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짓고 싶은 저녁 걷는사람 시인선 60
문신 지음 / 걷는사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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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짓고 싶은 저녁

 


시집이다. 오랜만에 시집을 본다. 아니 보았다. 시집을 읽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예전에도 그랬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무언가 조금은 달라진 것도 같다.

이십 대 시절의 나는 마치 살코기를 뜯어먹듯이 시를 분석해서 읽곤 했었다. 시인의 생각과 시인의 마음이 어떤 표현과 어떤 그림으로 작품에 녹아들었는지 알고자 했었다. 때때로 그 마음이 아리고 슬프면 슬퍼했고, 그저 조용하고 낙낙했으면 나도 그저 조용히 지나가곤 했다.

그런데 문득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이후에 시집을 다시 읽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중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공감이다. 눈으로 시를 읽으면서 풍경과 상황을 다시 머릿속에서 그려보는 것이 전부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중얼거리는 걸 보면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격이다. 뭐가 이렇게 어려운지.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자. 시를 읽고 난 생각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으로 해두자.

 


문신 시인의 시집을 읽다보면 많은 아릿한 감정들이 다가온다. 흐림. 쓰라림. . 안개. 그림자. 혹은 삶의 무게감. 추억. 풍경들. 섬세한 시선의 이동. 그리고 근심. 눈물.

어쩌면 이런 느낌의 감정들은 내 것이고, 나는 되려 시를 통해 나의 감정 몇 가지를 다시 찾아 불러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나는 지하철에서 한 사내가 울고 있는 모습을 봤었다. 대낮의 지하철은 한가했고 그래서 유독 그 사람이 눈에 띄었던가. 아니면 그 사내가 더 오래전에 내 은사와 외적으로 닮았기 때문일까. 사람들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이 지하철 의자에 반만 엉덩이를 걸친 채 굵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내어 울던 사내의 얼굴은 참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던 장면이다. (이 이야기를 참 많이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살아가는가도 싶다) 그로부터 또 몇 년 후쯤. 다른 장소에서 우연치 않게 그 사내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 그는 인도와 차도 사이에 있는 턱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때도 사내는 울고 있었다. 그 사람이 예전의 그 사람이라는 게 분명한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어쩌면 내가 아는 사람의 얼굴을 다시 그 사내의 얼굴에서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멀리서 본 사내의 분위기가 역시나 닮아있었던 것이 다였을 뿐이다

그런데 무엇이 또 내 눈을 잡아끌었던 것일까. 그 역시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일까.

 


언젠가 눈물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시인에게 있어 감정의 표현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는 것도 같다. 사람들은 글을 쓰는 이들이 감정 표현에 자연스럽다고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은 좀 다른 것 같기도 하단 말이다. 이를테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자연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온몸으로 심하게 앓고 난 후에 더딘 회복에 지쳐서 내뱉는 혼자만의 신음 같은 고백인지도 모른다. 감정 표현은 사실 쉬운 게 아니다. 그 중에서도 세상 모든 것들에 반응하는 이들의 눈물은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더란 말이다.

 


시인의 작품 중에 울음... 눈물에 대한 이야기가 있더라.

 


오늘, 다시 울기로 하자/어제까지의 울음은 곡()에 불과했다

어깨를 들썩이는 일이 없도록 하자/눈이 퉁퉁 붓도록/

혹은 콧등이 뭉개지도록 발악하는 일도/

악다구니도 그치고/한 시절이 떠들썩했더라는 후일담이 없도록/

울자,/횡설과 수설에 갇혀/부끄럽게 우는 울음은 울음이 아니다/

청승도 울분도 없도록/울되/

아침저녁으로 울음을 익히는/짐승들처럼/

우리도 때때로 배우고 다지는 울음을 울도록 하자/”

-다시 울기 중 일부 인용-p82


 

그가 말하길 맑고 찰랑거리는 울음을 울자-p82’고 하더라. 그러기에는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서인지 시인은 마른 갈댓잎이라도 질끈 악물어야 하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 면면 모든 것에 예민하고 여리고 아프게 반응하며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들이 세상 밖으로 승화해 만들어내는 것들이 보이는 것 같은 것은 그저 개인적인 생각이다. 여기에서 내가 너무 나아가면 오버 페이스가 되는 거다. 그러니 분위기를 좀 바꿔보자. 아니다. 틀렸다. 이렇게 말이 많아지는 건 시인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싶다.

 


그냥 시집을 읽다가 마음에 기억에 자리한 몇 편의 시를 간단히 적어놓고 가야 할 것 같다.

 


다시,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이다.//

저녁에 듣는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는/

착하게 살기에는 너무 피로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문득 하나씩의 빈 정류장이 되어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중간 생략)

시내버스 어딘가에서/,/울음이 터진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저녁이다//

이 버스가 막다른 곳에서 돌아 나오지 못해도 좋을 저녁이다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 일부 인용p20-

 


적어놓고 보니 또 울음 이야기가 됐다. 그렇다고 시집이 다 무겁지는 않다고 꼭 말을 해야할 것만 같은 상황이다. 소설가 이청준의 작 눈길을 연상케 했던 시 폭설 아침p39’ 혹은 어미가 밥을 안치는 저녁p41’과 같은 작품에 나름대로 좋을 호()자를 적어놓았다. 문득 나란 존재가 과연 삶을 관망하는 시선을 과연 논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갖게 했던 시 장설p61’을 마지막으로 언급하려한다.


 

잘못된 것이 잘되는 일보다 잘된 일이 잘못되는 경우의 수를 다 셈하기 전까지/

눈은 그치지 않을 것이고/

살아생전, 이라는 말처럼/

어떤 후회가 산등성이를 넘어 자욱하게 밀려들 것이다//

장설이라,/조촐한 밥상을 앞에 둔 성당 주임신부의 기도를 전해듣듯//

낮게, 더 낮게, 좀 더 낮게/엎드리는 일이 남았다//”

-장설의 일부 인용-p6162-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감이 느껴지는 장르인 것은 틀림없다. 깊은 우물과 같은 이미지라고 할 수 있을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게 부끄럽다고 했던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어쩌면 시를 너무 쉽게 읽어내는 일 자체도 부끄러운 것이 아닌가. 나도 같이 낮게 낮게 엎드려야 할 것 같은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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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2-05-31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글 너무 좋네요..

월천예진 2022-06-01 07:51   좋아요 0 | URL
가끔 시를 읽고 싶어지더군요. 나이만 먹어서 어른이 되는것도 아닌가보아요. ^^;;

han22598 2022-06-10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드뎌..알라딘이 월천예진님의 글을 발견했네요!! 축하드려요 ^^

월천예진 2022-06-10 12:28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갑자기 무슨 말씀인가 했습니다.. 덕분에 알게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괜히 부끄럽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