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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생 날씨, 차차 맑음 ㅣ 쓰는 존재 2
이의진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0년 4월
평점 :
이의진 선생님을 알게된 건 페이스북에서였다. 작가가 아닌 동료로서였다. 아마도 같은 교원단체에 속해있고, 그룹 페이지에서 그녀의 글을 보거나 같은 글에 댓글을 달다가 눈이 맞았던(?) 것 같다. 아니 그냥 내가 팬이 되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매우 드물게 내가 페친 신청을 했던 것 같다.
그녀는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고3 담임이었다. 딸의 입시를 치른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딸을 위해 노력해주신 고3 선생님의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는데, 선생들은 아무 도움이 안된다는 식의 세간의 인식과 그걸 조장하는 기사들에 상처를 받던 중이었다. 고3 담임으로서의 숨막히는 하루를 그려냈던 그녀의 글에 나는 댓글을 달았었다. 딸의 담임선생님을 생각하며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고....
내가 그녀를 좋아하게 된 건 그녀가 투철한 직업인이었기 때문이다. 태생이 게으르지만 월급값 정신 때문에 발버둥치는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내외적으로 일복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딱히 무슨 욕심이 있어서도 아니고 주어진 일을 거절 못하고 파묻혀 하다보면 어느새 먼동이 터오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미덥고 존경스럽다. 그런 그녀에게 숨쉴 구멍이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글'이었다. 페북에 올라오는 그녀의 글은 일상이 그냥 에세이였다. 나는 솔직히 나랑 같은 직업인 교사이면서 동시에 작가인 사람들이 부럽다 못해 살짝 배가 아프기까지 한데, 이분한테는 '그냥 작가시네' 이런 생각이 절로 들곤 했다. '국문과 나오셔서 확실히 달라' 이런 생각이 따라붙기도 했지만.ㅋ
그녀의 입담도 입담이지만, 인생의 여정 자체가 흥미(?)로웠다. 파란만장했다는 표현이 맞겠지. 희로애락이 잘 버무려진 그녀의 인생 이야기는 정해진 길만 따라 살아온 내게는 재미있는 소재였다. 정작 본인은 얼마나 힘드셨을까만, 보는 사람에게는 다이나믹이니까. 근데 그게 다가 아니다. 그녀는 감정을 증폭시키기보다는 절제하는 어법을 썼다. 감정의 광풍 속에서 소리를 지르기보다는 조용하고 단호한 말을 내뱉거나 심지어 농담을 던졌다. 그게 의진쌤 글의 힘이었다. 독자들은 다음 글이 언제 올라오냐 열광했지만 한편으론 글 속에서 단정한 사유를 건져올리곤 했다.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조용히 빠르게 구매버튼을 눌렀다. 읽다보니 다 기억이 났다. 푸하하 웃었던 기억, 토막내서 올린 글을 읽다가 감질났던 기억, 이를 어째 걱정했던 기억.... 그 기억들이 한 권에 다 담겼으니 어찌 소중하지 않을까. '날씨'로 표현된 표제와 소제목들도 의미심장했다. 구매하기 전 이 제목들을 보고 시간순 구성인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다.
월요일 맑았다 차차 흐림,
화요일 구름 많음,
수요일 종일 비,
목요일 미세먼지 없이 맑음,
금요일 흐렸다 차차 맑음
인생 전체로도 어떤 방향성이 있긴 하겠지만 보통 인생의 날씨는 한치 앞을 모르는 불확실성이며 시시각각 바뀐다. 다만, 태풍이 올지라도 종국에는 '차차 맑음' 일거라는 믿음이 우리에게 버틸 힘과 희망을 준다. 마지막 에세이의 제목이 '존버 정신'인 것은 어쩌면 그런 이유인가.^^
결혼 전에는 철저히 엄마한테, 결혼 후에도 남편에게 시부모님에게 형제에게 동료에게 심지어 자식에게도 의지하는 마음 한자락 걸치고 살았던 나와는 달리 의진쌤은 참 독립적인 사람이었다. 스스로 벌어서 학교를 다녔고, 진학을 포기하고 취직을 했을 때도, 결혼을 하고 낯선 곳에 터전을 잡았을 때도, 일하며 아이들을 키울 때도, 막다른 곳에서 임용을 준비할 때도, 십수번의 이사를 하고 학교에선 남들 기피하는 업무를 맡아서 할 때도 그녀는 꼿꼿했다. 순수하지만 멍청하지 않다. 인류애가 있지만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아닌' 사람에게선 뒤돌아보지 말고 도망치라는 [여자가 맞을 짓을 했겠지]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진 말자]를 읽고 광명을 찾을 이들이 많다고 믿는다. 세상에 몹쓸 것들이 존재하는 건 슬프지만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런 것들과 뒹굴면서 불행해질 필요가! 내 행복은 내가 지켜야 한다. 또 같잖은 상사, 미팅남 등을 엿먹이는 얘기에서도 웃음을 넘어 배울 게 있다. 내가 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그게 자존심이다.
또 나는 의진쌤 글에서 '예의'를 배운다. 첫째는 인간(혹은 만물)에 대한 예의다. [이 무례들을 어쩔 건가]는 드물게 유머가 빠지고 대신 분노가 차 있는 글이다. 남의 취향과 방식을 무시하고 강제하는 사람들, 배제, 차별, 혐오를 아무렇지도 않게 표출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이 글에 동의의 한 표를 누른다. 둘째는 인생에 대한 예의다. [그녀들의 책상엔 가족사진이 없다]에 나오는 옛 직장 상사에게 의진쌤의 모습이 투영된다.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건 미련한 것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예의라고 나는 믿는다. [벚꽃이 다시 필 때까지]에서 깊은 좌절 끝에 끌어올린 삶에 대한 애착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페북을 보니 책이 출간되어도 어떤 액션을 취할 겨를이 없을 만큼 의진쌤은 또 일상에 바쁘다. 성실과 최선 끝에 숨으로 뿜어낸 그녀의 글이 귀하다. 두번째 책은 교육 에세이여도 좋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해보는데, 남의 인생에 참견은 금물이므로 그냥 어떤 책이라도 좋겠다(아참, 소설이어도)는 마음으로 기다려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