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귀신과 도깨비 저학년은 책이 좋아 10
김지원 지음, 안병현 그림 / 잇츠북어린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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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야기의 맛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걸 뭐라 설명할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읽기 좋은 동화가 있는 반면 소리내어 읽어주고 싶게 착착 감기는 동화가 있다. 오랜만에 그런 이야기책을 만났다. 작가의 이름은 다른 책에서 본 듯했는데 동명이인이었나보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시고 첫 동화책이다. 고수 선생님이 또 계셨구나. 부럽다.....

이야기 중의 이야기는 단연 도깨비이야기 아닐까? 도깨비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는 창작 도깨비 이야기라 하겠다. 어느날 대장 도깨비에게 화가 난 이야기 귀신이 찾아와서 호통을 쳤다.
"섣달그믐까지 도깨비 이야기를 찾아 퍼뜨리지 않으면 자네들 목숨줄이 달아날 줄 알게!"
대장 도깨비는 오백년 된 느티나무 아래로 동료들을 소집했다. 재미있는 캐릭터들의 도깨비들이 고루 등장한다. 고민 끝에 그들은 '책 귀신 선생'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는 살았을적 '책만 보는 바보'라고 불린 사람이었다고 한다. 역시 그는 달랐다. 해법을 제시해 주었다. 책을 만들어 퍼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 안의 이야기는? 난감해하는 도깨비들에게 선생은 또 방법을 알려준다.
"처음부터 쉬운 일이 어디 있소? 이제부터 매일 밤 모여 두런두런 자신만의 이야기를 나누어 보시오. 이제껏 보고 들은 일도 좋고, 직접 겪은 일도 좋소!"

이렇게 되어 매일밤 도깨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리하여 이 책은 도깨비 이야기가 된 것이지! "보고 듣고, 직접 겪은 일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모두 글이 되지는 않소. 어떤 이야기는 꾸미고 다듬어야 하오." 라는 선생의 조언에 따라 이야기는 재미를 더해간다. 도깨비들이 들려주는 도깨비 이야기는, 과연?^^

이 책은 입말처럼 들려주기에도 너무 재미난 이야기지만, 한 가지 더 매우 유용한 기능도 있다. 바로 '이야기 창작'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나는 거한 창작 수업을 기획하고 정식 창작물을 만들어낸 적은 없지만 이야기 만들기 수업을 무척 좋아해서 수업에 활용할 책들이 눈에 띄면 매우 반가워하며 모아놓는다. 이 책도 그 바구니에 쏙! 꼭 써먹어볼 참이다.

그보다도 먼저, 읽어주기부터 하고 싶으나..... 코로나19가 장기화되어 다음주부터 온라인 수업이 진행된다. 이걸 하루에 한 장씩 녹음해서 들려줘도 되나? 저작권 때문에 안되나? 제한적으로 된다면 몇 장까지는 되나? 고민이다..... 눈앞에 아이들이 있으면 그냥 읽어주면 되는데 말이다.ㅠ

읽어주기로는 1~3학년까지 적당하고, 이야기만들기 수업에 동기유발이나 길잡이로 쓰려면 고학년에까지 고루 유용할 것 같다. 코로나 블루 중에 모처럼 만난 반가운 책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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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해결사 깜냥 1 - 아파트의 평화를 지켜라! 고양이 해결사 깜냥 1
홍민정 지음, 김재희 그림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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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캐릭터가 새롭게 등장했다. 고양이 깜냥.
"원래 아무거나 안 먹는데"
"원래 일 같은 건 안 하는데"
"원래 혼자 있는거 좋아하는데"
"원래 아무데서나 춤추지 않는데"
깜냥의 요 말습관이 웃음을 자아낸다. 원래 안 한다면서 결국은 하는, 마지못해 하는 듯 하면서 결국은 열심히 하는..... 약간 나랑 닮은 점도 있다.^^;;;;;;;;

원래 아무거나 안먹지만 어떤 맛인지 궁금해서 경비할아버지의 참치캔을 얻어먹고,
원래 일 같은 건 안하지만 참치도 나눠 주셨으니 할아버지 일을 돕고,
원래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형제가 무섭다고 해서 같이 있어주고,
원래 아무데서나 춤추지 않는데 오디션을 앞둔 소녀 앞에서 열정의 춤을 선보인다.^^

원래 무거운 건 못드는데 택배 아저씨의 상자를 들어주고,
원래 아침은 잘 안 먹는데 냄새가 좋아서 토스트를 맛나게 먹는 깜냥.ㅎㅎ 형제들과 소녀는 하룻밤만에 깜냥을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고양이 경비원'

택배 아저씨를 돕는 중에 만난 고양이 혐오 아주머니에겐 당당히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다.
"어떻게 아셨어요? 저 집고양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어디에나 있을 수 있어요. 원래 고양이는 그래요."
의존하고 얽매이지 않으면서 당당히 밥값을 하려는 깜냥의 자존심이 맘에 든다. 아주 자연스레 스며들어 빈 곳을 채워주는 고양이의 밥값. 좁은 틈에도 잘 들어가는 고양이의 유연함과 같다고 할까. 깜냥의 당당함과 독립성은 그가 끌고 다니는 자기 덩치만한 캐리어에서 나타난다. 그 안에 들어있는 건 잠자리, 밥그릇, 그동안 만난 이들이 준 선물과 정표. 그 안에 형제들이 준 쥐 장난감도 소중히 챙겨넣는다. 이런 말을 꼭 하면서.ㅎㅎ
"이제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는 지났지만 어쩔 수 없죠. 원래 선물은 거절하면 안되는 거잖아요."

이제 '고양이 경비원'의 역할을 받아들인 깜냥. 또 어느 구석에서 누구의 삶을 보고 무심히 곁에 있어주며 귀여운 츤데레의 매력을 발산할까. 그러다 언제 또 홀연히 캐리어를 끌고 발 닿는 곳으로 떠나게 될까.

표지에 써진 (1)이라는 숫자를 보고 기뻐하긴 오랜만이다. 2권도 나온다는 거잖아!! 벌써 정이 들어버린 깜냥은 2권에서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기다려진다. 깜냥! 변하지 마. 그때 또 보자.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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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말 마음일까? 이게 정말 시리즈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양지연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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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말 ♡♡일까시리즈 네 번째 권이 나왔네. 요건 당연 소장책이고 4권 구색을 갖춰 놓아야 하기에 바로 구입.... 네 번째는 이게 정말 마음일까.

 

마음이라고 하길래 다양한 감정을 담은 책인 줄 알았다. (요즘 그런 책들이 많이 나와있다.) 그런데 이 책은 여러 가지 마음 중에서 특별히 미움에 대한 책이었다. 알 것 같았다. 왜 그 감정 한 가지에 집중했는지. 미움 한 가지만 다루어도 할 이야기는 너무나 많다. 이것저것 다루었으면 오히려 이도저도 아닌 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시리즈에서 항상 감탄하는 건 요시타케 신스케 님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지? 라는 것이다. 내가 한 번도 안해본 생각이어서가 아니고, '아 맞어 나도 이런 생각 했었는데, 어떻게 이걸 이렇게 표현했지?', '아 그리고 이 재밌는 그림은 뭐냐 정말 딱이네.' 이런 느낌...^^

 

이번 책에서는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다. 퉁퉁 부은 표정으로 터벅터벅 교문을 나서는 장면이 속표지에 나온다.

싫어하는 사람이 생겼어.

그것도 여러 명.”

으아~~ 이제 마음이 지옥의 시작이다. 아이의 머릿속에선 온통 싫어, 싫어, 쟤 싫어... 가 들끓는다. 이제 이 책을 읽는 것은 아이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다. 같이 화가 나기도 하고 웃음도 나고 기발함에 감탄하기도 한다.

 

안 좋은 일이 생긴 날은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

난 지금 내가 주인공인 영화의 가장 가슴아픈 장면을 찍고 있어.

슬픈 일이 생기면 슬픔 점수를 받을 수 있는데

점수가 쌓이면 나중에 갖고 싶은 걸로 바꿔줘.”

요런 상상은 아주 쪼끔 도움이 될 수 있을까?ㅎㅎㅎ

베개에게 노래를 불러줘 볼까?

그러다 그대로 잠드는 것도 좋지.”

요 장면 그림이 너무 귀엽고, 실제 장면이 떠올라 공감이 된다. 내가 쓰는 방법은 아니지만.^^

 

싫은 마음을 소나기에 비유한 장면도 명장면이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같은 걸까?

왜냐하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니까.

비에 젖으면 춥고 온통 축축하게 달라붙고.”

하지만 이런 위안도 할 수 있다.

아무튼 비라면 언젠가 반드시 그치잖아.”

 

싫은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들도 미소를 짓게 한다. 그중에는 누군가의 글에서 보았던 나에게 주는 선물 상자비슷한 것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넣어둔 상자. 좋아하는 간식이라든가, 포근하거나 예쁜 것들. 정도가 심하지 않을 땐 이정도 방법도 먹힐 수 있겠다.^^

 

두 가지 상상이 기발하고 공감되었다. 하나는 싫은 마음을 나한테 착 달라붙어 살아가는 존재라고 상상한 것.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모두에게 크고 작은 그녀석들이 달라붙어 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말이다. 나도 어제 누구 때문에 빡쳤다며 온갖 짜증과 뒷담화를 한 입장에서 이 장면은 진정 섬뜩했다. 아오~ 제발 나한테서 떨어져라.

또 하나는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은 무언가(어떤 괴물)에 조종당하고 있다고 상상하는 거다. 그러니까 그 사람을 보지 말고 그 너머를 보는 거다. 그러면 그 사람을 안 미워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괴물이 날 열받게 하려는 모든 시도를 무력화시키는 거지. 그 괴물이 상심하는 걸 상상해보는 건 아주 통쾌하다.

 

~ 그래서, 이 모든 생각의 과정은 하굣길에 일어난 일이고, 집의 현관문을 열고 다녀왔습니다~!”를 외치며 들어가는 아이의 표정은 한결 밝다. 아이도 알고 있다. 미워하는 마음이 또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그건 그때 또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것.

 

상상에 대한 시각적 표현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아이들과 한 장면만 가지고도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림을 잘 그린다면 이런 것을 하고 싶다. 머릿속에 있는 기발한 생각을 꺼내어 형상화하기. 그게 독자에게 보통 재미를 주는 게 아니라서. 요시타케 신스케 님은 그 방면의 천재다. 시리즈 4권을 함께 꽂아 놓으니 흐뭇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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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친구 샤넌 헤일 친구 그래픽노블
샤넌 헤일 지음, 르윈 팸 그림, 고정아 옮김 / 다산기획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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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넌 헤일 작가의 그래픽 노블. 처음 읽어봤다. 자전적 이야기면서 여학생들의 친구관계를 사실적이고도 세밀하게 완전 근접촬영으로 잡아냈다. 연도를 보니 작가는 40대 후반쯤? 나와 가까운 또래인데 내가 느껴보지 못한 요즘 아이들의 심리를 너무 잘 그려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심리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겠지. 나는 좀 둔탱이고.ㅎㅎ

 

나는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소위 그룹이라는 데 들어가본 적이 없다. 들어가보고 싶어한 적도 없고. 유연하면서도 친밀한 연결고리를 추구했다고 할까. 단짝친구는 있었는데... 물론 그 친구가 나보다 다른 친구와 더 가까워지면 좀 서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던 것 같고, 나만의 친구이길 바라서 좋은 시와 편지를 자주 보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랬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치이고 상처받고 했던 기억은 없다. 왕따라는 말이 그때는 없기도 했지만 지능적으로 누굴 돌려세우고 낄낄대고 괴롭히는 아이들을 보진 못했는데... 물론 소위 날나리라는 애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은 그들끼리의 리그가 있었고 공부하는 애들을 괴롭히진 않았다. 나는 참 운이 좋았던 건가.... 이 책에는 여학생들의 친구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이 대부분 나온다. 요즘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강도? 악의성? 그렇지. 요즘 괴롭힘의 수위는 어른도 놀랄 정도니까... 이책의 이야기 정도는 애교라고 볼 수도 있겠지.

 

샤넌은 빨간머리에, 눈치와 센스도 약간 부족해 보인다. 어릴때부터 함께 놀던 에이드리언을 너무 좋아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에이드리언의 친구 범위는 넓어지고, 샤넌과 단둘이 놀려고 하지 않는다. 젠이라는 예쁘고 우수한 아이가 이끄는 그룹에서 에이드리언은 상위를, 샤넌은 하위를 차지하며 이들 주변의 관계는 다양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5학년이 된 샤넌은 결국 그룹에서 밀려난다.

 

완전히 고립된 샤넌에게 새로운 환경이 펼쳐진다. 5,6학년 혼합 학급에 편성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6학년들에게 눌려 또다른 마음고생을 할 것 같은데, 샤년은 조건없이 선선하게 함께 어울리는 6학년들의 모습에서 신세계를 본다. 눈치보지 않고 주눅들 일 없으니 샤넌의 말과 행동도 훨씬 성장했다. 오히려 젠 쪽에서 부러움을 느끼며 쳐다볼 정도가 되었다. 이건 샤넌의 노력으로 찾아간 길은 아니었으니, 샤넌에게는 행운이라 할 것이다. 막상 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다른 세계가 있는 것이다. 말해줘봤자 모른다. 직접 경험해보기 전에는.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이야기를 꾸미고 놀이를 만들어내는 샤넌의 장기는 세월이 흘러 이 모든 일들을 이렇게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말하자면 샤넌은 혼돈의 사춘기를 지나 작가로 성장한 것이다. 그 전환기가 없었다면 더 오래, 많이 힘들었겠지. 참 다행이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난 아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을 찾았다.

어린 시절에 친구를 사귀고 우정을 키워나가는 일이 특히 힘든 것은 그때는 우리의 세계가 좁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어른이 되며 힘들 때마다 도움을 아끼지 않는 평생의 친구를 여럿 만났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중에도 아직 자신의 그룹을 찾지 못한 친구들이 있겠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린 샤넌처럼 버텨 보세요. 여러분의 세계는 지금 그대로 멈추지 않습니다. 점점 더 크고 넓어집니다. 어린이 여러분은 진짜 친구를 가질 자격이 충분합니다. 진짜 친구는 친절하고, 여러분의 장점과 매력을 잘 알아볼 겁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도 누군가의 진짜 친구가 되어 주세요!”

 

좁은 시야 좁은 경험 안에 갇혀서, 지금 여기서 소외되면 인생의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듯 절박하게 괴로워하는 아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세상은 넓고 친구는 많다. 여러분의 세계는 지금 그대로 멈추지 않습니다. 점점 더 크고 넓어집니다.” 정말 명언이다. 아이들이 약간은 초월한 태도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면 초월한 아이들끼리 눈이 맞기도 하지.ㅎㅎ 누구를 끼울까 누구를 뺄까에 온갖 정신이 팔려있는 아이들이 한심해 보일 것이다. 그때 너는 한 계단을 올라선 거야. , 그 아이들도 언젠가는 너처럼 깨닫게 될 테니 너무 무시하지는 말고, 너는 너의 길을 가면 돼. 고개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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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처방전 노란 잠수함 6
정연철 지음, 김규택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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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소재 자체는 흔한 건데, 흔치 않게 느껴지는 특별한 맛이 있다. 이번 작품의 경우엔 작가의 입담이라고 해야 하나, 청소년을 상대하시는 선생님이시라 그런지 현실대화체가 입에 짝짝 붙는다. 작가의 청소년 소설은 더 그랬는데, 이 책의 어린이와 부모 대화체도 현실감 100이다.

화자인 동준이는 예민하고 소심하고 마음의 불편함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아이다. 그러나 예민이든 소심이든 그건 어른이 붙인 딱지고 어쩌면 그 병도 어른들이 준 것이다. 동준이에게 마음의 평화를 줬다면, 적어도 그냥 내버려두기만 했어도 동준이는 아프지 않았을 테니까.

동준이 엄마를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동화적 재미를 위해 극대화한 캐릭터가 아니다. 수없이 많이 봐왔던 엄마들 중 하나다. 오히려 현실에는 이보다 더 극단적인 엄마들도 많다.

누구에게나 자존심이 중요하다. 문제는 자식을 앞세워 그걸 채우려는 경우다. 자식의 성취를 자신의 성취로 여기고 거기에 목을 맨다. 조력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 자존심의 간판이 된 아이의 심정은 편치 않다. 틀을 잡아 키우는 분재처럼 상당히 왜곡된 방향으로 자라기도 한다. 거짓말을 잘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고 버럭 화를 잘 내거나 남을 깎아내리거나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 이면에 부모의 '자존심'이 있다.

"엄마는 준동이 엄마랑 통화하면서 '축하해' '부러워' '좋겠다' '대단하다" '멋져' 이런 말을 자주 쓴다. 이상한 건 전화를 끊자마자 '잘난 척은' '지겨워' '쯧쯧' '휴' 이런 말을 빼놓지 않고 한다는 거다. 그럴 바에야 아예 통화를 하지 말지, 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엄마들끼리 경쟁하면 좋을 텐데 왜 항상 우리를 가지고 경쟁할까."

표면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준동이 엄마에게 동준이 엄마는 늘 질투심을 느낀다. 그러면서 동준이를 붙들고 너도 할 수 있다며 부추긴다. 근데 그건 격려가 아니라 강요고 엄청난 압박이었다. 동준이는 만년 복통에 시달린다.

비교는 가시적인 것에서 일어나고 그건 주로 회장선거나 각종 대회들이다. 상을 받게 되면 엄마는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고, 남의 자식은 받았는지,내자식보다 좋은 걸 받았는지 그런 거에 눈을 희번덕거린다. 그런 데에 집중하느라 자식을 진심으로 격려하지도 못하고 본심을 다 들키고 만다. 이런 부모들이 실제로 많다. 학교 대회나 발표회는 부모 조력이나 자존심의 대결장이 되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그럴 가능성이 있는 대회를 축소하거나 없애다 보니, 대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몇몇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동기부여할 장치가 없다."며 비판을 하기도 한다.

남을 깎아내리기 좋아하고 결과물을 꼭 비교하고 어떤 궤변을 써서든 본인의 우위를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가 있어서 얄밉기도 하고 일년내내 신경이 쓰였었다. 우연한 기회에 엄마가 얼마나 아이의 성취에 집착하시는지 알게 됐고 아이가 안쓰러워졌다. 엄마가 그러시지 않았다면 아이는 훨씬 너그러웠을까. 난 그랬을 거라 본다.ㅠ

할아버지 제사로 아빠 3남매와 사촌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비교와 질투는 계속된다. 몸이 안좋은 동준이를 보고 할머니는 엄마에게 용하다는 한의원을 추천해준다. 할머니 말이 듣기 싫었던 엄마는 귓등으로 흘려버리는데, 결국 찾아가게 된 한의원에선 그보다 더 듣기 싫은 소릴 듣고 처방전을 받아온다. 얼마나 싫었던지 엄마는 처방전을 짝짝 찢어버리기까지. 아니 근데, 처방전은 이 책의 제목이잖아? '엉터리 처방전' 대체 어떤 처방이길래?^^

진리는 단순한 것에 있지만 단순한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다. 동화에서 보여주는 극적인 변화가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은 계속 두드려야 한다. 이 책은 그럴 용기를 준다.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이자면, 나는 이 책에서 애착인형에 대한 동준이의 사랑 대목에서 가장 마음이 먹먹했다. 애완동물도 아닌 인형을. 그것도 4학년이나 된 아이가. 근데 그건 어른의 생각이다. 재작년에 4학년 담임을 할 때 한 아이도 이와 비슷한 고백을 했었다. 심리적 문제를 많이 겪던 아이였다. 이런 면도 있다는 것을 부모들도 알고 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주인공들의 학년인 4학년에 가장 적당하지만 저학년 부모님들에게 더욱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동준이와 애착인형(토리)과의 장면을 적어보며 마치겠다.

"진짜 토리를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토리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갑자기 품속에 있던 토리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목이 터져라 토리를 불렀지만 토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지막 인사였을까? 문득 언제까지 토리를 애타게 기다릴 수는 없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순간 눈을 떴다. 눈가에 물기가 촉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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