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부의 무덤 - 바티칸 비밀 연구
존 오닐 지음, 이미경 옮김 / 혜윰터 / 2020년 1월
평점 :
알라딘 동지 붉은돼지님의 포스팅을 읽고 나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미국 출신 변호사 존 오닐의 <어부의 무덤>이라는 책이다. 무려 로마 교회 초대 교황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베드로의 무덤을 찾는 바티칸 비밀 프로젝트라고 한다. 호기심이 발동했으니 또 이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지. 어제 도서관에 갔다가 빌려서 단박에 읽었다.
변호사 출신답게 내용은 간결하고 명료하다. 이야기는 1939년, 세계가 전화로 막 휩싸이기 직전 바티칸에서 비밀리에 텍사스 휴스턴으로 월터 캐럴이라는 젊은 사제를 파견했다. 그가 만날 사람은 석유시추로 거부가 된 조지 스트레이크라는 사람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지 스트레이크는 어려서부터 가톨릭 신앙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그런 사업가였다. 어린 시절, 9달러를 벌면 2달러를 십일조로 기부했을 정도다. 정규 과정 없이 대학교에 진학해서 장액금으로 학교를 다닌 뒤, 그는 와일드캐터(석유를 찾아다니는 시추업자)로 변신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텍사스 콘로에서 어마어마한 석유의 바다를 찾아낸 뒤, 거부가 되었다.
그는 항상 신이 자신과 함께 했기 때문에, 자신이 성공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독실한 신자였다. 그리고 자신의 전 재산을 언젠가는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사회와 종교단체 기부에도 아낌이 없었다. 이런 사실을 잘아는 당시 교황 비오 12세는 월터 캐럴를 파견해서 바티칸에서 진행 중인 비밀 프로젝트에 재정 후원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정확히 실체를 모르는 프로젝트에 누가 자신의 재산을 아낌 없이 내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조지 스트레이크는 달랐다.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는 이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자, 그렇다면 이 논픽션의 제목에 등장하는 "어부"란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 그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제자이자, 전승에 따르면 천국의 열쇠를 받았다고 알려진 그 인물 베드로다. 갈릴리 어부 출신의 베드로는 격한 성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겟세마네 동산에 예수 그리스도를 잡으러 온 이들과 한 판 대결을 벌일 정도의 그런 당당한 남자였다. 하지만 성경에도 나오는 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관헌에게 체포되어 간 다음, 닭이 울기 전에 자신의 스승을 세 번이나 부인했다. 예수 그리스도 사후 그리고 승천 후에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사도 바오로와 더불어 앞장 선 인물이다.
로마 교회에서는 이런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그를 기념해서 그가 로마에서 네로의 핍박을 받아 순교한 자리에 나무로 만든 성 베드로 성당이 지어졌다고 한다. 사도 바오로의 유해는 이미 발견되었지만 로마 교회에서 그 누구보다 중요한 사도 베드로의 유해와 묘지는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17세기 성 베드로 성당이 다시 지어진 뒤에도 그의 묘지를 찾는 여정은 계속되었다. 성 베드로 성당 밑에 그의 무덤이 있는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전에도 발굴 조사가 되었지만 그 때마다 이교도의 묘지였던 네크로폴리스의 일부만이 발견됐다. 그러던 차에 1939년 비오 12세의 명령으로 비밀리에 발굴조사가 시작되었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면서 비오 12세는 미국에 사는 조지 스트레이크의 후원을 받아 이른바 '사도 프로젝트'를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변호사 출신의 저자 존 오닐은 상당히 보수적 인사로 보인다. 책의 상당 부분을 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유럽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데, 파시즘에 중립적 자세를 취한 바티칸 교황청에 대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논지를 전개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월터 캐럴을 비롯한 일군의 바티칸 사제들이 연합군 승리와 유럽, 특히 이탈리아 유대인 구제에 조력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동시에 전후에도 조지 스트레이크와 이탈리아 사제들의 후원으로 이탈리아가 공산당에 넘어가는 걸 막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사실 무솔리니 치하에서 부역한 우파들은 파시즘 독재에 철저하게 저항한 좌파 빨치산보다 대의명분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이탈리아 대중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이 이탈리아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탈리아는 서구 사회에서 처음으로 공산당이 집권하는 나라가 됐을 지도 모른다.
책의 전반에는 이렇게 사도 프로젝트에 개입한 이들의 눈부신 활약이 그려지고, 후반에는 마구잡이식 발굴로 지하 네크로폴리스 발굴을 엉망으로 만든 안토니오 페루아 사제(훗날 바티칸 유물관리 고위직으로 승진한다)와 마르게리타 과르두치 여사의 한판 대결로 이루어진다.
전동장비나 현대적 설비 없이 오로지 삽과 곡괭이로 작업한다는 사도 프로젝트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발굴 초기인 1930년대만 하더라도, 현대식 고고학 발굴은 꿈도 꿀 수가 없는 상태였을까? 원래 발굴을 담당한 페루아 팀은 섬세한 유물/유해 수집과 사진 촬영은 고사하고, 사도 프로젝트 해결에 결정적 명문이 새겨진 "그래피티 월"을 애써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른바 "가이우스의 전리품"을 찾을 수 있는 단서였던 명문에 문외한이었던 페루아의 결정적 실책이었다. 하지만, 금석문에 정통한 과르두치가 등장하면서 페루아 팀의 과오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과르두치의 후원자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뜨면서, 페루자의 공격은 집요해지고 수십년간 사도 프로젝트에 전념한 과르두치는 결국 프로젝트에서 배제되고 만다. 하지만, 진실은 한 사람의 원한이나 사욕으로 뒤바뀌지 않았다. 결국 과르두치가 밝혀낸 진실이 다시 한 번 교황에게 인정받고, 세상의 인정을 받게 된다.
일단 책은 저자 존 오닐이 어디선가 말한 대로,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파란만장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다만, 아무래도 존 오닐이 전문적인 (종교)역사학자가 아니다 보니 곳곳에서 빈틈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 아쉬운 건 자신의 반공주의 성향을 보이는 점이다. 그리고 인물 위주의 묘사를 하다 보니, 발굴 과정에 보다 전문적인 정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넓은 전문가의 조언이나 감수를 첨가했다면 더 멋진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비전문가의 진실 탐사 프로젝트는 과연 흥미로웠다. 사도 프로젝트에 개입한 이들의 파란만장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세계대전 중에 이런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오직 신앙의 힘으로 막대한 자금을 지원한 조지 스트레이크의 이야기도 다양한 인사이트의 원천이었다. 과연 성유물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자 이제 다음 차례는 패트릭 J. 기어리의 <거룩한 도둑질>을 읽을 차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