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이의 수학여행 - 권재원 교육소설 함께교육 5
권재원 지음 / 서유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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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손에 안 잡힌 지가 석달이나 됐다. 오랜만에 6학년을 맡을 것이 예상되어 학급운영이나 수업에 대한 책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지워가며 읽어대던 중에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졌다. 지금까지 읽던 책들은 접어두고, 준비해오던 3월 활동도 일단 미뤄두어야 했다. 교실이 열리지 않으니 말이다..... 그 상태로 전전긍긍하다 석달이 지나간다. 동화책 한 권쯤은 평일 밤에도 읽었었는데 그걸 주말에 읽기도 힘들 정도로 집중이 안 됐다. 모든 건 마음에 달린 일인가.... 불확실함과 불안은 독서의 효율마저도 떨어뜨린다. 난 지금도 불안하다.

그런데, 이 책을 말 그대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치우고 말았다. 퇴근 후 저녁을 차려서 먹고, 치우고, 수박을 잘라 먹으며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고, 씻고 머리를 말린 후에 밤이 되어서야 잡은 책이었다. 내일이 출근이라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중간에 끊지 못하고 끝까지 읽은 후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교육소설이라고 한다. 교육소설 맞다. 근데 이렇게 뭔가 규정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러니까 “선생님이라면 보세요.” 라든가 “자녀교육에 고민하는 학부모님들 보세요.” 이런 말을 굳이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고민이 들어있다. 꽤 깊은. 해법은 딱히 있지 않다. 있다면 근원적인 원론일 것이다. 그 고민에 공감하는 것으로도 이 소설은 가치가 있다. 난 깊이 공감했기에 내겐 가치가 있는 책이 됐다.

이 책의 화자는 권오석 선생님이다. 작가와 연령대도 같고 성도 같고 살아온 이력도 거의 같으며 성격이나 취향도 같다. (그러고보니 페이스북에서 작가가 개인 이야기를 꽤 많이 해주셨던가보다.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내가 알고 있을 정도니^^) 그러다보니 작가의 자전소설로 착각하며 읽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소설이 끝나자마자 “여러분, 이거 거짓말인 거 아시죠?”라며 독자의 착각을 톡톡 두드려 준다. 그렇겠다. 소설은 허구니까. 하지만 모티프는 작가의 경험에서 가져왔으며 주제는 작가의 마음 속에 담긴 말이 아니겠는가? 자전소설로 읽어도 큰 차이가 없을 만큼 그의 교직 인생이 담긴 이야기라 느껴진다.

도입처럼 느껴지는 첫 단편은 「나미 엄마」였다. 대치동의 아파트에서 날마다 딸과의 고성 싸움으로 예민한 권교사의 수면을 방해한 그녀는 놀랍게도 권교사 저서들(교육관련)의 애독자였다. 그 책을 밑줄치며 읽는 엄마는 누구이고 뼈골이 빠지게 사교육 뒷바라지를 하며 고래고래 애를 잡다 못해 비명과 울음까지 터뜨리는 엄마는 누구인가? 동일인이다. 이런 아이러니는 웃을 수만은 없는, 그렇다 웃픈, 현실이다.

두 번째 작품은 제목이 자극적(?)이다.「풍기문란 기간제 교사」이건 주인공의 젊은 시절 이야기다. 주인공은 기간제 교사였던 게 아니고 였을‘뻔’ 했었다. 아주 풍기문란한 기간제 교사가. 그 사연 안에 갖가지 것들이 들어있다. 사립학교 채용의 문제점 뿐 아니라 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의 거취 문제, 그들의 신념과 현실의 괴리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까지. 주인공의(어쩌면 작가의) 한계와 이중성까지도 숨기지 않았다. 비난할 생각이 없다. 나는 훨씬 더하니까. 나는 그와 동시대인이지만 운동권도 아니었고 극렬좌파도 아니었기에 그 이중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을 뿐. 모두가 주인되는 세상을 위해서 산다,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해 산다, 이런 구호마저도 허무하게 느껴질 만큼 나는 기운이 빠졌고 회의감도 심하다. 그냥 쥐꼬리만한 양심이나 지키고 살기도 힘들다. 때로는 화려한 구호 속에 잠겼던 이들의 양심이 나보다도 못한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럼 또 다짐한다. 거창한 생각 말고 월급값이나 하면서 살자....ㅠ

두 번째 작품의 사유는 세 번째 작품으로 이어진다. 「노동자가 되기 싫어서, 노동자가 되고 싶어서」 권교사의 운동권 학창시절, 그를 따르던 동생은 현장 노동자였다. 하나가 된 듯 함께 뒹굴었지만 과연 그들은 하나였을까? 그는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노동자가 되기’ 싫다고 했다. 중년이 된 권교사는 어떤 학생을 만난 후 오래된 그 기억을 떠올린다. 그 학생은 기술을 다루는 특성화고에 가고 싶어했다. 말하자면 ‘노동자가 되고’ 싶어한 것인데, 그 열망은 성적이 부족하여 좌절되었다. 권교사의 마음속에 이 두 사람이 엮인다. 여러 상념들이 떠오른다. 그의 입에서 거의 들어보지 못한 말이 던져진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어떤 명쾌한 분석보다도 더 마음에 와닿는 말. 모르겠다는 말. 다만 그 학생이 첫 번째 과정에서 좌절했더라도 꿈을 이룰 수는 있기를 바란다.

표제작인「명진이의 수학여행」은 정말 표제작다운 작품이다. 마음이 먹먹해서 읽기 힘들었다. 사랑이 넘치는 교사가 아니라도 아이의 상황 앞에서 눈물이 흘러넘칠 때가 있다. 난 아이들과 사적인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은 절대 사양이고, 졸업하고 찾아오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메마른 교사인데도, 가슴이 무너질 때가 있단 말이다. 그건 책임감일까 모성애의 또다른 발현일까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아이들은 간혹 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나처럼 메마른 교사도 그러한데 다른 샘들은 오죽하랴. 모든 직종이 힘들지만 교사들이 이런 이유로 힘들다고 하면 개소리하고 있네 라며 코웃음치지 말고 그럴 때도 있겠구나 하고 고개 한 번 끄덕여주면 안될까.

너무 똑똑하고 당돌한 나머지 내 수업을 무시하나 싶은 명진이를 받아들여주는 것은 권교사니까 가능했을 것 같기도 하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하니까.ㅎㅎ 학생 앞에서 자격지심을 느끼면 그건 참 피차 힘든 상황인데.... 나같은 평범한 둔재 교사는 꽤나 마음고생을 했을 것 같지만 천재교사 권교사는 그걸 초월하니 명진이의 문제가 보였다. 그것은 침몰이었다.

사회적인 침몰과 신체적인 침몰.... 두가지가 함께 찾아온 명진이는 참혹했다. 그 앞에서 자신의 무기력에 분노하는 권교사... 그러나 작은 기적은 있었다. 명진이가 사회적 침몰에서 구조된 건, 권교사의 무심한 사려깊음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대 해결 안되는 어려운 상황도 현장에는 많다. 다만, 아이들이 ‘아픔을 느낄 줄 아는 인간’이었다는 점이 명진이와 그들을 구원했다. (안타깝지만 그것도 안되는 인간들도 가끔 존재한다...ㅠ)

“다만 알지 못할 뿐이다. 얼마나 괴로운지. 얼마나 힘든지 알지 못할 뿐이다. 설사 들어서 알고 있다 하더라도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 고통을 알고, 그 고통을 같이 느끼면 아이들은 천사가 된다. 고통은 아이들을 천사로 만든다.” (137쪽)
“도덕으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올바르다는 것을 알아도, 느끼지 못한다면 사람은 결코 선해질 수 없다. 그리고 그 느낌은 고통을 함께 겪지 않고 그 고통에 죄책감과 후회를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141쪽)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간신히 극적으로 침몰을 면했다. 그건 최악의 또다른 침몰의 상황 때문이었으니, 일반적인 상황에서 스스로 돌아보고 성찰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ㅠㅠ 명진이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시계는 흩어지는 벚꽃 그림자로 물든 숫자를 보여 주었다.
4월 16일.”
교사들의 마음속에 트라우마로 남은 날. 우리는 아이들을 침몰에서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인가. 그때나. 지금이나.ㅠㅠ

「애국 소년단」은 중년이 된 권교사의 제자, 권교사의 어린 시절이 교차되어 나온다. 둘의 공통점은 정의감에 고양되어 있으나 그게 실상은 가당치 않다는 점이다. 아는 건 많은데 시야가 좁으면 그렇게 된다. 제자에게 건넨 권교사의 일갈에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눈을 감고 그 부끄러움을 느끼는 제자에게는 희망이 있다. 물론 이미 저지른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져야 하지만.

마지막「자전거 도둑」 박완서 작가의 장편과 같은 제목인 이 작품에는 아주 황당한 중1 소년의 이야기가 담겼다. 작고 귀여운데 섬뜩한.... 이 아이의 섬뜩함은 누가 만들었는가? 교사는 거기서 아이를 건져줄 수 있는가?

지금까지 이야기의 기승전결은 거침없이 진행되어왔다. 한 편 한 편 내에서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도.... 명진이의 수학여행이 절정이라면, 이 작품은 결말을 내야 한다. 아 그런데 이 작품의 마지막은 그냥 무력하고 냉정한 현실이었다. 이렇게 똑똑하고 멋진 권교사가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다니?
“하지만 정말 더 이상의 이야기가 없다. 나한테는 이런 아이를 끈기 있게 가르치고 이끌어서 세상을 알게 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나한테는 TV나 영화에 자주 나오는 ”선생님이 저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어요.“ 따위의 눈물겨운 일화가 없다. 물론 나도 그런 일화 몇 개쯤은 만들고 싶었다. 선생이라면 누군들 그런 생각이 없을까? 하지만 28년이나 선생질 하고서 창작물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만 깨달았을 뿐이다.”

권교사는 왜 이처럼 허무해보이는 차디찬 말로 결말을 맺었을까? 나는 이 책의 마지막 문단에 답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해석은 독자 마음대로니까. 소수의 리그와 그에 맹렬히 집착하는 사회에서 교사 개인에게 주어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나의 짐작보다 이 책은 여렸다. 누굴 꾸짖거나 호령하지 않았다. 심지어 훈계조차도 하지 않았다.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 주장하지도 않았다. 그냥 나랑 비슷한 경력인 교사의, 그가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피할수 없는 학교의 일상을 보여줬을 뿐이다. 잊을 수 없는 구절이 있다. 뜬금없다고 할 것이다.
"가슴이 따뜻하게 떨렸다." (134쪽)

이 대목이었다. 나는 이 느낌을 안다. 일년에 한번이라도 이 느낌이 모든 고생을 위로한다.
오늘은 모든 샘들께 이 느낌을 공유하고 싶다.(내가 뭐라고ㅎㅎ) 솔직히 내가 가장 바라는 건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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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 20년간 우울증과 동행해온 사람의 치유 여정이 담긴 책
고요 지음 / 인디고(글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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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부터 이 책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고요 작가의 글을 처음 읽은 건 페이스북에서. 이미 떠난 친구를 보내는 애절한 글에서였다.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아름다운 친구를 이제 놓아주던 날. 아주 구체적으로 쓰진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사연을 짐작하고 나는 먹먹해졌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 마음을 수습하고 떠나보내는 마음은 또 어떠할까. 이 젊은 친구의 삶의 굴곡을 나는 넘겨짚을 수나 있을까.

이후로 올라오는 그녀의 글에서 조금씩 퍼즐을 맞춰갔다. 우울증으로 오래 힘들었구나. 사직까지 했었구나. 배낭여행길에서의 버스사고였구나 친구를 잃었던 것은. 살아남았지만 오래 고통을 겪었겠구나.

그리고 참 대단하다 생각했다. 망가진 심신을 추스르고 순례길을 떠난 일. 직면을 위해 사고 현장을 다시 찾아갔던 일.(그곳은 머나먼 라오스였다) 긴 공백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험을 봐서 그 어려운 임용에 합격한 일. 교직의 사소한 일상들이 올라올 때 반갑고 기뻤다. 한번은.... 기억난다, 사고 때 크게 다쳤던 오른손 때문에 리코더 구멍을 완벽히 막을 수 없었던 날 썼던 글. 하지만 그날의 글에도 절망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고요 작가는 그렇게 단단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 책을 써나갔다.

책을 읽으니 그동안 엉성히 맞췄던 퍼즐에 그림들이 채워졌다. 깊었던 우울증만큼 잘해야 한다는 강박도 강했던 작가는 그래서 더욱 고통에 이를 악물었을 것 같다. 하루하루 한시간 한시간 부서져라 이를 악물고 손톱이 파고들도록 주먹을 쥐어야 했던 작가의 고통이 전해져왔다. 아침에 깨니 검사를 위해 가져왔던 공책들은 널부러져있고 밤새 형광등은 환하게 켜져 있으며 잠은 잔 것 같지도 않고 허둥지둥 나서는 발걸음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이 대목은 내 첫담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도 그때 남들이 느낀다는 첫사랑(첫담임 아이들에 대한 애착)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하루하루가 힘들었었다. 어쩌면 그때 가벼운 우울증을 앓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질병이다. 작가에겐 된통 찾아왔을 뿐이다.

작가는 집필 초반에 '오늘도 자살을 생각한 너에게'라는 가제를 세웠던 것 같다. 결국 책 제목이 되지는 못했지만, 프롤로그의 소제목이 되었다.
안녕.
오늘도 울었니.

나지막히 시작한 프롤로그는

아파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널 미워하지 마.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넌 너의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버텨낸 거야.

그러니까 우리 조금만 더 이 순간들을 견뎌내자.
우리, 꼭 살아남자.
꼭 살아내자.
아팠던 이 시간들이 의미를 찾는 날이
분명히 올 거야.

이렇게 먼저 아픔을 겪은 이의 힘있는 호소로 이어진다. 프롤로그를 보고 그래, 한 번 읽어보자 마음먹는 독자들이 많길. 그리고 회복의 가능성을 믿고 힘내어 도전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작가는 나보다 훨씬 젊지만, 많이 살았다고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니기에 난 이 책에서 간접적으로 많은 경험을 했다. 사고의 현장, 버스 밑에 깔린 끔찍한 몇 시간동안 자신을 짓누르는 버스의 무게 밑에서 지나갔던 수많은 생각과 느낌들. 육신의 고통에 비해 마음에 겪었던 고통이 절대 작은 것이 아니었다는 자각, 그토록 죽고 싶어했으면서도 그순간 차오르는 생존에의 본능. 그런 것들이 생생하게 전해지면서 삶이란 참 단순한 것이 아니구나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그리고 길떠남의 미학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내가 그리 아팠다면, 나는 길을 떠날 용기를 냈을까? 다행히 나는 아프지 않았지만 아팠더라도 절대 길을 떠나지 못하고 주저앉았을 것이다. 나는 '길떠남'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작가가 나보다 젊지만 더 많은 경험을 가진 건 그때문이 아닐까 싶다. 용기내어 떠난 길에서 그녀는 만났고 깨달았다. 아픔을 안고 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고 자신이 받은 (신에게서, 사람들에게서) 사랑들을. 그리고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이렇게 책이 되어 나왔다. 난 그래서 개인적으로 7장 [살아간다는 건 나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이 부분이 이 책의 절정이라 느껴졌다. '길떠남'이 담겨 있는 장이다. 물론 길떠남이란 문자 그대로의 '길'만은 아닐 것이니 꼭 여행길에 올라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작가도 독자도, 대부분의 삶은 일상으로 채워야 한다. 독자는 물론이요 이 모든 터널을 통과해온 작가조차도 일상이 늘 평화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때때로의 풍파도 지나가길 기다릴 수 있는 힘을 이 책이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가와 독자의 연결을 통해.

저자의 앞길에 진심의 기도를 담아 이토록 응원하는 박수를 보내기는 20년 전 <지선아, 사랑해>이후 처음인 것 같다. 감당할 수 없는 육신의 고통을 딛고 남을 도울 수 있는 전문인의 길을 가기까지 지선 씨의 행보에 감격하고 응원했던 기억이 오랜만에 떠올랐다. 고요 씨는 육체적 고통 외에 삶을 찍어누르는 마음의 병과도 싸우며 지금까지 왔다. 그의 고통의 경험이 한사람에게라도 희망을 주길 바라며 이 책을 썼다. 한 사람이 아니라 고요 씨가 상상한 이상으로 많을거라 나는 믿는다. 누구든 자신의 마음을 봐달라고, 이 아픔을 어떻게 좀 해야겠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사주고 싶다. 작가가 내민 손을 잡고 그 작은 손아귀의 힘을 느끼도록 안내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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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힘 - 상처받지 않고 행복해지는
레이먼드 조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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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으로는 절대 읽지 않았을 책 한 권을 읽었다. 책모임 선정 책이었다.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제목부터 알려주는 책이다. 내용이 뻔할 것 같아서 썩 내키지는 않았다. 생각대로 초반은 뻔하고 선뜻 동의도 되지 않았다.

관계가 중요한 것은 나도 안다. 근데 그게 중요하다고 거기에 주목하고 거기에 촛점을 맞추면 그것이 어그러질 수가 있다. 엄청난 아이러니인데 그게 그렇다. 여기선 '쿨함'을 꾸짖는데 괜히 쿨한게 아니다. 집착은 왜곡을 낳기 때문에 한 발 떨어지는 거다. 그게 쿨함이다.

여기서 괴짜이자 멘토로 나오는 조이사가 주인공 격인 신팀장에게 준 5개의 법칙이 나온다. 관심, 먼저 다가가기, 공감, 진실한 칭찬, 웃음.
글쎄, 틀린 건 아닌데 이렇게 단어로 나열된 것을 보니 인생의 다이제스트판 같아서 별로 마음이 움직이질 않는다. 내가 저걸 받는다고 생각해볼 때 무조건 좋을 것인가 생각해보면 대답은 No이기 때문이다. 관종 아닌 사람은 없다. 그래서 페북에 남 보라고 글을 쓰고 댓글이 올라오면 화들짝 읽어보고 하는 것 아니겠나? 하지만 모든 이의 관심을 바라는 건 아니다. 누군가 저 법칙을 염두에 두고 나를 대한다면 나는 사양하겠다.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

열심이 본질을 망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교육도 그러한데, 소위 아이들을 사랑한다며 온갖 일을 벌이고 자신의 직업적 책임 이상의 관계를 추구하는 교사 중에 왜곡된 사람들이 가끔 있다. 나는 이 책에 자주 나오는 '관계 지향' 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아주 싫어한다. 그보다는 월급값이란 말을 좋아한다. 가장 높이 사는 말은 책임이다. 그 아래에 관계도 있다고 생각한다. 관계는 소중하다. 하지만 그 자체에 너무 열심을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끝까지 읽어보니 뻔하긴 해도 전체 줄기에 동의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가장 소중한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100년도 더 전에 톨스토이가 남긴 작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주제와도 같다. 가장 소중한 가치는 사랑이다. 사람 사이의 사랑과 신의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신팀장은 원더랜드라는 완구회사의 기획팀장이었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친척들의 배신으로 상처많은 청년기를 보냈다. 인간에 대한 불신과 성공에 대한 야망으로 똘똘 뭉친 그를 창업자인 조이사가 알아보았고, 주식 위임장에 대한 줄다리기로 게임같은 줄다리기를 이어가며 둘의 관계는 깊어간다. 거기에는 조이사의 깊은 의도가 있었다. 결국 신팀장은 죽은 조이사의 편지를 읽으며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굴복한다. 그가 바로 '친구'였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을 너무 쉽게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맥 관리'란 말은 참 싫은 말이다. 하지만 좀더 신경썼다면, 한번 돌아봤더라면 이어질 수 있는 인연을 그냥 떠나보내는 것도 아쉬운 일이다. 이렇게 함께 책을 읽자고 하고, 그걸로 모일 수 있고 그 만남에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건 참 행운이고 감사한 일이다. 그 만남을 소중히 가꿀 필요도 있다는 걸 새삼 생각하게 됐다.

아주 사소하지만 관계맺기의 디테일에선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회식, 산행 등의 친목모임에 대해서다. 나는 올해 우리 부서 중간관리자에게 "나는 일은 열심히 하겠으나 회식은 싫어하니 강요하지 말라."고 못박았다. 내가 항상 그래왔던 것은 아니고 올해는 모종의 낌새가 보여서 선수를 친 것이다. 회식, 팀웍행사, 그런 것에 담긴 부작용 또한 많다. 진정한 팀웍은 함께 일하면서 생기는 것이다. 이 책 후반부 기획팀의 눈물나는 팀웍 또한 회식과 2차로 생긴 것이 아니다. 좋은 목표를 가지고 함께 노력하면 팀웍은 생긴다.

위의 사례는 아주 지엽적인 부분이고, 전체적으로 이 책의 생각에 공감한다. 관계를 넓히려는 노력을 따로 하진 않겠다. 누군가가 그런 의도로 살피는 눈길이 나에게 닿는다면 불쾌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곁에 있는, 있을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겠다고 결심한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그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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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생 날씨, 차차 맑음 쓰는 존재 2
이의진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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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진 선생님을 알게된 건 페이스북에서였다. 작가가 아닌 동료로서였다. 아마도 같은 교원단체에 속해있고, 그룹 페이지에서 그녀의 글을 보거나 같은 글에 댓글을 달다가 눈이 맞았던(?) 것 같다. 아니 그냥 내가 팬이 되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매우 드물게 내가 페친 신청을 했던 것 같다.

그녀는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고3 담임이었다. 딸의 입시를 치른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딸을 위해 노력해주신 고3 선생님의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는데, 선생들은 아무 도움이 안된다는 식의 세간의 인식과 그걸 조장하는 기사들에 상처를 받던 중이었다. 고3 담임으로서의 숨막히는 하루를 그려냈던 그녀의 글에 나는 댓글을 달았었다. 딸의 담임선생님을 생각하며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고....

내가 그녀를 좋아하게 된 건 그녀가 투철한 직업인이었기 때문이다. 태생이 게으르지만 월급값 정신 때문에 발버둥치는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내외적으로 일복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딱히 무슨 욕심이 있어서도 아니고 주어진 일을 거절 못하고 파묻혀 하다보면 어느새 먼동이 터오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미덥고 존경스럽다. 그런 그녀에게 숨쉴 구멍이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글'이었다. 페북에 올라오는 그녀의 글은 일상이 그냥 에세이였다. 나는 솔직히 나랑 같은 직업인 교사이면서 동시에 작가인 사람들이 부럽다 못해 살짝 배가 아프기까지 한데, 이분한테는 '그냥 작가시네' 이런 생각이 절로 들곤 했다. '국문과 나오셔서 확실히 달라' 이런 생각이 따라붙기도 했지만.ㅋ

그녀의 입담도 입담이지만, 인생의 여정 자체가 흥미(?)로웠다. 파란만장했다는 표현이 맞겠지. 희로애락이 잘 버무려진 그녀의 인생 이야기는 정해진 길만 따라 살아온 내게는 재미있는 소재였다. 정작 본인은 얼마나 힘드셨을까만, 보는 사람에게는 다이나믹이니까. 근데 그게 다가 아니다. 그녀는 감정을 증폭시키기보다는 절제하는 어법을 썼다. 감정의 광풍 속에서 소리를 지르기보다는 조용하고 단호한 말을 내뱉거나 심지어 농담을 던졌다. 그게 의진쌤 글의 힘이었다. 독자들은 다음 글이 언제 올라오냐 열광했지만 한편으론 글 속에서 단정한 사유를 건져올리곤 했다.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조용히 빠르게 구매버튼을 눌렀다. 읽다보니 다 기억이 났다. 푸하하 웃었던 기억, 토막내서 올린 글을 읽다가 감질났던 기억, 이를 어째 걱정했던 기억.... 그 기억들이 한 권에 다 담겼으니 어찌 소중하지 않을까. '날씨'로 표현된 표제와 소제목들도 의미심장했다. 구매하기 전 이 제목들을 보고 시간순 구성인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다.
월요일 맑았다 차차 흐림,
화요일 구름 많음,
수요일 종일 비,
목요일 미세먼지 없이 맑음,
금요일 흐렸다 차차 맑음
인생 전체로도 어떤 방향성이 있긴 하겠지만 보통 인생의 날씨는 한치 앞을 모르는 불확실성이며 시시각각 바뀐다. 다만, 태풍이 올지라도 종국에는 '차차 맑음' 일거라는 믿음이 우리에게 버틸 힘과 희망을 준다. 마지막 에세이의 제목이 '존버 정신'인 것은 어쩌면 그런 이유인가.^^

결혼 전에는 철저히 엄마한테, 결혼 후에도 남편에게 시부모님에게 형제에게 동료에게 심지어 자식에게도 의지하는 마음 한자락 걸치고 살았던 나와는 달리 의진쌤은 참 독립적인 사람이었다. 스스로 벌어서 학교를 다녔고, 진학을 포기하고 취직을 했을 때도, 결혼을 하고 낯선 곳에 터전을 잡았을 때도, 일하며 아이들을 키울 때도, 막다른 곳에서 임용을 준비할 때도, 십수번의 이사를 하고 학교에선 남들 기피하는 업무를 맡아서 할 때도 그녀는 꼿꼿했다. 순수하지만 멍청하지 않다. 인류애가 있지만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아닌' 사람에게선 뒤돌아보지 말고 도망치라는 [여자가 맞을 짓을 했겠지]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진 말자]를 읽고 광명을 찾을 이들이 많다고 믿는다. 세상에 몹쓸 것들이 존재하는 건 슬프지만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런 것들과 뒹굴면서 불행해질 필요가! 내 행복은 내가 지켜야 한다. 또 같잖은 상사, 미팅남 등을 엿먹이는 얘기에서도 웃음을 넘어 배울 게 있다. 내가 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그게 자존심이다.

또 나는 의진쌤 글에서 '예의'를 배운다. 첫째는 인간(혹은 만물)에 대한 예의다. [이 무례들을 어쩔 건가]는 드물게 유머가 빠지고 대신 분노가 차 있는 글이다. 남의 취향과 방식을 무시하고 강제하는 사람들, 배제, 차별, 혐오를 아무렇지도 않게 표출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이 글에 동의의 한 표를 누른다. 둘째는 인생에 대한 예의다. [그녀들의 책상엔 가족사진이 없다]에 나오는 옛 직장 상사에게 의진쌤의 모습이 투영된다.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건 미련한 것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예의라고 나는 믿는다. [벚꽃이 다시 필 때까지]에서 깊은 좌절 끝에 끌어올린 삶에 대한 애착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페북을 보니 책이 출간되어도 어떤 액션을 취할 겨를이 없을 만큼 의진쌤은 또 일상에 바쁘다. 성실과 최선 끝에 숨으로 뿜어낸 그녀의 글이 귀하다. 두번째 책은 교육 에세이여도 좋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해보는데, 남의 인생에 참견은 금물이므로 그냥 어떤 책이라도 좋겠다(아참, 소설이어도)는 마음으로 기다려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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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게이미피케이션 - 가르치지 말고 플레이하라
김상균 외 지음 / 테크빌교육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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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입한지 한달이나 지났다. 그동안 몇번이나 손에 잡았다 놓기를 반복했다. 그건 짐작할 수 있듯이 아이들을 만날 수 없는 요즘의 상황 때문이다. 휴업이 계속 연장되고,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정신은 극도로 피곤하면서 우왕좌왕 일은 계속 엎어지고, 실제 이루어지는 일은 별로 없으니 무엇에도 몰입이 안되었다. 아이들과 부대끼며 활동하는 수업 이야기는 더더욱 현실감이 없었다.

온라인개학을 했다. 원격으로 안내해야 하는 수업은 만드는 데 몇 배의 시간이 든다. 계획을 짜고 안내하고 자료를 찾고 활동을 구성하고 다음날의 수업을 온라인클래스에 올려놓고 검토하고 실험작동하기까지, 숨막히는 시간들이 순식간에 흘러간다. 콜센터 + 사무직 + 교사를 합한 새로운 직장에 취직한 느낌이다. 하지만 마음은 차라리 편해졌다. 어쨌든 시작을 했으니까.

그리고나니 책도 조금은 눈에 들어온다. (아직도 예전같지는 않다) 교실 게이미피케이션. 관심이 가는 분야다. 나의 최고급 인맥(?)이라 여기는 한 후배를 통해서 가끔 전해들은 주제이며, 수업자료를 얻어보고 귀퉁이나마 조금 맛을 보기도 했던 분야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굉장히 취약하고 한계가 많은 분야다. 일단 '게임' 자체를 나는 좋아하지 않고, '승부욕'이 제로여서 그런 식의 동기유발이 나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 의하면 게이미피케이션은 단순한 동기유발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수업 전체에 도전의식과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랄까. 그것은 친구를 이기는 개인적인 승리보다도 함께 미션을 달성할 때 더 역동적이 된다.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part2중 2장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다-게이미피케이션의 확장] 부분이다. 이미 살짝 엿본 바가 있기에 이해가 가능한 부분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아이들을 어떤 '상황' 속에 밀어넣는 것이다. 스토리의 일원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효과를 가져온다. 상황 속에 들어간 아이들은 몰입하기 시작하고 그 안에서 체험하고 느끼면서, 듣고 흘리는 배움이 아닌 체험에 가까운 배움을 갖게 된다. 삼국 RPG라는 역사수업이 특히 그러했다. 삼국의 백성이 된 아이들은 국가의 흥망성쇠에 희노애락을 느끼며 수업에 참여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역사지식을 쌓았다. 박제된 과거가 아닌.

기존 스토리가 없는 주제에는 스토리를 만들어 입히기도 했다. 독서행사에 어벤져스 이야기를 입힌 가을 독서행사는 사라진 스톤을 찾아 지구를 구하려는 아이들의 열정으로 가득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어떤 첨단적 기술이 동원되지 않아도 가능한 게이미피케이션의 가능성을 보게 되어 설레기도 한다. '게임'은 좋아하지 않지만 '서사'는 나도 매우 좋아하니까. 하지만 그래도 쉽지 않다.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1. 아이들의 문화에 밀접한 서사를 내가 모른다.^^;;; 난 사실 어벤저스 영화를 보지 않았다. 내 취향이 아니다. TV도 보지 않고 게임도 전혀 몰라서 아이들과 문화적 연결고리가 적다. 아이들이 몰입할 서사를 구현하기에 나는 너무 멀리 떠나 있다. 이건 참 슬픈 한계다.
2. 일단 몰입된 활동은 대단원의 막을 잘 내려 완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섣불리 벌였다가 마무리를 잘 못하면 소란만 일어나고 배움으로 연결짓지 못할 수도 있다.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기 힘들고 돌연한 상황대처에 부담을 많이 느끼는 나는 이런 점이 어렵다.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길 나는 기대한다. 스케일을 좀 줄이더라도 이런 상황과 서사를 활용한 협력수업을 꼭 해보고 싶다.

그 외 내용들도 지금 당장 구현은 어렵지만 배우고 싶은 것들이 있다. 특히 지금같은 온라인 수업 상황에서 활용 가능한 것들도 있다. 길어질수록 지루해질 온라인 수업에 잠깐씩 활력과 웃음을 줄 방법과 기능들을 익히면 좋겠다.

요즘 느끼는 거지만, 언젠가는... 하며 막연히 생각했던 미래가 바로 엄습하여 현재가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미래수업만을 다루고 있진 않지만 적어도 새로운 수업 형태와 방식의 고민인 것은 분명하다. 배우기를 즐겨하는 교사들에게 적극 추천하며, 나도 적용할 것들을 꼼꼼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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