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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왜 왔니? ㅣ 샘터어린이문고 60
황지영 지음, 이명애 그림 / 샘터사 / 2020년 5월
평점 :
동화는 아이들의 상처를 많이 다룬다. 배경과 사건이 없는 이야기는 없을테고, 평범한 상황은 이야깃거리로는 불충분하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또한 문학이 가진 공감과 치유의 힘을 믿기에 그렇기도 할 것이다.
이 작품 또한 그러한데, 드러내는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아이의 상처는 거의 마지막에 드러난다. 절정 부분에서도 끝 쪽에. 그런데 그때까지의 긴장감이 예사롭지 않다. 궁금증을 유지하며 나아가는 힘이 탄탄하다. 일단 잡으면 끝까지 읽게 할 힘을 갖춘 작품이다.
소심하고 말수 적은 한별이가 화자다. 발표도 잘 못하고 리더십도 전혀 없는 한별이가 모둠장이 되었다. 모둠원은 전혀 도움 안되는 남자아이 두 명과 예빈이. 그런데 예빈이는 너무 완벽했다. 못하는 게 없는 아이. (실제로 이런 아이가 있다. 세상 참 불공평하다 할 만큼) 그러니 한별이가 명목상 모둠장이지만 실제 주도는 예빈이가 하게 된다. 악의가 있어 그러는 건 아니다.
그래도 빈틈없는 인간은 없다고 했는데, 그 완벽한 예빈이한테 보이는 빈틈이란? 둘은 모둠숙제를 위해 한별이 집에 같이 갔다. 굴러다니는 먼지를 보고 놀라고 재채기를 하는 걸 보며 역시나 했는데, 이어지는 의외의 행동. 한별이의 침대에 누워 편하다며 잠이 들고, 퇴근한 엄마한테 저녁도 얻어먹고 드라마도 같이 보며 눌어붙어 집에 갈 생각을 하질 않는다. 아마도 첫날엔 한별이가 내심 안도하지 않았을까 싶다. 완벽한 예빈이가 누추한 우리집에서 잘 지내는 걸 보고.... 하지만 내일도 모레도 놀러와 눌러앉자 한별이 마음은 몹시 불편해진다. 자기가 '박힌돌'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 굴러온 돌 때문에 빠져버리는 '박힌 돌'
작품의 갈등은 여기서부터 시작이고 제목도 여기서 나왔다. <우리 집에 왜 왔니?>
굴러온 돌 예빈이에게 밀려난다는 느낌이 유난한거 아닌가 싶겠지만 워낙 심리묘사가 잘 되어있어 정말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추리물도 아닌 것이, 숨은 사연이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지게 만든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진 사연은....
작가는 주변인물들을 잘 배치한 것 같다. 둘의 갈등으로만 시종일관 몰고갔으면 뭔가 '맛'이 없었을 것 같은데. 일단 이혼하고 혼자 한별이를 키우며 커피집에서 일하는, 예빈이를 안쓰러워하는 한별이 엄마가 있고 한별이의 절친이면서 성격과 취향은 완전 딴판인 누리가 있다. 가장 큰 줄기를 끌고 가는 조연은 누리 할머니다.
누리 할머니 안순희 여사는 한별이 엄마랑 같이 까페를 운영하시는데 한별이도 손녀처럼 가깝게 대해주신다. 할머니가 쓰시는 '복수 노트'가 이 책의 웃음코드이기도 하면서 가장 중요한 소재라고 느껴졌다. 할머니는 도서관에서 '웰 다잉' 강의를 들으신 후 이걸 적기 시작했다.
"강사가 마음의 빚을 다 갚고 가라고 그러는데 나는 받아야 할게 더 많아. 한 명씩 찾아가서 사과 받을 거 받고, 사과 안 하면 복수해서 맺힌 거 다 털고 웰 다잉 할란다. 생각만 해도 개운하다!"
"꼭 그러셔야 돼요? 시간도 많이 지났는데 용서해 주세요." 하는 말에 할머니의 대답이 단호하다.
"사과를 해야 용서를 하지? 내가 이제 와 보니 평생 내 마음대로 한 게 하나도 없어. 부모 눈치, 남편 눈치, 시부모 눈치, 자식 눈치... 눈치 보다가 인생 다 갔어. 내가 지금은 말이 많지만 젊었을 때는 말이 엄청 없었어."
저절로 풀리는 매듭은 없는 법인가보다. 세월이 오래 흘러도 말이다. 그러니 사과할 일이 있으면 확실하게 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싫으면 싫다고 말해야 하는 건가보다. 나는 소심하지만 은근히 고집과 심통이 있어서 딱히 할 말 못하고 살아온 건 없다. 아참, 요즘 새 팀장이 점심시간 5분전에 점심먹으러 가자고 메세지를 보내고, 화장실 가는 사람까지 기다려서 꼭 전원을 몰고 식당에 가는게 넘나 짜증났는데 내일부터 나는 알아서 먹을테니 상관하지 말라고 꼭 말해야겠다. 참으면 병 돼.ㅎㅎ
결정적 사건은 누리 할머니의 바로 그 '복수 여행'에서 일어났다. 할머니의 어린시절 친구를 찾아 강원도까지 가는 여행에 동참한 일동. 할머니는 결국 복수를 했을까? 그리고 결국 터져버린 예빈이의 상처는.....
터지지 않고 있었다면 예빈이의 상처는 얼마나 더 곪고 커졌을지 아득하다. 그러니, 살면서 일어나는 달갑지 않은 사건들은 더 큰 상처를 막기 위한 고마운 전조들인지도 모른다. 나를, 상대방을, 또는 제3자라도 가끔 돌아봐 주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고학년들과 함께 읽거나 권해주기에 좋고 어른들이 읽어도 생각거리가 있겠다. 뒷표지의 책소개에 '아슬아슬한 심리전'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딱 적당하다. 추리물도 아닌것이 궁금해서 책장이 넘어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