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스가 아쓰코 에세이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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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중독성 독서의 대상은 이번 가을 일본 출신 스가 아쓰코 작가에 가서 꽂힌 모양이다. <밀라노, 안개의 풍경>을 필두로 해서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그리고 <트리에스테의 언덕길>에 불이 붙었다. <코르시아>를 읽다 말고, 도중에 도착한 <트리에스테>도 만나고 뒤죽박죽이다. 결국 <베네치아의 종소리>까지 읽어야 그나마 속이 시원하게 되겠지.

 

저자에 따르면 밀라노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의 출발은 반파시스트 이탈리아 저항운동에서 비롯되었다. 등단 시인이자 선동가 그리고 가톨릭 좌익 사제로 알려진 다비드 마리아 투롤도와 카밀로가 의기투합해서 만들어진 서점이 바로 코르시아 서점이었다. 책을 파는 공간인 코르시아는 밀라노에 내노라하는 지식인들을 비롯해서, 문학 문화 정치 등에 관심이 이들이 모이는, 일찍이 안토니오 그람시가 역설한 문화진지의 거점이 아니었을까.

 

영화가 극장 상영이라는 유통 과정을 필요로 하듯이, 온라인 서점이 없던 전후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책들은 책방/서점을 통해 유통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세상만사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또 토론하던 곳이 바로 코르시아였다는 말이다. 아무리 열심히 작가와 출판사가 책을 만들어도, 세상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렇게 책을 읽은 이들이 모여 책에 대해, 작가에 대해 그리고 연관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우리 책쟁이들이 꿈꾸는 대동세상의 이상적 모델이 아니겠는가.

 

그 시절의 코르시아 서점에 모이는 인간군상들의 묘사가 부러워서 그만 멀리 나간 것 같은 느낌이 퍼뜩 들었다. 그래도 어쩌랴, 부러운 건 부러운 것을.

 

자신과 정치성향이 다르더라도, 밀라노 부르주아지들과 귀족들은 견해가 다르더라도, 일종의 살롱 문화를 통해 그들을 포용하는 관용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방인의 눈으로 볼 때, 그들 내면세계의 꺼풀들이 의외로 많았던 모양이다. 19세기 산업화의 수혜를 받은 자본가 계급의 부르주아지 그리고 그 너머에서 황금접시와 빛나는 크리스털 식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주눅 든 가난한 유학생의 모습이 남다르게 보이지가 않았다.

 

교회에서는 눈엣가시 같았던 다비드 마리아 투롤도 신부를 영국 런던으로 유배시켜 버렸다. 매사에 자신넘치고 성당에서 <인터내셔널가>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투롤도 신부가 스가 아스코 일행을 이끌고 런던의 거리를 누비고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자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고향에 돌아와서는 핍박받은 사제이자 레지스탕스 영웅으로 그의 위상은 더 올라가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코르시아 서점에서 멀어지고, 신앙 공동체를 세우며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좀 씁쓸했다.

 

스가 아쓰코가 하도 알레산드로 만초니 타령을 해대서 결국 그의 책 <약혼자들>을 구해서 읽어야 하나 싶을 정도다. 우리나라에 이 책이 소개됐었다는 것도 놀랍고, 절판되어 이제 구할 수 없다는 것도 놀랍다. 전자책으로는 구할 수 있긴 한데, 개인적으로 전자책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

 

스가 아쓰코 여사의 전작도 그랬지만, 한 때 열심히 읽었던 다카노 히데유키의 <별난 친구들의 도쿄 표류기>가 떠올랐다. 그 책에서도 일본에 표류 중인 다양한 군상의 친구들이 등장하지 않았던가. 물론 아쓰코 여사의 책에 실릴 정도라면 최소한 에리트레아 출신의 양탄자 행상 미켈레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에리트레아에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끌려 와서 사육제에 참가하게 되고, 이름도 잊은 미켈레가 어느 추운 날 석탄이 떨어졌다고 저자를 찾아온다. 그리고 양탄자 행상으로 변신해서 코르시아 서점을 찾아왔다고 했던가. 이 정도 수완과 뻔뻔함 정도는 기본으로 장착해야 험난한 타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이었을까. 여기 나오는 미켈레의 이미지는 왠지 오래 전 영화 <파니 핑크>에 등장하는 선무당 오르페우스의 그것을 떠올리게 했다. 미켈레가 아쓰코 여사에게 커피를 사겠다는 제안으로 더 오래 기억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그런 일화로 누군가의 추억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독일인 청년과 사랑에 빠진 딸 덕분에 졸지에 부모의 원수 국가의 사위를 맞게 된 헝가리계 유대인 가브리엘레(피슈타) 시포슈 씨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가 보다. 피슈타의 딸 니콜레타는 자신의 유대인 가계를 몰랐다. 고지식한 독일 청년 베르트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의 삶에서 결혼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어 버렸다.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니콜레타는 결혼을 강행했다. 서로 다름에도 그 둘은 어찌어찌해서 삶을 영위해 나갔다. 전후 세대인 니콜레타와 달리, 히틀러가 통치하던 시절에 태어난 베르트는 어쩌면 히틀러 유겐트 대원이었지도 모르겠다. 더 심각한 문제(?)는 베르트의 외모가 총통과 닮았다는 점이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미국을 오가며 복잡한 생활을 이어가던 니콜레타와 베르트의 이야기. 그리고 목숨을 걸고 조국이었던 사회주의 국가 헝가리를 탈출한 뒤, 이탈리아에서 치과의사로 변신해서 10년 만에 다시 일어서는 괴력을 보여 주기도 했다. 피슈타 아저씨는 자기 집에서 좌파 이야기가 나오면 공산주의 치하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던가. 이렇게 인간사 속에 녹아든 과거 그리고 정치적 이야기들이 끝없이 명멸한다.

 

코르시아 서점의 또다른 주요 인물 중의 하나인 출판쟁이 가티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코르시아 서점은 책 판매와 문화진지 역할 말고도, 좋은 원고들을 찾아 책으로 만들기도 한 모양이다. 바로 그런 책의 편집을 맡은 이가 바로 가티였다. 하지만 이 인간, 언제부터인가 넋을 놓고 산다. 그리고 이런 가티를 걱정한 서점 동지들이 저자를 지목해서 말해 보라고 한다.

 

맛 좋은 아이스크림을 파는 포르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대화해 본 결과, 가티 인생 일대의 문제로 고민이 많아서란다. 그건 바로 아버지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고 또 동생까지 생길 판이라고 한다. 아니 이럴 수가!!! 노총각 가티가 아이를 가져도 믿을까 말까인데 일흔도 넘은 노인네가 자식을 보게 생겼다니. 아니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책으로 옮기지 않고 배길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여동생' 그라치아가 태어나고, 새엄마(?) 리나는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돈벌이하러 나섰다. 그런데 계속해서 애인을 갈아 치우던 바람둥이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가브리엘레 카레티의 이야기도 왠지 가티의 아버지의 이야기와 결을 같이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아쓰코 여사의 후배에 해당하는 싼마오 생각도 났다. 이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다양한 체험을 하고 그걸 바탕으로 책을 발표한 작가 말이다. 외국에 나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이방인 문필가들의 비슷한 어떤 하나의 패턴이 보이는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소멸하듯이,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 역시 문을 닫게 됐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1960년대 말, 문화혁명의 여파로 부르주아지 계급과 좌파 세력 간의 갈등이 결정적이지 않았을까. 책의 말미에 아쓰코 여사의 친구 루치아 피니의 편지로 저간의 사정들이 밝혀진다. 코르시아 서점은 한 때, 젊은 레지스탕스 영웅들의 이상향이었지만 시간이 지나 그들에게 짐으로 작동하게 된 점을 지적했을 때는 참 아쉬웠다.

 

그리고 뒤늦게 일본에 도착한 다비드 마리아 투롤도의 부고 소식으로 모든 것이 시작된 코르시아 서점의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진짜 이런 이상적인 서점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인간관계가 점점 파편화되어가는 새로운 밀레니엄에는 불가능한 미션이라는 느낌이다. 존재할 수 없는 이상향이기에 더 부러웠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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