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3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3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쟈쟈 그림, 김정화 옮김 / 길벗스쿨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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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에 접어드니 이쯤에서 새로운 설정이 필요할 듯하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소녀. 채집통과 잠자리채를 들고다니는, 거구의 아주머니인 베니코에게 마구 반말을 하는 그 소녀도 과자 가게를 하고 있단다. 이름은 <화앙당> 뭔가 악의 기운이 마구 풍긴다. 이제 선악의 대결구도로 이야기의 긴박감을 높여가는 것인가? 솔솔 냄새가 풍긴다.

[자장자장 모나카]
대결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화앙당 주인은 미움에 사로잡힌 한 회사원을 끌어들였고 그의 저주로 상사인 노부타카의 애지중지 딸이 고통받는다. 이제 노부타카가 전천당에 들를 차례겠지? 자, 이 승부의 결과는? 당연히 좋게 끝났고 아이들은 이런 선악구도에 즐거워하고 배울 점이 많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왠지 피곤하네...

[자동 응답 달팽이 스티커]
요건 딱 내 성향의 이야기였다. 나는 너무 이해되고 공감되는데 아이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도모미는 부모님을 졸라 그렇게도 갖고 싶은 휴대전화를 갖게 됐는데, 좋은건 잠시뿐, 그 과잉소통에 너무 질려버렸다. 나라도 딱 이랬을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 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을라나? 너무 지겨워진 도모미가 전천당에서 사온 것이 바로 자동 응답 달팽이 스티커. 이 작품을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마음이 모락모락 올라오는데, 과연 공감을 할지 그것이 문제로다.

[소원 전병]
아이들의 폭발적 공감을 얻을 것 같은 작품이다.ㅎㅎ 새학년 분반에 쏠리는 아이들의 관심과 기대는 엄청나니까. 그런데, 전천당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두 고객의 소원이 충돌해버린 것이다. 그 결과는?^^
베니코는 확실한 주인이라 돈을 돌려주러 찾아왔다. 상황을 파악한 두 아이가 내쉬는 한숨에 독자는 웃는다. 적당히 유쾌한 작품.

네번째 [주름 탱탱 매실장아찌]와 여섯번째 [미라 에이드]는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젊어지고 싶은 할머니 유키에. 그리고 더더욱 날씬해지려는 여고생 유리. 그들은 모두 소원의 물건을 전천당에서 사왔고, 모두 적정량에 실패해서 끔찍함을 경험했다. 돌이킬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다. 그들이 전천당에서 사 온 행운은 주름을 펴는 것, 날씬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이상 그걸 추구하려는 마음이 없어진 것이리라. 아 나도 주름을 펴고 싶고, 날씬해지고도 싶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바, 저런 물건을 사오진 않겠지?

다섯번째 [형제 떡꼬치]도 공감을 많이 얻을 작품이다. 형의 설움이 클까? 동생의 설움이 클까? 작년에 2학년과 <레기, 내 동생>을 읽고 이야기 나눌 때 갖가지 이야기들이 꽃을 피웠었지. 4남매 중 첫째인 아키라는 동생들을 이끌고 도와야 하는 역할이 너무 버거워 막내가 되길 원했지만... "울 애기"라고 불리며 떠받들리는데도 생각보다 좋지 않다.
이 작품의 결말도 유쾌하다. 뭐 딱히 비극일 필요가 없잖아?^^

이렇게 3권에서도 여섯 가지 상품을 다뤘다. 시리즈의 호흡은 길면서 각편의 호흡은 짧다. 그게 이 책의 인기 비결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뭔가 배경을 기억하는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복선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도 없다. 짧고 임팩트 있다? 다르게 말하면 편하게 재미를 즐길 수 있다. 아주 깊은 맛은 아니기에 이제 슬슬 다른 몰입 요소를 추가할 때가 됐다. 에필로그에서 전천당과 화앙당이 서로를 향해 선전포고를 하네. 어휴 난 이제 늙어서 맞대결 같은거 별론데. 그래도 가봐야지. 4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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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2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2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쟈쟈 그림, 김정화 옮김 / 길벗스쿨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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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이 1권과 같다면 지속할 힘이 떨어지겠지? 2권의 프롤로그에서 새로움의 씨앗이 뿌려진다. 밤까마귀 택배기사가 <도깨비불 상점>에서 보낸 물건을 전천당에 전달해준 것이다. 그걸 보고 베니코는 흡족해하며 말했다. "앞으로 이걸로 더 많은 행운의 손님을 모실 수 있게 됐어. 말하자면 전천당 분점이라고 할까" (9쪽)
이렇게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을 열면서 2권이 시작된다.

1권에서도 서로다른 6개의 상품이 제목이 되었는데 여기서도 그렇다. 모두 다르고 모두 흥미롭다. 어떤 상품들인지 볼까?

[괴도 롤빵] 이걸 누가 샀을까? 짐작하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괴도가 되고 싶은 그. 그런데 말이다. 창과 방패를 산 사람이 각각 있다면 누가 이길까? 그래서 베이코는 경고를 남겼는데.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흥분한 사람들은 경고를 무시하고, 일이 터진 후에야 경고를 상기한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으니 반면교사로 삼아야지.

[닥터 주스 세트]는 이제까지 중에서 가장 훈훈하고 흐뭇한 이야기다. 살짝 통쾌하기도 하고. 엄마가 아픈 치사토는 전천당에서 "의사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라는 소원을 말하고 이 제품을 받아왔다. 동네 야구경기의 에피소드는 아주 재밌다. 치사토는 닥터 주스 세트를 엄마 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을 위해서 다 썼다. 이제 꼬마 의사 노릇은 끝이지만, 이로서 명의의 자질을 입증한 셈이니 꼬마의 미래가 기대된다고 하겠다.

[여우 전병]에서는 '여우'가 주는 특유의 기괴함이 흐른다. 학교에서 점치기가 유행하자 점을 잘 치고 싶어하는 사나에에게 베이코가 권해준 제품. '여우 신령님'을 모신 사나에의 점괘는 모두 들어맞고 사나에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는데....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욕심. 쓸데없는 욕심. 그중의 하나가 독점욕이다. 절대 부려서는 안되는 욕심이다. 그 결과는....ㅠ

[뮤직 스낵] 오우, 이건 흥분됐다. 아마 나보고 고르랬다면 이걸 골랐을 것 같은 느낌 때문에? 피아노 선생님께 혼날 걸 생각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레슨을 가던 히비키가 산 과자다. '모차르트 맛'을 먹은 히비키는 날아갈 듯 터키 행진곡을 친다. 아, 왜이리 느낌이 생생하지. 나도 먹어보고 싶을 정도로.^^ 히비키는 피아노 신동으로 일약 유명해지는데, 모두의 관심이 쏠린 콩쿨장에서의 끔찍한 수난...
"히비키는 죽을 만큼 후회했다." (101쪽)
후회는 부정적 감정 중에서도 최고다. 하지만 나쁘기만 한 감정은 없는 모양이다. 후회를 거친 히비키는 최고의 선택을 했다. 그렇다. 때로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게 최고의 선택이다. 원점이되 뭔가 다른 원점일 것이다.

[복수 딱지] 자, 여기에서 1권에서 젤 재수 밥맛이던 인간이 다시 나온다. (1권을 읽었다면 누구나 떠올릴) 그가 고용한 탐정이 베니코를 찾는데, 찾아질리가 있나? 그리고 프롤로그에서 나온 그 분점. 거기서 탐정은 '복수 딱지'를 뽑는다. 그는 누구에게 복수했을까? 에고 이 찌질한 인간아!! 진상 좀 그만 떨어! 때로는 형벌도 끈질긴 거라고! 니가 포기해야 형벌도 멈출 거야!

[손님 초대 홍차]는 살짝 심쿵한 로맨스다. 이런 로맨스, 아이들한테 어떨래나?ㅎㅎ 미도리는 초딩 시절 자기를 괴롭히던 우락이가 케이크 가게의 파티시에가 된 걸 발견한다. 홍차가 불러준 둘의 만남. 풀리는 오해. 늦게서야 꽃피는 로맨스.^^
근데 우락이가 했던 짓들은 요즘 말로 하면 학폭인데. "괜찮아. 너한테 관심있어서 그러는 거야." 이러고 넘어갔다간 큰일나는데. 쫌 난감하네.^^;;;;

2권의 에필로그에는 또 3권의 씨앗들이 꼬물거리는 걸 알 수 있다. 베니코가 마네키네코의 기획서를 보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걸 보면 기대감이 생긴다. 그 전에 나오는 베니코의 독백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전달해 준다.
"행운은 조심하지 않으면 바로 불행으로 바뀌는데. 정말 어쩔 수가 없군요." (151쪽)

어딘가에 적정선은 있는 법인데, 사람이 자기 위치를 자각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서.... 그래서 성찰은 습관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닐지. 아니면 아예 토끼의 간처럼 욕심을 빼내서 어디다 말려놓고 살거나. 이렇게 적으면서 보니 생각할 지점들이 꽤 있는데, 아이들과 나눈다면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재미있게 읽는 것만으로도 물론 충분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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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1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1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쟈쟈 그림, 김정화 옮김 / 길벗스쿨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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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6권까지 나오고서야 1권을 읽어봤다. 작년에 도서실업무 하면서 나올때마다 구입해놓긴 했는데 내 차례가 오지 않았다. (그중의 한 명은 2학년 우리반 아이였다.^^) 손님 좀 빠지면 읽어봐야지 했던 것이 이렇게 시간이 지나버렸네.

첫 느낌은 그렇게 좋진 않았다. 난 판타지를 좋아하긴 하는데 매우 환상적이거나 아님 아주 따뜻한 느낌이 나는게 좋다. 1권 절반쯤 읽었을 때는 깊진 않으면서 좀 기괴한 느낌이라 썩 맘에 들지 않았다. 계속 읽으면서 에피소드가 더해지니 그 소재의 다양함에 관심이 끌렸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과자의, 어떤 마법이 일어나는 걸까? 그걸 통해 작가는 인간의 어떤 모습과 인생의 진리를 보여주는가?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의 주인은 풍성한 흰머리를 틀어올린, 하지만 노인은 절대 아닌 베니코라는 거구의 여성이다. 그리고 이 가게의 위치는... 모른다. 그날의 행운의 주인공에게만 눈에 띈다. 1권에서 그 행운의 주인공들은....

[인어젤리]를 사간 아이는 학교 수영수업이 너무 두려운 마유미다. 허겁지겁 인어젤리를 만들어먹은 마유미는 수영시간에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가 되었다. 하지만 부작용이.... 뒤늦게 설명서를 끝까지 제대로 읽지 않은 걸 후회했지만.... 해결책이 구석에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래, 말은 끝까지 듣고 글은 끝까지 읽어야 하지. 그치만 그걸 못했다고 인생이 바뀌는 건 너무 가혹하니까 경고 수준까지만.^^

[맹수 비스킷]의 신야는 여동생 에미를 놀리는 재미로 사는 아이다. 행운의 주인공은 에미였는데 따라간 신야는 욕심에 못이겨 '맹수 비스킷'을 슬쩍해온다. 당연히 댓가를 치렀겠지? 구원은 여동생 에미의 역할. 이제 신야는 동생을 괴롭히긴 틀렸다.ㅎㅎ 욕심에 대한 경계. 그리고 역시, 설명서를 잘 읽어보는 신중함도 중요.

[헌티드 아이스크림]의 주인공은 20대 직장여성 미키다. 그녀도 역시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았네? 하지만 꽤나 담력있는 여성이다. 부작용을 그대로 즐기기로 한다. 그 벌은 엉뚱한 사람이 받았다. 근데 받을 만해서 받은거니.... 이제 미키는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되겠다.^^

[붕어빵 낚시] 붕어빵과 낚시를 좋아하는 게이지가 이 제품을 산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양동이에 물만 채우면 진짜배기 바다낚시를 할 수 있다니, 우와 상상력 한 번 알차네!ㅎㅎ 하지만 닥쳐온 위기는? 이것도 역시 깨알같은 주의사항을 안 읽어서 생긴 일. (나도 잘 안읽는데, 이거 좀...^^;;;) 그래도 가장 훈훈한 해피엔딩.

[카리스마 봉봉] 권선징악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 거의 놀부전 급이다. 게으름과 욕심, 악의에 대한 가장 극적인 징벌. 주인공 미용사 노리유키는 후속편에 다시 등장하는듯.....

[쿠킹 트리]의 전반부는 슬프고 가혹하다. 아동학대 상황에 있는 형제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늘 이렇게 살아왔기에 이것이 아동학대인지도 모를 것이다. 따뜻한 밥 한 번 해준 적 없는 엄마는 늘 화내고, 집을 나가 술, 담배, 도박을 하며 아이들을 방치하고... 이런 어른들은 왜 결혼을 해서 불행을 물려주는 걸까? 화가 난다. 다행히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쿠킹 트리'가 왔다. 하지만 그마저 엄마한테 뺏겨 버리는데.... 엄마는 '벌'이 아닌 벌을 받았다. 왜일까? 벌을 받았으면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 벌도 아이들을 봐가면서 내리는... 이런 작품의 배려가 맘에 든다. 근데 엄마, 반성 많이 해! 애들 땜에 봐준 줄 알아!!

1권에는 이렇게 6편의 이야기가 담겼다. 읽고나니 살짝 갈증이? 이걸로는 부족해.....ㅎㅎ 걱정 마라. 앞으로 다섯 권이나 더 있잖아? 에필로그에서 베니코는 봉인된 상자를 열어 작은 병들을 살피는데, 기쁨의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안타까움의 한숨을 쉬기도 한다. 마법에도 어떤 법칙이 있는 모양이다. 주관자도 어찌할 수 없는 법칙. 이 대목을 보면 알 수 있다.

"불행은 행복으로, 행복은 불행으로. 전천당은 손님을 고른다. 손님이 행복해지면 전천당의 승. 불행해지면 전천당의 패. 내일은 어떤 손님이 전천당을 찾아와 줄까?"
노래하듯이 중얼거리면서 베니코는 부엌에서 나갔다. (145쪽)

전천당도 승리와 패배를 할 수 있다는 설정은 긴장감과 응원을 불러일으키는 설정이 아닌가? 이렇게 1권은 끊을 수 없는 줄로 2권으로 이어진다. 이제 그 줄을 따라 2권으로 가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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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왜 왔니? 샘터어린이문고 60
황지영 지음, 이명애 그림 / 샘터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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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는 아이들의 상처를 많이 다룬다. 배경과 사건이 없는 이야기는 없을테고, 평범한 상황은 이야깃거리로는 불충분하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또한 문학이 가진 공감과 치유의 힘을 믿기에 그렇기도 할 것이다.

이 작품 또한 그러한데, 드러내는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아이의 상처는 거의 마지막에 드러난다. 절정 부분에서도 끝 쪽에. 그런데 그때까지의 긴장감이 예사롭지 않다. 궁금증을 유지하며 나아가는 힘이 탄탄하다. 일단 잡으면 끝까지 읽게 할 힘을 갖춘 작품이다.

소심하고 말수 적은 한별이가 화자다. 발표도 잘 못하고 리더십도 전혀 없는 한별이가 모둠장이 되었다. 모둠원은 전혀 도움 안되는 남자아이 두 명과 예빈이. 그런데 예빈이는 너무 완벽했다. 못하는 게 없는 아이. (실제로 이런 아이가 있다. 세상 참 불공평하다 할 만큼) 그러니 한별이가 명목상 모둠장이지만 실제 주도는 예빈이가 하게 된다. 악의가 있어 그러는 건 아니다.

그래도 빈틈없는 인간은 없다고 했는데, 그 완벽한 예빈이한테 보이는 빈틈이란? 둘은 모둠숙제를 위해 한별이 집에 같이 갔다. 굴러다니는 먼지를 보고 놀라고 재채기를 하는 걸 보며 역시나 했는데, 이어지는 의외의 행동. 한별이의 침대에 누워 편하다며 잠이 들고, 퇴근한 엄마한테 저녁도 얻어먹고 드라마도 같이 보며 눌어붙어 집에 갈 생각을 하질 않는다. 아마도 첫날엔 한별이가 내심 안도하지 않았을까 싶다. 완벽한 예빈이가 누추한 우리집에서 잘 지내는 걸 보고.... 하지만 내일도 모레도 놀러와 눌러앉자 한별이 마음은 몹시 불편해진다. 자기가 '박힌돌'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 굴러온 돌 때문에 빠져버리는 '박힌 돌'

작품의 갈등은 여기서부터 시작이고 제목도 여기서 나왔다. <우리 집에 왜 왔니?>
굴러온 돌 예빈이에게 밀려난다는 느낌이 유난한거 아닌가 싶겠지만 워낙 심리묘사가 잘 되어있어 정말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추리물도 아닌 것이, 숨은 사연이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지게 만든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진 사연은....

작가는 주변인물들을 잘 배치한 것 같다. 둘의 갈등으로만 시종일관 몰고갔으면 뭔가 '맛'이 없었을 것 같은데. 일단 이혼하고 혼자 한별이를 키우며 커피집에서 일하는, 예빈이를 안쓰러워하는 한별이 엄마가 있고 한별이의 절친이면서 성격과 취향은 완전 딴판인 누리가 있다. 가장 큰 줄기를 끌고 가는 조연은 누리 할머니다.

누리 할머니 안순희 여사는 한별이 엄마랑 같이 까페를 운영하시는데 한별이도 손녀처럼 가깝게 대해주신다. 할머니가 쓰시는 '복수 노트'가 이 책의 웃음코드이기도 하면서 가장 중요한 소재라고 느껴졌다. 할머니는 도서관에서 '웰 다잉' 강의를 들으신 후 이걸 적기 시작했다.
"강사가 마음의 빚을 다 갚고 가라고 그러는데 나는 받아야 할게 더 많아. 한 명씩 찾아가서 사과 받을 거 받고, 사과 안 하면 복수해서 맺힌 거 다 털고 웰 다잉 할란다. 생각만 해도 개운하다!"

"꼭 그러셔야 돼요? 시간도 많이 지났는데 용서해 주세요." 하는 말에 할머니의 대답이 단호하다.
"사과를 해야 용서를 하지? 내가 이제 와 보니 평생 내 마음대로 한 게 하나도 없어. 부모 눈치, 남편 눈치, 시부모 눈치, 자식 눈치... 눈치 보다가 인생 다 갔어. 내가 지금은 말이 많지만 젊었을 때는 말이 엄청 없었어."

저절로 풀리는 매듭은 없는 법인가보다. 세월이 오래 흘러도 말이다. 그러니 사과할 일이 있으면 확실하게 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싫으면 싫다고 말해야 하는 건가보다. 나는 소심하지만 은근히 고집과 심통이 있어서 딱히 할 말 못하고 살아온 건 없다. 아참, 요즘 새 팀장이 점심시간 5분전에 점심먹으러 가자고 메세지를 보내고, 화장실 가는 사람까지 기다려서 꼭 전원을 몰고 식당에 가는게 넘나 짜증났는데 내일부터 나는 알아서 먹을테니 상관하지 말라고 꼭 말해야겠다. 참으면 병 돼.ㅎㅎ

결정적 사건은 누리 할머니의 바로 그 '복수 여행'에서 일어났다. 할머니의 어린시절 친구를 찾아 강원도까지 가는 여행에 동참한 일동. 할머니는 결국 복수를 했을까? 그리고 결국 터져버린 예빈이의 상처는.....

터지지 않고 있었다면 예빈이의 상처는 얼마나 더 곪고 커졌을지 아득하다. 그러니, 살면서 일어나는 달갑지 않은 사건들은 더 큰 상처를 막기 위한 고마운 전조들인지도 모른다. 나를, 상대방을, 또는 제3자라도 가끔 돌아봐 주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고학년들과 함께 읽거나 권해주기에 좋고 어른들이 읽어도 생각거리가 있겠다. 뒷표지의 책소개에 '아슬아슬한 심리전'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딱 적당하다. 추리물도 아닌것이 궁금해서 책장이 넘어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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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이의 수학여행 - 권재원 교육소설 함께교육 5
권재원 지음 / 서유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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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손에 안 잡힌 지가 석달이나 됐다. 오랜만에 6학년을 맡을 것이 예상되어 학급운영이나 수업에 대한 책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지워가며 읽어대던 중에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졌다. 지금까지 읽던 책들은 접어두고, 준비해오던 3월 활동도 일단 미뤄두어야 했다. 교실이 열리지 않으니 말이다..... 그 상태로 전전긍긍하다 석달이 지나간다. 동화책 한 권쯤은 평일 밤에도 읽었었는데 그걸 주말에 읽기도 힘들 정도로 집중이 안 됐다. 모든 건 마음에 달린 일인가.... 불확실함과 불안은 독서의 효율마저도 떨어뜨린다. 난 지금도 불안하다.

그런데, 이 책을 말 그대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치우고 말았다. 퇴근 후 저녁을 차려서 먹고, 치우고, 수박을 잘라 먹으며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고, 씻고 머리를 말린 후에 밤이 되어서야 잡은 책이었다. 내일이 출근이라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중간에 끊지 못하고 끝까지 읽은 후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교육소설이라고 한다. 교육소설 맞다. 근데 이렇게 뭔가 규정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러니까 “선생님이라면 보세요.” 라든가 “자녀교육에 고민하는 학부모님들 보세요.” 이런 말을 굳이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고민이 들어있다. 꽤 깊은. 해법은 딱히 있지 않다. 있다면 근원적인 원론일 것이다. 그 고민에 공감하는 것으로도 이 소설은 가치가 있다. 난 깊이 공감했기에 내겐 가치가 있는 책이 됐다.

이 책의 화자는 권오석 선생님이다. 작가와 연령대도 같고 성도 같고 살아온 이력도 거의 같으며 성격이나 취향도 같다. (그러고보니 페이스북에서 작가가 개인 이야기를 꽤 많이 해주셨던가보다.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내가 알고 있을 정도니^^) 그러다보니 작가의 자전소설로 착각하며 읽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소설이 끝나자마자 “여러분, 이거 거짓말인 거 아시죠?”라며 독자의 착각을 톡톡 두드려 준다. 그렇겠다. 소설은 허구니까. 하지만 모티프는 작가의 경험에서 가져왔으며 주제는 작가의 마음 속에 담긴 말이 아니겠는가? 자전소설로 읽어도 큰 차이가 없을 만큼 그의 교직 인생이 담긴 이야기라 느껴진다.

도입처럼 느껴지는 첫 단편은 「나미 엄마」였다. 대치동의 아파트에서 날마다 딸과의 고성 싸움으로 예민한 권교사의 수면을 방해한 그녀는 놀랍게도 권교사 저서들(교육관련)의 애독자였다. 그 책을 밑줄치며 읽는 엄마는 누구이고 뼈골이 빠지게 사교육 뒷바라지를 하며 고래고래 애를 잡다 못해 비명과 울음까지 터뜨리는 엄마는 누구인가? 동일인이다. 이런 아이러니는 웃을 수만은 없는, 그렇다 웃픈, 현실이다.

두 번째 작품은 제목이 자극적(?)이다.「풍기문란 기간제 교사」이건 주인공의 젊은 시절 이야기다. 주인공은 기간제 교사였던 게 아니고 였을‘뻔’ 했었다. 아주 풍기문란한 기간제 교사가. 그 사연 안에 갖가지 것들이 들어있다. 사립학교 채용의 문제점 뿐 아니라 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의 거취 문제, 그들의 신념과 현실의 괴리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까지. 주인공의(어쩌면 작가의) 한계와 이중성까지도 숨기지 않았다. 비난할 생각이 없다. 나는 훨씬 더하니까. 나는 그와 동시대인이지만 운동권도 아니었고 극렬좌파도 아니었기에 그 이중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을 뿐. 모두가 주인되는 세상을 위해서 산다,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해 산다, 이런 구호마저도 허무하게 느껴질 만큼 나는 기운이 빠졌고 회의감도 심하다. 그냥 쥐꼬리만한 양심이나 지키고 살기도 힘들다. 때로는 화려한 구호 속에 잠겼던 이들의 양심이 나보다도 못한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럼 또 다짐한다. 거창한 생각 말고 월급값이나 하면서 살자....ㅠ

두 번째 작품의 사유는 세 번째 작품으로 이어진다. 「노동자가 되기 싫어서, 노동자가 되고 싶어서」 권교사의 운동권 학창시절, 그를 따르던 동생은 현장 노동자였다. 하나가 된 듯 함께 뒹굴었지만 과연 그들은 하나였을까? 그는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노동자가 되기’ 싫다고 했다. 중년이 된 권교사는 어떤 학생을 만난 후 오래된 그 기억을 떠올린다. 그 학생은 기술을 다루는 특성화고에 가고 싶어했다. 말하자면 ‘노동자가 되고’ 싶어한 것인데, 그 열망은 성적이 부족하여 좌절되었다. 권교사의 마음속에 이 두 사람이 엮인다. 여러 상념들이 떠오른다. 그의 입에서 거의 들어보지 못한 말이 던져진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어떤 명쾌한 분석보다도 더 마음에 와닿는 말. 모르겠다는 말. 다만 그 학생이 첫 번째 과정에서 좌절했더라도 꿈을 이룰 수는 있기를 바란다.

표제작인「명진이의 수학여행」은 정말 표제작다운 작품이다. 마음이 먹먹해서 읽기 힘들었다. 사랑이 넘치는 교사가 아니라도 아이의 상황 앞에서 눈물이 흘러넘칠 때가 있다. 난 아이들과 사적인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은 절대 사양이고, 졸업하고 찾아오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메마른 교사인데도, 가슴이 무너질 때가 있단 말이다. 그건 책임감일까 모성애의 또다른 발현일까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아이들은 간혹 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나처럼 메마른 교사도 그러한데 다른 샘들은 오죽하랴. 모든 직종이 힘들지만 교사들이 이런 이유로 힘들다고 하면 개소리하고 있네 라며 코웃음치지 말고 그럴 때도 있겠구나 하고 고개 한 번 끄덕여주면 안될까.

너무 똑똑하고 당돌한 나머지 내 수업을 무시하나 싶은 명진이를 받아들여주는 것은 권교사니까 가능했을 것 같기도 하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하니까.ㅎㅎ 학생 앞에서 자격지심을 느끼면 그건 참 피차 힘든 상황인데.... 나같은 평범한 둔재 교사는 꽤나 마음고생을 했을 것 같지만 천재교사 권교사는 그걸 초월하니 명진이의 문제가 보였다. 그것은 침몰이었다.

사회적인 침몰과 신체적인 침몰.... 두가지가 함께 찾아온 명진이는 참혹했다. 그 앞에서 자신의 무기력에 분노하는 권교사... 그러나 작은 기적은 있었다. 명진이가 사회적 침몰에서 구조된 건, 권교사의 무심한 사려깊음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대 해결 안되는 어려운 상황도 현장에는 많다. 다만, 아이들이 ‘아픔을 느낄 줄 아는 인간’이었다는 점이 명진이와 그들을 구원했다. (안타깝지만 그것도 안되는 인간들도 가끔 존재한다...ㅠ)

“다만 알지 못할 뿐이다. 얼마나 괴로운지. 얼마나 힘든지 알지 못할 뿐이다. 설사 들어서 알고 있다 하더라도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 고통을 알고, 그 고통을 같이 느끼면 아이들은 천사가 된다. 고통은 아이들을 천사로 만든다.” (137쪽)
“도덕으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올바르다는 것을 알아도, 느끼지 못한다면 사람은 결코 선해질 수 없다. 그리고 그 느낌은 고통을 함께 겪지 않고 그 고통에 죄책감과 후회를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141쪽)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간신히 극적으로 침몰을 면했다. 그건 최악의 또다른 침몰의 상황 때문이었으니, 일반적인 상황에서 스스로 돌아보고 성찰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ㅠㅠ 명진이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시계는 흩어지는 벚꽃 그림자로 물든 숫자를 보여 주었다.
4월 16일.”
교사들의 마음속에 트라우마로 남은 날. 우리는 아이들을 침몰에서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인가. 그때나. 지금이나.ㅠㅠ

「애국 소년단」은 중년이 된 권교사의 제자, 권교사의 어린 시절이 교차되어 나온다. 둘의 공통점은 정의감에 고양되어 있으나 그게 실상은 가당치 않다는 점이다. 아는 건 많은데 시야가 좁으면 그렇게 된다. 제자에게 건넨 권교사의 일갈에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눈을 감고 그 부끄러움을 느끼는 제자에게는 희망이 있다. 물론 이미 저지른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져야 하지만.

마지막「자전거 도둑」 박완서 작가의 장편과 같은 제목인 이 작품에는 아주 황당한 중1 소년의 이야기가 담겼다. 작고 귀여운데 섬뜩한.... 이 아이의 섬뜩함은 누가 만들었는가? 교사는 거기서 아이를 건져줄 수 있는가?

지금까지 이야기의 기승전결은 거침없이 진행되어왔다. 한 편 한 편 내에서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도.... 명진이의 수학여행이 절정이라면, 이 작품은 결말을 내야 한다. 아 그런데 이 작품의 마지막은 그냥 무력하고 냉정한 현실이었다. 이렇게 똑똑하고 멋진 권교사가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다니?
“하지만 정말 더 이상의 이야기가 없다. 나한테는 이런 아이를 끈기 있게 가르치고 이끌어서 세상을 알게 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나한테는 TV나 영화에 자주 나오는 ”선생님이 저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어요.“ 따위의 눈물겨운 일화가 없다. 물론 나도 그런 일화 몇 개쯤은 만들고 싶었다. 선생이라면 누군들 그런 생각이 없을까? 하지만 28년이나 선생질 하고서 창작물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만 깨달았을 뿐이다.”

권교사는 왜 이처럼 허무해보이는 차디찬 말로 결말을 맺었을까? 나는 이 책의 마지막 문단에 답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해석은 독자 마음대로니까. 소수의 리그와 그에 맹렬히 집착하는 사회에서 교사 개인에게 주어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나의 짐작보다 이 책은 여렸다. 누굴 꾸짖거나 호령하지 않았다. 심지어 훈계조차도 하지 않았다.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 주장하지도 않았다. 그냥 나랑 비슷한 경력인 교사의, 그가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피할수 없는 학교의 일상을 보여줬을 뿐이다. 잊을 수 없는 구절이 있다. 뜬금없다고 할 것이다.
"가슴이 따뜻하게 떨렸다." (134쪽)

이 대목이었다. 나는 이 느낌을 안다. 일년에 한번이라도 이 느낌이 모든 고생을 위로한다.
오늘은 모든 샘들께 이 느낌을 공유하고 싶다.(내가 뭐라고ㅎㅎ) 솔직히 내가 가장 바라는 건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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