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처방전 노란 잠수함 6
정연철 지음, 김규택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도 소재 자체는 흔한 건데, 흔치 않게 느껴지는 특별한 맛이 있다. 이번 작품의 경우엔 작가의 입담이라고 해야 하나, 청소년을 상대하시는 선생님이시라 그런지 현실대화체가 입에 짝짝 붙는다. 작가의 청소년 소설은 더 그랬는데, 이 책의 어린이와 부모 대화체도 현실감 100이다.

화자인 동준이는 예민하고 소심하고 마음의 불편함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아이다. 그러나 예민이든 소심이든 그건 어른이 붙인 딱지고 어쩌면 그 병도 어른들이 준 것이다. 동준이에게 마음의 평화를 줬다면, 적어도 그냥 내버려두기만 했어도 동준이는 아프지 않았을 테니까.

동준이 엄마를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동화적 재미를 위해 극대화한 캐릭터가 아니다. 수없이 많이 봐왔던 엄마들 중 하나다. 오히려 현실에는 이보다 더 극단적인 엄마들도 많다.

누구에게나 자존심이 중요하다. 문제는 자식을 앞세워 그걸 채우려는 경우다. 자식의 성취를 자신의 성취로 여기고 거기에 목을 맨다. 조력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 자존심의 간판이 된 아이의 심정은 편치 않다. 틀을 잡아 키우는 분재처럼 상당히 왜곡된 방향으로 자라기도 한다. 거짓말을 잘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고 버럭 화를 잘 내거나 남을 깎아내리거나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 이면에 부모의 '자존심'이 있다.

"엄마는 준동이 엄마랑 통화하면서 '축하해' '부러워' '좋겠다' '대단하다" '멋져' 이런 말을 자주 쓴다. 이상한 건 전화를 끊자마자 '잘난 척은' '지겨워' '쯧쯧' '휴' 이런 말을 빼놓지 않고 한다는 거다. 그럴 바에야 아예 통화를 하지 말지, 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엄마들끼리 경쟁하면 좋을 텐데 왜 항상 우리를 가지고 경쟁할까."

표면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준동이 엄마에게 동준이 엄마는 늘 질투심을 느낀다. 그러면서 동준이를 붙들고 너도 할 수 있다며 부추긴다. 근데 그건 격려가 아니라 강요고 엄청난 압박이었다. 동준이는 만년 복통에 시달린다.

비교는 가시적인 것에서 일어나고 그건 주로 회장선거나 각종 대회들이다. 상을 받게 되면 엄마는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고, 남의 자식은 받았는지,내자식보다 좋은 걸 받았는지 그런 거에 눈을 희번덕거린다. 그런 데에 집중하느라 자식을 진심으로 격려하지도 못하고 본심을 다 들키고 만다. 이런 부모들이 실제로 많다. 학교 대회나 발표회는 부모 조력이나 자존심의 대결장이 되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그럴 가능성이 있는 대회를 축소하거나 없애다 보니, 대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몇몇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동기부여할 장치가 없다."며 비판을 하기도 한다.

남을 깎아내리기 좋아하고 결과물을 꼭 비교하고 어떤 궤변을 써서든 본인의 우위를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가 있어서 얄밉기도 하고 일년내내 신경이 쓰였었다. 우연한 기회에 엄마가 얼마나 아이의 성취에 집착하시는지 알게 됐고 아이가 안쓰러워졌다. 엄마가 그러시지 않았다면 아이는 훨씬 너그러웠을까. 난 그랬을 거라 본다.ㅠ

할아버지 제사로 아빠 3남매와 사촌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비교와 질투는 계속된다. 몸이 안좋은 동준이를 보고 할머니는 엄마에게 용하다는 한의원을 추천해준다. 할머니 말이 듣기 싫었던 엄마는 귓등으로 흘려버리는데, 결국 찾아가게 된 한의원에선 그보다 더 듣기 싫은 소릴 듣고 처방전을 받아온다. 얼마나 싫었던지 엄마는 처방전을 짝짝 찢어버리기까지. 아니 근데, 처방전은 이 책의 제목이잖아? '엉터리 처방전' 대체 어떤 처방이길래?^^

진리는 단순한 것에 있지만 단순한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다. 동화에서 보여주는 극적인 변화가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은 계속 두드려야 한다. 이 책은 그럴 용기를 준다.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이자면, 나는 이 책에서 애착인형에 대한 동준이의 사랑 대목에서 가장 마음이 먹먹했다. 애완동물도 아닌 인형을. 그것도 4학년이나 된 아이가. 근데 그건 어른의 생각이다. 재작년에 4학년 담임을 할 때 한 아이도 이와 비슷한 고백을 했었다. 심리적 문제를 많이 겪던 아이였다. 이런 면도 있다는 것을 부모들도 알고 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주인공들의 학년인 4학년에 가장 적당하지만 저학년 부모님들에게 더욱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동준이와 애착인형(토리)과의 장면을 적어보며 마치겠다.

"진짜 토리를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토리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갑자기 품속에 있던 토리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목이 터져라 토리를 불렀지만 토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지막 인사였을까? 문득 언제까지 토리를 애타게 기다릴 수는 없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순간 눈을 떴다. 눈가에 물기가 촉촉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