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 가지이 모토지로 단편선
가지이 모토지로 지음, 안민희 옮김 / 북노마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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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와 내용이 거미줄처럼 가느다랗고 섬세하다. 아주 짧은 분량으로도 선명한 이미지와 여운을 남기는 좋은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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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쇼핑을 좋아해 쏜살 문고
무라카미 류 지음, 권남희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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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없이 시작한 이 책을 읽으며 아니 이럴수가 무라마키 류가 이렇게 에세이를 잘 쓰는 사람이었던가 첫장부터 탄복하였다. 뒤로 가면서 감탄은 더욱 커졌는데, 필력도 필력이지만 24세부터 인세를 받아 고급스런 소비를 시작하고 그 뒤로 버블과 함께 커리어를 펼치며 마치 시대의 파도를 타듯 돈을 잘 벌고 또 돈을 잘 쓴 예술가의 삶이 담긴 에세이라서 읽는 재미가 넘칠 수밖에 없었다. 인스타로 명품 든 사람들 사진 아무리 봐도 별 감흥 없고, 모 재벌이 야구단이 지꺼라고 관종 포스팅을 올려도 심드렁한데 그 시절 무라카미 류의 소비는 왜 이렇게 멋있고 근사해보이는거지? 와 진짜 개멋지네 짱이다...이런 소리만 나왔다. 


나카타 경기 보러 이탈리아 다니면서 셔츠 수십장 싹 쓸어 버리고(쇼핑할 시간도 없으니까 벤츠 택시 대절해서 대기시켜두고 지르러 다님) 마음에 드는 크리스탈 잔은 쉰여섯개쯤 사버리고(결국 비행기에 들고 탈 수 없어서 국제선편배송으로 부친다) 올림픽 경기는 예선전부터 보러 다니는데 유럽을 돌아다닐 때 거점 도시를 파리로 할지 프랑크프루트로 할지 런던으로 할지는 그때그때 일정과 기분에 따라. 한국에 자주 오는데 한국에 명품관이 들어서는 모습도 기록해둬서 무척 흥미롭다. 


두꺼운 책은 아니라도 한 권의 책에 주구장창 쇼핑 이야기만 쏟아놓을 수 있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무라카미 류의 지름은 일반인의 상식과 소비수준으론 따라 잡을 수가 없는데 예를 들어 똑같은 명품 블루종을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엘에이와 파리와 모나코와 밀란의 부티크에서 각각 사면서 가격을 비교한다던지 (일부러 그런건 아니고 그냥 날씨가 그때그때 추워서 당장 입으려고 구입) 하와이에 소유한 콘도에 앉아 왜 이 사람들이 하와이에선 명품을 안 쓰나 고찰해본다던지 이탈리아 부티크에서 추천해주는대로 다 달라고 해서 무려 400만원어치의 티셔츠를 산 다음, 그 티셔츠는 이탈리아에서만 만들 수 있는 정말 최고급의 티셔츠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등... 


왜 요즘 유튜브나 인스타의 언박싱보다 이 이야기가 이십배쯤 더 재미있는걸까 생각해보았는데 무라카미 류의 소비는 언뜻보면 무작정 지름 같지만 들여다보면 그 속에 확실한 본인의 취향과 방향성이 있다는 게 좋은거 같고, 잘 나가는 예술가가 돈을 잘 벌어서 인생을 이렇게 행복하고 재미나게 살았다는걸 보는 재미도 있는거 같다. 첫 책이 대박나서 그 뒤로는 그만큼 잘 된 적이 없다고 스스로 말하지만 그럼에도 작가 멘탈이 건강하다는 게 글로 느껴진다. 작가이지만 셀렙이기도 한 커리어에 스스로가 크게 개의치 않은 느낌이다.


왜 이렇게 에세이를 잘 쓰는 사람이 에세이를 더 쓰지 않은걸까 그리고 왜 그의 에세이가 주목받지 못한걸까 싶은데... 이렇게 신나게 돈 쓰는 이야기 또 그런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이 일반 대중의 공감을 받긴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인세는 훨씬 더 많이 벌어들였을 하루키가 소확행 어쩌구 하면서 1달러 짜리 티셔츠 모은 이야기나 하고 사치 제로의 일상을 이야기한 에세이만 쓰고, 또 그 에세이로 더 큰 돈을 벌어들였단 건 너무 웃기고 아이러니하단 생각도...


이제 70인 무라카미 류

요즘은 뭘 하는지 궁금한데 한국 웹에서는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라 궁금하다. 옛날에 저렇게 시원하게 쓰시고 노후 대비는 잘 하셨는지... 요즘의 근황이 담긴 에세이를 볼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정말 무라마키 류의 에세이는 더 쓰여질 가치가 있다. 재주를 아끼지 말고 더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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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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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의 '책 한 번 써봅시다'를 읽고 이 책을 읽어서 그럴까. 책 한 번 써봅시다는 글쓰기를 독려하는 내용으로 온화한 장강명의 목소리를 담은 순한맛인데 이 책은 경쾌해보이는 표지와 달리 장강명의 날카롭고 독한 면(?)이 가감없이 실려있다. 대상이 신혼여행이나 글쓰기 수업이 아닌 책 그 자체이기 때문이리라. 장강명은 책에 진심이야. 그래서 이 책은 매운맛이다. 기대 없이 약간은 타임킬링용으로 집어 들었던 지라 부분적으로 비장하기까지 한 장강명의 목소리에 놀라고 말았다. 


나는 문화 산업 전체, 아니 소비재 산업 전체가 지금 팬 장사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먼저 대중음악이 아이돌 산업이 되었고, 뮤지컬이 스타 배우의 팬들에게 의존하게 됐고, 이제는 휴대전화도 그렇다. 사실 출판사들도 이미 그런 기운을 느끼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 같다. 나는 이것이 너무나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는 무조건적인 지지, 열광, 숭배의 정반대에 있는 행위인데. 내게 책이란 비판, 숙고, 성찰의 도구인데. 


느껴지는가. 장강명의 책에 대한 애정이. 나 역시 장강명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기에(책 리뷰로 찬양리뷰 1개쓰면 까기리뷰 9개 정도 쓰는ㅋㅋ) 공감하며 읽었는데 이런 태도가 요즘의 독자들에게도 유의미하게 읽힐지는 사실 의문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장강명은 열심히 읽고, 우울증에 걸릴만큼 높은 기준을 가지고 글쓰기에 임하며, 책을 굿즈로 소비하는 요즘의 세태에 냉소하지 않고 일단 쓴다. 


책, 이게 뭐라고는 장강명 작가가 진행했던 팟캐스트 프로그램에서 따온 제목이라고 하는데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 이보다 적절한 제목이 있을 수 없다. 모두가 책 따위 '교양 있는 나'의 이미지 치장용 악세사리로 쓰는 시대에 우리는 왜 이렇게 책을 사랑하고 책에 연연하는가. 책, 이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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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7-0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읽고 있는데 별 생각없이 잠시 가볍게 읽으려고 들었다가 생각보다 좋은 문장들이 많아 기분좋게 읽고 있어요. ^^

LAYLA 2021-07-08 12:13   좋아요 0 | URL
앗 바람돌이님 ^^ 수많은 책 중에 우연히 같은 책 읽고 있다니 신기하고 반갑네요 ㅎㅎㅎ 근래에 보기드문 ‘치열한‘ 에세이가 아닌가 했습니다. 장강명 작가에 대한 신뢰가 한층 더 깊어졌어요^^
 
이제 아픈 구두는 신지 않는다
마스다 미리 지음, 오연정 옮김 / 이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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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람이 보는 세상이지만 그걸로 만화를 그리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며, 산출물의 퀄리티 또한 극과 극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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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7-01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스다 미리의 작품이 고르지가 않더라구요. 그리고 갈수록 그밥에 그나물 같다는 느낌도 들고,,아니면 우려먹는다고 해야하나?

LAYLA 2021-07-02 00:33   좋아요 0 | URL
만화는 괜찮은데 글은 이제 안 볼 거에요^^ 제목은 너무 멋지다고 생각해요 ㅎㅎㅎ
 
봄눈 풍요의 바다 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윤상인 외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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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의 가치를 후하게 평해주더라도 이것은 일남의 문학. 찌질함과 비겁함을 우아함이란 포장지로 싸는 기교를 장장 500페이지에 걸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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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6-28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저 이 책 예쁘다고 해서 종이책으로 사서 선편으로 받았는데 레일라님 글 읽으니 급후회,,,하지만 후회하면 뭘 하나요?ㅠㅠ 책은 솔직히 그렇게 이쁘지도 않아서 더 그런 생각을 하나봐요,,, 왜 제 눈에는 안 이쁠까요?? 다들 이쁘다고 하던데,,,힝

LAYLA 2021-06-30 20:20   좋아요 0 | URL
앗 라로님 아직 안 읽으셨군요 그 시절 책이니 요즘의 시각으로 보자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긴 할테지만...그 시대의 일본과 일본인들 특유의 사고방식을 보는 재미는 있긴 했지만 너무 평이 좋아서 실망도 컸답니다^^;;;

2020 2023-01-21 15: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성은 통념과 달리 남성보다 감정과 사고가 섬세하지 않다. 단지 연애사에 대한 관심사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그에 관한 여성의 논평이 많아보일 뿐 사실 남성의 감성이 훨씬 섬세하다. 여성은 남성이 섬세한 감정선을 드러낼때 이를 종종 이해하지 못하고 불편해하며,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남성의 섬세한 감정선들을 ‘찌질하다’ 한 한마디로 설명하고 넘어간다. 이게 통념과는 다른 현실이다.

LAYLA 2023-01-22 18:43   좋아요 2 | URL
뭐래 찌질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