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전하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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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문학에 대해 무조건 버튼 눌려 발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실제로 여성주의라는 트렌드에 맞추어 수준보다 과대평가 작품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교조주의적으로 강하게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은 여성독자로서도 불쾌하게 느껴진다. 이번 제 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들은 그런 추세속에서 여성주의 문학이 질적으로도 한 단계 도약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반가웠다.


대상인 전하영 작가의 작품(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은 아름다운 작품이었고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큰 그릇에서 담아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는 수작이라 생각한다. 작가분이 영화를 오래 하셔서 그런지 감각적인 구성과 물흐르는 듯한 전개가 탁월했다. 앞으로 어떤 장편을 쓰실지 너무나도 큰 기대가 된다.


박서련 작가의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은 더 많은 주목을 받아야 할 수작이 아닌가 싶다. 한국사회에서 '엄마'에게 부과되는 말도 안되는 의무, '엄마'에게 가해지는 말도 안되는 멸시, 그리고 주인공이 자신의 수행하는 '엄마'란 역할에 매몰되어 끌려다니다 끝내 무너지는 마지막의 엔딩은 주제의식을 탁월하게 전달한다. 경쾌한 문체로 서글픈 메시지를 써내는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


작년보다 올해가 나아졌듯, 내년엔 또 더 좋은 작품 그리고 더 많은 편수의 좋은 작품이 소개되길 바래본다. 


그때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이번 식사시간 동안만 참은게 아니라 아빠의 딸로 태나서 사는 내내 참아왔다. 정말이지 계속 참았다. 화병에 안 걸린 게 신기할 정도로 참았다. 이 심리적인 응어리가 실체를 가진 덩어리가 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참았다. 이미 몸속에 그런 게 있을지도 모르지. 사리라든가, 요로결석이라든가.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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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쓰무라 기쿠코 지음, 이은미 옮김 / 샘터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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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 문학 인기가 없다지만 문학상 꽤 받은 작가가 이 정도 수준인가 참혹했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인듯 이런저런 일에 대한 아주 상세한 묘사가 나오지만 사유도 없고 재미도 없고 하다못해 캐릭터의 일관성도 없다. 컨셉만 그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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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
샤오루 궈 지음, 변용란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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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15년쯤 전에 이 책을 읽었었다. 예쁜 표지, 그리고 제목과 달리 내용은 무척 현실적이고 삶과 사랑의 초라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내용이라 그 당시엔 재독이 힘들거 같다 생각했었다. 일부러 소장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다시 읽고 싶어졌다. 클로이 자오 감독이 아카데미 수상을 한 뉴스를 보니 중국 여자들의 예술에 대해 다시 관심이 갔고 내가 예전에 본 그 작품이 그 당시엔 그리 유쾌한 작품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다시 볼만한 작품은 된다는 어렴풋한 확신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읽은 이 작품은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더 대단한 작품이었다. 중국이 지금보다도 훨씬 구지고 후진 취급을 받던 시대의 작품이기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단 아쉬움도 남는다.  


형식적 측면에서 이 책은 '책'의 형태에 가장 가까울 뿐 실제 내용으로는 이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예술이란 생각이 드는데 그게 이 작품의 가장 탁월한 점인것 같다. 책은 여성 주인공이 영국에 어학연수를 위해 도착한 뒤 완전히 엉망인 영어로 쓰는 일기로 시작한다. 영국에서의 체류기간이 길어지고 영국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며 영어를 배우는 모습, 타 문화와 타인에 대한 이해를 쌓아가는 모습, 그 과정의 갈등과 혼란이 점점 늘어나는 영어실력과 함께 묘사된다. 일기의 각 장을 영어사전에서 따온 단어의 정의로 붙이고 있단 점도 이런 구성과 형식에 걸맞는 예쁜 디테일이다. 이 정도면 언어와 문화 그리고 자아를 소재로 한 현대미술이라고 봐야하지 않을지? 책이 출간된 이후 호평과 함께 '브로큰 잉글리쉬를 읽어내는 고통만 견디면 이 작품의 진가를 알 수 있을 것',이란 평이 붙었다는데 이 작품이 더 널리 알려지지 않은건 브로큰 잉글리쉬를 견디지 못한 영어권 독자들의 게으름 때문이지 않을까 혼자 생각도 해본다. 번역이 꽤 잘 된 편이라 생각하는데 번역판을 읽고 원서를 보니 영어 수준이 번역판으로 느껴지는 것보다 더 형편없어서 다소 놀랍긴 하였다. 


내용의 측면에서는 이 책이 중국인의 정체성을 꽤나 짙게 담고 있다는 것을 재독을 하며 알게 되었다. 평생 중국에서 살다 처음으로 외국에 나온 주인공이니 중국은 이렇니 저렇니 하는 서술이 있다는 것이야 알았지만 중국에 대한 이해가 늘고 나서 다시 보니 책의 서술 그 자체가 중국인의 마인드와 멘탈리티를 기초로 한 것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 담긴 것인데 보통 이런걸 구현하기가 쉽지는 않으니까. 같은 동양인 여성이라도 한국인이나 일본인을 주인공으로 쓴다면 절대로 이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책 속에 등장하는 한국인 여성은 너무 예의를 차리는 모습으로 나오고 나는 한 사람의 한국인으로서 공감하였다. 그리고 사랑의 서사와 엔딩에서는 예전에는 아이고 구질구질해 다시 보고 싶진 않소. 싶었는데 이젠 이 구질구질함이 현실의 사랑임을 알기에 오히려 가슴이 아팠다. 오히려 마지막 엔딩은 현실보다 더 로맨틱하다고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최근 조명받는 전하영 작가도 그렇고 영화를 전공한 사람이 쓰는 글엔 확실히 무언가, 글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초월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연출이란 것을 글로 구현하는 것의 파워가 분명 있는 것은 아닐지? 소설이란 하나의 평면을 달리는 글보다 소설과 영상의 두 축으로 입체적으로 달리는 글이 쓰기야 물론 어렵겠지만 그만큼 더 풍부한 무언가를 담아낼 그릇이 되는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작가에 대해서는 이 작품 이후가 궁금했고, 잘 살고 있기를 바랬는데 검색을 해보니 중국 시민권을 버리고 영국 시민권을 땄고 지금도 작품 활동을 하며 잘 지내고 있는 듯 하다. 다행이다. 모두가 아카데미 상을 탈 수는 없고 모든 예술가의 작품이 공정한 세속적 보상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정말 좋은 작품을 만든 예술가가 다음 삶을 도모할 수 있는 정도의 숨통은 트여있길 바라는 그런 먼 나라 한 독자의 간절함에 부합하는 현실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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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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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레코드판을 수집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티셔츠를 수집했단 말인가? 최근 하루키 에세이들이 너무 빈약한 두께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 확인해보니 역시 192p. 그래도 하루키의 가벼운 문장이 끌려서 주문해 봤다. 


책이 일반 종이가 아니라 컬러 인쇄하는 두꺼운 종이를 사용했고 양장본에 박도 먹이고 등등 만듦새에 있어서 너무 튼튼해서 책값이 아깝지는 않았다. 다만 내용에 있어서는 큰 깊이가 있지는 않다. 이 티셔츠는 어디서 샀고 잘 입고 다니지는 않고, 등등의 내용이라서. 가장 재미있었던 내용은 토니 타키타니 티셔츠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책을 출판하고 사은품으로 만든 티셔츠가 아니라 어느 중고샵에서 우연히 토니 타키타니라는 이름이 써 진 티셔츠를 1달러에 구입하고 그것에서 착안하여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일반 작가가 썼더라면 뭘 이런걸 책으로 내냐고 욕을 먹었을거 같기도 하다만 이것은 하루키의 이야기이고 하루키의 티셔츠들이니까. 그의 팬들을 위한 책으론 그럭저럭 넘길 수 있다 싶다. 책을 너무 정성스럽게 만들기도 했고, 이런 저런 티셔츠를 입은 무라카미 하루키를 상상하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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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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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요코의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도 이 책은 일부러 피했는데 뭐랄까 너무 대박이 난 대중적 책보다는 숨어있는 책이 사노 요코의 개성을 더 잘 느낄 수 있을것 같단 아주 근거없는 이상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서 든 생각은. 아...잘 팔리는 건 이유가 있구나... 원래 재기발랄하고 필력이 좋은 작가이지만 이 책은 더더욱 재미있다. 사노 요코에 입문한다면 이 책으로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건 세부분인데 하나는 노년의 삶에 대한 현실적 묘사와 그것을 순조롭게 받아들이는 태도. (아침에 뭘 먹었는지 아침 먹고 나서는 길에 까먹지만 뭐 괜찮다.)


한국 드라마에 대한 사노 요코의 주접 (웬만한 아이돌 팬은 범접할 수 없는 노년의 한류팬 주접력은 가히 주접퀸이라 불러도 될 듯. 읽으면서 자꾸 웃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이후 삶에 대한 묘사와 그것이 주는 위로 (시한부 선고를 받아서 오히려 우울증이 사라지고 남은 생이 더 기뻐졌다고 한다)


사노 요코의 글이야 원래도 늘 진솔하고 예상치 않은 부분에서 사람을 울게 만들지만 시한부 선고를 받은 다음, '어릴 적부터 70까지만 살고 싶었는데 난 착한 어린이었나보다. 소원을 들어주다니.' 이렇게 말하는 부분이 너무 좋았다. 


이 책은 인생이 재미있고 즐거운 분들이 봐도 좋겠지만 개인적으론 인생이 살기 싫은 사람이 봐도 좋을거 같단 생각이 든다. 사노 요코가 격려를 하거나 희망을 주지는 않는다. 그냥 담담히 자신의 노년 라이프를 말할 뿐인데 그게 위로가 된다. 젊어서처럼 아둥바둥하지 않는 노년의 마음의 여유가 글에서 느껴지고 그게 그 자체로 힐링이 된다. 더 노력하라거나 멋지게 살라는 말은 하나도 없고 사노 요코는 되려 시한부 선고를 받고 '죽지 않을 만큼 하고 싶은 일도 없다'고 잘라서 말하는데 그게 속이 시원하달까. 인생 뭐 있냐, 인생은 의미가 없으니 너무 안달복달하지 말고 살라는 불교교리 같은 메시지가 사노요코의 삶 그자체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론 책을 보며 나도 70까지만 살고 싶단 생각을 했고 그랬더니 남은 생이 좀 덜 무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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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4-26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이 사노 요코의 두 번째 책이었어요. 첫 번째 책은 나의 엄마 시즈코상,,,굉장히 솔직하고,,,암튼 그 이후로 그녀의 왕팬이 되었지요,,, 일어로도 읽고 싶은데,,, 아무래도 제 머리로는 불가능데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LAYLA 2021-04-26 18:28   좋아요 0 | URL
나의 엄마 시즈코상은 어떤가요? 겨울연가 배용준 이야기할 때 웃겨 죽는 줄 알았어요 ...ㅠㅠ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