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미래사 한국대표시인 100인선 33
윤동주 지음 / 미래사 / 2001년 11월
구판절판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골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어,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어오는 이, 나비 한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어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었든 자리에 누어본다.


-1쪽

바람이 불어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꼬 부는데

내발이 반석우에 섰다.



강물이 자꼬 흐르는데

내발이 언덕우에 섰다.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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