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스가 아쓰코 에세이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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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중독성 독서의 대상은 이번 가을 일본 출신 스가 아쓰코 작가에 가서 꽂힌 모양이다. <밀라노, 안개의 풍경>을 필두로 해서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그리고 <트리에스테의 언덕길>에 불이 붙었다. <코르시아>를 읽다 말고, 도중에 도착한 <트리에스테>도 만나고 뒤죽박죽이다. 결국 <베네치아의 종소리>까지 읽어야 그나마 속이 시원하게 되겠지.

 

저자에 따르면 밀라노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의 출발은 반파시스트 이탈리아 저항운동에서 비롯되었다. 등단 시인이자 선동가 그리고 가톨릭 좌익 사제로 알려진 다비드 마리아 투롤도와 카밀로가 의기투합해서 만들어진 서점이 바로 코르시아 서점이었다. 책을 파는 공간인 코르시아는 밀라노에 내노라하는 지식인들을 비롯해서, 문학 문화 정치 등에 관심이 이들이 모이는, 일찍이 안토니오 그람시가 역설한 문화진지의 거점이 아니었을까.

 

영화가 극장 상영이라는 유통 과정을 필요로 하듯이, 온라인 서점이 없던 전후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책들은 책방/서점을 통해 유통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세상만사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또 토론하던 곳이 바로 코르시아였다는 말이다. 아무리 열심히 작가와 출판사가 책을 만들어도, 세상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렇게 책을 읽은 이들이 모여 책에 대해, 작가에 대해 그리고 연관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우리 책쟁이들이 꿈꾸는 대동세상의 이상적 모델이 아니겠는가.

 

그 시절의 코르시아 서점에 모이는 인간군상들의 묘사가 부러워서 그만 멀리 나간 것 같은 느낌이 퍼뜩 들었다. 그래도 어쩌랴, 부러운 건 부러운 것을.

 

자신과 정치성향이 다르더라도, 밀라노 부르주아지들과 귀족들은 견해가 다르더라도, 일종의 살롱 문화를 통해 그들을 포용하는 관용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방인의 눈으로 볼 때, 그들 내면세계의 꺼풀들이 의외로 많았던 모양이다. 19세기 산업화의 수혜를 받은 자본가 계급의 부르주아지 그리고 그 너머에서 황금접시와 빛나는 크리스털 식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주눅 든 가난한 유학생의 모습이 남다르게 보이지가 않았다.

 

교회에서는 눈엣가시 같았던 다비드 마리아 투롤도 신부를 영국 런던으로 유배시켜 버렸다. 매사에 자신넘치고 성당에서 <인터내셔널가>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투롤도 신부가 스가 아스코 일행을 이끌고 런던의 거리를 누비고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자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고향에 돌아와서는 핍박받은 사제이자 레지스탕스 영웅으로 그의 위상은 더 올라가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코르시아 서점에서 멀어지고, 신앙 공동체를 세우며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좀 씁쓸했다.

 

스가 아쓰코가 하도 알레산드로 만초니 타령을 해대서 결국 그의 책 <약혼자들>을 구해서 읽어야 하나 싶을 정도다. 우리나라에 이 책이 소개됐었다는 것도 놀랍고, 절판되어 이제 구할 수 없다는 것도 놀랍다. 전자책으로는 구할 수 있긴 한데, 개인적으로 전자책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

 

스가 아쓰코 여사의 전작도 그랬지만, 한 때 열심히 읽었던 다카노 히데유키의 <별난 친구들의 도쿄 표류기>가 떠올랐다. 그 책에서도 일본에 표류 중인 다양한 군상의 친구들이 등장하지 않았던가. 물론 아쓰코 여사의 책에 실릴 정도라면 최소한 에리트레아 출신의 양탄자 행상 미켈레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에리트레아에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끌려 와서 사육제에 참가하게 되고, 이름도 잊은 미켈레가 어느 추운 날 석탄이 떨어졌다고 저자를 찾아온다. 그리고 양탄자 행상으로 변신해서 코르시아 서점을 찾아왔다고 했던가. 이 정도 수완과 뻔뻔함 정도는 기본으로 장착해야 험난한 타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이었을까. 여기 나오는 미켈레의 이미지는 왠지 오래 전 영화 <파니 핑크>에 등장하는 선무당 오르페우스의 그것을 떠올리게 했다. 미켈레가 아쓰코 여사에게 커피를 사겠다는 제안으로 더 오래 기억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그런 일화로 누군가의 추억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독일인 청년과 사랑에 빠진 딸 덕분에 졸지에 부모의 원수 국가의 사위를 맞게 된 헝가리계 유대인 가브리엘레(피슈타) 시포슈 씨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가 보다. 피슈타의 딸 니콜레타는 자신의 유대인 가계를 몰랐다. 고지식한 독일 청년 베르트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의 삶에서 결혼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어 버렸다.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니콜레타는 결혼을 강행했다. 서로 다름에도 그 둘은 어찌어찌해서 삶을 영위해 나갔다. 전후 세대인 니콜레타와 달리, 히틀러가 통치하던 시절에 태어난 베르트는 어쩌면 히틀러 유겐트 대원이었지도 모르겠다. 더 심각한 문제(?)는 베르트의 외모가 총통과 닮았다는 점이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미국을 오가며 복잡한 생활을 이어가던 니콜레타와 베르트의 이야기. 그리고 목숨을 걸고 조국이었던 사회주의 국가 헝가리를 탈출한 뒤, 이탈리아에서 치과의사로 변신해서 10년 만에 다시 일어서는 괴력을 보여 주기도 했다. 피슈타 아저씨는 자기 집에서 좌파 이야기가 나오면 공산주의 치하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던가. 이렇게 인간사 속에 녹아든 과거 그리고 정치적 이야기들이 끝없이 명멸한다.

 

코르시아 서점의 또다른 주요 인물 중의 하나인 출판쟁이 가티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코르시아 서점은 책 판매와 문화진지 역할 말고도, 좋은 원고들을 찾아 책으로 만들기도 한 모양이다. 바로 그런 책의 편집을 맡은 이가 바로 가티였다. 하지만 이 인간, 언제부터인가 넋을 놓고 산다. 그리고 이런 가티를 걱정한 서점 동지들이 저자를 지목해서 말해 보라고 한다.

 

맛 좋은 아이스크림을 파는 포르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대화해 본 결과, 가티 인생 일대의 문제로 고민이 많아서란다. 그건 바로 아버지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고 또 동생까지 생길 판이라고 한다. 아니 이럴 수가!!! 노총각 가티가 아이를 가져도 믿을까 말까인데 일흔도 넘은 노인네가 자식을 보게 생겼다니. 아니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책으로 옮기지 않고 배길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여동생' 그라치아가 태어나고, 새엄마(?) 리나는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돈벌이하러 나섰다. 그런데 계속해서 애인을 갈아 치우던 바람둥이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가브리엘레 카레티의 이야기도 왠지 가티의 아버지의 이야기와 결을 같이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아쓰코 여사의 후배에 해당하는 싼마오 생각도 났다. 이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다양한 체험을 하고 그걸 바탕으로 책을 발표한 작가 말이다. 외국에 나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이방인 문필가들의 비슷한 어떤 하나의 패턴이 보이는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소멸하듯이,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 역시 문을 닫게 됐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1960년대 말, 문화혁명의 여파로 부르주아지 계급과 좌파 세력 간의 갈등이 결정적이지 않았을까. 책의 말미에 아쓰코 여사의 친구 루치아 피니의 편지로 저간의 사정들이 밝혀진다. 코르시아 서점은 한 때, 젊은 레지스탕스 영웅들의 이상향이었지만 시간이 지나 그들에게 짐으로 작동하게 된 점을 지적했을 때는 참 아쉬웠다.

 

그리고 뒤늦게 일본에 도착한 다비드 마리아 투롤도의 부고 소식으로 모든 것이 시작된 코르시아 서점의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진짜 이런 이상적인 서점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인간관계가 점점 파편화되어가는 새로운 밀레니엄에는 불가능한 미션이라는 느낌이다. 존재할 수 없는 이상향이기에 더 부러웠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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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안개의 풍경 스가 아쓰코 에세이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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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는 대개 우연으로 이루어진다. 지난주엔가 일본 출신 번역가이자 작가인 스가 아쓰코를 알게 됐다. 아마 이번에 새로 나온 <트리에스테의 언덕길> 덕분이지 않았을까 싶다. 궁금하다면, 작가의 전작들을 읽으면 된다. 우선 가장 가까운 중고서점에 품절된 <밀라노, 안개의 풍경> 재고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람처럼 날아가서 샀다. 그리고 <러시아의 전쟁>을 다 읽고 나서 바로 읽기에 돌입했다.

 

파리와 로마 유학을 했다는 자칭 롬바르디아 사람 스가 아쓰코에게서 왠지 모를 시오노 나나미의 향기가 났다. 나나미 씨가 극우 인사였다는 걸 알았다면 내가 그렇게 열심히 <로마인 이야기> 완독을 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서사하라에서 호세와 로맨스를 나누었던 대만 출신 작가 싼마오가 떠오르기도 했다. 아니 연배로 보면 어쩌면 스가 아쓰코는 그들에 앞선 코스모폴리탄 선배일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구사하는 이야기는 마치 밀라노의 안개처럼, 베네치아의 물결처럼 그렇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다. 밀라노 코르시카 서점에서 일하던 페피노와 만나 결혼하고, 롬바르디아인으로 살다가 남편이 죽은 뒤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는 문장을 읽고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에서 단서를 찾기 시작한다. 어쩌면 스가 아쓰코의 이야기들은 미스터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스가 아쓰코의 이야기에는 사람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거구의 순박한 노총각 안토니오가 죽은 남편의 장례식에 등장해서, 운구 중인 관에 반쯤 시든 금작화를 내려놓는 장면에서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였다. 소소해 보이는 무심한 이야기들로 독자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킨 다음, 이렇게 한단 말이지.

 

작가의 아버지에게 들은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 에피소드에서는 나도 가봤던 나폴리 생각이 절로 났다. 그 시절 나의 여행은 항상 무계획이었다. 그래서 로마 민박집에 여권을 두고 아무 생각이 나폴리 그리고 내친 김에 카프리섬까지 갔다가 소렌토를 돌아 나폴리 중앙역에 도착했다. 아뿔싸, 로마행 마지막 기차가 출발했다고 한다. 미치겠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나폴리의 싸구려 호텔에라도 가서 자자 싶었지만 여권이 없다고 해서 모든 호텔에서 거절당했다. 그래서 결국 나폴리 중앙역 부근의 경찰서에 들어가 쪽잠이라도 자려고 했는데 역시나 거절당했다. 하는 수 없이 나폴리 중앙역 앞에서 박스를 깔고 잠을 청했다. 그 와중에 내 가방을 노린 누군가가 머리에 베고 있던 가방을 빼가려다 나에게 걸렸다. 날 보고 씩하니 웃고 그냥 갔던가. 어쨌든 나는 나폴리를 봤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는 걸까.

 

나와는 다른 관습과 생각 그리고 사고방식을 지닌 이들의 이야기들은 언제나 환영이다. 매일 같이 나와 비슷한 생활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내가 관심을 있을까? 아마 아닐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나라로 여행을 하고, 또 스가 아쓰코처럼 유학생활도 하고 그러는 게 아닐까. 내가 그럴 수 없다면, 작가 같은 선배님이 쓴 글이 이렇게 반가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나폴리의 좁은 골목 정중앙에 떡하니 의자를 내놓고, 사설통행세를 걷던 동네 아줌마의 패기가 부럽기도 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사이드브레이크를 풀지 않고 이중주차를 한 어느 차주 때문에(전화를 네 번이나 했으나 받지 않았다) 결국 관리사무소까지 가서 인터폰으로 방송해서 겨우 풀려날 수가 있었는데, 푼돈을 아줌마에게 쥐어주고 골목을 지나가야 했던 트럭 운전사 아저씨 같은 그런 기분이었을까.

 

아무래도 저자가 지식인 계급이다 보니, 보통의 여행자들과 달리 이탈리아 지식인들과 상당한 교류가 있었던 모양이다. 전쟁 중 동맹국이었던 나라 출신 여성은 환대받지 않았을까. 전쟁 중에 실제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던 마리아 보토니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저자의 말에 따르면, 아마 마리아 보토니가 없었더라면 자신은 작고한 부군 페피노를 만날 일이 없었을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스가 아쓰코의 문학적 오딧세이 역시 존재할 수 없었단 말인가.

 

우리들의 인연들은 그렇게 한 순간의 인연에서 출발해서 영원으로 갈 수도, 또 그렇지 않고 단발성 만남으로 끝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엽서라는 통신수단으로 마리아 보토니와의 갸날픈 인연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장면이 신기했다. 그리고 보니 지난 천년에 체코 여행 중에 나에게 엽서를 보내준 사찌에 나카무라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시절 참 재밌는 친구였는데 말이지. 자신의 나라에서 잘 살고 있겠지 싶다.

 

평범한 보통 사람인 줄 알았던 마리아 보토니가 알고 보니 레지스탕스 영웅이었다. 직장 상사의 부탁으로 빨치산 대장을 숨겨주었다는 혐의로 독일 수용소까지 끌려갔다가 기적적으로 생환한 실제 영웅이 바로 마리아 보토니였다. 아니 이 정도는 되어야, 글감으로 써먹기에 부족함이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아무리 둘러 봐도, 내 주위에는 그런 영웅 레벨에 올라갈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책의 어디선가 등장한 안토니오 타부키의 <인도 야상곡>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어 나도 그 책 가지고 있는데 싶어서 어제 찾아서 첫 몇 페이지를 읽었다. 5년 전에 읽은 책인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가 썼다는 <만초니가 사람들> 그리고 알렉산드로 만초니의 <약혼자들>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던 이탈리아 문학에 대한 소개가 이어진다. 이거 알고 보니 무서운 책이었구만 그래.

 

시인 움베르토 사바가 쓴 시들에 대해, 누군가가 이방인인 스가 아쓰코가 알 수 없을 거라는 말을 듣고 실망했다는 에피소드는 좀 씁쓸하게 다가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또 삶에는 어쩔 수 없는 그런 부분들이 존재한다는 걸 이제는 어느 정도는 수긍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시리즈가 마음에 들어서 일단 주말에 도서관에 들렀다가 <코르시카 서점의 친구들>도 빌렸다. 바로 읽어야지. <트리에스테의 언덕길>도 어젯밤에 이런저런 쿠폰 때문에 주문했다. 이렇게 알라딘 쿠폰 지옥에 시달리게 될 줄이야.



어제 저녁에 책 읽다 말고 잔뜩 쌓인 쿠폰을 해결하기 위해 주문한

스가 아쓰코 작가의 신간은 바로 오늘 도착했다.

번개배송의 파워.


[덧붙임] 이탈리아 유수의 회사인 올리베티 사에서는 해마다 한 권씩 고전 명작들을 선정해서 멋진 디자인의 양장본을 만들어 배포했었다고 한다. 삽화도 가득 넣어서 말이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부럽더라. 독서 문화가 나날이 피폐해져 가는 한국에서도 그런 멋진 이벤트를 할 수 있는 재력과 기획력을 갖춘 회사가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 선진국이 괜히 문화 선진국이 아니라는 생각도 아울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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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전쟁 - 인류사상 최대 단일전, 독일-소련 전쟁 1941-1945
리처드 오버리 지음, 류한수 옮김 / 책과함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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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타임라이프 <월드워2> 시리즈로 다져진 나의 세계전사 내공은 조금은 밀덕에 가깝지 않나 싶다. 예전에 절판된 리처드 오버리 작가의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이 중고서점에 나오면 사려고 등록해 두었는데 지난달에 대망의 재개정판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러시아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새로 나왔고, 지난주에 받아서 주말 내내 읽어서 독파하는데 성공했다. 역시 그동안 해당 분야의 책들을 열심히 읽어서인지 진도가 쑥쑥 나가더라.

 

저자와 역자도 인정하듯이,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파시스트 집단을 패망에 이르게 한 승리의 원동력은 영미 연합군이 아닌 소련군이었다. 독일군 전체 피해자의 80% 이상이 동부전선에서 나온 것을 보면 더 이해가 갈 것이다. 물론, 전쟁기계 독일군을 상대한 소련군의 피해는 그것을 초월했다. 그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리처드 오버리는 히틀러와 스탈린이라는 희대의 독재자들이 맞붙은 독소전쟁의 기원부터 시작해서 종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머리말에서 리처드 오버리 작가는 IBP 영화사에서 1997년에 만든 10부작 다큐멘터리에서 <러시아의 전쟁>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 검색해 보니 다큐멘터리의 소제목과 책의 소제목들이 일치했다. 너튜브에서 27년 전의 자료를 검색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볼 수 있다면 좋은 참조가 될 수 있을 텐데 아쉽다.

 

논픽션의 시작은 1941년 독일 기갑부대의 매서운 공격으로 적도 모스크바가 함락 직전에 몰렸을 시기를 연상시키는 시퀀스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191910월 반혁명의 기운이 최고조에 달했을 당시, 모스크바와 페트로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상세한 기술이었다. 파죽지세로 몰려드는 적을 상대하기 위해 도시의 모든 이들이 엉성한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했다는 영웅서사는 이미 22년 전에 만들어진 사실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태어난 신생국가 소련은 압도적 독일의 위세 앞에 혁명을 지키기 위해 19183월 독일과 치욕스러운 강화조약을 맺었다. 그리고 제정 러시아 시절 유지하던 상당 부분의 영토들을 잃었다. 폴란드, 베사라비아, 몰도바를 비롯해 동부유럽의 지분의 상당 부분이 그에 해당했다. 레닌의 뒤를 이어 일국 사회주의 체제를 강조하며 독재자의 자리에 오른 이오시프 스탈린은 엔카베데 같은 비밀경찰을 동원한 무자비한 공포정치로 소련 인민들을 옥죄기 시작했다.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에 비해, 열악한 경제적 상황을 갖추고 있던 소련은 집단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서방 세계를 따라잡기 위한 공업화에 국가 역량을 총동원했다. 이런 무지막지한 정책의 실시는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대량 기아 사태를 초래했지만, 스탈린이 이끄는 소련 정권은 이런 부수적 피해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들을 추진했다. 역설적으로 이런 점들이 훗날 전시 경제체제에서 모든 면에서 자신들을 앞선 독일을 능가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공산주의 국가 소련에 스탈린이라는 희대의 독재자가 있었다면, 반대편 파시스트 진영에는 아돌프 히틀러라는 전설의 악당이 존재했다. 일단 국가사회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서로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이데올로기 체제는 필연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그런 무엇이었다. 하지만 서로에게 필요악이었을까? 스탈린이 대숙청으로 체제를 공고히 하고,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고 부상하던 1930년대 유럽 대륙의 이 두 악당들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이 악으로 규정한 공산주의 종주국의 리더 스탈린에게 손을 내미는 국가들은 당시만 하더라도 존재하지 않았다. 서방에서는 독일을 필두로 한 세력들이, 그리고 동방에서는 내전에도 개입했던 일본의 위협이 가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히틀러가 안슐루스와 주데텐란트 합병 등으로 중부 유럽의 질서를 깨는 행동을 서슴지 않자,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방은 즉시 견제에 나선다. 문제는 히틀러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할 의지가 그들에게는 없었다는 점이다. 영국의 체임벌린 수상은 뮌헨까지 날아가서 결국 체코를 내주는 대가로 평화를 샀다.

 

독일에 대한 서방의 견제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이에 손을 내민 게 바로 스탈린의 소련이었다. 히틀러는 독소불가침조약과 폴란드 분할 등으로 강철의 독재자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며 유화정책을 구사했다. 이에 소련의 지도자는 대량의 곡물 수출 같은 경제적 보상으로 화답했다. 문제는 처음부터 히틀러는 소련을 지구상에서 박멸해야 하는 대상으로, 그리고 소련의 광활한 대지는 게르만 민족을 위한 레벤스라움의 대상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모든 걸 의심하던 소련의 지도자를 철저하게 기만한 히틀러는 대군을 동원해서 결국 1941622일 이른바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소련 격멸에 나섰다. 소련 침공 작전이 발동되기 전까지 숱한 정보들이 독일의 기습전을 예고했지만, 스탈린은 이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를 처절하게 치르게 된다. 전쟁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소련군은 전쟁 초기 압도적 화력을 앞세운 독일 기갑부대에게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1930년대 대숙청의 여파와 정치위원들의 눈치를 보느라 소련 군인들은 전장에서 제대로 저항다운 저항을 해보지도 못하고 패배를 거듭했다.

 

독일의 3개 집단군은 각기 목표를 지니고 소련의 대평원을 휩쓸었다. 북부집단군은 소련 제2의 도시 레닌그라드 함락을, 중부집단군은 수도 모스크바를 그리고 남부집단군은 소련의 곡창지대이자 유전지대를 겨냥해서 전선에 투입되었다.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군은 바로 소련의 수도를 노린 중부집단군이었다. 이미 추축동맹국 이탈리아를 돕기 위해 발칸반도 작전으로 6주라는 소중한 작전 시간을 허비했고, 민스크-스몰렌스크 축선을 성공적으로 공략한 중부집단군이 바로 모스크바로 치고 나가지 못하고 남부집단군을 지원하라는 군사 비전문가 총통의 명령에 따라 키예프 공략을 나서면서 소련의 수도는 결정적인 구원을 얻었다.

 

레닌그라드에서도 포위된 도시를 강력한 충격으로 일거에 함락시키지 않고 봉쇄를 명령하면서 결국 레닌그라드 포위 900일이라는 비극을 만들어냈다. 북부집단군은 신속하게 레닌그라드를 점령하고, 전력을 중부집단군에 집중했어야 했다. 결국 오만한 독재자 스탈린은 만주 할힌골 전투에서 두각을 드러낸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을 사령관 대리로 임명하고, 군사 지휘의 전권을 주면서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수도를 지키는데 성공한다. 모스크바를 사수하는데, 독재자 스탈린이 후방으로 후퇴하지 않고 수도를 지키기 위해 잔류했다는 점도 빼놓으면 안 될 것 같다.

 

개전 초기, 압도적 독일의 공격에 소련 서부에 있던 공장과 설비 그리고 숙련 노동자들을 모두 안전한 우랄 산맥 너머 동방 축선으로 옮긴 것은 소련에게는 신의 한수 같은 결정이었다. 역시 독재국가답게 무지막지한 전시동원으로 인력과 자원을 갈아 넣으면서, 조금씩 전시 생산체제를 가동시켰다. 소련 시민들을 위한 소비재 생산은 일절 무시하고 오로지 적과 싸우기 위한 전차와 항공기, 대포 그리고 탄약과 포탄 생산에 전념했다. 소련이 대조국전쟁이라고 부르는 이 전쟁에서 미영의 무기대여법에 의한 원조 역시 큰 몫을 했다. 물론, 소련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소련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쿠르스크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전쟁의 변곡점을 만들어내면서 미영 연합군이 지원한 막대한 물량의 전쟁물자들 가운데 스팸과 스튜드베이커 트럭은 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독일군은 여전히 시대에 뒤쳐진 우마를 보급 수송에 사용했는데, 소련군은 미국에서 공여 받은 미제 트럭들을 사용해서 전장으로 필요한 탄약과 보급물자 그리고 예비병력들을 실어 날랐다.

 

1942년 여름, 스탈린그라드에 포위된 62군을 위해 축차적으로 구원부대를 보내는 대신 천왕성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독일 최정예 부대라는 6군을 포위한다는 주코프의 신박한 전략이 등장했다. 물론 이 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당장이라도 점령될 것 같은 독재자의 이름을 딴 볼가 강의 도시에서는 그야말로 처절한 시가전이 벌어졌다. 독 안의 든 쥐 같은 신세였던 추이코프 장군이 지휘하는 62군은 악착같이 버텼고, 마침내 구원이 도착했다.

 

주코프 장군이 지휘하는 소련 야전부대가 스탈린그라드 북부 전선을 담당했던 루마니아-이탈리아군을 분쇄하고 강력한 두 개의 집게발로 스탈린그라드의 30만에 달하는 독일군을 포위하는데 성공했다. 독일군은 충분히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현지 사수를 엄명한 미치광이 총통의 오판 덕분에 소련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데 실패했다. 파파 호트와 만슈타인이 프리드리히 대장의 고립된 제6군 구원에 나섰지만, 몇 겹으로 둘러싼 포위망 돌파는 역부족이었다. 이 장대한 전투의 결과, 동방에서 독일이 승리할 기회는 사라져 버렸다.

 

이후에 이어지는 1943년의 쿠르스크 전투 그리고 1944년 소련군의 복수에 해당하는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독일은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주코프 휘하의 소련군은 개전 당시, 실패의 이유를 곱씹고 1930년대 투하쳅스키 장군이 설계한 종심작전을 기반으로 한 제병합병 작전의 중요성을 깨닫고 기존의 소련군과는 달리 새로운 집단으로 거듭나게 된다. 역시 전쟁에서 경험만한 게 없다는 진리일까. 그리고 전장에서 정치위원의 역할을 줄이고, 현장지휘관들의 판단을 중시하게 되면서 소련군의 사기는 고양되었다.

 

저자 리처드 오버리는 이런 점들에서 소련인들이 새로운 미래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품고, 독일과의 전투에서 파시스트 짐승들을 격멸하기 위해 자진해서 싸우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희망 사항이었고, 전쟁이 끝난 뒤 독재자는 원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 부역자 처벌을 필두로 해서 전쟁에서 활약한 장군들을 갖은 이유로 숙청한다. 최고 전쟁영웅 주코프마저 한직으로 밀려날 정도니 보통 사람들은 얼마나 더 했을지 모른다.

 

독소전 개전 3주년을 맞아 그나마 건재했던 독일의 중부집단군을 겨냥해서 발동된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소련은 독일에게 침략당한 자국의 영토를 모두 되찾는데 성공한다. 정보전의 중요성을 인식한 소련은 철저하게 주공 방향을 비밀로 감추는데 성공하고, 벨라루스 프리야트 습지대를 돌파해서 독일군 주력부대들을 차례로 분쇄했다.

 

비슷한 시기에 소련이 그렇게 원하던 유럽대륙 제2전선을 연 미영 연합군이 노르망디 북부의 빌라 보카주에 갇혀 악전고투하는 동안, 주코프 휘하의 소련군은 엄청난 진군 속도로 지리멸렬한 독일군을 격파하고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인근 비스와 강까지 도달했다. 소련군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바르샤바에 있던 폴란드 민족주의자들로 구성된 폴란드 국내군이 봉기해서 독일군에 대항했지만, 빈약한 무기로 미쳐 날뛰는 나치 친위대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결국 바르샤바가 해방되면 공산주의 소련에 영향력 아래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며 선제적으로 봉기에 나섰던 폴란드 민족주의자 세력들은 나치에 의해 일소됐다.

 

스탈린이 일부러 폴란드 국내군의 봉기를 좌시했다는 설도 있지만, 사실 비스와 강에 도달할 무렵 소련군은 공세종말점에 도달해 있었고 총통의 소방수로 알려진 발터 모델 원수의 우주방어로 결국 소련군의 공세를 멈추게 할 수가 있었다. 바르샤바가 해방되기 위해서는 다음해 1월까지 기다려야했다.

 

결국 히틀러의 제3제국 패망은 이제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었다. 1943년과 1944년 잘 짜인 전략으로 전선에서 병력 감소를 최대한으로 줄인 소련군이, 파시스트 소굴 베를린 점령전투에서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승리의 트로피인 적국의 수도 점령을 위해 주코프와 코네프가 적극적 경쟁을 벌였다. 그 결과, 인명을 경시하는 소비에트 시절의 못된 버릇이 다시 도졌고, 4년 전과 달라진 조국 수호를 위해 광신적 저항을 하는 독일군을 상대하게 된 소련군의 사상자 수가 격증하기 시작했다. 요새화된 정중앙 젤로 고지 전투에서 주코프가 고전하는 동안, 남부 전선 공략을 맡은 코네프가 보다 유리했다. 그래도 어쨌든 전쟁을 거의 주도하다시피한 주코프에게 적국의 수도 함락이라는 명예가 주어졌던가.

 

천년왕국을 꿈꾸던 히틀러의 제3제국이 그렇게 몰락해 버리고, 이제는 전후 질서를 위한 미국과 영국 그리고 소련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어쩌면 제3제국의 멸망이 미래의 냉전 잉태를 예고하고 있었던 걸까. 전쟁이 끝나기 전, 영국의 처칠과 스탈린은 동부 유럽에서 각각 자국의 지분을 두고 경쟁했다. 처칠은 처음부터 공산주의자였던 스탈린을 조금도 신뢰하지 않았다. 그나마 루스벨트가 스탈린에게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종전을 앞두고 사망하면서 반공 노선의 트루먼이 후계자가 되면서 연합군 내부의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결국 자국이 해방된 나라들을 지배한다는 스탈린의 논리가 우세하게 되면서 동유럽이 스탈린의 손아귀에 넘어가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이전에, 나치 전범들을 약식재판으로 처형하자는 미영의 의견에 스탈린이 반대하면서 결국 재판이 열리게 되었다. 하지만, 소련이 전쟁 중에 폴란드에서 저지른 카틴 숲 학살 사건 같은 케이스는 아예 불문에 붙였다. 철저하게 나치 독일을 상대로 벌인 선전전에 불과했다. 결국 전범재판은 엔카베데를 동원해서 고문과 자백을 통한 재판 결과를 연출할 수가 없었던 소련의 쇼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단일전이라는 책의 표제처럼, 5년간 치러진 독소전쟁의 결과는 참혹했다. 수많은 인명이 무고하게 살상되고, 재산이 잿더미가 되고 도시의 건물들이 불타 버렸다. 소련이 결국 독일을 무찌르고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세계 최열강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지만, 소련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손실은 막대했다. 국가 재건을 위해서는 또 다른 막대한 강제 인력동원이 소요됐다. 나치 독일을 상대하는데 효과적이었던, 소련의 전체주의 시스템이 바뀌리라는 희망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대조국전쟁의 승리로 소련 대중이 더 행복해지거나 부유해졌을까? 리처드 오버리는 독일과 소련 양국의 참전용사들의 전후 삶을 비교하면서 그렇지 않았다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패자에게도 그리고 승자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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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4-09-03 02: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근본적인 원인이지요.프랑스 나폴레옹과 독일 히틀러의 침공으로 러시아 국민이 수천만명이나 사망했기에 러시아는 적성국과 국경을 맞대기보다는 완충지대를 두는 것에 병적으로 집착합니다.

레삭매냐 2024-09-03 14:10   좋아요 1 | URL
그렇지 않아도 책을 읽으면서 현재
러우전쟁이 떠올랐습니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나토는
더 이상 동진하지 않겠다는 약속
을 지키지 않았죠.

푸틴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
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다고 해서 전쟁을 일으킨 원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요.

coolcat329 2024-09-03 07: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0부작 다큐 저도 보고 싶은데 없군요. ㅠㅠ
소련인민들이 스탈린체제로부터 벗어나고자하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독일과 싸웠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거군요. 근데 스탈린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로 더 강력해졌으니 참 ...

레삭매냐 2024-09-03 14:11   좋아요 1 | URL
아마 오래 전 자료가 그런지
다큐를 찾을 수가 없더군요.
너튜브 세상에서도 없는 게
신기하기도 하구요.

전쟁을 이기기 위해 인민에
대한 통제를 느슨하게 했지
만 전후, 다시 조이기 시작했
죠.

지도자에게 다시 사기당한
기분이 아니었을까요.

페넬로페 2024-09-03 09: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소의 대명사 히틀러와 스탈린은 파고 파도 마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열악했던 러시아가 독일을 막아내고 재침공 했다는 사실이 어떻게 평가받는지 모르지만 그 후유증을 지금 사람들이 앓는 것 같아요 ㅠㅠ


레삭매냐 2024-09-03 14:13   좋아요 2 | URL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주민들의 생활을 위한 일체의 소비재
생산은 의도적으로 기피하고 오로지
전쟁 물자 생산에만 몰두해서 결국
파시스트 나치 독일을 패망시켰습니
다.

제정 러시아 이래, 국가 러시아는
짜르를 원하지 않았나라는 분석도
등장합니다.

제정 러시아 시절에는 로마노프 집
안의 짜르들, 공산당 시절에는 스탈
린 그리고 지금은 푸틴.

욕하면서 지지하는 그런 느낌이
아닐까요.
 
어부의 무덤 - 바티칸 비밀 연구
존 오닐 지음, 이미경 옮김 / 혜윰터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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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동지 붉은돼지님의 포스팅을 읽고 나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미국 출신 변호사 존 오닐의 <어부의 무덤>이라는 책이다. 무려 로마 교회 초대 교황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베드로의 무덤을 찾는 바티칸 비밀 프로젝트라고 한다. 호기심이 발동했으니 또 이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지. 어제 도서관에 갔다가 빌려서 단박에 읽었다.

 

변호사 출신답게 내용은 간결하고 명료하다. 이야기는 1939, 세계가 전화로 막 휩싸이기 직전 바티칸에서 비밀리에 텍사스 휴스턴으로 월터 캐럴이라는 젊은 사제를 파견했다. 그가 만날 사람은 석유시추로 거부가 된 조지 스트레이크라는 사람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지 스트레이크는 어려서부터 가톨릭 신앙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그런 사업가였다. 어린 시절, 9달러를 벌면 2달러를 십일조로 기부했을 정도다. 정규 과정 없이 대학교에 진학해서 장액금으로 학교를 다닌 뒤, 그는 와일드캐터(석유를 찾아다니는 시추업자)로 변신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텍사스 콘로에서 어마어마한 석유의 바다를 찾아낸 뒤, 거부가 되었다.

 

그는 항상 신이 자신과 함께 했기 때문에, 자신이 성공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독실한 신자였다. 그리고 자신의 전 재산을 언젠가는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사회와 종교단체 기부에도 아낌이 없었다. 이런 사실을 잘아는 당시 교황 비오 12세는 월터 캐럴를 파견해서 바티칸에서 진행 중인 비밀 프로젝트에 재정 후원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정확히 실체를 모르는 프로젝트에 누가 자신의 재산을 아낌 없이 내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조지 스트레이크는 달랐다.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는 이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 그렇다면 이 논픽션의 제목에 등장하는 "어부"란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 그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제자이자, 전승에 따르면 천국의 열쇠를 받았다고 알려진 그 인물 베드로다. 갈릴리 어부 출신의 베드로는 격한 성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겟세마네 동산에 예수 그리스도를 잡으러 온 이들과 한 판 대결을 벌일 정도의 그런 당당한 남자였다. 하지만 성경에도 나오는 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관헌에게 체포되어 간 다음, 닭이 울기 전에 자신의 스승을 세 번이나 부인했다. 예수 그리스도 사후 그리고 승천 후에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사도 바오로와 더불어 앞장 선 인물이다.

 

로마 교회에서는 이런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그를 기념해서 그가 로마에서 네로의 핍박을 받아 순교한 자리에 나무로 만든 성 베드로 성당이 지어졌다고 한다. 사도 바오로의 유해는 이미 발견되었지만 로마 교회에서 그 누구보다 중요한 사도 베드로의 유해와 묘지는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17세기 성 베드로 성당이 다시 지어진 뒤에도 그의 묘지를 찾는 여정은 계속되었다. 성 베드로 성당 밑에 그의 무덤이 있는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전에도 발굴 조사가 되었지만 그 때마다 이교도의 묘지였던 네크로폴리스의 일부만이 발견됐다. 그러던 차에 1939년 비오 12세의 명령으로 비밀리에 발굴조사가 시작되었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면서 비오 12세는 미국에 사는 조지 스트레이크의 후원을 받아 이른바 '사도 프로젝트'를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변호사 출신의 저자 존 오닐은 상당히 보수적 인사로 보인다. 책의 상당 부분을 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유럽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데, 파시즘에 중립적 자세를 취한 바티칸 교황청에 대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논지를 전개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월터 캐럴을 비롯한 일군의 바티칸 사제들이 연합군 승리와 유럽, 특히 이탈리아 유대인 구제에 조력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동시에 전후에도 조지 스트레이크와 이탈리아 사제들의 후원으로 이탈리아가 공산당에 넘어가는 걸 막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사실 무솔리니 치하에서 부역한 우파들은 파시즘 독재에 철저하게 저항한 좌파 빨치산보다 대의명분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이탈리아 대중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이 이탈리아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탈리아는 서구 사회에서 처음으로 공산당이 집권하는 나라가 됐을 지도 모른다.

 

책의 전반에는 이렇게 사도 프로젝트에 개입한 이들의 눈부신 활약이 그려지고, 후반에는 마구잡이식 발굴로 지하 네크로폴리스 발굴을 엉망으로 만든 안토니오 페루아 사제(훗날 바티칸 유물관리 고위직으로 승진한다)와 마르게리타 과르두치 여사의 한판 대결로 이루어진다.

 

전동장비나 현대적 설비 없이 오로지 삽과 곡괭이로 작업한다는 사도 프로젝트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발굴 초기인 1930년대만 하더라도, 현대식 고고학 발굴은 꿈도 꿀 수가 없는 상태였을까? 원래 발굴을 담당한 페루아 팀은 섬세한 유물/유해 수집과 사진 촬영은 고사하고, 사도 프로젝트 해결에 결정적 명문이 새겨진 "그래피티 월"을 애써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른바 "가이우스의 전리품"을 찾을 수 있는 단서였던 명문에 문외한이었던 페루아의 결정적 실책이었다. 하지만, 금석문에 정통한 과르두치가 등장하면서 페루아 팀의 과오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과르두치의 후원자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뜨면서, 페루자의 공격은 집요해지고 수십년간 사도 프로젝트에 전념한 과르두치는 결국 프로젝트에서 배제되고 만다. 하지만, 진실은 한 사람의 원한이나 사욕으로 뒤바뀌지 않았다. 결국 과르두치가 밝혀낸 진실이 다시 한 번 교황에게 인정받고, 세상의 인정을 받게 된다.

 

일단 책은 저자 존 오닐이 어디선가 말한 대로,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파란만장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다만, 아무래도 존 오닐이 전문적인 (종교)역사학자가 아니다 보니 곳곳에서 빈틈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 아쉬운 건 자신의 반공주의 성향을 보이는 점이다. 그리고 인물 위주의 묘사를 하다 보니, 발굴 과정에 보다 전문적인 정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넓은 전문가의 조언이나 감수를 첨가했다면 더 멋진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비전문가의 진실 탐사 프로젝트는 과연 흥미로웠다. 사도 프로젝트에 개입한 이들의 파란만장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세계대전 중에 이런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오직 신앙의 힘으로 막대한 자금을 지원한 조지 스트레이크의 이야기도 다양한 인사이트의 원천이었다. 과연 성유물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자 이제 다음 차례는 패트릭 J. 기어리의 <거룩한 도둑질>을 읽을 차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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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9-02 1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논픽션이군요!
재밌겠어요
그런데 별3개?!
아마도 발굴에 대한 내용때문인가봅니다.

레삭매냐 2024-09-02 15:08   좋아요 2 | URL
확실히 재미가 있어서 단박
에 읽긴 했는데...

좀 무언가 아쉬운 점들이 -
아마 비전문가의 역사 서술
이라 그런 게 아닌가 싶기
도 하구요.
 
푸른 밤
존 디디온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NYT 독자 선정 금세기 베스트 100 가운데, 조앤 디디온이라는 작가의 <상실>이라는 책이 있다고 해서 냉큼 사서 읽기 시작했다. 분량은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제목이 말해주듯 40년을 갈이 산 배우자와 사랑하는 딸 퀸타나의 "상실"에 대한 글이라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고, 내용도 그냥 평범한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조앤 디디온은 그야말로 평생 글쟁이로 '뉴 저널리즘'의 기수라고 불릴 정도로 평생 글을 쓴 대가였고, 그녀가 구사하는 상실의 이야기는 아직 진짜 "상실"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로서는 수용하기가 버거웠던 모양이다. 지금까지 절반 정도 읽었나 보다.

 

나의 책읽기는 항상 컬렉션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던가. 스레드를 통해 알게 된 베른트 하인리히 작가의 생태를 다룬 책들과 더불어 조앤 디디온의 책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전자는 절판이 되어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조앤 디디온의 책이 수급이 쉬웠다고나 할까.

 

어제 중고서점에서 산 <푸른 밤>은 단박에 다 읽었다. <상실>과 달리 어제 만난 <푸른 밤>은 뭐랄까 일종의 리듬감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리듬감 섞인 독서를 하게 되면 책의 진도가 쭉쭉 나간다는 걸 간만에 느낄 수가 있었다. 나에게는 어제 읽은 조앤 디디온의 <푸른 밤>이 그랬다. 책의 분위기도 상대적으로 <푸른 밤>이 가볐웠고.

 

아무래도 조앤 디디온 작가의 삶에 대해 알지 못하다 보니 <상실>은 좀 더디게 진도가 나갔는데, <상실><푸른 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게 되면서 작가 내면세계에 좀 더 침투한 느낌이 들었다. 참고로 조앤 디디온은 3년 전인 2021년에 작고했다고 했다.

 

오랜 글쟁이로 다방면에서 활약하다 보니 조앤 디디온은 캘리포니아와 뉴욕에 아는 사람도 많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주변의 다이애나라는 친구 덕분에 1966년에 딸 퀸타나를 입양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이 직접 낳은 딸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더 퀸타나를 사랑했고 사춘기 딸의 고민을 함께 한 일련의 과정들이 그녀의 글을 통해 드러난다. 문득 퀸타나 루가 어쩌면 저명한 저널리스트였던 엄마 찬스 덕을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나 인형방에 영사기를 들여 놓자는 생각을 할 수는 없는 거니까 말이다.

 

선택과 버림받음에 대한 고찰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존과 조앤은 그 아이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퀸타나 루는 태어나면서 "버림받"았다고 해야 할까. 그 아이가 버려지지 않았다면, 존과 조앤 부부에게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았으리라. 과거의 어느 시점에 벌어지지 않은 사건에 대해 후일 시점에서 하는 이런 고민들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 걸까. 마치 역사의 가정법처럼 말이지.

 

남편 존 그레고리 던을 갑자기 잃고 나서, 딸 퀸타나마저 병상에서 힘겨운 투병을 하던 과정을 조앤 디디온은 담담한 목소리로 전달한다. 어쩌면 독자는 이런 글들을 만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잃게 된 상실에 대한 감정들이 전작 <상실>에서 넘실거린다면, 이번 <푸른 밤>에서는 상실에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극복을 주제로 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덧없이 흘러가는 그런 무수한 시간들을, 모든 걸 파괴해 버리는 시간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간단한 진리에 대해 생각해본다.

 

퀸타나가 자신의 생물학적 여동생 그리고 생모를 만나게 되는 사건에 대한 기록도 흥미롭다. 그리고 보니 조앤 디디온은 퀸타나를 데리고 투산에 촬영갔다가, 문득 퀸타나의 생모가 투산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외부로부터 퀸타나를 철저하게 차단하려고 했다는 자신의 시도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 아이가 어려서 가졌던 고민들에 대해서도 반복해서 되뇌이면서 고민열차에 동참하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어떤 사실들은 또 굳이 알아야 하나 싶기도 하다.

 

조앤 디디온이 무심결에 툭툭 던지는 미국 현대사의 한 장면들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고 싶다. 갓난쟁이 퀸타나를 데리고 무려 40만 명이나 되는 미군들이 싸우던 베트남에 가겠다는 생각이나, 책의 어디에서 미국의 파나마 침공이 이루어졌을 때 바베이도스엔가 가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 어떤 중대 사건들이 우리네 일상 너머로 벌어지고 있더라는 말을 작가는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읽은 책은 구간이다. 재개정판으로 만나보고 싶었지만, 중고책방에서 나의 선택은 제한적이었다. <마술적 사고의 해>도 마저 읽어야지. 우리는 원하지 않겠지만 "빛의 소멸"로 다가서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읽기와 쓰기 역시 빛의 소멸로 나가는 하나의 스텝일지도. 그러고 보면 참 시간이 덧없다. 그렇지 않은가.

 

* 이 책으로 찰리 파커의 <Relaxin' at Camarillo>라는 곡도 알게 됐다.

지금 다시 들어도 흥겹고 즐거운 분위기다.

그런데 카마리요가 우리로 치면 "언덕 위의 하얀집"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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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09-02 1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느 방송에서 이 책을 소개한 걸 보고 바로 구매했는데 이상하게 진도가 나가지 않았어요.
끝내 정리한 기억만 남았어요.

레삭매냐 2024-09-02 12:43   좋아요 1 | URL
저는 조심스럽게 전작인 <상실>과
함께 읽으면 좀 더 부드럽게 나가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두 책이 서로 공명하고 뭐 그런 점
들이 있더라구요.

문제는 <상실>이 참 어려운 책이
라는 게 단점이라고나 할까요.
한 달 넘게 잡고 있는데 미처 다
못 읽고 있네요.

조앤 디디온 여사의 글쓰기에
대해서는 감탄했습니다.
내추럴 본 글쟁이라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