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까지 어떤 말을 쓰고 살았을까요? 글쓰기회 겨울배움터에서 우리 말 공부를 시작하고 공부하다 우연히 최종규님을 만났습니다. 누리사랑방에서 이오덕 선생님 책 갈무리한 글을 읽었지요. 쉽고 아름답게 읽히는 글에 빠져들었고 깊이 있는 글에 또 한번 놀랐어요. 누리사랑방에 있는 우리말 바로쓰기 글들도 보았지요. 이것 말고도 아이 키우는 이야기, 사진이야기, 헌책방 이야기 등 곳곳에 읽을거리가 많았어요. 하루 아침에 쓴 글은 아니었지요. 아마도 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차곡차곡 쓰고 모아둔 듯 싶어요. 그도 그랬지요.
“한 걸음씩입니다. 꼭 한 걸음씩입니다. 아주 더디다고 할지라도 한 걸음씩입니다. 좀 느린 듯 보일지라도 한 걸음씩입니다. 아직 모자라거나 엉성할지라도 한 걸음씩입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지만 한 걸음씩입니다.” -생각하는 글쓰기 70쪽-
나도 한 걸음 내딛어보렵니다. 내가 쓰고 있는 말들을 돌아보고 말결을 천천히 다듬어 보렵니다. 나는 꿈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세상이 더 나아지는데 내가 보탬이 되는거지요. 그런데 내 말투 하나 바꾸지 못하는데 어찌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거창하지요. 생각해보면 우리말을 바로 써야겠다는 마음은 크지 않았어요.
요즘 우리말을 쓰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딸 소율이와 이야기할 때입니다. 차안에서 늘 자기가 듣고 싶은 노래만 떼쓰는 딸에게 아내는 김동률 노래를 켜고 이렇게 말했지요.
“엄마가 좋아하는 가수야. 이 가수 노래 좋지?”
“엄마, 가수가 뭐야?”
“응, 노래하는 사람.”
“아, 그렇구나.”
네 살 딸아이에게 어려운 한자말을 쓰면 다시 풀어 말해줘야 합니다. 두 번 이야기 안하려면 아주 쉬운 우리말로 얘기해줘야 하지요. 교실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어려운 말을 쓰면 아이들은 꼭 다시 물어보죠.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선생(가르치미)이기에 쉬운 말을 써야 돼요. 처음에는 어려운 한자말을 자꾸 써야 어휘도 늘고 좋은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름다운 우리말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어찌 그리 어려운 말을 쓰려했을까요.
어려운 한자말, 영어를 섞어 쓰는 사람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요즘은 처방전을 친절히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막 휘갈겨 썼죠. 그런 처방전을 보면 의사가 전문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 내용이 궁금할 때가 많아요. 말은 내가 남보다 뛰어나다 자랑하는 수단이 아니죠. 한글이 있기 전 어려운 한문을 배운 일부만이 지배층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던 아픈 역사가 우리에게도 있어요. 말은 못 배운 시골 할머니도 많이 배운 대학 교수도 서로 통하는 말이어야 합니다. 그리해야 서로 더불어 살며 마음이 어우러지는 그런 세상이 되겠죠. 배운 사람, 돈 있는 사람만의 세상이 아닌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서는 쉬운 우리말을 살려 써야겠어요.
한자말이 우리말을 풍부하게 했다지요. 나도 그리 믿었지만 아닙니다. 되려 한자말은 우리말을 잡아먹었어요. 산(山)이라는 말은 뫼, 재, 갓이라는 토박이말 셋을 잡아 먹었지요. 어떤 사람은 너절한 말들을 또렷하게 만들었다고 좋아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갓’은 집을 짓거나 연장을 만들거나 보를 막을 적에 쓰려고 일부러 가꾸는 ‘뫼’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그런 ‘갓’을 지키는 사람을 ‘갓지기’라고도 불렀죠. ‘재’는 마을 뒤를 둘러 감싸는 ‘뫼’를 말하지요. 마을을 둘러 감싸고 있기에 오르내리고 넘나들며 길도 내고 밭도 만들어 삶터로 삼습니다. ‘뫼’는 ‘갓’과 ‘재’를 싸잡고 그보다 높고 커다란 것까지 뜻하지요.
옛 우리 조상들은 붉은 빛을 띠는 말이 참 많았어요. 붉다. 불그스름하다. 불그죽죽하다. 불그레하다. 발그레하다. 그런데 적색(赤色)이 이 말들을 다 잡아 먹었지요. 우리 겨레의 아주 작은 마음결과 숨결까지 빼앗긴거죠.
촌스럽게 왜 그래. 글로벌 시대에 우리말을 꼭 써야해? 말은 도구일 뿐 편하게 쓰면 되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많지요. 영어, 한자말을 쓰지 말자는 말은 아닙니다. 꼭 써야 할 때 쓰자는 말이예요. 영어와 한자말은 외국사람과 대화할 때 쓰면 됩니다.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끼리는 우리말을 쓰면 되지요. 어렵고 아리송한 한자말 대신 쉬운 우리말을 쓰자는 얘기예요. 우리말을 다 잡아 먹은 잘못된 말투를 바로잡자는 것이구요. 수천 년 동안 이어온 우리말은 우리 겨레의 얼과 혼, 문화가 담겨있어요.
이렇게 우리말을 살려 바로 써야 하는 이유를 써 보았어요. 나도 내 생각이 부족해 글로 적바림해봅니다. 내 삶부터 잘 가꾸고 잘못된 말투부터 배우고 고쳐야 겠어요. 그러면 말결, 삶결도 조금씩 나아지겠지요. 그리하여 세상도 그리 나아지겠지요.
“말 한 마디 자그마한 구석을 알뜰히 가구는 동안 우리 삶 모두 알뜰히 가꾸게 되고, 말 한 마디 자그마한 대목이라고 업신여기며 내팽개치면 우리 삶 모두 대충대충이 되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업신여기는 셈입니다.” -생각하는 글쓰기 35쪽-
(민들레처럼. 2015.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