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 국도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모임에선가 시간이 되면 7번국도를 따라 여행을 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그냥 그때는 그런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지난주에 김연수 작가에 대란 토론에 참가하기로 하면서 도서관에 가서 몇 권의 김연수 작가의 책을 빌렸다. <사랑이라니, 선영아>와 관심을 두고서 <밤은 노래한다>를 읽었다. 그러던 중에, 지금은 절판돼서 구할 수 없다는 <7번국도>란 책에 대해 알게 됐다. 절판 본에 대한 욕망이 꿈틀거렸다. 바로 도서관 검색창을 뒤져 보니, 다행스럽게도 <7번국도>의 존재가 확인됐다. 말이 필요 없었다, 바로 달려가서 대출을 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사랑이라니, 선영아> 저자 서문인가에서 1997년에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가 담긴 독자특별판 소설로 이 <7번국도>에 대한 이야기를 얼핏 읽은 듯한 기억이 났다.

다 읽고 나서 휘발해 버린 기억들을 뒤적이며, 인터넷으로 실재하는 7번국도를 검색해 보니 부산에서 출발해서 함경북도까지 가는 장장 500km가 넘는 도로라고 한다. 나중에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책을 뒤적거리다 보니, 책의 초반부에서 아주 친절하게도 설명이 되어 있었다. 역시 무언가에 대해 잘 모를 적에는 매뉴얼을 볼지어다.

두 명의 남자 주인공인 재현과 ‘내’가 말린 바다생물과 맥주를 마시면서 7번국도를 누비는 자전거여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왠지 모르게, 그냥 바닷가를 끼고 달리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주인공 둘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두 사람 사이에 매개이자 어쩌면 갈등의 원인일 수도 있는 세희라는 20대 초반의 여성 그리고 재현의 트라우마로 작동하는 옛 연인 서연이 불쑥불쑥 등장을 한다.

아, 그리고 보니 그 둘의 인연의 시작에는 비틀즈의 가공의 음반 <Route 7>이란 음반이 개입하기도 한다. 정상적이지 않은 삶들을 사는, 모두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적절한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김연수 작가는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속삭인다. 그리고 보니 이 책이 쓰인 시기가 지난 천 년이었던가? 세기말도 아닌 지나간 밀레니엄의 막판에 막 등단한 젊은 작가의 옛 글을 비교해 가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치 않았다.

개인적으로 김연수 작가의 만연체 스타일의 글이 잘 맞지 않아서 그의 작품들을 전작주의로 해서 다 읽어볼 계획은 없지만, 지금까지 읽은 책 혹은 읽다가 집어치운 책들을 비교해 볼 적에 역시 초기의 작품군과 최근의 그것들과는 확연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7번국도>에서는 세기말 증후군처럼 자신의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을 주체할 수 없는 그런 니힐리즘의 그림자가 보였다고나 할까. 관계에서 어김없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성적 탐닉과 유희에 대한 묘사는 근작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책의 말미에 보니 희망을 노래하는 글이라고 했던가. 솔직히 말해서 난 왜 주인공들이 무슨 이유로 ‘7번국도’에 갔는지 모르겠다. 어느 역무원이 기록한 7번국도에서 죽은 이들을 기록한 리스트가 주는 존재의 소멸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재현과 “나”가 과연 자전거여행을 하면서 얻은 희망이 무언지 대해서도, 국기에 단풍잎이 그려진 나라로 훌쩍 날아가 버린 서연도 또 아버지의 나라를 찾아 일본으로 떠난 세희에게서도 도무지 유기적인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것조차도 모두 세기말적 증후군이라고 한다면 정말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개인적은 느낌은 방부된 시간마저도 저 멀리 보이는 소실점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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