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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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였다. 이것은 프랑스 출신 르포 소설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엠마뉘엘 카레르의 벽돌 사이즈만한 기독교 르포 소설 <왕국>에 대한 이야기다. 기성작가로 활동하던 카레르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들이 흔히 겪는 슬럼프에 빠져 있는 동안, 교조주의적 가톨릭 신자로 변신하게 된다. 무신론자에서 영성체를 하고 매일 같이 미사에 참석하게 되는 열혈 신자로 변신하게 되는 과정에 서술이 소설의 초반 155쪽(!)을 집어 삼킨다. 무신론적인 입장을 가진 독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전개일지도 모르겠지만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높다고나 해야 할까. 내가 기대한 것은 기원 1세기 예수 그리스도의 사후, 소아시아와 마케도니아 같은 헬레니즘 세계를 누비며 기독교 교리와 신앙을 전파한 바오로와 루카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는 이들에게, 신앙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성삼위일체, 무염시태, 영성체 의식(성찬식) 그리고 예수의 부활(교황 무오류설은 당연히 제외하자) 같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들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할 것 같다. 어쨌든 신앙과 불신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탐욕스러운 독자이자 저자 카레르는 그리스도의 품 안으로 조건 없이 투항해서 슬럼프를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그 와중에 삽입된 아이들의 보모였던 미국 출신 제이미에 대한 에피소드는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세속인으로 살아야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노출시키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계속해서 그렇게 회의하는 가운데, 자신의 양심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장면이야말로 불완전한 피조물로서의 숙명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끔찍한 것을 쓰는 이는, 끔찍한 일을 당하는 법이라는 자조적인 패러프레이즈에 담긴 블랙유머에서 작가의 스타일을 읽을 수도 있었다. 고백하건데 카레르와는 첫만남이라 기대반 걱정반의 심정으로 도전에 나섰다.

 

고진감래라고, 드디어 바오로와 루카가 등장하는 장면과 만나게 됐다. 자, 이제부터 진짜가 시작된다. 로마 제국이 번성하던 가운데, 그리스도 사후 갈릴래아 지방을 중심으로 해서 사방으로 퍼져 나가던 요즘 말로 하면 힙한 종교, 초기 기독교는 기존의 엄격한 유대교에서 요구하는 개종의 조건(할례) 대신 세례라는 비교적 간단한 개종 방식으로 민간에서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에 걸출한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본인 역시 개종한) 바오로가 등장한다. 소아시아의 항구도시 트로아스(고대 트로이)에서 바오로와 만난 이방인(그리스인) 의사이자 프로셀리테스(개종자) 마케도니아 사람 루카는 소아시아 선교 대신 서방으로 목적지를 이동하기에 이른다. 루카가 기록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카레르가 고른 르포 소설의 원전에 해당한다. 복음서에 나온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카레르 작가는 소설가 특유의 상상력을 가미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가 장장 20권에 달하는 자신의 신앙 노트 그리고 방대한 분량의 성서 연구와 다양한 주석을 바탕으로 <왕국>을 재창조했다는 점을 소설의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불신자/불가지론자로 돌아가게 된 자신의 신앙여정에 대한 변명도 마찬가지다.

 

윤리적 혁명가이자 직접 노동을 하며 선교여행에 나선 러바이(rabbi) 바오로는 필리피와 테살로니카 그리고 베로이아에서 비슷한 경험들을 수차례 겪게 된다. 정교 분리를 원칙으로 삼았던 로마 관리들은 바오로의 선교활동으로 빚어진 종교 갈등에 불개입의 원칙을 분명하게 한다. 초기 기독교 시절, 모든 종교인들은 사기업으로 인정받았고, 그들은 자신들의 기존 (종교) 고객을 빼앗아 가려는 유대교의 신흥 분파 ‘크리스투스의 형제들’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평등을 강조하는 크리스투스의 형제들과 자매들에 대해 모함이 난무했지만, 공통의 신경(信經:creed)으로 무장한 그들은 훗날 대대적으로 행해지는 어떤 박해로도 제압할 수가 없었다. 카레르 작가는 헨릭 시엔키에비츠의 소설 <쿠오 바디스>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자신들을 고문하고 박해하던 로마인 장교가 경험하게 되는 가치의 전도에 대한 심오한 분석을 시도한다. 당시 유행하던 스토아철학의 범신론과 유물론적 아이디어들은 기독교 정신과 충돌하는 면도 없지 않았지만, 금욕주의 정신과 인류애에 대한 사고들은 초기 기독교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특이한 점 중의 하나는 소설 <왕국>이 진행되는 동안, 카레르는 신앙인에서 다시 불가지론자로 전향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도 바오로와 루카의 행적을 쫓는 여정이 식은 건 아니었다.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개종자에게도 할례를 행해야 한다는 기존 교회의 트로이카(베드로, 요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로 알려진 야고보)와 일대 결전을 벌이는 장면도 나온다. 사실상 기독교의 설계자라고 할 수 있는 탁월한 지도자 바오로는 팔레스타인 지방의 신흥 종교가 아닌 세계종교로서 기독교가 나아갈 방향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유대인은 유대인들의 규례를 따르는 대신, 신참 프로셀리테스들에게는 할례를 면한다는 절충안에 도달한다. 또한 소아시아 선교 중에 불가피하게 마주하게 되는 코셔(kosher) 음식에 대한 섭취 또한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지만 당대의 유대인들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였다.

 

저자가 소설에서 계속해서 주입하듯이, 현재의 시각이 아닌 당대의 시각으로 벌어진 사건을 보아야 한다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친 유대인들 그중에서도 대표적 보수주의자 야고보에게 개종자도 당연히 그들의 규례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합리적인 귀결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예루살렘의 트로이카들은 크리스투스 살아 생전에 그를 따른 정통 사도들이 아니었던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상에서 부활하신 크리스투스를 만났다고 주장하며 모든 헤게모니를 쥐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기독교 원류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재정 지원까지 하겠다며 나선 바오로를 그들이 고운 눈으로 보지 않은 게 뻔하지 않은가. 저자 카레르는 볼셰비키 혁명 이후, 러시아 내전 가운데 백군 지도자가 등장해서 적군원수였던 스탈린에게 투항할테니 전권을 달라는 비유로 바오로와 트로이카의 구도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시도는 참신하게 다가왔다. 바오로의 선교가 계속되는 가운데,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이들이 바오로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며 역습을 가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교리에 대한 정통성 논쟁이라고나 할까. 내부의 적이 예루살렘 교회의 보수파들이었다면 외부의 적들로는 정통 유대교의 규례를 주창하는 바리사이인들과 사두가이 귀족들도 뽑을 수 있겠다. 결국 바오로는 그들의 고소에 따라 카이사리아의 로마 총독 거주지에서 2년간 유형생활을 겪고 로마로 압송된다.

 

소설 <왕국>에서 저자 카레르가 다루는 주제들은 하나 같이 쉽지 않아 보인다. 기독교 교리의 핵심에 해당하는 크리스투스의 부활, 종말과 구속사, 칭의론 같은 이슈 같이 바오로가 천착한 문제들로부터 시작해서 프로셀리테스 루카가 관심을 보인 기독교인으로서 현실세계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들은 되새겨 볼만하다. 사망 권세를 이겨낸다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야말로 핵심 중의 핵심이다. 교통과 통신이 현대처럼 발달하지 않은 원시 기독교시절에 갈릴래아 출신의 크리스투스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에 대한 이적이야말로 최고의 선교를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로마의 지배계급이 훗날 그 유익을 알게 되는 현세에 충실하라는 지상명령 또한 주목할 만하다. 현세의 고난이 내세의 지복을 위한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설정도 기득권층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명제가 아니었던가.

 

한편 카레르는 기독교 신약의 정전들인 3개의 공관복음서와 그 결을 달리 하는 요한복음에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다. 저자가 소설 <왕국>의 집필에 걸린 시간이 7년이었다고 했던가. 주를 이루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희대가 역사가 루카가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야고보서>에 대한 분석도 눈길을 끈다. 르포 소설가답게 복음서마다 다르게 기술된 디테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점도 흥미롭다. 복음서 중에 가장 늦게 출현한 <요한복음>이 사도 요한이 아니라, 그리스인 기독교도 혹은 그리스화된 교육받은 장로 요한이 대필했을 거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릴래아 출신의 어부에서 출발한 사도들이 과연 그렇게 유려한 문장들을 구사할 수 있었을까 싶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기원 66년부터 8년간 지속된 유대전쟁 그리고 로마군 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 편에 붙어 변절한 유대귀족 요세푸스 플라비우스가 남긴 당대의 기록 <유대전쟁사>(서기 79년)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착취에만 관심이 있었던 역대 로마 총독들에 대한 반란으로 시작된 유대전쟁은 결국 성전 파괴와 유대인의 파멸(디아스포라)로 마무리되었다. 이 과정에서 예루살렘 트로이카로 대표되는 유대인 기독교를 대신해서, 그동안 주류에서 밀려나 니콜라오스파 혹은 발람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비주류의 설움을 겪던 바오로의 기독교가 로마제국을 비롯한 세계를 아우르는 종교가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뛰어난 역사가 루카가 등장하게 되는 장면에 저자 카레르는 방점을 찍는다.

 

엠마뉘엘 카레르의 <왕국>에서는 너무 방대하면서도 신학적으로 논란거리가 되는 많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 이 짧은 리뷰에 담기에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의 역사가 기독교 신앙에 대해 지식이 없는 무신론자 혹은 불가지론자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저자도 열렬한 신앙인에서 결국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하지만 여전히 실낱같은 구원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불가지론자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료와 전승, 위경 속에서 진리를 구도하는 자세로 기원 1세기 민중들이 기대하던 ‘왕국’을 재조명한 엠마뉘엘 카레르의 도전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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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4-11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흥미롭네요.
제가 기독교인이라서 그런 이유도 있지만, 회심-불신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알고 싶네요.
근데, 700페이지에서 좀 ㅠㅠ

레삭메냐님 깔끔한 엑기스 리뷰로 만족해야 할까요~~

레삭매냐 2018-04-11 21:47   좋아요 0 | URL
카레르 작가가 구교도의 나라인 프랑스 출신
이라 그런지 대모 자클린 여사의 영향 등으로
자연스럽게 가톨릭에 귀의하게 되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말씀 대로, 분량이 문제긴 합니다.

아울러
흥미진진한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 그리고
뛰어난 역사가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을 저술한 누가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조금은 장황한 저자의 오락가락 신앙 분투기
라는 진입장벽이 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읽고 나면 다시 한 번 신앙에 대해
그리고 성경을 제대로 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됩니다.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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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몇 페이지 읽어 봐야지 하는 계산으로 책을 들었다가 낭패를 봤다. 새벽 2시도 훨씬 넘어서야 결국 책을 다 읽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보니 1년 전에 비프케 로렌츠/샤를로테 루카스의 <당신의 완벽한 1년>으로 이 작가와 만났더랬지 아마. 그 때도 책을 재밌게 읽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 시간여행을 빙자한 예전에 자행했던 어리석은 과거 특히나 반드시 지우고 싶은 일들을 지우는 일대 사건을 소재로 삼은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는 기똥차게 재밌었다. 결국 우리 인간이란, 후회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방증이려나.

 

올해 29세 찰리(샤를로타) 마이바흐 양은 말 그대로 자유인이다. 대학을 중퇴하고, 지난 수년간 원나이트 스탠드와 프리섹스를 즐기고(남자들이 수없이 바뀐다), 바에서 알바를 뛰지만 술을 서빙하기 보다 마시길 더 좋아한다. 그리고 핑크의 <Don't let me get me> 혹은 그 유명한 레이디오헤드의 <크립> 그리고 닥터 알반의 <싱 할렐루야> 같이 자극적이고 화끈한 음악들을 즐긴다. 그녀가 자주 입는 “헤픈 여자” 티셔츠는 또 어떻고.

 

뭐 누구나에게 사연은 있는 법, 우리의 주인공 찰 리가 이런 삶을 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드링크스&모어의 주인장 팀 크라머 그리고 노숙자 출신 게오르크 아저씨가 즐기는 수다와 농담따먹기는 지친 찰리 삶의 마약 같은 강력한 활력소로 작용한다. 동창회를 알리는 편지와 그놈의 첫사랑이자 옛사랑 모리츠 리히텐베르크가 등장하기 전까진 말이다. 14년 전의 첫사랑과 뭔가 썸씽이 이루어지는가 싶었지만, 이 야비한 놈은 철저하게 찰리를 이용해 먹는다. 비싼 비용을 들여 사입은 섹시한 캣슈트를 입고 보무도 당당하게 참석했던 동창회에서 엉망으로 취해 개망신을 당하고 가까스로 팀의 도움을 받아 집에 복귀한다.

 

자자 이제 무언가 삶을 뒤바꿀 수 있는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한 순간이다. 찰리는 팀의 군용점퍼에 들어 있는 라이프 매니지먼트, 그러니까 헤드헌팅 회사를 찾아가 자신의 삶을 바꾸어 달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뭐, 찰리에게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지는 차지하고서라도 이 얼마나 웃긴 상황인가 말이다. 그런데 왜 난 자꾸만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의 좌충우돌하는 캐릭터들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아직 읽지도 보지도 못한 <시간여행자의 아내>라는 제목도.

 

어찌어찌해서 찰리는 과거의 수치스러운 다시 말해서 당장에라도 지우고 싶은 과거들을 모두 삭제하는데 성공한다. 이렇게 편할 수가! 문제는 과거의 어떤 요소들이 빠지게 되면 현재의 모든 것도 바뀌게 된다는 나비효과 클리셰이 설정이다. 좀 진부하긴 하다. 그렇게 해서 찰리는 잘 나가는 컨설턴트로 수백만 유로를 주무르는 모리츠와 새로운 생에서 결혼에 골인해 피렌체로 꿈만 같았던 신혼여행을 떠나고, 아멕스 플래티넘 카드로 명품 쇼핑을 해대고, 대궐 같은 집에서 사는 현실을 맞이한다. 지난 생에서 없던 자동차 면허는 덤이다.

 

 

그렇다면 과연 찰리는 이번의 새로운 생에서 행복했을까? 바로 이 지점에 비프케 로렌츠는 화끈한 질문거리들을 쏟아 내기 시작한다. 그 좋아하는 맥주도 실컷 마시지 못하고, 인스턴트 생선가스가 육신의 구원이었던 호시절은 모두 지나가 버렸다. 모리츠란 남편놈은 결국 연적이자 찰리의 직장상사 이자벨과 차고에서 사고를 치다가 망신살이 뻗치지 않는가 말이다.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같은 이지리스닝 음악은 들으면서 살 수 없다며, 금고에서 빼낸 카드로 500유로 어치나 되는 CD를 사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그래 맞아, 이런 게 찰리의 진정한 행복은 아니었어. 그래서 우리의 찰리 선수는 좀 아쉽긴 하겠지만 지루하고 답답한 생에서 벗어나 새로운 행복을 찾아 나서게 된다는 게 비프케 로렌츠 소설의 핵심이란다. 그 와중에 덤으로 등장하는 지난 십년간 팝송을 멀리해서 몰랐던 팝송들에 대한 정보는 서비스다. 이 리뷰를 마치고 나면, 글(가사)로만 만난 노래들을 하나씩 찾아 들어볼 계획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문학적 성취 보다 소설을 읽는 재미라는 점 하나만큼은 최근에 만난 로버트 크레이스의 미스터리 소설만큼 재밌었노라고 강력하게 말하고 싶다.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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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모험이 있는 일러스트 세계 명작 동화 - 금발 머리와 곰 세 마리 외 7편 일러스트 세계 명작 동화
스콧 구스타프손 지음, 토마스 리 옮김 / 베이직북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어제 책이 도착했다. 항상 다 알고 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세계명작 동화 8편이 정성스레 그려진 일러스트와 함께 담겨져 있었다. 옆에서 꼬맹이가 책을 읽어 달라는 성화에 주저 하지 않고 바로 책을 집어 들었다.

 

첫 번째 주자는 <금발 머리와 곰 세 마리>. 아빠곰, 엄마곰 그리고 아기곰 세 마리가 깊은 숲 속에 살고 있다. 맛있는 죽을 끓여 놓고, 식기를 기다리는 동안 곰 가족들은 산책을 나선다. 그 사이 우리의 주인공 금발머리 소녀가 등장한다. 이 녀석은 부모님이 하지 말라고 한 일들만 골라서 하기 시작한다. 우선 깊은 숲 속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건만 그렇게 했다. 남의 음식, 남의 집도 서슴지 않고 침입해서 아기곰의 죽을 다 먹어 버린다. 아기곰의 의자도 부숴 놓고, 피곤하다며 침실에까지 들어가 낮잠을 즐긴다. 아빠곰이 누군가 집에 침입한 흔적을 보고 분노하지만 금발머리 소녀는 곰돌이 가족에게 들키자 줄행랑을 놓는다. 거 참, 판단을 내리기에 아리송하다. 그나마 나쁘게 해결이 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개구리 왕자>에서는 황금공(무려 고무공도 아니고 황금공이다!)을 가지고 놀던 공주가 황금공을 우물에 빠뜨려 위기에 처하자 못생긴 개구리가 짜잔하고 등장해 공주를 도와준다는 간단한 스토리다. 꼬마 공주는 앞뒤 잴 것 없이 황금공을 찾겠다는 생각에 개구리의 소원을 모두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덥썩 하고 만다. 이에 잽싸게 황금공을 찾아준 개구리는 공주에게 같이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그런 친구가 되어 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늘어 놓는다. 못생긴 개구리에게 그런 약속을 지킬 마음이 조금도 없었던 공주는 냉큼 달아나 버린다.

 

못생긴 개구리가 그렇다고 포기할 리가 없지. 끝까지 공주를 따라가, 공주에게 계약을 이행할 것을 요구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공주의 아빠 왕은 아주 현명한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간단하다, 약속을 지키라는 명령을 내린다. 공주는 못생긴 개구리가 얄밉지만 자신이 내뱉은 약속을 지키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우리 꼬맹이들에게 그래서 약속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싶었던 걸까. 못생긴 개구리를 혐오하던 공주가 개구리에게 대한 감정이 획기적으로 변하면서 짜잔하고 개구리는 멋진 소년 왕자로 변한다. 마녀의 저주를 받아 그동안 개구리로 살아야 했다나 뭐라나. 뭐 해피엔딩이 싫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시라.

 

‘재투성이 아가씨’란 의미의 신데렐라도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내용과 사뭇 달랐다. 병으로 자신의 부인을 잃은 소녀(훗날의 신데렐라)의 아빠는 소녀를 위해 새장가를 든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의 외동딸을 위해 내린 결정은 소녀에게 가장 불행한 원인이 되는 단초를 제공한다. 세상의 모든 새엄마들은 다 그럴까? 신데렐라를 엄청 구박하기 시작한다. 마음씨 착한 우리 신데렐라는 새엄마와 새엄마가 새로 시집오면서 데려온 언니 둘을 지극정성으로 봉양한다. 아니 이럴 수가! 신데렐라는 마음씨가 보살인 모양이다.

 

그 다음 레퍼터리는 모두가 아시는 바대로 진행된다. 왕국의 왕자가 결혼할 때가 되어 색시감을 구하기 위해 댄스파티를 주최하고, 왕국에 사는 모든 결혼적령기의 아가씨들이 초청을 받는다, 우리의 신데렐라만 빼고. 신데렐라는 댄스파티에 나갈 기대에 부풀어, 나아가 어쩌면 왕자님의 색시로 간택되는 영광에 눈이 먼 언니들을 위해 머리단장을 도와주고, 멋진 레이스까지 달아준다. 스드메의 완성인가? 신데렐라는 타고난 스타일리스트였나 보다. 암튼 신데렐라도 요정의 도움으로 댄스파티에 입성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던 원작소설과의 결정적 차이는 왕자님이 주최한 댄스파티가 1회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한 번 더 있었다는 것이다. 요정은 언제나처럼 터부를 한 가지 제시한다. 자정에 끝나는 댄스파티 전에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마법의 유효성에 대한 강력한 경고다. 첫날은 경고를 마음에 새긴 신데렐라의 자각 때문에 문제 없이 넘어갔지만 두 번째 댄스파티에서는 모든 경고가 깨지기 마련이듯 신데렐라 역시 왕자님과의 댄스에 여념이 없다가 누더기 입은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유명한 유리 구두 한 켤레만 남겨 두고 말이다.

 

왕자님의 시종은 유리 구두를 방석에 받든 채, 휘황찬란한 요정이 신데렐라에게 선물한 유니크한 유리 구두의 주인을 찾아 나선다. 왕자는 이미 조건의 달았다, 유리 구두의 주인이 미래의 자신의 배필감이라고 말이다. 하하하! 그러니까 조건 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신데렐라 스토리 역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자신을 구박한 새언니들도 궁으로 불러 귀족들과 짝을 지어 주는 것으로 말이다. 신데렐라 역시 보살 뺨치는 선행를 베푸는 인물로 길이 기억되리라.

 

<아기 돼지 삼형제>도 흥미롭다. 아기 돼지 삼형제의 엄마가 이제 자식들이 독립할 때가 되었다며 나가서 독립하라는 그들에게 했던가. 짚단, 나무조각 그리고 벽돌을 모두 무상으로 얻어 자신의 독립거처를 짓지만 홀연히 등장한 방해꾼 늑대에게 내몰려 코너에 몰리지만 막내 돼지의 선견지명으로 마침내 늑대의 혼쭐을 내주는 게 이야기의 핵심이 아니던가. 늑대는 가택침입 뿐만 아니라 다양한 테러와 공격을 구사해 보지만 번번히 아기 돼지 삼총사에게 당한다. 늑대가 점점 불쌍해지기 시작한다. 마침내 굴뚝을 타고 내려온 늑대를 삶아 먹었다는 장면에서는 깜짝 놀랐다. 내가 본 다른 버전에서 그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고전처럼 동화도 어느 시절(era)에 읽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걸까? 아이들이 보는 시선과 성인의 그것은 정말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내가 읽은 명작동화의 느낌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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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8-04-05 1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래동화(?) 들은 꽤 잔인한 내용도 많더라고요. 그래서 구전 동화를 글로 옮겨서 삽화까지 넣는 건 위험하다는 평도 있어요. 어른의 눈으로 봐서 그럴까요, 아이들은 늑대를 삶고 굽고 때려도 신나하더라구요;;;;;; (왜그런지 고길동 생각이 나네요)

레삭매냐 2018-04-05 17:0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정말 제대로 동화를 들려 주면
큰 일 날 듯 싶습니다. 빨간구두도 그런 것
같아요 ~

늑대고기를 아기 돼지 삼총사가 맛나게 먹
었다는 설정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

고길동, 쵝오입니다.

cyrus 2018-04-05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 세 마리 이야기’가 ‘골디락스’ 이야기 맞나요? 책방 독서모임에 참석하는 분들 대부분이 자녀를 키우는 부모입니다. 그분들을 자주 만나서 그런지 어린이 동화를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

레삭매냐 2018-04-05 19:57   좋아요 0 | URL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맞네요 골디락스~
골디락스가 금발머리 소녀를 뜻한다고
하네요.

무슨 경제용어와도 관계가 있구요.

1837년에 처음 쓰인 동화라고 합니다.

2018-04-05 1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5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읽어야 할 책들이 많은데 또 외도 중이다.

<호랑이 남자>를 읽고 나자, 그전에 사두었던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 생각이 났다. 어찌 하오리까, 일단 다른 책들은 접어 두고 이 책부터 읽게 됐다.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 - 에카 쿠르니아완

Beauty Is a Wound

 

이름도 사실 외우기 힘든 인도네시아 출신 작가의 글에 매료되어 버렸다. 매혹적이다 못해 고혹적이라고 해야 할까. 두 번째 소설 <호랑이 남자>를 먼저 읽고 나서 집의 어딘가에 처박아 두었던 장편 데뷔 소설을 찾아내 읽기 시작했다. 퇴근 길에 마침 들고 있던 <아킬레우스의 노래>도 읽기 시작했는데... 호메로스의 고전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글이 마음에 들었다. 고전은 이렇게 우려 먹어야 하는구나 싶었다.

 

또 삼천포로 빠졌다.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는 <호랑이 남자>에 버금갈 정도의 위력을 가진 그런 소설이다. 출발부터 범상치 않다. 소설은 21년 전에 죽은 주인공 데위 아유가 되살아나 현실 세계로 들어오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어때 죽이는 한 방 아닌가.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 그녀가 결혼한 중늙은이 마 게딕이 사랑한 마 이양의 러브 스토리는 또 어떤가. 이번에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의 할리문다가 그 배경이다. 곧 싱가포르에 이어 바타비아까지 장악한 일본군이 등장할 차례다.

 

인도네시아 싸구려 (포르노) 소설과 서구의 근엄한 고전의 이종교배를 통해 나온 소설이라고 하는데 후자보다 개인적으로 전자에 더 호감이 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설이 재밌다. 시간만 넉넉하다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이 소설읽기에 전념하고 싶다. 유머는 어찌나 또 찰진지. 아직 채 100쪽도 읽지 못해 총평을 내리기엔 그렇지만, 올해를 장식하는 작품으로 손꼽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작가의 다른 작품인 <복수는 나의 것, 다른 사람들은 현금으로 내>도 연달아 번역되면 좋을 것 같다. 이 자리를 빌어 강추하는 바이다.

 

자, 다음 타자는 <아킬레우스의 노래>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 역시 한 번 불이 붙으면 당장에라도 읽어 버릴 것 같은 기세였는데 에카 쿠르니아완의 책 때문에 밀렸다.

 

아 그리고 보니 매들린 밀러의 소설도 데뷔작이라고 했던가. 두 사람의 책이 비슷한 궤적에 놓여 있었던 모양이다. 다만 내가 <호랑이 남자>를 먼저 읽고 쿠르니아완이 구사하는 인도네시아 스타일의 주술적 리얼리즘에 훈련이 되었다는 점 정도.

 

전자가 인도네시아 현대사를 관통하는 내러티브를 자랑한다면, 후자는 역시 고전에 방점을 찍고 있다. 현대문학에서 나오는 셰익스피어 다시쓰기 시리즈가 현대의 작가에 의해 거듭해서 새로 쓰이는 것처럼 서양문화의 두 가지 원류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신화와 기독교(엠마뉘엘 카레르의 르포 소설 <왕국>) 역시 끝없이 반복과 변주라는 과정을 통해 재해석되고 있는 것 같다. 도대체 그렇게 울궈 먹을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문학의 잠재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는 기억과 상상력의 확장에 기반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를 아무리 울궈 먹는다고 하더라도 그 누가 저작권 문제를 들먹이겠는가. 손쉬운 선택지이면서 동시에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엄청나게 욕을 얻어 먹을 수 있는 도전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일단 매들린 밀러의 소설은 커트라인은 통과한 셈이다.

 

소설의 시작은 아킬레우스의 전우이자 애인인 파트로클로스의 출생과 헬라스 세계의 최고 미녀 헬레네에 대한 구혼에 나선 영웅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우리의 꼬마 파트로클로스 역시 구혼자 대열에 끼어 보지만 사실 어림도 없는 도전이었다.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꾀쟁이 오디세우스가 모든 그리스 영웅들을 트로이 전쟁에 몰아 넣게 만드는 서약을 하는 장면도 흥미진진하다. 고래의 서사시/노래를 추구하는 필멸의 존재들인 인간/영웅들의 이야기, 성인이 되기 위해 소년은 거친 통과의례의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그가 어떻게 해서 아킬레우스와 다시 만나고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지 좀 더 읽어 봐야지 싶다.

 

오늘 논할 마지막 책은 그 이름도 높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에세이집이다. 아직 나오지도 않아서 어떤 책인지 가늠할 순 없지만 국내에서 과연 출간된지 요원해 보이는 <한없는 웃음>을 기다리며 몇 자 적어 본다.

 

우연히 이런 작가가 있다는 사실을 듣고 독서모임에서 우리의 친구 브랜던에게 물어 보았더랬지. 그랬더니만 책 좀 읽는다 하는 선수들은 다 알고 있지만, 그 악명 높은 책을 완독한 이가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호기심에 원서러도 입수해 놓았지만 두터운 싸이즈에 쫄아서 그저 쓰담쓰담만 할 뿐이다. 어서 빨리 번역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아, 그리고 제시 아이젠버그가 나오는 영화도 좀 찾아서 봤는데 작가와 비슷한 외모의 주인공이 등장해서 신기하기도 했다. 추운 겨울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찾아간 또다른 작가의 이야기. 이름이 뭐였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둘이서 같이 눈길을 달리는 여행길은 아 전형적인 미국식 로드 무비의 재림이로구나 싶었다. 시간 내서 이 영화도 봐야지 싶다.

 

책은 주문해야겠다. 어서 빨리.

 

 

[뱀다리] 영화의 제목은 <the end of the tour>이었군요.

 

인터뷰어는 데비잇 립스키.

 

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반다나를 쓰고 있는지...

그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는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가 봅니다.

 

 

[뱀다리2] <한없는 웃음> 본문만 981쪽에 주석도 100쪽
이나 되네요... 출간하라 출간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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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4-03 1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레삭매냐님 페이퍼는 가급적 안 보는 게
좋은 것 같은데 오늘도 걸려서 봤습니다.
소설 책 좀 푹 빠져서 읽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고 있습니다.ㅠㅠ

레삭매냐 2018-04-03 19:11   좋아요 1 | URL
요즘 괜찮은 책들이 연달아 나와서
도저히 안 사고 못배기게 만드네요.

로맹 가리의 책도 그렇고...
체사레 파베세의 책도 읽어 보고 -

그리하여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

AgalmA 2018-04-03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홓~~데이빗 포스터 월리스 이렇게 붐이 일어나나요! 아웅, 좋아!

레삭매냐 2018-04-03 22:17   좋아요 1 | URL
인피닛 제스트가 안된다면 다른 소설이라도
속히 번역이 돼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에세이집은 짜집기 스타일의 책으로
보이네요. 어쨌든 대환영입니다 !

목나무 2018-04-04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저 영화 보려구요. 우리나라 제목으로는 <여행의 끝>이더라구요.
이번 에세이집은 월러스의 세권의 에세이집 중에서 고른 것들을 묶은 거더라구요. 아쉬운 대로 이거라도 감사하며 읽으려구요!

레삭매냐 2018-04-04 10:21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서는 <여행의 끝>이라는 제목으로
소개가 되었군요. 저도 시간 내서 봐야겠어요...

월리스의 소설도 순차적으로 나왔으면 하네요.
도서관에 사달라는 운동이라도 해야 하나요? ㅋㅋ

사서 읽어야 하는데 당장 읽어야 하는 책들이
줄지어 서 있어서 한 박자 쉬고 들어가야겠습니다.
 
호랑이 남자
에카 쿠르니아완 지음, 박소현 옮김 / 오월의봄 / 201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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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출신 작가 에카 쿠르니아완의 <호랑이 남자>를 읽었다. 그는 작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라고 한다. 작년말에 전작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가 나왔을 적에, 대단한 작품이라는 느낌에 일단 구매는 했지만 읽지는 못했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흔한 책쟁이의 이야기려나. 이번에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와 더불어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우리가 보통 말하는 맨부커상하고 다르다는 점을 나는 강조한다)에서 경쟁한 쿠르니아완의 <호랑이 남자>(Man Tiger)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주말이 막 시작되기 전에 주문해서 만우절을 끼고 읽을 수가 있었다. 책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기대 이상이었다. 참고로 로베르트 제탈러의 책 <한평생>도 당시 맨부커 인터내셔널 롱리스트에 올랐었다.

 

아직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를 읽지 않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주술적 리얼리즘을 구사한다는 작가의 스타일에 대해 확실하게 말할 순 없지만, 무슬림 문화와 이종교배된 인도네시아 전통문화에서 유래한 하얀 암호랑이가 주인공 청년 마르지오에 빙의되어 사랑하는 연인의 아버지를 살해한다는 충격적인 설정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아름다운 그것은 상처>가 우리에게는 아무래도 생소한 인도네시아 현대사를 관통하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면, <호랑이 남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나치게 주관적인 해석일진 모르겠지만, 자신 안에 호랑이가 들끓는 기운을 느끼는 청년 마르지오는 수백 년간의 네덜란드의 지배에서 벗어난 인도네시아 민중을 상징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진 수십 년에 걸친 폭압적인 군부통치와 그에 반대하는 공산주의 계열 게릴라들과의 내전을 겪은 포스트임페리얼리즘의 전형이 소설 속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마르지오는 자신의 이발사 아버지 코마르 빈 슈엡과 태생적으로 불화할 수밖에 없다. 코마르는 자신의 아내 누라에니의 뿌루퉁한 태도에 질려 폭력과 패악질을 서슴지 않는다. 조상 대대로 호랑이의 기운이 전승되는 가운데, 주인공 마르지오 역시 그런 호랑이 한 마리를 가슴에 품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이빨로 이웃에 사는 예술가 안와르 사닷의 목을 물어뜯어 죽이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다. 에카 쿠르니아완은 왜 마르지오가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찰을 시작한다.

 

쿠르니아완의 플래시백은 살인사건이 발생한 시점으로부터 가까운 시점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이전의 과거로 목적지를 정한다. 코마르가 조숙아로 태어난 막내딸 마리안의 죽어가는 가운데 아버지로서의 역할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뛰어난 돼지 사냥꾼 마르지오는 분노한다. 결국 자신의 아버지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겠다는 결심에 거리를 누빈다. 하지만 과연 <호랑이 남자>의 내러티브가 그렇게 단순하기만 할 걸까. 그렇지 않다. 마르지오 집안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작가는 예리하게 파고든다. 애정 없는 가난한 결혼생활을 해야 했던 누라에니의 과거 그리고 결정적 사건, 이어지는 마르지오와 안와르 사닷의 막내딸 마하라니와의 로맨스들이 복잡하게 겹치기 시작한다. 네덜란드의 폭력적인 지배에서 벗어난 인도네시아의 집권층은 식민지 모국으로부터 배운 통치기술을 그대로 민중에게 적용했다. 한 마디로 법치와 대화에 의한 해결보다는 주먹으로 대변되는 폭력적 방식이 훨씬 더 빠른 모양이다.

 

아버지 코마르의 폭력 때문에 아버지를 증오하게 된 마르지오는 어머니 누라에니 역시 원인제공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고뇌에 빠져든다. 다독가로 유명한 쿠르니아완은 어쩌면 선배 대가 셰익스피어에게서 배운 <로미오와 줄리엣>과 <햄릿>에서 유래한 중요한 모티브를 인도네시아 고유의 전승에 차용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우리네 인간의 삶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마르지오가 직면한 갈등을 전개하는 쿠르니아완의 저글링 기술은 인상적이다. 고뇌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저격한 장면은 그야말로 천의무봉 같은 솜씨였다.

 

200쪽 남짓한 길지 않은 분량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녹여낼 수 있는 작가의 역량에 놀랐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호랑이 남자>에서 에카 쿠르니아완이 다루고 있는 인도네시아 전승에서 유래한 가장 유니크한 주제야말로 세계인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문학적 변별력이 아닐까 싶다. 결말 부분에 가서 다시 사건이 시작된 결정적 이유를 배치한 점도 훌륭하다. 이렇게 준비된 멋진 한 방이야말로 독자들에게 독서의 만족감을 제공하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봄이 왔으니, 이제 예전에 사둔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를 찾아 읽을 시간이다. 기대한다.

 

[뱀다리] 당나귀점프가 맡은 표지 그림은 책의 주제를 제대로 짚어낸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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