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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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작가의 5번째 소설집인 <위험한 독서>에 대한 북글을 쓰기에 앞서, 나에게 독서란 무엇인가 하고 물어봤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란? 나에게 독서란 삶의 순간순간들이다. 퇴근 길 전철에서도, 건널목에서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는 그 순간마저도, 막 잠이 오기 전 눈꺼풀이 수마(睡魔)와 사투를 벌이는 순간들에도 나는 항상 책과 함께 하고 있었다. <위험한 독서>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서영채 씨는, 김경욱 작가를 소설기계라고 했는데 그에 비한다면 아마 난 독서기계쯤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을 읽기에 앞서 참 색다른 경험을 할 수가 있었다. 그건 바로 김경욱 작가와의 만나게 된 것이었다. 사실 <위험한 독서>에 나오는 8개의 단편 중에서 달랑 두 개만을 읽은 상태에서 급만남을 가지게 돼서,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반면 마치 하얀 도화지에 나만의 독서의 가능성을 그리듯 사전에 <위험한 독서>에 대한 많은 정보를 입수해서 매우 독특한 독서를 경험할 수가 있었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그렇게 작가와의 만남 촬영을 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위험한 독서> 첫 번째 단편으로 나오는 동명의 제목으로 설정 극도 해봤다. 그땐, 이게 뭐지 했었는데 나중에 시간을 내서 나머지 부분들을 읽으면서 아하 그게 그런 거였구나가 절로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역시 개인적 경험만큼 책을 읽는 삶 가운데서 중요한 것도 없는 것 같다.
 
서설이 너무 길었다. 본격적인 북글을 펼쳐 보도록 하자. 개인적으로 단편소설집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일반 장편소설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해서 읽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나의 시선을 단박에 잡은 것은 바로 <맥도널드 사수 대작전>이었다. 현재 우리 사회에 장기적으로 던져진 화두인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문제라는 이슈에서 시작되어, 미국식 신자유주의 다국적 기업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맥도널드에서 알바를 뛰는 여자주인공의 이야기다. 맥드널드화 돼서 일하는 가운데 어느 날, 암호 같은 ‘불온’문서가 등장하면서 그녀가 일하는 맥도널드 매장은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된다.
 
김경욱 작가의 블랙 유머가 돋보이는 말맞추기 게임의 향연이 한바탕 지나가고 난 다음, 그 격문의 주인공은 바로 제3세계해방전선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속테러에 대비한 초긴장 상태에서의 살인적 업무는 개개인 고유의 아우라 대신에 맥드널드화라는 이름으로 대체된 세계화의 잔상으로 투영되고 있었다. 대량소비 대량생산의 시대에, 우리 먹거리 역시 붕어빵 틀에서 찍혀져 나오는 붕어빵들처럼 규격화된 제품의 형태로 제한된 시간 내에 우리의 입에서 씹히고, 위장에서 소화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삶의 모든 면면이 재단되고 있다는 현실에 입맛이 씁쓰름해졌다.
 
독서치료사라는 이색 직업을 가진 화자와 그에게 치료를 받고자 하는 여성의 이야기가 모노톤으로 펼쳐지는 <위험한 독서>에서는 무언가 가슴과 머리를 공명시키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가 분류하는 인간 군은 다음과 같다. 책을 읽는 사람과 책을 읽지 않는 사람. 참 세상을 간단하게 보는구나 싶었다. 아, 그의 직업이 뭐라고 했던가, 독서치료사? 독서치료사는 ‘책으로 마음의 병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사람’(12쪽)이란다. 참 좋은 직업인 것 같다. 우선 환자(?)와 소통하기 위해 그는 독서카드를 작성한다. 그 독서카드라는 몇 개의 문자들의 나열을 통해 얻은 정보로, 그는 환자의 경계심을 무장해제시키고, 환자를 읽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화자인 독서치료사에게, 그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텍스트인 셈이다. 그는 그들을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를 읽기 시작한다. 서른두 살의 상담여성은 칠 년 동안 남자친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다이어트로 자신감을 재확인한 다음, 디지털 카메라로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개인 홈페이지에 담아내면서 ‘밥벌레’에서 멋진 나비로 변해서 정해진 절차대로 독서치료사의 곁을 훌쩍 떠나 버린다. 반면, 독서치료사는 자신이 읽고 있던 텍스트에 감정이입을 시키게 되고, 그녀의 떠난 자리에서 어리둥절해한다. 관계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 빈자리를 공허함이 대신한다.
 
한 때 대한민국을 온통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사태를 연상시키는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에서는, 자궁을 대여해서 대리모로 불임 부부들에게 아기를 대신 낳아주겠다는 어느 사나이와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조건상, 그들은 가난하다. 그리고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기 위한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궁 대여에 나서는 아내. 사나이의 사회경제적 무능력은 아내를 제어할 수가 없다. 습한 지하에 사는 그들의 곁에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달팽이,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민달팽이의 존재가 사나이의 눈에는 거슬리기만 하다.
 
결국, 아이를 원하는 불임부부들과 계약서를 쓰고, 아내는 작업에 들어간다. 아무 일 없이 그들의 프로젝트가 수행되어 가던 어느 날, 사나이는 아내로부터 임신하긴 했지만, 쌍둥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와중에 사나이는 우연히 달팽이를 집어삼키고, 그들의 삶이 아내의 대리모 계획으로 엉망진창이 된 것을 애꿎은 달팽이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아내는 날이 갈수록 인간 인큐베이터에서 어머니로 진화되어 간다. 화장실에서 서로 뒤엉겨 있는 두 마리의 달팽이들을 발견한 사나이는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 하나 하는 생각에 잠긴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김경욱 작가는 대학교 때 우연하게 글을 쓰게 되면서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역시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분이어서 그런지 글을 쓸 적에 가장 즐겁고 평안하다고도 했다. 억지로 글을 쓰면, 독자들이 바로 안다고 했는데 아마도 이는 많은 독서경험을 통해 체험한 것이리라. 그렇기 때문에라도 소설가는 자신의 촉수를 예민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던가.
 
<위험한 독서>에서는 책을 읽는 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가를 염두에 두고 집필을 했다고 한다. 수긍이 가는 말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을 텐데 하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마치 속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다고나 할까? 작가의 예리함이 폐부를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새로운 장편소설 구상 중이라는 김경욱 작가의 다음 작품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우리를 찾아오게 될지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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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국도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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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모임에선가 시간이 되면 7번국도를 따라 여행을 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그냥 그때는 그런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지난주에 김연수 작가에 대란 토론에 참가하기로 하면서 도서관에 가서 몇 권의 김연수 작가의 책을 빌렸다. <사랑이라니, 선영아>와 관심을 두고서 <밤은 노래한다>를 읽었다. 그러던 중에, 지금은 절판돼서 구할 수 없다는 <7번국도>란 책에 대해 알게 됐다. 절판 본에 대한 욕망이 꿈틀거렸다. 바로 도서관 검색창을 뒤져 보니, 다행스럽게도 <7번국도>의 존재가 확인됐다. 말이 필요 없었다, 바로 달려가서 대출을 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사랑이라니, 선영아> 저자 서문인가에서 1997년에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가 담긴 독자특별판 소설로 이 <7번국도>에 대한 이야기를 얼핏 읽은 듯한 기억이 났다.

다 읽고 나서 휘발해 버린 기억들을 뒤적이며, 인터넷으로 실재하는 7번국도를 검색해 보니 부산에서 출발해서 함경북도까지 가는 장장 500km가 넘는 도로라고 한다. 나중에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책을 뒤적거리다 보니, 책의 초반부에서 아주 친절하게도 설명이 되어 있었다. 역시 무언가에 대해 잘 모를 적에는 매뉴얼을 볼지어다.

두 명의 남자 주인공인 재현과 ‘내’가 말린 바다생물과 맥주를 마시면서 7번국도를 누비는 자전거여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왠지 모르게, 그냥 바닷가를 끼고 달리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주인공 둘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두 사람 사이에 매개이자 어쩌면 갈등의 원인일 수도 있는 세희라는 20대 초반의 여성 그리고 재현의 트라우마로 작동하는 옛 연인 서연이 불쑥불쑥 등장을 한다.

아, 그리고 보니 그 둘의 인연의 시작에는 비틀즈의 가공의 음반 <Route 7>이란 음반이 개입하기도 한다. 정상적이지 않은 삶들을 사는, 모두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적절한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김연수 작가는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속삭인다. 그리고 보니 이 책이 쓰인 시기가 지난 천 년이었던가? 세기말도 아닌 지나간 밀레니엄의 막판에 막 등단한 젊은 작가의 옛 글을 비교해 가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치 않았다.

개인적으로 김연수 작가의 만연체 스타일의 글이 잘 맞지 않아서 그의 작품들을 전작주의로 해서 다 읽어볼 계획은 없지만, 지금까지 읽은 책 혹은 읽다가 집어치운 책들을 비교해 볼 적에 역시 초기의 작품군과 최근의 그것들과는 확연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7번국도>에서는 세기말 증후군처럼 자신의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을 주체할 수 없는 그런 니힐리즘의 그림자가 보였다고나 할까. 관계에서 어김없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성적 탐닉과 유희에 대한 묘사는 근작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책의 말미에 보니 희망을 노래하는 글이라고 했던가. 솔직히 말해서 난 왜 주인공들이 무슨 이유로 ‘7번국도’에 갔는지 모르겠다. 어느 역무원이 기록한 7번국도에서 죽은 이들을 기록한 리스트가 주는 존재의 소멸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재현과 “나”가 과연 자전거여행을 하면서 얻은 희망이 무언지 대해서도, 국기에 단풍잎이 그려진 나라로 훌쩍 날아가 버린 서연도 또 아버지의 나라를 찾아 일본으로 떠난 세희에게서도 도무지 유기적인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것조차도 모두 세기말적 증후군이라고 한다면 정말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개인적은 느낌은 방부된 시간마저도 저 멀리 보이는 소실점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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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 - 뜨겁고 깊은 스페인 예술 기행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최도성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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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두고 책을 펼치면서, 책 제목 한 번 기가 막히게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친견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인터넷으로 예의 시리즈를 찾아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21세기북스에서 세 번째로 출간된 <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를 읽으면서 안 그래도 언젠가 스페인에 한 번은 가봐야겠다라고 생각한 결심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역시 초짜 배낭여행객이 아닌 베테랑 나그네인 최도성 작가가 뿜어내는 스페인의 아우라는 멋졌다! 우선 태양의 나라 스페인을 네 개의 권역으로 구분해서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를 정점으로 한 카스티야 지방을 출발로 해서, 알람브라 궁전으로 대표되는 아랍 문화의 잔상이 깊게 배어 있는 안달루시아, 스페인이면서도 동시에 스페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사는 카탈루냐 그리고 북부의 바스크 지방을 아우르는 그야말로 스페인 전토를 상대로 맞짱을 뜬 멋진 기행문을 독자들에게 선사해 준다.

작가는 큰 도시에서는 주로 미술관을 둘러보고 작은 도시에서는 그네들의 삶을 훑어보라는 충고를 해주고 있는데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가 있었다. 자신의 말대로 작가는 마드리드에서 세계 3대 미술관 중의 하나라는 프라도 미술관에서 만난 고야의 그림 이야기를 들려준다. 19세기 초반 전 유럽을 석권했던 나폴레옹과 프랑스군의 점령에 대항했던 스페인의 위대한 게릴라 부대 항전의 역사를 미술로 표현한 고야의 예술혼이 느껴지는 듯했다.

아울러 전쟁사진가로 유명한 로버트 카파의 일화도 역시 스페인과의 인연을 빼놓을 수가 없다. 아직도 진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카파가 스페인 내전 당시 찍은 <어느 인민전선군 병사의 죽음>은 그 극적인 찰나의 장면만큼이나 카파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으로 포토저널리즘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최도성 작가가 이후에 방문한 톨레도에서 자신의 아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모스카르도 대령의 일화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었다. 엄연히 모스카르도는 합법적인 선거로 선출된 인민전선 정부에 반란을 일으킨 프랑코 일당에 동조한 파시스트 반란군 지휘자였다. 글쓴이의 이런 이데올로기적 양비론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이미 다른 책에서 읽어서 알게 된 세고비아 특산의 애저구이, 코치니요 요리를 뒤로하고 스페인 중에서도 아랍 문화의 영향으로 가장 이국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이동한다. 축제의 도시라는 세비야에서 멋진 플라멩코 드레스를 입은 여인네들의 화려한 의상이 바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떠돌이의 삶을 사는 집시들의 이야기 그리고 신대륙을 발견(이미 존재하고 있던 대륙을 발견했다는 표현을 적절한지 모르겠지만)한 콜럼버스가 세비야와 스페인 왕국에 가져다준 물적 토대와 이를 기반으로 한 스페인 예술의 황금기에 대한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한 수 배울 좋은 기회였다.

스페인 본토라고 할 수 있는 카스티야와는 전혀 다른 문화적 그리고 역사적 배경을 가진 카탈루냐 지방에 대한 이야기는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대결 구도로만도 충분히 설명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역시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바르셀로나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가우디와 구엘 공원 그리고 지중해 바다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오히려 몬세라트와 이비사 그리고 분자요리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레스토랑 <엘 불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좀 더 신선하게 와 닿았다.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광기 어린 예술가라고 작가가 규정한 살바도르 달리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는 피게레스와 토마토 축제로 유명한 발렌시아의 부뇰 기행도 빼놓을 수가 없다.

최도성 작가의 스페인 순례는 아쉽게도 북부의 바스크 지방에 대한 이야기로 피날레를 내리게 된다. 스페인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대서양 연안의 비스케이만에 접해 있는 바스크 지방 역시 자신들만의 고유한 지방색을 갖추고 있으면서, 오랫동안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베스트셀러 작가 시드니 쉘던의 <시간의 모래밭>에 나오는 바스크 출신의 주인공 하이메 미로의 스페인 전역을 누비는 모험극이 떠오르기도 했다. 팜플로나의 소몰이 축제애 대한 스케치와 명화 게르니카에 대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피날레에 어울릴만한 멋진 에피소드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개인적인 경험만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수년간의 스페인 여행의 내공을 잔잔하게 읊조리는 듯한 최도성 작가의 스페인 기행문이 참 마음에 들었다. 결국, 언젠가는 찾아갈 스페인 여행을 꿈꾸며, 이번에는 70년 전에 스페인을 다녀간 그리스 출신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을 읽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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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폴 오스터 지음, 김경식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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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 폴 오스터의 책에 푹 빠져 버렸다. 어느 누가 올해 만난 최고의 작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다음의 세 명을 꼽을 것이다. 작고하신 커트 보네거트 할아버지, 칠레 출신의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이 양반 책은 특히 짧아서 더 마음에 든다!) 그리고 다양성 그 자체인 브루클린을 나와바리로 삼아 작품활동을 펼치는 폴 오스터가 그들이다. 다른 책들도 그렇지만, 폴 오스터의 책도 바로 다 읽지도 못하면서 계속해서 사들이고 있다.

이 책은 파주에 내가 자주 들르는 이가고서점에서 보고서, 찜을 해둔 책이었는데 지난 주말 그동안 누가 사갔을 새랴 싶어서 바로 사서 단박에 읽어 버렸다. 이 책은 폴 오스터와 홍콩 출신의 감독 웨인 왕이 손을 잡고 만든 두 편의 영화 <스모크>와 <블루 인 더 페이스>의 제작과정과 시나리오가 담긴 책이다. 빡빡한 행간으로 유명한 열린책들에서 나온 책이지만 그런 연유로 쉽게 읽을 수가 있었다.

영화 <스모크>는 이미 십 년도 더 전에 보긴 했는데 세월과 망각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잘 기억이 나지 않던 차에, 그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시절의 추억이 그야말로 마법처럼 기억 저 너머에서 피어올랐다. 책을 읽기 전에 단지 오랜 기억 속에서 ‘참 따뜻했던 영화였지’라는 나의 영화에 대한 단상은 꼼꼼하게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지를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이야기의 발단은 뉴욕타임스로부터 폴 오스터가 어느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단편소설을 하나 써달라는 청탁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오기는 브루클린의 가상의 담뱃가게에서 훔친 카메라로(!) 어느 특정한 시기에 매일같이 거리의 사진을 찍는다. 그는 지난 십여 년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신만의 의식을 엄숙하게 진행해왔다. 오기가 일하는 이 담뱃가게는 브루클린에 서식하는 이웃들의 소통 공간이다.

우리네 그것과 다를 게 없는 소시민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훈훈한 이야기들이 하비 카이틀과 윌리엄 허트라는 연기력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 두 명의 걸출한 배우들과 수많은 단역 배우들의 열정과 에너지와 결합이 돼서 <스모크>가 탄생했다. 물론 그 배후에는 작가 폴 오스터의 시나리오 작업이 탄탄하게 뒷받침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혼자서 책을 쓰는 소설가의 그것과 수많은 사람이 기획과 제작 단계에 개입하게 되는 영화 작업은 그 근본에서부터 차이점을 보여준다. 영화 <스모크>의 후속편 격인 <블루 인 더 페이스>의 경우에는 촬영 기간이 단 6일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얼마나 급하게 촬영이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서로 바쁜 배우들의 촬영 스케줄 때문에 때로는 따로따로 촬영을 해서 편집의 묘미를 살린 비하인드 스토리의 소개에서는 ‘아, 그랬었구나!’하는 탄식이 절로 튀어나왔다.

오래전에 친구가 그린 만화에서 모티프를 잡아서 어설픈 시나리오를 써 본 적이 있는데, 개개인의 세부적인 감정의 기술과 함께 상황설정 그리고 공간묘사 등 일반적인 글쓰기와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뛰어난 작가가 훌륭한 시나리오 작가는 아니라는 공식마저도 폴 오스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나 보다. 대개 시나리오 작가는 자신이 맡은 시나리오를 감독에게 넘겨 주면 자신의 임무는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영화 <스모크>에서 폴 오스터는 촬영현장은 물론 편집과정에도 흔쾌히 참가를 했다고 한다. 아마 그 덕분에 후속작 <블루 인 더 페이스>에서 웨인 왕 감독과 함께 크레딧에 공동감독의 타이틀을 올릴 수가 있었다.

<브루클린 풍자극>에 이은 두 번째 폴 오스터와의 만남 역시 흡족했다. 앞으로 계속될 폴 오스터 작품세계 탐험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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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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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팩션 장르를 굉장히 좋아한다. 역사 속에 실존했던 사건이나 인물들이 펼치는 가상의 미싱 링크를 훔쳐보는 재미를 즐긴다. 최근에 읽었던 김탁환 선생의 <노서아 가비>기 특히 인상적이었다. 나랑은 궁합이 잘 맞지 않는 작가인 김연수 작가가 1930년대 만주 간도 지방에서 실제로 있었던 ‘민생단사건’을 모티프로 삼아서 쓴 <밤은 노래한다>를 읽으면서 아주 오래전에 접했던 어느 공산당 출신 독립운동가 김산, 아니 장지락의 비극적인 삶이 떠올랐다.

경술국치를 겪고, 망국의 한(恨)을 품은 채로 살아야 했던 조선 사람들이 일제가 통치하는 조국을 떠나 중국과 조선의 사이라는 지명 간도(間島)에 정착해서 생활의 터전을 삼았다. 한편, 조선을 병탄한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은 드디어 9·18 만주사변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을 통해 폭발하게 된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드넓은 만주벌판에서 일본을 상대로 활발한 무장투쟁을 벌이던 망국 조선의 열혈지사들은 일본이 중국에 대한 본격적인 침략을 개시하면서 조선의 자주독립이냐 아니면 중국혁명을 우선 완수하고 난 뒤에, 조선혁명을 도모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뒤로하고, 김연수 작가는 김해연이라는 식민지 조선의 엘리트로 당시 잘 나가는 일본 기업이었던 만철의 측량기사를 주인공으로 삼아 독자를 잃어버린 고토 만주로 공간이동을 시킨다. 경남 통영 태생으로 민족이나 국가 의식 없이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나 자란 김해연은 기술학교를 졸업하고, 만철의 용정 사무소에서 근무하게 된다. 1932년 9월의 어느 날, 그에게 전해진 편지 한 통이 김해연의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기 시작한다.

다른 김연수 작가의 작품들처럼 <밤은 노래한다>에서도 ‘사랑’이라는 조금은 진부한 주제가주인공의 운명을 가르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만주에서 용맹을 떨치던 일본의 최정예 부대 관동군의 나카지마 중위와 용정에서 음악 교사로 근무하던 이정희 간의 삼각관계는 소설의 주인공 김해연의 삶을 온통 혼란 속으로 빠뜨려 버린다. 소설의 초반에 나카지마가 인생을 바꿔 놓은 사랑이란 걸 한 번 해보라는 충고가 묵시록처럼 다가온다.

사랑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에서 출발한 내러티브는 주인공을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공산주의 항일투쟁의 장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다. 공산주의와 국가주의 파시즘이 절대 양립할 수 없었다는 역사를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서로 상극에 서 있는 이데올로기의 충돌은 피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 때, 공산주의 운동을 하던 이들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말미암아 일제에 협력하는 변절자, 일제의 교묘한 선전에 넘어가 일국일당주의라는 코민테른의 원칙 대신 간도에 조선족이 자치하는 공동체를 수립하려는 민생단 운동가, 유격구에서 일가친척들을 토벌대에게 잃고 유격대원으로 변신해 가는 사람들, 그리고 낭만적 군국주의를 신봉하는 관동군 장교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글 속에서 펄떡이는 다양한 인물군들이 등장한다.

작가에게 만주 북간도는 선과 악이 혼재된 공간적 배경이다. 만주사변 후에 세워진 일제의 위성국가 만주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만큼이나 그 공간을 채우는 인물의 그것도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다. 민족과 국가 의식 따위라고는 전혀 가지지 못했던 주인공이, 배신과 실연으로 두려움-분노 그리고 무기력에 떨면서 타인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정신세계의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그에 앞서 선구자들이 이미 지나간 길을 되짚어가는 의식화의 과정일는지도 모르겠다.

김연수 작가는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소설의 갈등을 이루는 인물들의 악연에서 그 실마리를 제시한다. 톨스토이의 인도주의는 일제의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 앞에 그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마르크스-레닌주의 경도된 간도의 젊은이들은 더는 인도주의적 협상이나 대화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장투쟁에 나서게 된다.

중국 공산주의 혁명운동에 의존하지 않은, 조선인들만의 독립국 혹은 해방구로서의 한인(韓人) 소비에트를 만들겠다는 박길룡/박타이와 우선 중국혁명을 성공하고 나서 차후를 도모하자는 박도만의 대립은 그 내면에 깔린 이정희/안나 리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열망만큼이나 종잡을 수 없는 시대의 혼란상을 극명하게 도출하고 있다. 객관을 호소하면서도, 자신들의 주관적인 주장에서는 한발자국도 양보하지 못하는 그네들의 양가적 시선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도대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냐는 말인가? 그 어느 것도 정답이 될 수 없다고 작가는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노래한다.

한편, 주인공 김해연은 이런 역사적 계급투쟁의 갈등 속에서도, 유격구에서 혁명의 도리를 배운 여옥과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생과 사의 갈림길이 수도 없이 오가는 가운데서도 사랑하는 이에게 바다를 보여주마고 약속한다. 이것은 마치 격랑이 이는 역동적인 시대의 한복판에서도 인간의 숙명적인 개인화의 반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주인공의 감정의 흐름은 일본군 토벌대에게 포위된 어랑촌 소비에트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해서 용정에 잠입한 김해연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권총 한 자루로 무장한 채 총영사관으로 돌입하려는 장면이 묘하게 겹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소설에 나오는 민족주의와 쟁파주의 그리고 일본군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혁명의 아수라장에서 죽어가는 민생단원들의 모습에서, 1938년 중국 연안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어간 희대의 혁명가 김산, 장지락이 떠올랐다. 혁명의 대의가 얼마만큼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 무고한 이의 목숨까지도 담보해야 할 혁명이라면 단연히 거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억울하게 죽은 혁명가 장지락의 신원은 1983년에 회복되었다고 하지만, 만시지탄이었다.

김연수 작가의 글은 아무리 읽어도 빡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최근에 읽은 김훈 작가의 글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아마도 나의 부족함이거나 아니면 작가의 스타일이랑 나의 독서습관이 안 맞는 것일지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좀 더 형상화하는데 공을 들였더라면 하는 김연수 작가의 공력에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점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우리 역사의 한 모퉁이에 가려져 있던 잊힌 역사를 물 위로 부상시켰다는 점만으로도 <밤은 노래한다>는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을 한다. 많은 역사가도 미처 하지 못한 잊힌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을 끌게 만든, 김연수 작가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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