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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부리 영감이 도깨비를 고소했대 - 제26회 눈높이아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 수상작 ㅣ 눈높이 고학년 문고
공수경 지음, 전미화 그림 / 대교북스주니어 / 2019년 8월
평점 :
옛이야기 패러디 작품들을 꽤 읽어보았는데, 읽고 잊어버린 작품도 많다. 이 책은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 아주 인상적이면서 재미있었다.
보통 패러디 작품들은 고정관념을 뒤집으면서 인물을 새롭게 조명한다. 즉 원작에선 보이지 않는 그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인데, 무리한 시도는 살짝 억지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옛이야기를 재화할 때는 그 원형이 가진 가치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들어서, 한때 옛이야기 패러디의 유행이 살짝 달갑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원작은 원작, 패러디는 패러디. 원작을 먼저 제대로 읽고 패러디를 읽는다면 그 비교 지점에서 다룰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다. 이 책도 그러하다.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원작이 되는 옛이야기는 '혹부리 영감'이다. 착한 혹부리 영감은 혹을 떼고, 욕심을 부린 혹부리 영감은 도리어 혹을 붙였다는 그 이야기. 의도하지 않은 행운은 받아들여도 좋지만 욕심을 품고 접근하면 오히려 화를 자초한다는 이야기로 욕심에 대한 경계, 권선징악의 교훈이 들어있는 옛이야기다. 이대로도 물론 충분히 좋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두번째 혹부리 영감의 입장을 조명했다. 그게 아닐 수도 있잖아? 혹시 오해였다면?
그 주인공은 동네 부자인 최영감이다. 그는 혹을 하나 더 붙이고 흠씬 두드려맞고 온 후 너무나 억울하여 사또에게 재판을 청했다. 사또는 포졸들을 시켜 재주도 좋게 도깨비들을 잡아오는데는 성공하였으나.... 도깨비가 괜히 도깨비가 아니지 않나. 신통술을 써서 모두 달아나 버렸다. 이 과정에서 최영감을 돕는 어린 조력자들이 등장한다. 기산이, 개동이, 만석이 세 소년이다.
이들의 조언으로 최영감의 고소는 산신령에게로 향한다. 산신령은 금도끼 은도끼의 그 산신령! (나무꾼도 나온다) 그러고 보니 한작품만 패러디한 게 아니네. 본격적인 재미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산신령의 재판. 이제 이야기는 재판극으로 흐르고 어린 조력자들의 눈부신 활약이 시작되며, 주인공의 숨겨진 사연과 심리도 조명된다. 재미있는 극적 요소를 고루 갖춘 셈.^^
여러 번에 걸친 재판의 과정이 흥미진진하고, 양심적이고 정직한 인물, 사익에만 눈이 어두운 인물, 비열한 수를 쓰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인물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잘 담았다. 그런데도 결말은 훈훈하여 더 마음에 든다. 최영감 뿐 아니라 도깨비 대장도 마지막엔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책을 읽고 아이들과 하고 싶은 것 두가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모의재판인데, 몇년 전 6학년 사회에서 법원의 역할에 대한 수업을 할 때 민사재판, 형사재판 시나리오를 써서 아이들과 모의재판을 재밌게 했던 기억이 난다. 꼭 사회 교과와 연계하지 않아도 이 사건으로 창의적인 재판 시나리오를 아이들이 구상하고 역할극을 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
또 한가지는 '편견이나 선입견'에 대한 경계다. 이것을 빼고 대상을 보면 대상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쉬워진다. 이 책은 그런 주제를 진지하게 나눌 수 있는 소재가 되겠다.
옥의 티를 굳이 얘기하자면, 디테일에 까다로운 못된 성격 탓인지 딱 한가지 넘어가기 어려운 게 있었다. 현장조사를 하던 소년들이 '들쥐 이빨자국이 난 고깃조각'을 발견하고 들쥐를 증인으로 채택하는 대목이다. 들쥐가 남은 고깃조각을 먹은거야 당연하지만 '이빨자국'만 남기고 고기를 남기고 갈 리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소년들이 조금 가진 육포에 환장하는 들쥐가 말이다. 아주 작은 옥의 티지만 조금 아쉬운 대목이었다.
그리고, 도깨비에 대한 고찰이다. 난 사실 제대로는 모르는데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도깨비는 전통적인 우리 옛이야기가 다루는 도깨비가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이 책은 이야기 자체에선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삽화는... 원시인 복장을 한 저 도깨비 대장은 맞는건가? 잘 모르겠다. 이런 부분은 딱히 중요하지 않은가? 잘 아는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5학년들과 읽으면 딱일 것 같고 재밌는 걸 찾는 6학년, 조금 수준 높은 4학년과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책꽂이엔 후보작들이 추가된다. 소확행이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