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말하기 첫걸음 1 - 왕초보 탈출 프로젝트, 최신 개정판 일본어 말하기 첫걸음 : 왕초보 탈출 프로젝트 1
최유리.시원스쿨 일본어연구소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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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어 말하기 첫걸음1

 


갑자기 일본어 회화 입문서를 들여다본다. 여행을 가려 하는가, 둘째가 물었다. 글쎄다. 언젠가는? 그렇게 말을 아꼈던 나는 오겡끼데스까라며 설원 위에서 외치던 영화의 한 장면이라든지, 설경 속을 뚫고 나오는 기적소리라든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했던 어느 소설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연상했던 건지도 모른다.

아이의 눈에 비친 일본어 회화집은 여행을 연상시켰고, 내게는 이런저런 추억을 소환하는 설레임의 또다른 모티브와 같은 성격으로 다가왔다. 아무려면 어떤가. 그런데 실은 말이다. 실용서적까지도 문학적으로 들여다보는 이런 시선은 일종의 병이라면 병인 듯싶다.

 


각설하고 책 이야기를 해보자. 왕초보 탈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전권 3권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당연히 1단계를 선택했다. 국어로 치자면 가나다라, 와 같은 히라가나, 가타카나부터 시작된다. 다른 일본어 회화책의 구성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비교할만한 다른 정보도 전무하다. 다만 이번 책 최유리와 시원스쿨 일본어연구소에서 제작한 책만을 보고 이야기함을 미리 언급한다.

책의 구성은 미리보기, 살펴보기, 연습하기, 응용하기, 말해보기, 오모시로이 니홍고, 실력 업그레이드로 전체 7단계의 과정으로 구성되어있다. 덧붙이자면 특별부록으로 원어민 녹음 MP3파일과 강좌신청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본문 내용은 30개의 파트로 진행되고 있다. 각각의 다양한 소재와 상황에 맞는 일본어를 소개하는데 문법과 회화가 쉽게 어우러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핵심은 반복이었다. 앞부분에서 배운 단어와 문법을 포함한 회화표현들이 계속 반복되면서 새로운 단어와 문법을 보태며 소개하는 방식이다. 특히 연습하기 파트에서 문장구조의 반복 연습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어를 일본어로 말하고, 일본어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보고, 마지막에는 한국어 표기를 보면서 일본어로 말하기 연습을 하는 형식이었다.

 


말해보기 파트에서는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표현들을 다루고 있어 우리집 둘째 아이처럼 일본 방문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더 요긴한 정보로 쓰일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오모시로이 니홍고가 슬쩍 더 관심이 가는 부분이었는데, 한국에서 쓰이고 있는 일본어 표현들이라고 했다. 아는 단어도 있었고, 정말 의외였던 단어적 표현도 있더라.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들이 일본어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새삼 알아가게 되는 순간이었다고 할까. 언어란 무척이나 다른 듯 비슷하며, 언어라는 하나의 거대한 영향력에서 개인은 결코 무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써놓고 보니 어수선하다.

 


결론이다. 단계별로 차근차근 쉽게 접근해보며 익힐 수 있는 책인가 싶다. 또 누가 알겠는가. 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우는 아들아이보다 내가 더 실력 발휘를 하게 될지. 희망사항이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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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클래식 라이브러리 6
조지 오웰 지음, 배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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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조지 오웰의 소설이다. 깊고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진영이라고 해야할지, 사상 혹은 주의라고 해야할지 잘은 모르겠다. 다만 인간이 처한 환경에 정치적인 요소가 개입이 될 때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을 작품 안에서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들을 떠올렸던 것 같다.

작가의 여러 작품 중에서 아는 작품이라고는 동물농장과 카탈로니아 찬가 그리고 이번 1984가 전부이다. 그의 다른 저서를 접해보진 않았지만, 그가 지향하며 나아가고자 하는 글쓰기의 방향성에 대해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든다.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 이 짧은 문장 하나로 소설의 전체적인 뼈대를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개인의 사상과 개인의 철학과 존중받아야 할 개개인의 삶 그 위에 단단히 영원불변으로 존재하는 국가. 크고 강력하며 절대 무너지지 않는 권력의 힘 앞에 개개인의 저항은 너무나 무력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소설 1984가 표면적으로 절대 권력 앞에 쓰러지는 인간 존재를 그려내고 있는 게 분명하지만, 우리는 숨겨진 작가의 의도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작품 안에서 작가는 무력한 항거라 할지라도 지속적인 항거가 지니는 커다란 힘의 흐름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주인공 윈스턴과 관리자 오브라이언이 주고받는 대화에서도 윈스턴의 저항은 그만큼 끈질기고 강렬했다. 무너질 듯 무너질듯하면서도 다시 저항하는 그의 모습은 차라리 우매한 듯했으며 어리석기까지 할정도로 비춰질지라도 또 그렇게 강인한 모습이었음을 상기한다. 그가 마지막에 결국 무너졌던 것을 누가 비난 할 수 있을까. 모든 게 전체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에게는 가벼운 놀이에 지나지 않는 인간 본성의 무력화가 아니었을까싶다.

 


작가의 작품 1984가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던 까닭을 생각했었다. 당시 미래에 대한 예측과 전체주의 속에서 한없이 고개를 숙여야 하는 개인의 삶에 대한 작가적 혜안을 먼저 생각해야 할 일이다. 이에 깊이 공감하며 개인적 사견을 덧붙이자면 체제에 대한 작가 자신의 신념을 작품 안에서 소설적 장치와는 별도로 구체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명료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을 더 높이 사고 싶다는 말을 여기 이곳에 남긴다.

주인공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 만남. 그들의 책자. 저항의 대표격으로 인식되어온 임마누엘 골드스타인이 남겼다는 그 책자에서도 생각할 것들이 많았던 것을 기억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전쟁 상태에 어울리는 정신 상태를 가져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고 있든 아니든 그것은 실제로 아무 상관 없으며, 결정적인 승리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황이 좋고 나쁘고는 중요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전쟁 상태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당이 당원들에게 요구하는 지성의 분열은 전시 중에 더 쉽게 이루어지며 이제는 거의 보편화되었다-P246

 


-무능한 국가들은 항상 얼마 안 가 정복당하고 능력을 위한 투쟁은 환상과 대치하기 마련이다. 제다가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과거를 통해 배워야 하는데 그러려면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했다. 물론 신문과 역사책은 언제나 미화되거나 편견으로 가득 찼지만 오늘날과 같은 거짓 날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전쟁은 건전한 정신을 지키는 확실한 보호막이었고 지배층에게는 전쟁이 가장 중요한 안전장치였다-P251

 

 


소설에서 등장하는 세 나라는 끊임없이 전쟁을 한다. 아군이었다가도 적군으로 돌변해서 그들은 쉬지 않고 전쟁을 한다. 어느 나라와 싸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전쟁의 상황을 계속 유지해가는 게 더 중요한 관건이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있어 전쟁은 단순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치부된다. 사람들을 쉽게 관리하기 좋은 시기가 전쟁의 시기라는 이야기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무슨 논리에 의한 표현들일까. 처음에 분명 조급해했었다. 그러나 책을 완독하고 나서 비로소 알게 된 것 같다. 결국 그의 말들이 다 맞는 말이었다.

모든 의미는 그들(관리자들)의 입장에서 해석되는 것들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전쟁은 곧 평화라는 말이 맞는 말이다. 비슷한 의미로 국가와 조직에 예속됨으로써 비로소 안정적인 환경과 자유(상대적이며 주관적인)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수 있다는 것. 무지와 무관심으로 일관해야 그나마 남아있는 것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

 


작품 1984는 씁쓸한 이야기의 소설이다. 주인공 윈스턴이 그들 국가가 만들어낸 거짓으로 조작된 환경에 동화되는 듯했던 그 마지막 순간 관리자 그들의 결정은 뭐랄까, 느슨했던 생각의 고리를 바짝 조이는 트리거 기능을 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전체주의 사상의 국가는 국가가 원하는 것만을 쟁취할 뿐이라고 작가가 다시금 이야기하는 듯했다.

 


치열하면서도 작가의 집요한 열정이 느껴지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지구 어딘가에서 전체주의 혹은 사회주의가 공존하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깨어있는 지성이라는 표현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또 한편으로는 인간이 존엄한 인간 존재로 올곧게 살아가기 위한 스스로의 판단과 행동들. 개인과 집단구성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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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에 대해 우리가 잘 모르던 이야기
이종범 지음 / 아마존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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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에 대해 우리가 잘 모르던 이야기

 

어떻게 시작을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다. 책을 쓴 이는 사제는 아니었다.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연구하며 책을 쓰는 등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을 들여다보면 연구하는 학자의 모습에 더 가까워 보였다. 불쑥 그가 사제가 아니라는 사실에 두 가지 생각을 가져다 붙여본다. 한가지는 사제가 아닌 학자이기에 다행이라는 사실이다. 반면에 똑같은 이유로 혹여 정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가열찬? 종교관을 가진 그 누군가들과는 다소 불편한 대면식을 치르게 될 것을 염려했던 것도 사실이다.

 

무엇이 진실인지, 또 무엇이 거짓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세상에는 설도 많고 의혹도 난무하다. 특히 예수에 대한 의문들이 많은가도 싶다. 더불어 종교의 개인적 측면을 뛰어넘어 사회적 측면으로 확대시켜 볼 때도 기독교 전통의 의미와 가치와는 너무나 멀어져가고 있다는 저자의 경고에 동의한다. 그는 본연의 가치를 찾고 싶었던가 보다. 우리가 잘 몰랐던 비밀스러운 이야기. 책은 예수의 전설. 예수의 가족. 예수의 교회 3파트로 구성되었으며, 성경에 기초를 두고 각각의 성경을 가져와 비교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진실에 다가서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책의 전반적인 배경이 되는 종교는 기독교 중에서도 카톨릭이다. 종교개혁에 따른 개신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기독교의 근간을 이루는 카톨릭교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고 가자. 따라서 저자 이종범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성경 역시 카톨릭성경을 다룬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개신교에 익숙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저자가 제시하는 성경의 이름마저 낯선 것들이었음을 고백한다. <루카복음>이라든지 <마르코>와 같은 명칭에 무척이나 낯설었던 것 같다. 찾아보니 카톨릭에서의 루카복음은 개신교 성경에 누가복음, ‘마르코복음은 개신교의 마가복음으로 상용되는 것을 알았다.

더불어 <공관복음>이란 표현도 좀 알고 지나가자. 전문 지식이 없는 탓으로, 무지해 단어마다 뜻을 찾아보던 중 공관복음이 마태, 마가, 누가 복음서 전부를 포함해 부르는 명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정부분 책은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기에 중간중간 내용이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소란스러운 순간들로 채워지는 개인의 설교를 듣는 것보다는 훨씬 논리적인 동시에 설득력 있는 내용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들었던 의문과 많은 생각들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그동안 배웠던 것들. 알고 있었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란 것인가. 결국 종교는 인간에 의해 재창조된 것이며, 인간에 의해 신성시되고 그렇게 유지되어왔던 유산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라는 질문들???이 이어진다.

저자는 말한다. 기독교는 이미 죽은 종교이다, 라고 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은 종교에 몰두하기 바쁘다. 왜일까. 저자 김종범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인간은 본래 어쩔 수 없는 시간 앞에서는 신적 존재의 자비를 갈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

.-p168

 

-세계와 인간에 관한 기독교, 특히 기독교 교회는 더 이상 객관적 진리의 수호자가 될 수 없다. 이제 기독교는 겨우 개인적 신앙 체험으로 근근이 버티는 중이다. 결코 과학적으로, 곧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이 개인적 신앙 체험은 그 비과학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매력을 주고 있다. 결국 이간은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해야만 하는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p156

 

비슷한 말을 나는 어느 시인의 고백에서 본 적이 있다. 인간이 종교에 몰입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나약하기 때문이며 그것을 절대적으로 인정한 예라고 했던 k 시인의 기록이 생각난다. 정말인가. 지금의 종교는 더 이상 순수한 종교의 그것과는 영영 멀어져버린 것일까. 그저 개인의 신으로만 존재의 역할을 채워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본래의 예수가 원했던 종교의 모습은 신성시도 아니고, 타 종교에 대한 배척도 아니었으며, 믿음만을 강조하기보다는, ‘낮은 곳으로 향하는 배려와 사랑의 실천을 더 원했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현재 우리 곁에 있는 종교의 모습과 초대 기독교 교회가 염원하던 바람직한 종교인의 모습에 대해 다시 또 비교하게 되는 순간이다. 저자는 모든 변화와 부정적으로의 이미지 추락 등을 논할 때 자본주의를 언급하기도 했었다. 권력. 즉 돈과 명예, 개인의 욕심 등이 예수가 가장 처음 이야기하던 논지에서 모두를 멀어지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우울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질문해본다. 과연 우리는 회복할 수 있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유대교와 기독교의 이해충돌과 그 역사에 대해, 다시 배우고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개신교와 카톨릭의 이해관계? 라고 해야할지.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대하는 카톨릭 내부에서의 입장 변화와 여러 역사적 사실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해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논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종종 종교적인 관점으로 시작해 지극히 감정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마도 이런 내용들이 아니었을까. 그들이 논쟁하기 좋아하는 내용의 상당부분을 이번 책에서 다루며 언급하고 있는 바, 사심 없이 들여다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모두에게 객관적 시선을 새롭게 열어줄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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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에 대해 우리가 잘 모르던 이야기
이종범 지음 / 아마존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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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에 대해 우리가 잘 모르던 이야기

 


어떻게 시작을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다. 책을 쓴 이는 사제는 아니었다.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연구하며 책을 쓰는 등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을 들여다보면 연구하는 학자의 모습에 더 가까워 보였다. 불쑥 그가 사제가 아니라는 사실에 두 가지 생각을 가져다 붙여본다. 한가지는 사제가 아닌 학자이기에 다행이라는 사실이다. 반면에 똑같은 이유로 혹여 정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가열찬? 종교관을 가진 그 누군가들과는 다소 불편한 대면식을 치르게 될 것을 염려했던 것도 사실이다.

 


무엇이 진실인지, 또 무엇이 거짓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세상에는 설도 많고 의혹도 난무하다. 특히 예수에 대한 의문들이 많은가도 싶다. 더불어 종교의 개인적 측면을 뛰어넘어 사회적 측면으로 확대시켜 볼 때도 기독교 전통의 의미와 가치와는 너무나 멀어져가고 있다는 저자의 경고에 동의한다. 그는 본연의 가치를 찾고 싶었던가 보다. 우리가 잘 몰랐던 비밀스러운 이야기. 책은 예수의 전설. 예수의 가족. 예수의 교회 3파트로 구성되었으며, 성경에 기초를 두고 각각의 성경을 가져와 비교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진실에 다가서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책의 전반적인 배경이 되는 종교는 기독교 중에서도 카톨릭이다. 종교개혁에 따른 개신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기독교의 근간을 이루는 카톨릭교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고 가자. 따라서 저자 이종범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성경 역시 카톨릭성경을 다룬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개신교에 익숙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저자가 제시하는 성경의 이름마저 낯선 것들이었음을 고백한다. <루카복음>이라든지 <마르코>와 같은 명칭에 무척이나 낯설었던 것 같다. 찾아보니 카톨릭에서의 루카복음은 개신교 성경에 누가복음, ‘마르코복음은 개신교의 마가복음으로 상용되는 것을 알았다.

더불어 <공관복음>이란 표현도 좀 알고 지나가자. 전문 지식이 없는 탓으로, 무지해 단어마다 뜻을 찾아보던 중 공관복음이 마태, 마가, 누가 복음서 전부를 포함해 부르는 명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정부분 책은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기에 중간중간 내용이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소란스러운 순간들로 채워지는 개인의 설교를 듣는 것보다는 훨씬 논리적인 동시에 설득력 있는 내용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들었던 의문과 많은 생각들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그동안 배웠던 것들. 알고 있었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란 것인가. 결국 종교는 인간에 의해 재창조된 것이며, 인간에 의해 신성시되고 그렇게 유지되어왔던 유산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라는 질문들???이 이어진다.

저자는 말한다. 기독교는 이미 죽은 종교이다, 라고 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은 종교에 몰두하기 바쁘다. 왜일까. 저자 김종범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인간은 본래 어쩔 수 없는 시간 앞에서는 신적 존재의 자비를 갈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

.-p168

 


-세계와 인간에 관한 기독교, 특히 기독교 교회는 더 이상 객관적 진리의 수호자가 될 수 없다. 이제 기독교는 겨우 개인적 신앙 체험으로 근근이 버티는 중이다. 결코 과학적으로, 곧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이 개인적 신앙 체험은 그 비과학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매력을 주고 있다. 결국 이간은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해야만 하는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p156

 


비슷한 말을 나는 어느 시인의 고백에서 본 적이 있다. 인간이 종교에 몰입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나약하기 때문이며 그것을 절대적으로 인정한 예라고 했던 k 시인의 기록이 생각난다. 정말인가. 지금의 종교는 더 이상 순수한 종교의 그것과는 영영 멀어져버린 것일까. 그저 개인의 신으로만 존재의 역할을 채워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본래의 예수가 원했던 종교의 모습은 신성시도 아니고, 타 종교에 대한 배척도 아니었으며, 믿음만을 강조하기보다는, ‘낮은 곳으로 향하는 배려와 사랑의 실천을 더 원했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현재 우리 곁에 있는 종교의 모습과 초대 기독교 교회가 염원하던 바람직한 종교인의 모습에 대해 다시 또 비교하게 되는 순간이다. 저자는 모든 변화와 부정적으로의 이미지 추락 등을 논할 때 자본주의를 언급하기도 했었다. 권력. 즉 돈과 명예, 개인의 욕심 등이 예수가 가장 처음 이야기하던 논지에서 모두를 멀어지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우울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질문해본다. 과연 우리는 회복할 수 있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유대교와 기독교의 이해충돌과 그 역사에 대해, 다시 배우고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개신교와 카톨릭의 이해관계? 라고 해야할지.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대하는 카톨릭 내부에서의 입장 변화와 여러 역사적 사실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해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논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종종 종교적인 관점으로 시작해 지극히 감정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마도 이런 내용들이 아니었을까. 그들이 논쟁하기 좋아하는 내용의 상당부분을 이번 책에서 다루며 언급하고 있는 바, 사심 없이 들여다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모두에게 객관적 시선을 새롭게 열어줄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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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 그 높고 깊고 아득한
박범신 지음 / 파람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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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박범신의 산문집이다. 제목처럼 꽤 묵직한 내용이 담겼다. 어떤 느낌으로 책 가까이 다가가야 할지를 생각했던 것 같다. 나도 그처럼 순례자의 마음으로 겸허히 책장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

겉 표지에 제목과 함께 노란색 글씨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높고 깊고 아득한무엇이 그토록 높고 깊으며 아득하단 말인가. 높고, 깊고, 아득하다했는데 나는 모든 단어들이 다 무겁게 다가옴을 느낀다. 이 단어.. 이 수식의 무게감이라니.

 


작가는 곁에 있는 듯하다가 어느새 멀어지는 듯했다. 나는 그의 절필 선언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으로 남은 그는 나를 포함한 치기어린 학생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던 유명 작가였기에 영광이었으며, 더 없는 환영을 불러일으키던 바이칼 호수를 알려주던 그 작가였다. 바이칼이라니. 겨울에도 얼지 않는 호수라니...

 


다시 만난 작가가 반가웠다. 그는 긴 시간 동안 끊임없이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자신은 그의 여정이 스스로에게 괄목할 만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는 왜 길을 나서야만 했을까. 자신을 깨우쳐줄 신을 찾고자 떠났던 것일까. 아니 그 자신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기 위해 떠났던 것일까. 한걸음한걸음 내딛던 순례의 길 위에서 작가 박범신은 내면의 자아와 조우한다.

 


문득 떠남으로써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까. 여기에서 얻는다는 것은 결국 비워내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들이 이어진다.

히말라야의 고지대, 티베트의 맑은 영혼들, 산티아고 길 위의 떨어졌던 눈물. 후회와 인내와 실존의 대한 질문까지 조용히 끌어안고자 했던 이번 책은 작가의 고백서였다. 먼저 떠난 순례자의 뒤를 따르며 이어지는 무거웠던, 그러나 한없이 따뜻한 독백들이었음을 천천히 상기하게 된다.

상념과 상념 사이에는 질문들이 이어진다. 미련이라 정의하는 아쉬움들. 스스로의 의지와는 별개로 타인으로부터 감당해내야 했던 복잡한 감정들. 때때로 작가는 자신의 자책 속으로 분노와 억울함, 수만가지 언어와 말들 속에서 지쳐가는 나약해진 신념들과 마주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일이다.

누군가는 그것이 작가의 업보라는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목을 매달아도 좋을 나무, 라는 말을 주워섬기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목을 매달아도 좋을 나무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고통일 뿐이다. 모두가 이상이라는 말이다. 알면서도 알고 있으면서도 자의로 이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며 나를 지켜줄 든든한 나무를 헤아리곤 한다.

 


나는 누구이고 문학은 나의 무엇이란 말인가. 이상한 환멸로 폐기 처분한 내 안의 작가는 어느 길가에 버려져 있는가.


 

산티아고 먼 길이 저기, 나를 손짓해 부르고 있다.” p228

 


그는 아마도 이 여정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듯하다. 정신이 그리고 그 마음이 그를 먼저 이끌어갈 것만 같다. 그는 늘 그랬던 것처럼 배낭과 지팡이를 챙겨 대자연의 섭리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아를 만나 위로하며 또 위로하며 순례의 여정을 떠날 것만 같다.


 

그가 어느날 긴 여정에서 돌아와 다시 책으로 만나길 소망한다. 책 속에 사진 한 장이 기억에 남는다. 자줏빛 감도는 붉은 가사를 입은 티베트의 노스님과 함께 바닥에 앉아 함께 교감하며 웃던 그 모습이, 그 얼굴에 번지던 미소가, 마치 그가 힘겹게 내려놓음으로 인해 새로이 얻게 되는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기도 하다.

옴마니밧메훔!”

작가 박범신. 순수한 본성의 상태로 마음자리를 옮겨 그렇게 꾸준히 우리 곁에 머물러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도 떠오르지만 내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 또 내가 상처를 준 사람들도 생각납니다. 오해에 불과한 작은 일로 나를 버린 사람, 아집에 따른 어리석은 고집으로 내가 버린 소중한 사람들도 떠오릅니다. 회한은 많고, 갈 길은 멀고, 남은 사랑은 아직도 이렇듯 여일하게 뜨겁습니다-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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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이다. 사설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던 것이 있어 기록으로 남긴다. 책을 보는 동안 일본 작가 엔도 슈샤쿠의 소설 깊은 강에 나오는 양파라는 애칭을 가진 그 사내가 자꾸만 생각나더라. 묘하게 닮았다. 위로와 성찰의 이름으로 작가의 얼굴과 소설 속 인물의 그 얼굴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왠지 이상한 일이다.

손끝이 시리다. 날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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