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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타령 - 김수업의 우리말 사랑 이야기
김수업 지음 / 지식산업사 / 2006년 4월
평점 :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온갖 것이 더불어 사랑하며 하나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살맛나는 세상이다.
가진 이나 못 가진 이, 힘 있는 이, 아는 이나 모르는 이 가리지 않고
서로 돕고 아껴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다
나아가 땅 위의 온갖 짐승과 벌레와 물고기와 새들뿐 아니라,
온갖 푸나무와 돌멩이 하나까지 서로 아끼며 돌보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마침내 온 세상 우주 안의 만물과도 서로 사랑하며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
이런 세상이 살맛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우리 겨레 사람들끼리
마음껏 생각과 느낌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다.
알아듣기 쉽고 깨끗한 말을 주고받으며 사랑 넘치게 살아가는 것이다.
어렵고 어수선한 말을 간추려 갈고 닦아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음 편안히 주눅 들지 않고 주고받을 수 있는 말을 쓰도록 하는 것이다. <167쪽>
내가 쓰는 말, 그동안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어떤 말을 쓰는지, 어떤 뜻이 있는지, 어떤 숨결이 있는지 몰랐다. 이제는 조금씩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며 동무들이 쓰는 말, 가게에 붙여진 글들이 보인다. 버릇처럼 잘못쓰고 있는 말부터 바로 써야겠다.
마씨모와 의사 교수의 토론(48~53쪽)
누구나 알 수 있는 말로 써있는 병상일지를 보고 소년 마씨모와 의대 교수 사이 말싸움이 벌어진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있을까?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게 휘갈겨 쓴 처방전, 그 내용을 알려하면 의사는 감히 환자주제에 하는 눈빛으로 쳐다볼 것이다. 학문을 하는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한자, 영어를 섞어쓰며 자신의 유식함을 자랑하는 모습은 깊숙이 너와 나는 다르다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알아듣는 쉬운 말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바로 함께 사는 민주사회를 만들어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문자 쓰기를 몹시 좋아하는 선비가 살았다. 장가를 들어 처갓집에 가서도, 입만 벌리면 문자를 쓰는 통에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배운 사람들은 되지도 못한 문자를 쓴다고 입맛을 쩝쩝 다시고, 못 배운 사람들은 문자를 알아듣지 못하니까 아니꼽게 여겼다.
어느 날 처갓집에 일이 있어 아내와 함께 가서 자는데, 밤중에 범이 와서 장인이 물어갔다. 집안에 사람이라고는 장모와 선비 내외뿐인 터이라, 어쩔 수 없이 선비가 지붕에 올라가 소리쳐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 했다.
"원산대호가 근산 래하야 오지장인을 착거 남산 식하니 지총지자는 지총 래하고 지창지자는 지창 래하소! 속래 속래요!"
이렇게 고함을 질렀다. "먼 산 큰 범이 와서 우리 장인을 앞산으로 물고 갔으니 총을 가진 사람은 총을 들고 나오고, 창을 가진 사람은 창을 들고 나오시오! 어서요 어서!" (206쪽)
웃음이 나왔다. 내 주위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다. 정말 쉽고 또렷하고 아름다운 말을 써야 한다. '감사합니다'가 아닌 '고맙습니다', '하복부에 시시로 통증이 온다'가 아닌 '아랫배가 싸리하게 아프다'라는 말을 써야 한다. 그 이유는 들어보면 안다. 어떤 말이 더 쉽고 또렷하고 아름다운지. 그래도 그동안 학교와 사회에서 배운 못된 버릇이 남아있어 내 말버릇을 살펴보기 쉽지 않다. 지금도 글을 쓰면서 망설여지기도 한다. 한 십년은 배우고 다듬어야 겠다.
말은 사랑의 열쇠다. 말을 주고받는 것은 사랑의 행위다. 꽃을 주고, 선물을 주고, 마침내 몸까지 주는 것으로 사람을 사랑을 드러낸다. 주는 꽃을 뿌리치지 않고 고맙게 받고, 주는 선물을 퇴짜 없이 고스란히 받고, 주는 몸까지 다소곳이 받으면서 사람은 사랑을 나타낸다. 그렇게 가진 것을 주고받는 사랑 가운데서도 말을 주고받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값진 것이다. 말은 그 어떤 꽃보다도, 그 어떤 선물보다도, 심지어 몸보다도 더 고귀한 것이다. 말에는 사람의 마음과 더불어 얼까지 싸잡아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말은 사람됨의 모두기 때문이다. 사람됨 모두를 담아내는 참다운 말을 주고받는 것보다 더 아름답고 거룩한 사랑은 없다. (240쪽)
글쓰기도 그랬다. 이제 막 배우고 가꾸려 힘쓰지만 그러니 내 삶이 조금씩 소중해지고 가꿔지고 있는 마음이 든다. 우리말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잘 모르지만 말 하나 하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고 바라보니 내 몸도 마음도 그리 움직인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라는 말처럼 내 뜻을 세우면 얼과 마음, 그리고 몸이 따라오지 않을까? 갈 길이 멀다. 내 마음과 삶부터 찬찬히 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