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유쾌한 질주
사단법인 한국여성민우회 지음 / 민연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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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참 이쁘다. 표지도 이쁘고, 편집도 이쁘고 거기다가 읽기 편하고, 종이도 가볍고 사이즈도 딱 좋다 ^^

처음 읽어나갈 땐 '언니네 방' 시리즈와 비슷하려니 했는데 다 읽고 나선 언니네 시리즈와 확실히 구별되는 이 책만의 무게와 분위기를 느낄수 있었다.

언니네 시리즈과 음 마치 작은 언니의 이야기 였다면,  이 책은 결혼하고 직장에서 육아와 커리어의 경계에서 고군분투하는 큰 언니의 이야기 같다고 해야할까?

더 알차고 묵직하고 관대하며,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냥 겉으로 보기엔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엮은 이 책이 웹상의 글을 모아 엮은 언니네 방 보다 더 정치적이고 과격할 것 같지만 두 가지 다 읽어본 소감은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

그냥 느낌이 그랬다. 언니네 방이 예민한 감수성의 소녀, 어린 여자가 상처를 받고 치유하는 과정에서 여성주의를 만나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면

여자들의 유쾌한 질주는 젊음의 불안함과 혼란의 시기를 견뎌낸 든든한 큰 언니가 생활속에서 어떻게 여성주의를 실천하며 살고 있는지, 부딪힘의 고통을 통해 터득한 관대함과 여유로움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그래서, 육아, 직장 내 성차별, 가족 등 일상적인 소재의 이야기가 책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으며..책의 원래 컨셉과 관련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실제 여성이 직장에서 부닥치는 차별에 대해 사례별로 ^^;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서 좋았고 육아와 관련해서도 마냥 남의 일만은 아니기에 '과연 나라면' 이라는 맘으로 읽을 수 있었다.

직장 내 차별의 경우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차별 받고 있는지, 여성이 겪는 갈등이 어떠한 것인지 개인의 경험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지므로 여성주의가 왜 필요한지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나, 실생활에서 여성이 무슨 차별을 받는다는 건지 전 모르겠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 책을 읽음으로써 가볍게 타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기회를 얻을 수 있을 듯 하다. 페미니즘에 관심은 있는데 페미니즘 이론서 읽는건 죽어도 못하겠다면 이것으로 시작해도 좋을거 같아요.

이미 여성주의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좋아할듯하고. 음..나는 나의 10년 후, 20년 후는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을 통해 희미하게나마 그려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서 지금을 만들어낸 큰언니. 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 나 역시 지금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만들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을 보았다는 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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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0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23 0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04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미래사 한국대표시인 100인선 33
윤동주 지음 / 미래사 / 2001년 11월
구판절판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골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어,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어오는 이, 나비 한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어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었든 자리에 누어본다.


-1쪽

바람이 불어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꼬 부는데

내발이 반석우에 섰다.



강물이 자꼬 흐르는데

내발이 언덕우에 섰다.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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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부의 삶 - 옛 편지를 통해 들여다보는 남자의 뜻, 남자의 인생
임유경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3월
품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칠 새
-서유규가 사촌 동생 유경에게 쓴 편지
지난 가을 가뭄이 7월부터 12월까지 이어졌지. 올해도 4월까지 계속 해서 비가 오지 않아 시내와 도랑은 다 말라 거북 등처럼 갈라졌더군. 농가에서는 근심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네. 장차 끝내 비가 오지 않으면 어찌하나 걱정들이 대단했지. 다행히 5월에 큰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7월까지 계속되었네. 전날 말랐던 곳에 지금은 물이 넘쳐흐르고 거북 등처럼 갈라졌던 곳에는 개구리 떼가 살고 있다네. 강촌에 물이 넉넉해지니 생활도 예전으로 돌아왔네. 어제 우연히 이웃에 사는 박생과 함께 잠을 자게 되었네.밤이 깊어 비가 쏟아지는데 시간이 갈수록 빗줄기가 거세지더군. 낙숫물 소리가 귀를 때리고, 세찬 바람이 풍경을 거세게 울리고 창문을 드세게 흔들어대는 통에 엎치락뒤치락하며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였네. 그러던 중 문득 깨닫는 바가 있어 벌떡 일어나 박생을 흔들어 깨우고는 "자네는 오늘 이 비를 아는가? 이것은 옛사람의 문장일세"라고 크게 말했다네. 박생이 무슨 소리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기에 상세히 말해주었지.
-51쪽

"지난날 비가 오지 않은 것은 오늘을 위해 쌓아두었던 것이고, 오늘 이 비는 지난날 쌓아둔 것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네. 오로지 오래 축적해야 지금처럼 모자람 없이 쏟아질 수 있는 법이지. 문장도 마찬가지야. 옛날 작가들은 모두 길게는 수십 년이요, 짦아도 십여 년이 되도록 학문을 쌓고 생각을 깊이 하여 콸콸 솟아 넘쳐나고 눌러도 다 없어지지 않은 연후에야 마침내 그것을 꺼내어 문장을 지었네. 그래서 그 말이 콸콸 쏟아지고 항상 촉촉하여 마르지 않았지. 그렇지 않고 없는 살림에 하루하루 쓸 거리를 맞춰 살다 보면 머지않아 부족하여 남에게 빌리고 표절하게 되니 어찌 굶주리지 않겠는가."-52쪽

참된 친구를 만나셨나요
-박지원이 홍대용에게 쓴 편지
제가 평생토록 교유한 범위가 넓지 않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격과 처지를 살펴 거의 다 친구르 사귀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허여한 이들이 때로는 명예를 좇고 권세에 빌붙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친구를 본 것이 아니라 오직 명예와 이익, 권세를 보았을 뿐임을 깨닫습니다. 이제 저는 거친 풀숲에 숨어들어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머리를 깎지 않은 비구요, 아내를 얻은 탁발승입니다. 산 높고 물 깊은이곳에서 명예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옛말에 "움직이면 비방은 받겠지만 그래도 명예는 따른다"고 하였으나 모두 빈말인것 같습니다. 겨우 한 줌 명예를 얻었다 싶으면 벌써 비방이 한 자만큼이나 따라와 있습니다.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늙어서야 그런 이치를 깨닫습니다. 저 또한 젊어서는 헛된 이름을 얻고자 옛사람의 줄글을 훔치고 꾸며 칭찬과 명예를 구했습니다. 그렇게 얻은 이름은 겨우 송곳 끝만 한데 비방은 산만 합니다. -75쪽

청성산 한 귀퉁이를 떼어주오
-김성일이 권호문에게 쓴 편지

우리가 헤어진 뒤로 봄기운이 일어나니, 지난해 청성산을 유람했던 것이 이미 옛일이 되었구려, 티끌 속으로 얼굴을 돌려 바라보니 그리운 마음을 이길 수가 없소. 요즈음 그대의 근황이 더욱더 좋으리라 생각하오. 나야 이 지경까지 낭패를 당하고 있으니 달리 무슨 말을 하겠소. 늦은 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오. 그대는 청성산의 한쪽 구석을 떼어나에게 주실 수 있는지요.
꽃지고 낙엽 지는 것이 그대의 달력인데, 속세의 인간들이 보는 달력을 무엇에 쓰려 합니까. 그러나 오는 길에 부탁을 받았으니 한부 보내오. 이만 줄이오. -111쪽

이런 마음이 일어날 때 명나라 사람 이탁오가 한 말을 곰곰 생각해보자. "스승이면서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친구이면서 스승이 될 수 없다면 그 또한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163쪽

한 끼를 배불리 먹으면 살이 찌고, 한 끼를 굶ㅇ면 마르는 것은 천한 짐승에게나 어울린다. 시야가 좁은 사람은 오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당장 눈물을 줄줄 흘리고, 다음날 일이 뜻대로 되면 금세 아이처럼 표정이 밝아진다. 근심과 즐거움, 기쁨과 슬픔, 감동과 분노, 사랑과 증오 등 온갖 감정들이 아침 저녁으로 변하니, 달관한 사람들에게는 그 모습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이겠느냐.
그러나 소동파는 "세속의 안목은 너무 비천하고, 하늘의 안목은 너무 고상하다"고 말했다. 오래 사는 것과 일찍 죽는 것이 다를 바 없고,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또 지나치게 고상한 게 아니겠느냐.
아침에 햇빛을 받는 쪽은 저녁에 그늘이 빨리 들고, 일찍 핀 꽃은 먼저 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여라. 운명의 수레는 재빨리 구르며 잠시도 쉬지 않는다. 그 점을 기억하고 세상에 뜻이 있다면 잠시의 재난을 이기지 못해 청운의 뜻까지 꺾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장부는 언제나 가을 매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기상을 가슴에 품고 있어 천지가 좁아 보이고 우주도 내 손안에 있는 듯 가벼이 여겨야 한다.
-정약용이 아들 학유에게 쓴 편지-188쪽

하루는 저녁에 집주인 노파와 한담을 나누었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선생은 글을 읽으신 분이니 이런 뜻을 아시겠지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은혜는 똑같고, 오히려 어머니가 더 애쓰시는데도 성인들은 왜 아버지는 중하게 여기고 어머니는 가벼이 대하도록 가르치셨을까요? 성도 아버지를 따르고, 복을 입을 때도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한 등급 낮추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혈통으로 집안을 이루게 해놓고 어머니 집안은 도외시하였으니, 너무 한 쪽으로만 기운 게 아닌가요?"
이에 나는 "일찍이 '아버지 날 낳으셨다'고 했기 때문에 옛날 책에는 아버지가 나를 처음 태어나게 한 분으로 여긴 겁니다. 분명 어머니의 은혜도 깊지만 하늘의 으뜸인 탄생의 은혜를 더 중히 여긴 까닭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노파가"선생의 말씀이 꼭 옳지만은 않ㄹ습니다. 생각하건데, 초목에 비유한다면 아버지는 나무나 풀의 씨앗이고, 어머니는 흙입니다. 씨악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베푼 정도가 매우 미미하다고 할 수 있고 흙이 자양분을 주어 길러내는 공은 대단히 크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밤의 씨앗은 자라서 밤이 되고 벼의 종자는 자라서 벼가 되니 그 몸 전체를 -232쪽

이루고 있는 것은 흙의 기운이지만 결국에는 씨앗에 따라 종류가 가려지게 되어 있지요. 옛성인들이 가르침을 세워 예를 정할 때에도 이 점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제가 그의 말을 듣고 흠칫 놀라며 크게 깨달아 공경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밥 파는 노파가 천지간에 지극히 정밀하고 오묘한 뜻을 헤아리고 있을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기이하고 기이한 일입니다
-정약용이 형 약전에게 쓴 편지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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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9-10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어땠어요? 저는 그냥 선비들의 '글을 모아놓은 책' 이상의 느낌은 안오던데.

LAYLA 2007-09-12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좋았어요^^ 가볍게 읽을수 있는 난이도이고 옛날 말씨를 원체 좋아해서요 ㅋ 가끔 눈물이 글썽여지는 글도 있습니다. 편지글이라 그런지 진심이 절절이 배어있거든요..^^

마늘빵 2007-09-12 09:36   좋아요 0 | URL
아 제가 너무 무덤덤하게 읽었나봐요. 크크.
 
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품절


자발적이면서도 강제적인 신체 만들기. 이는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현상이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제 몸을 기업의 요구에 맞게 뜯어고친다. 언뜻 자발적인 것으로 보이나, 이 '존재미학'은 실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강요한 '생존미학'일 뿐이다.
...국가 주도의 경제가 민간 주도로 넘어가면서, 온르날에는 국가를 대신하여 시장이 인간의 신체를 개조하는 역할을 넘겨받았다. 요즘 신문 지면에서 '맞춤형 인재'라는 말을 종종 본다. 이 말은 주로 대학에서 기업의 요구에 맞는 인간을 생산해주는 시스템을 가리킨다. 이제 인간도 양복처럼 맞춰진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산학협동만이 아니다. 기업의 요구대로 맞추어진 인재는 지식이나 관심사뿐 아니라 세계관 자체도 기업의 코드에 맞추어질 수바껭 없기 때문이다. -41쪽

삶이 예술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 예술의 재료가 신체일 때는 상당히 착잡해진다. 신체를 재료로 한 북한의 매스게임은 보는이에게 근사한 작품일지 모르나, 정작 그 스펙터클 안에 들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고통이다. 남한의 신체 예술은 어떨까? 시선은 권력이다. 시선의 '주체'와 시선의 '대상'은 처지가 다르다. 작품이 된 신체는 '보는 남자'에게는 미적 쾌감을 줄지 모르나, '전시된 신체'에게는 커다란 육체적 고통이 따른다.
-75쪽

신체의 자본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막혀 있는 곳에서 혼인은 신분 상승의 유일한 길이 된다. 직장에 들어가도 한국의 여성은 능력보다 '용모'로 평가 받는다. 게다가 일상생활에서도 남성들은 여성의 외모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평을 한다. 이런 터무니없는 무례가 버젓이 공중파를 타기도 한다. TV를 켜면 개그맨들이 방청석에 앉은 여성들의 외모를 놓고 농을 지껄인다. 이런 사회의 다이어트는 특히 처절하고 필사적일 수바께 없다. 성형수술이 한국만큼 흔한 곳도 찾아보기 힘들다.
언젠가 이 문제를 놓고 야한 여자 밝히는 마광수 교수와 tv토론을 한 적이 있다. '얼굴 예쁜 여학생이 공부도 잘하고 일도 잘한다'고 믿는 그는 '성형을 안 하는 여자는 게으른 여자'라 단언한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아예 못생긴 걸 죄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렇게 극성스런 마초 사회에서는 당연히 실력보다 미모에 투자하는 게 경제적으로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여기서 여성은 자신의 신체를 본격적으로 자본화하게 된다.
-75쪽

엄청난 비용이 드는 성형은 글자 그대로 '투자'다. 물론 상류층 여성에게는 이 투자의 비용이 큰 부담이 안 될 게다. 하지만 이들과 더불어 미모의 경쟁을 벌여야 할 서민층 여성에게는 커다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을 피하여 비용을 무리하게 낮추다 보면, 불법 시술에 따른 온갖 부작용의 흉터를 평생 몸에 낙인처럼 새기고 살아야 한다. 신문에서 흔하게 접하는 소식이지만, 사실 이건 정말 비극적인 이야기다. -76쪽

시선의 권력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이 열렸을 때, 남한 남성들은 경기보다 북에서 온 응원단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미녀 응원단에게서 남한 여성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태적 매력을 보았다.'자본주의 물을 먹지 않아 순박'하고 '성형을 하지 않은 천연미인'이라는 것이다. 응원단은 남한 사회에 '북녀 열풍'을 불러일으키면서 폐쇄적인 북한 사회에 대한 부더적 인상을 누그러 뜨리는 효과를 냈다. 공산 체제가 경기장에 미녀의 얼굴로 나타난 게 <조선일보>는 영 불편했던 모양이다.

-78쪽

왜 남자는 없이 모두 여성들만 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배우처럼 활짝 웃는 얼굴 사이로 인공기를 흔드는 모습에 도취될 수도 있겠다 싶다.'아름다운 것이 선한 것'이라고 홀리게 될 때 미인계는 적중한다. -조선일보 2002/10/01

노동자, 농민의 국가에서 기계를 돌리는 튼튼한 여성노동자나 뜨락또르 모는 씩씩한 여성 농민이 아니라, 얼굴 예쁜 예술대생들만 골라서 보냈을 때에는 물론 체제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인계'운운하면서 그걸 무슨 대단한 적화 야욕이나 되는 양 부풀리는 <조선일보>의 우스꽝스러운 태도는 북한의 체재만큼 경직되어 보인다. -78쪽

<조선일보>의 태도에 반공주의적 공격성이 있다면, 남한 관중들의 태도에는 남성주의적 공격성이 있다. 북한에서도 이 시선의 폭력이 불편했던지, 그 다음에 왰을 때에는 남한 언론에 '미녀 응원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한국 자본의 눈에 북한이 아직 개척되지 않은 시장으로 보이듯이, 한국 남성의 눈에 북하느이 여성들은 앞으로 시각적으로 정복해야 할 무공해의 처녀지로 보였던 것이다.
'아름다운 것이 선한 것'이라는 관념은 미를 최고의 가치로 보는 유미주의의 강령이다.<조선일보>의 우려대로 과연 유미주의는 반공주의를 압도해버렸다. 유전자처럼 뿌리깊은 레드 콤플렉스도 '미'라는 가치앞에선 무력했다. 여기에는 어떤 통쾌함이 있다. 하지만 그 통쾌함 이면에는 극성스러우 반공주의조차 압도해버리는 막강한 남성주의적 시선의 권력이 있다. 바로 이것이 한국 여성의 성형 수술과 다이어트가 세계 어느 곳에서보다 더 처절하고 필사적인 이유일 것이다.-79쪽

남 보기에

루리아라는 학자가 러시아 혁명 직후 아직 구술문화 단계에 있는 촌락공동체에서 필드 워크를 했다. "당신의 성격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 물음에 한 농미능 이렇게 대답했다. "그걸 왜 저한테 묻지요 ? 동네 사람들한테 물어보세요." 자기가 자기를 평가하는 '반성'의 습속은 구술문화엔 낯선 것이다. 다른 이는 화를 버럭 내며 말하기를, "우리는 잘 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다면 다른 이들이 우리를 이렇게 대접해주겠어요?" 구술문화는 이렇게 평가의 기준을 다른 이들의 반응에서 찾는다.

우리가 자라면서 부모에게 늘 들었던 말이 바로 '남 보기 부끄럽지 않게 살라'는 소리. 학교에서도 '누가 뭐라 하더라도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며 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이렇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회에서는 삶의 목표마저 남의 눈에 맞춰지고, 사람들은 남의 욕망을 욕망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하든 올바로 사는 것, 혹은 누가 뭐라 하든 내 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남 부럽지 않게' 사는 것, 혹은 '여봐란 듯이 '사는 것이 된다. -174쪽

이런 문화에서 윤리를 형성하는 감정은 죄책감이 아니라 수치심이다. 신 앞에 떳떳하지 않은 이도 사람들 앞에선 떳떳하고, 신 앞에 떳떳한 이도 사람들 앞에선 부끄러울 수 있다. 여기서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 이렇게 윤리가 타인의 눈에 맞춰져 형성된 사회에서는 죄도 드러나지 않는 한 떳떳하고, 죄가 아닌 것도 드러나는 한 부끄러운 것이 된다. -174쪽

극성스런 사교육 열풍의 바탕에 깔린 것도 실은 생조느이 공포감이다. 아이를 일등 만들려는 상류층의 공격적 사교육과 달리, 서민층의 사교육은 아이를 생존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게 하려는 방어적 성격을 띤다. "왜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부모가 "남들 다 하는데 우리 아이만 안 시킬 수 없어서"라고 대답한다.
...공포는 판단을 마비시킨다. ...과거에 한국인의 심성을 지배한 것이 '전쟁'의 공포였다면, 오느날 한국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시장'의 공포다. -180쪽

생산의 비물질화

사회가 정부사회로 진입하면서 노동력의 상당수는 공장에서 사무실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이렇게 사무노동 종사자 수가 대폭 늘어나면, 사무직 노동자들이 과거에 누렸던 특권적 지위도 당연히 약화될수밖에 없다. 이로써 화이트 칼라의 블루칼라화가 진행된다. 반면 대다수가 몰락할 때 살아남은 소수의 농민이 농업 경영인이 되듯이 대다수의 몰락 속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산업노동자는 기계의 관리인과 같은 전문적 지위를 누릴 것이다. -224쪽

몇 년 전 경주의 천마총에 갔을 때의 일이다. 천년의 역사를 묻고 침묵하는 고분 주위를 산책하고 싶어 들어갔는데, 입구부터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10m간격으로 산책로 전체를 스피커로 도배ㅐ놨기에 가도가도 음악이 끊기지 않는다. 흘러나오는 것은 서양의 왈츠와 중국의 경음악.관광객을 위한 배려란다. 이런 발상을 낸 게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이박사 테이프를 듣고 싶어할 사람일 게다. -257쪽

"신부입장!"이라는 말과 함께 신부가 예식홀로 들어오자, 바닥에 갑자기 안개가 깔리기 시작한다. 결혼이라고 하면 그래도 인생에서 꽤 의미가 있는 행사일 텐데, 그렇게 중요한 행사를 굳이 눈 뜨고 봐주기 민망한 키치로 연출할 필요가 있을까? -264쪽

"나는 명품이 좋아요"라고 까놓고 얘기하거나, 남자가 주었다는 카드를 자랑하는 것 역시 많은 여성들이 가진 욕망의 솔직한 표현이다. 여자에게 교통카드밖에 줄 게 없는 고추장남들은 낸시가 연출하는 여성상을 아마 '된장녀'라 부를 것이다. 하지만 낸시는 된장녀의 속성과 욕망을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남들이라면 극구 부정하거나 애써 감추려 하는 것을 그는 '시대정신'으로 주장해버린다. 거기에 그의 도발성이 있다. -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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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7-09-03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예요 ^^ 잘지냈어요? 으흐 진중권씨 좋아하는데, 이 책 어때요? 멋진 리뷰 올려주시면, 읽어보고 저도 지를께요! ㅋㅋ

LAYLA 2007-09-04 00:44   좋아요 0 | URL
멋진 리뷰는 약속 못드리지만 좋은 책인건 보증(?)할게요 ^,^ 가시장미님 아이들 논술 가르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히히 웃기기도 하구요 (마지막 밑줄긋기 2개는 순전히 웃겨서 쓴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춤추는인생. 2007-09-04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라님 춤인생왔어요^^
저도 이책 읽었는데. 와 참 미워할수 없는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미학오디세이는 읽다 말다 읽다 말다 하지만.
올겨울까지는 꼭 독파하려구요!! 라일라님 잘 지내세요?^^

LAYLA 2007-09-04 00:46   좋아요 0 | URL
네 전 진중권씨 빠순이 끼도 약간 보이는데 이 분이라면 정색하고서 그런 맹목적인 애정은 옳지 않다고 말할거 같아요 ㅋㅋㅋㅋ^,^ 저 역시 미학 오디세이는 다 읽지 못했답니다 OTL 우리 같이 올 겨울까진 다 독파해요...호호호호 (전 잘지내고 있어요, 오늘 개강했답니다. 춤인생님은요? 요즘 뜸하셔서 궁금해요~^^)

미즈행복 2007-09-07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분 엄청 좋아하는데 -소싯적엔 한겨레 문화센터로 인사동으로 이 분 강의 들으러 다녔었지요. 2000년인가? 2001년인가에. 집은 서울이지만 그해 겨울에 청주에 가 있을 일이 있었는데 청주에서도 강의 들으러 그 요일에 고속버스 타고 인사동에 올라오곤 했었지요. 근데 이 책은 읽어보니 예전의 그 날카롭던 비판이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많이 유해진 것 같아서 아, 나이 드셨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던걸요?

LAYLA 2007-09-07 23:13   좋아요 0 | URL
와 정말 좋아하셨군요! 미즈행복님의 소싯적^^ 이 궁금해집니다. 소싯적 이야기 좀 많이 해주셔요 호호 ^.^
 
Madame FIGARO 마담휘가로 2007.8
㈜대천유통미디어사업본부 엮음 / ㈜대천유통미디어사업본부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래핑된 상태로 판매되는 잡지에 낚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이런 캐낚시는 풍선껌같이 허영만 가득찬 라이선스 패션 잡지계에서도 드물 정도로 큰 낚시질이기에 굳이 한달 밖에 유효하지 않은 잡지 리뷰를 남긴다. (오늘이 15일이니 실질 유효기간은 열흘 남짓인가)

Exclusive  43p, 디올 60년의 모든 것

1946~2008, 디올 패션 60년 화보 24p

꽁꽁 래핑해두고서 대문짝만하게 저것만 써놨길래 '아 딴건 다 구리더라도 패션화보만큼은 괜찮단 말이지?' 싶어서 구입했다. 그리고 래핑을 뜯고 1분 만에 내가 진실로 크게 낚였다는 것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디올 60년의 모든 것..............40년대 의상 사진 쪼끄만거 하나 끼워넣고 50년대 사진 하나 끼워넣고...결론적으로 80%이상이 2000년대 이상의 의상들이다. 진짜 디올이 만든 의상부터 갈리아노까지 디올의 변천사를 43p 컬러풀한 화보로 음미하고 싶었던 나의 꿈 따위는 산산조각.......인쇄와 사진의 질도 기대이하이다. 화보는 과연 한 포토그래퍼가 작업한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산만하다. 이것저것 옛날 자료 가져와서 붙여넣기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라이센스 패션 잡지 5년 봤지만 이 처럼 중구난방 화보는 첨이다. 진차 구린 화보는 여럿봤지만 이처럼 주제가 보이지 않는 화보는....인쇄의 질에 대해서는 일부러 그렇게 처리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눈이 잘못된건가 하여 확인차 몇달 전 바자의 디올 화보를 봤더니 순간 내 시야가 확 트이는 느낌이었다. 브라운관 tv보다가 와이드 화면 PDP tv 보는 느낌이랄까. 참고로 몇달 전 바자 화보는 분량은 적었다만 퀄리티 면에서 휘가로보다 5배는 나아보였다. 그렇다고 바자 화보가 유달리 뛰어난것도 아니었다. 그냥 음 괜찮네 하고 넘어갔던 수준. 그 달 바자 구리다고 욕했었는데 새삼 미안해졌다. 너희 휘가로에 비하면 양반이었구나 미안...

결론: exclusive는 개뿔, 이 정도 보려고 6000원 낼 필요없음. 헌책방가서 1000원짜리 지난 잡지 6개 사서 보는게 디올에 대해서 아는데 더 효과적이리라 사료됨

디올 화보뿐만 아니라 잡지 전체적으로도 상당히 불만족 스러웠다.

이거 신세계에서 상위 1%를 위해 발행하여 무료로 배포한다는 잡지보다 퀄리티 면에서는 더 조악하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 라이센스 문화 잡지라고 그러는데 이게 문화잡지를 표방한다니 한숨이.. 그 문화란게, 패션찔끔, 예술찔끔, 인터뷰찔끔, 대중문화 찔끔을 말하는 거라면 맞는 말이긴 하다만 공짜로 배포되는 잡지보다 구린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인터뷰라고 하는 건 무슨 즉석에서 만난 사람과 30분 대화한걸 실은 느낌이고 패션화보,뷰티화보는 말 그대로 구리고 진부하고 재미없다. 살다가 이렇게 '사고 싶지 않은' 명품 백 화보와 촌스러워 보이는 뷰티화보는 첨이다. (그토록 바라던 프라다 백마저 지마켓 스러워보이다니..)뭐 하나 특출난 부분이 있어면 딴게 좀 떨어지더라도 묻혀가기라도 할텐데 고루고루 다 구려주시다 보니 묻힐래야 묻힐수가 없다. 문화잡지라면서 문화계인사들과의 인터뷰 수준은 패션잡지 보그나 바자보다 떨어진다. 비교불가. 구성과 내용자체가 산만해서, 에디터 여럿이서 대충 분담해서 이것저것 모은 다음에 마감 전에 조합한 느낌이다. 잡지의 고유한 아이덴티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구난방 내용없음 사자마자 갖다버리고 싶음- 도 아이덴티티라면 아이덴티티?)

내 6000원이 아까워서 갈리아노, 디올 화보 철저히 분석해서 찢어질때까지 노려봐주려다가 짜잉나서 던져버렸다. 내 살면서 잡지 하나에 이렇게 긴 리뷰를 쓸 줄이야...이때까지 본 보그나 바자 기타등등 라이센스 패션지 '최악의 호' 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니 '다음달은 다르겠지'따위의 착한마음은 전혀 없다. 다 보고나서 생각해보니 굳이 래핑하고 디올화보만 하이라이트로 표지에 내놓은거 자체가 의도성 낚시질인거 같다. (하긴 뭐 표지에 쓸 내용도 없었을게다. 딱히 잘 해놓은게 없다보니) 양심없는 편집장. 낚시질 말고 잡지 퀄리티 좀 높혀주삼. 휴...차라리 패션브랜드 광고만 꽉꽉 채워져 있는게 나을것 같소. 그럼 눈이라도 즐겁지 이 촌스런 편집 어쩔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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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07-08-15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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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7-08-15 22:04   좋아요 0 | URL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알흠다운 리뷰가 얼마만인지~~!!>.< 추천은 제가 했어요!! 하지만 역시 한국의 라이센스 잡지계는 총체적으로 파탄 직전이죠.ㅋㅋ

LAYLA 2007-08-15 22:35   좋아요 0 | URL
광복절날 기분좋게 들어와서 샤랄라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하루를 행복하게 마감하려 했더니 오히려 뒷목잡고 쓰러질뻔 했습니다 ^^ 요즘 라이센스 잡지계 다 이런가요? 갈수록 바자가 구려져서 이번엔 다른 걸 볼까 싶었는데 완전 지뢰밟았습니다. 곧 이사갈 계획인데 짐되느니 곧 갖다버리거나 누구줘야할텐데 사자마자 버리고싶다니 기분히 희한하네요 ^^ ㅋㅋㅋ 로렌초의 시종님도 잡지 보시나요? 지큐? 에스콰이어? 맥심? 딴 말이지만 남자고딩들의 수험생활 친구가 맥심이라던 농담이 떠오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늘빵 2007-08-15 23:54   좋아요 0 | URL
헐. 잡지를 평하실 정도가 되셨군요. 내공이 대단하신겁니다. 난 잡지는 다 그냥 그런거 같아서 아예 안보는데.

LAYLA 2007-08-16 20:48   좋아요 0 | URL
내공이라뇨 허영의 세계에서 작은 즐거움을 찾다보니..ㅋㅋㅋㅋㅋㅋ

chika 2007-08-15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노의 리뷰,라는 제목만으로도 추천감이라 생각하고 왔음. ^^;;;;

LAYLA 2007-08-16 20:48   좋아요 0 | URL
추천 감샵니다. 알라딘이 분노를 뿜어내는 공간이 되어선 아니되는데 ^^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