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맨 동시야 놀자 20
최문현 외 지음, 강은옥 그림 / 비룡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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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시집을 꽤 자주 접하게 하는 편이다. 일단 내가 소장한 동시집이 50권 정도 되어 학급문고의 개방형 서가를 차지하고 있고, 도서실 시집도 가끔 추가해서 활용한다. 아이들은 거부감 없이 시집을 접한다. 시를 싫어하는 아이는 못본 것 같다.^^

 

국어 수업과 연관해서 시집을 읽힐 때는 포인트가 크게 두가지다. 공감 위주인가, 말놀이 중심인가. 그에 따라서 시집 구성이 조금 달라진다. 그 구분에 따른다면 이 책은 후자다. 그런데 어떤 시들에서는 전자도 함께 보인다. 시를 쓰는 어린이가 그것까지 고려하진 않았겠지만 대단하다!

 

나는 사실 전자를 선호한다. <말의 재미> 같은 특별한 단원이 아니면 후자로 감상을 시키는 일은 별로 없다. 교직 초반에 영향을 받은 이오덕 선생님의 책에서 이오덕 선생님이 경계하고 싫어하셨던 시들이 바로 마음이 담기지 않은 말장난 시, 경험 없이 기존의 관념으로만 쓴 시였다.

거울은 바보

나만 따라하니까.

뭐 이런 류의 시들.

 

그러다가, 교과서에 말놀이 단원이 들어오고, 아이들과 수업도 해보고 하니 이런 것도 마냥 배제하기보단 잘 지도하는 게 좋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언어 유희는 센스의 영역이기도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 쓰인다. 예를 들면 라임을 맞추는 랩 가사 같은 것. 잘하면 언어유희에서만 끝나지 않고 진심이 담기거나 신선한 창의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책에서도 그 가능성을 보여줬듯이.

 

어떤 시는 내 눈에 아직도 저 거울은 바보~’ 수준으로 보여서 조금 아쉬운 시도 있었다. 똑같이 지도해도 해마다 아이들의 시 수준이 다른데, 작년 아이들은 무난해서 내 속을 크게 썩인 적이 없는 데에 반해 반짝반짝한 시가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하나마나한 소리만 늘어놓은 시. 그걸 나는 아이들에게 무맛 시라고 우스개소리를 하며 같이 웃기도 했다. 그러다가 서툴러도 느낌 포인트가 살짝이라도 들어간 시가 나오면 바로 이런 거야!” 하고 읽어주며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이 시집에서도 내 관점에서는 무맛 시가 몇 편은 보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정말 살아있고 톡톡 튀거나, 재미있고 기발하거나, 창의적이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시들이 가득 들어있다. 이건 순전히 주관적인 거지만 내 맘에 든 시를 몇 편만 소개하면,

전기 뱀장어라는 시에서 어린이는 자기 형을 전기뱀장어에 비유했다. 건드리면 찌릿찌릿 전기가 올라 아무도 건드리지 않지만, 그래서 외로운 형을 표현한 시이다. 몇 년 전 우리반 아이가 썼던 방의 문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좀처럼 열리지 않는 형의 방문을 표현한 시였는데, 정말 감탄한 기억이 난다. 이 시는 언어유희성은 다른 시들에 비에 좀 약하지만 내 마음에는 들었다.

그때가 좋았어라는 시는 초등학교 때는 유치원때가 좋았어”, 중학교 때는 초등학생 때가 좋았어.” 하고 한단계 전 과거를 좋았다고 회상하는 인생을 담았는데, 마지막 행이 인생은 다 좋은 날이다.”로 긍정적 결론이 난 게 인상적이다. 나라면 좋은 날은 영원히 오지 않는가?”로 할 것 같은데.ㅎㅎ

생각 화석이라는 시도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화석에 대해 배우거나 책을 읽고 쓴 게 아닐까 싶은데, 오랜 시간 딱딱한 암석 속에 잠겨 있는 화석의 특징과 내 생각의 공통점을 찾아 비유한 것이 훌륭하다. ‘언젠가는 암석을 깨서 내가 내 생각을 되찾을 거예요라고 했는데, 이 어린이의 사정은 모르지만 이런 시어가 관념이 아닌 진짜로 진정성에서 나왔다면 정말 휼륭한 시다.


겨우 세 편밖에 얘길 못했는데, 다 쓰자면 끝이 없을 것 같아 여기까지만... 이 시집은 공모에 의해서 모인 다양한 어린이들의 시집이며 공모 주제가 말놀이 동시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분명하다. 어린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만하다. 기성 시인들이 쓴 동시집도 물론 좋지만 어떤 시들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 시들은 정말 딱 어린이들의 눈높이다. 어른이 맞추려고 노력한 눈높이와 저절로 맞춰진 눈높이는 아무래도 조금 다르다. 이 시집을 학급문고 시집코너에 추가하면 금방 인기를 끌게 될 것 같다. 올해는 반짝이는 시어들을 조금 더 캐어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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