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쇼핑을 좋아해 쏜살 문고
무라카미 류 지음, 권남희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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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없이 시작한 이 책을 읽으며 아니 이럴수가 무라마키 류가 이렇게 에세이를 잘 쓰는 사람이었던가 첫장부터 탄복하였다. 뒤로 가면서 감탄은 더욱 커졌는데, 필력도 필력이지만 24세부터 인세를 받아 고급스런 소비를 시작하고 그 뒤로 버블과 함께 커리어를 펼치며 마치 시대의 파도를 타듯 돈을 잘 벌고 또 돈을 잘 쓴 예술가의 삶이 담긴 에세이라서 읽는 재미가 넘칠 수밖에 없었다. 인스타로 명품 든 사람들 사진 아무리 봐도 별 감흥 없고, 모 재벌이 야구단이 지꺼라고 관종 포스팅을 올려도 심드렁한데 그 시절 무라카미 류의 소비는 왜 이렇게 멋있고 근사해보이는거지? 와 진짜 개멋지네 짱이다...이런 소리만 나왔다. 


나카타 경기 보러 이탈리아 다니면서 셔츠 수십장 싹 쓸어 버리고(쇼핑할 시간도 없으니까 벤츠 택시 대절해서 대기시켜두고 지르러 다님) 마음에 드는 크리스탈 잔은 쉰여섯개쯤 사버리고(결국 비행기에 들고 탈 수 없어서 국제선편배송으로 부친다) 올림픽 경기는 예선전부터 보러 다니는데 유럽을 돌아다닐 때 거점 도시를 파리로 할지 프랑크프루트로 할지 런던으로 할지는 그때그때 일정과 기분에 따라. 한국에 자주 오는데 한국에 명품관이 들어서는 모습도 기록해둬서 무척 흥미롭다. 


두꺼운 책은 아니라도 한 권의 책에 주구장창 쇼핑 이야기만 쏟아놓을 수 있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무라카미 류의 지름은 일반인의 상식과 소비수준으론 따라 잡을 수가 없는데 예를 들어 똑같은 명품 블루종을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엘에이와 파리와 모나코와 밀란의 부티크에서 각각 사면서 가격을 비교한다던지 (일부러 그런건 아니고 그냥 날씨가 그때그때 추워서 당장 입으려고 구입) 하와이에 소유한 콘도에 앉아 왜 이 사람들이 하와이에선 명품을 안 쓰나 고찰해본다던지 이탈리아 부티크에서 추천해주는대로 다 달라고 해서 무려 400만원어치의 티셔츠를 산 다음, 그 티셔츠는 이탈리아에서만 만들 수 있는 정말 최고급의 티셔츠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등... 


왜 요즘 유튜브나 인스타의 언박싱보다 이 이야기가 이십배쯤 더 재미있는걸까 생각해보았는데 무라카미 류의 소비는 언뜻보면 무작정 지름 같지만 들여다보면 그 속에 확실한 본인의 취향과 방향성이 있다는 게 좋은거 같고, 잘 나가는 예술가가 돈을 잘 벌어서 인생을 이렇게 행복하고 재미나게 살았다는걸 보는 재미도 있는거 같다. 첫 책이 대박나서 그 뒤로는 그만큼 잘 된 적이 없다고 스스로 말하지만 그럼에도 작가 멘탈이 건강하다는 게 글로 느껴진다. 작가이지만 셀렙이기도 한 커리어에 스스로가 크게 개의치 않은 느낌이다.


왜 이렇게 에세이를 잘 쓰는 사람이 에세이를 더 쓰지 않은걸까 그리고 왜 그의 에세이가 주목받지 못한걸까 싶은데... 이렇게 신나게 돈 쓰는 이야기 또 그런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이 일반 대중의 공감을 받긴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인세는 훨씬 더 많이 벌어들였을 하루키가 소확행 어쩌구 하면서 1달러 짜리 티셔츠 모은 이야기나 하고 사치 제로의 일상을 이야기한 에세이만 쓰고, 또 그 에세이로 더 큰 돈을 벌어들였단 건 너무 웃기고 아이러니하단 생각도...


이제 70인 무라카미 류

요즘은 뭘 하는지 궁금한데 한국 웹에서는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라 궁금하다. 옛날에 저렇게 시원하게 쓰시고 노후 대비는 잘 하셨는지... 요즘의 근황이 담긴 에세이를 볼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정말 무라마키 류의 에세이는 더 쓰여질 가치가 있다. 재주를 아끼지 말고 더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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