좋았다. 나를 채웠으면 그걸 흘려보내는 것이 맞다. 도움을 받았으면 돕는 것이 맞다. 그게 모두가 행복하고 나도 행복한 방법이다.

난 친절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아이들의 생각이 여기까지 이른다면 정말 기쁜 일이다.

 

이 책의 마지막도 좋았다. 자신에게 해 줄 말을 스스로 골라보라고 하는 대목이다.

내가 지닌 선한 마음과

내가 해 온 노력을 품은 말을 골라요.”

이런 말들은 아이들이 한 번에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함께 시도해보고 싶은 일이다. 이 책을 읽고 활동을 한다면 이 대목에 집중해보고 싶다.

 

여기에 한 가지 나보고 추가하라고 한다면, 해서는 안되는 생각의 방향으로 남 탓을 꼽겠다. 부모 탓, 친구 탓, 교사 탓 등.... 안의 문제를 밖으로 돌려버리는 생각들... 은 자학보다도 더 나쁘다. 구제가 불능하다는 면에서 최악이다. 한 책에 모든 것을 다 담을 수는 없으니 이에 대한 책도 나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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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소년 마스터피스 시리즈 (사파리) 14
엘로이 모레노 지음, 성초림 옮김 / 사파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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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인물 구조는 아닌데도 초반에 상황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시점이 혼재되어 있는데다가 인물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팔찌를 많이 찬 소녀’ ‘눈썹에 흉터가 있는 소년’ ‘손가락이 아홉 개 반인 소년등의 설명으로 인물들을 칭하기 때문에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누구의 이야기인지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주인공은 1인칭 시점으로 이 책의 화자이지만 다른 챕터에서 3인칭 시점인 그 소년으로 나오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헷갈린다. 짧은 챕터들이 교차되어 나오면서 서로 다른 시점에서 단서들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초반부 읽기는 다소 난이도가 있다. 하지만 초반이 넘어가면서 퍼즐들이 제자리를 잡고부터는 아하, 하고 가닥이 잡히는데 그때부터는 읽기에 엄청 속도가 붙는다.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다.

 

아하라고 표현했지만 즐거운 알아차림은 아니다. 아픔과 충격, 심지어 죄책감을 동반하는 깨달음이다. 둔중하기도 하고 날카롭기도 한 깨달음.

 

소년은 어떤 사고 후 병원에 입원해 있고, 그동안 사느라 바빠 돌아보지 못했던 부모가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소년을 돌보고 있다. 소년은 괴물, 슈퍼파워, 투명인간 등의 표현을 해서 부모 뿐만 아니라 정신과 의사선생님까지 혼란에 빠뜨리는데.... 어떤 시점 이후로 자신이 투명인간이 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굳게 믿는다. 여기에서 제목이 나왔겠다. 보이지 않는 소년(invisible)

 

제목만 보아도 이 책이 학교폭력을 다루었구나 하는 짐작을 할 수 있다. ‘투명인간 취급한다는 표현을 우리는 쉽게 쓰고, 그런 형태의 폭력이 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내 눈물샘을 자극한 것은 투명인간 취급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에 대한 소년의 확신이었다. 자신의 슈퍼파워로 드디어, 투명인간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믿는 확신 말이다. 투명인간이길 간절히 바랄 만큼 지독하고 집요했던 괴롭힘, 그리고 투명인간이어야만 말이 되는 주변인들의 외면. 이런 것들이 그 소년에게 그런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그래, 그거였네!”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이제 모든 게 이해되었다. 사람들이 결코 날 도와주지 않고, 아무도 날 보지 못하고, 날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건.... 바로 내가 투명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침대에 누워 모처럼 행복했다. 너무나 행복했다. (252~253)

 

눈썹에 흉터가 있는 소년은 그 소년과 등교를 같이 하는 절친이다. 하지만 소년이 괴롭힘을 당할 때 항변하거나 막아주거나 어른들에게 알려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하지 못한다. 언제나 머뭇거리기만 한다.

팔찌를 많이 찬 소녀는 소년과 마음속으로 서로 좋아하는 사이다. 위의 눈썹 소년보다는 도우려는 마음이 크긴 하지만 별 도움이 안된다는 면에서는 다를 게 없다. 오히려 무력하고 처참하게 당하는 모습을 좋아하는 여자아이한테까지 보였다는 자괴감만 더 커진다.

이상 두 아이는 방관자이다. 이 외에도 방관자는 많다. 대충 알아챘을 것 같은데도 굳이 알아보려 하지 않는 선생님들, 특히 보고를 받고도 문제 만들기 싫어서 그냥 넘기는 교장선생님, 학급의 모든 아이들, 동네 사람들까지 소년 주변의 대다수가 방관자다.

 

손가락이 아홉 개 반인 소년이 이른바 가해자다. MM이라 불리는 이 소년은 낙제를 해서 학급에서 나이가 두 살이나 많고 덩치나 힘도 강하다. 이 아이의 심리묘사도 매우 잘 되어있다. 그를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아 이런 아이는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이해가 가능하다. 타고난 성품일 수도 있지만 이 아이도 상처가 있다. 어릴 적 큰 사고를 당했고(손가락 반 개가 없어질 정도의) 그 원인을 제공한 부모는 소년에게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지만 눈길을 외면한다. 죄책감이 크면 오히려 그런 형태로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소년은 치유되지 않는 아픔을 늘 품고 살았다. 그리고 그 서러움은 약한 대상 앞에서 분노로 표출된다.

 

이러한 구도일 때, 방관자들이 자신의 위치를 방어자로 옮겨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방어자가 많을수록 가해자는 힘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방어자는 오직 한 명이었다. 문학선생님. 등에 끔찍한 화상 흉터를 드래곤 문신으로 덮는 장면에서 이분의 과거 상처를 짐작한다. 자신의 상처를 품은 드래곤의 힘은 꽤 강해서, MM을 떨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부족이었다. 방관자들의 철벽은 그렇게도 강하다.

 

이 숨막히는 서사 가운데서 학폭의 성질을 알려주는 문장들이 눈에 띈다.

어떤 특별한 짓을 저질러야만 괴물이 되는 게 아니라, 때로는 아무 일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괴물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101)

상대의 두려움. 그건 MM 같은 아이들에게는 휘발유나 다름없었다. 악한 마음이 더욱 거세게 불타올랐다. (143)

악당들도 때로는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니까. (302)

 

문학선생님은 수업 중 MM과 대다수의 방관자 앞에서 여러 가지 키워드로 그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겁쟁이로 가해자의 괴롭힘이 얼마나 찌질한 짓인지 알려주었고 쥐덫으로 나를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그건 내 문제가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방관자들이 가져오는 결과를 심각하게 알려주었다. 이 책은 가해자와 방관자들의 극적인 변화, 즉 회개를 보여주진 않는 작품이다. 그건 독자의 다음 상상에 맡긴다. 다만 피해자가 어떤 막다른 길까지 몰리는지, 그 숨막히는 백척간두의 지점까지 갔다가 가파르게 끝난다. 피해자의 고통과 아픔을 이보다 잘 표현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에게는 천만다행이게도 루나가 있었고, 드래곤이 있었다. 루나는 사랑, 드래곤은 관심과 정의를 대표한다. 하지만 방어자가 한 명이라도 더 있었다면 그렇게 깊은 고통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각성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라고 생각된다.

 

학폭은 요즘 학교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라 이 책의 학교처럼 듣고도 모른 척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관찰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관찰의 지점, 개입의 지점, 도움의 지점을 섬세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보다 더 좋은 것, 가장 좋은 방법은 방어자들이 가득한 교실을 만드는 것이다. 두려움이 곰팡이처럼 자라나지 못하는 곳. 그런 토양을 만드는 데 이 책이 큰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쉬운 책은 아니라서 중학생 쯤에게 알맞다고 생각되지만 초등 고학년에게도 읽히고 싶은 욕심이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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