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다이어리북 366
김영수 지음 / 창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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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다이어리북 366

 


사마천의 이야기가 담긴 다이어리 북이다. 다이어리 북을 자주 접해보지 않아서 어떤 느낌일까 했더니 모나지 않게 차분한 느낌의 다이어리 북 자체로 깔끔해보인다. 검은색 표지가 종교적인 색채마저 자아내고 있는 듯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건 나만 그런건가. 잊고 있었던 성경책 생각이 자꾸 나는 건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다.

책은 아마도 1365일과 윤년까지 포함 366일을 계산한 듯하다. 각각의 날들마다 그를 기억하게 하는 글들을 싣고 있다.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다가가기 용이하게, 한글 번역과 한자 원본을 함께 기록하고 있는 형식이다. 그리고 하단부에는 그날 그날에 있었던 중국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른바 중국사의 오늘이 그것이다. 아 그리고 매달 첫 장에 중국사 그 달의 주요사건도 실었다. 책은 달력의 쓰임을 갖춘 형식과 동시에 중국 역사의 기본이 되는 지식을 간략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보면 좋을 듯하다. 물론 그 중심의 자리에 있는 것은 사마천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책의 후반부에 가면 기대하던 사마천과 그의 저서인 사기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사마천의 생애와 연보를 비롯해 사기가 갖는 가치를 생각해볼 수 있는 여러 글들이 뒤따라 온다,

사마천은 아버지인 사마담의 뒤를 이어 사관의 자리에 올라 왕을 보필했다. 사마천과 늘 함께 생각해볼 인물이 당대 왕의 자리에 있던 인물인 한 무제가 아닐까. 사마천에게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완성해야 할 목표가 있었고, 때때로 사리 분별이 명료하지 못했던 주군이 있었던 셈이다. 그는 잘 알려진대로 이릉 사건에 결부되어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이때 스스로 궁형을 선택하게 되면서 사관과 학자의 자리에서는 구차하게 목숨을 건졌으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떠안게 된다.

사마천이라는 인물에게 있어 구차함이란 무엇이었을까. 그는 미천한 신분의 사람들도 자결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은 까닭은, 반드시 쓰고 완결지어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자주 언급한다. 이는 스스로 삶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라도 끝끝내 붙잡고 있어야 할 그만의 강한 의지가 드러난 대목이 아니었을까.

 


천한 노복이나 하녀도 얼마든지 자결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저 같은 사람이 왜 자결하지 못했겠습니까? 고통을 견디고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한 채 더러운 치욕을 마다지 않는 까닭은 제 마음속에 다 드러내지 못한 그 무엇이 남아 있는데도 하잘 것 없이 세상에서 사라져 후세에 제 문장이 못 드러나면 어쩌나 한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p538

 


어쩌면 말이다. 쓰고 완결지어야 할 것이 있었더라도 다 필요 없다며 자포자기의 입장이었더라면 또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란 말이다. 그에게 있어 위축되고 비천해질 수밖에 없다고 느끼게 했던 이 구차함이라는 것은, 궁형과 함께 시작된 씻을 수 없는 그 만의 상처다. 그러나 그는 수치와 구차함을 가장 낮은 자리에 존재하게 해야만 했고, 가벼움의 가치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구차함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이 목숨이었고, 그 목숨이 이어가는 삶보다도 더 위에 놓아야 할 것이 바로 그가 완결지어낸 기록물이었으니 말이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생겨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글들을 읽어가다 보면 사만천이 지녔던 사상 내지는 정치적인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문장마다 드러나는 그의 사상이 애민’(哀愍)이었다고 생각한다. 불쌍하고 가엾게 여긴다는 뜻의 그 애민 말이다. 그는 약자의 편에서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선량한 이들(인민)을 위하고, 상대적으로 다른 축에 선 이들에게만큼은 끊임없이 비판과 풍자를 이어갔다.

 


[부군욕리즉대부욕리(夫君慾利則大夫慾利),

대부욕리즉서인욕리(大夫欲利則庶人欲利),

상하쟁리(上下爭利), 국즉위의(國則危疑).

-왕께서 이익을 바라면 대부들도 바라고, 백성도 바랄 것이 뻔합니다.

위아래가 서로 이익을 다투면 나라가 위태로워집니다.<위세가> - p110]

 


[불교이민종기화(不敎而民從其化), 근자시이효지(近者視而效之),

원자사면망이법지(遠者四面望而法之).

-가르치지 않아도 백성은 그 교화를 따르니 가까이 있는 사람은 그를 보고 본받고, 멀리 있는 사람은 사방에서 그를 보고 따른다. <대완열전>-p364]

 


군주에 대해서, 관리에 대해서, 백성에 대해서 혹은 옳은 정의와 윤리에 대해서, 백성을 다스리는 행위에 대해서, 인간관계와 처세에 대해서 등과 같이 사마천의 다양한 이야기를 접해볼 수 있는 다이어리 북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했던 그의 이야기가 무겁게 다가온다. 그는 그렇게 진중한 순간을 살아냈던 인물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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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10-13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익숙하지 않은데
항상 서양의 것들만 쫓아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조선셰프 서유구의 과자 이야기 2 : 당전과·포과편 임원경제지 전통음식 복원 및 현대화 시리즈 9
서유구 외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외 옮김 / 자연경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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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셰프 서유구의 과자 이야기 2

 

당전과. 포과편

 


문화란 정치와 사회를 포함하여 모든 삶의 모습들을 어우르는 듯하다. 여기 음식을 이야기하는 책에서도 우리는 또 하나의 정연한 문화를 만나게 된다. 오래되고 그윽한 옛것의 문화를 만날 수 있는 책. 조선셰프 서유구의 과자 이야기 2를 함께 만나보면 어떨까.

 


책은 서유구라는 학자가 남긴 임원경제지와 몇 권의 책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한국의 것과 더불어 당대 중국과 일본의 다양한 음식문화를 소개한다고 보면 좋겠다.

목차로는 당전과 부록인 <첨식>, 포과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대 편으로 나뉘어 각각의 독특한 음식에 대한 소개와 재료 준비 및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여느 요리를 다루는 다른 책보다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재료 하나하나 손질하는 방법과 조리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함에 있어, 임원경제지를 포함한 옛 원본에 한문으로 기재되어 있는 것을 한글로 풀어 쓴 노력으로 어렵게 다가오는 처음 느낌은 다소 줄어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재료의 소개와 준비과정에서도 만드는 방법을 다시 현대식 표기로 재차 정립해 기술하는 방식을 갖췄다.


책은 차분함을 지녔다. 처음부터 끝까지 요란하지 않은 분위기로 시선을 이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먼저 소개하는 것이 당전과이다. 우리말로 풀어보면 과일 설탕절임이다. 주재료가 설탕인 만큼 첨식부분에서는 주로 설탕을 이용한 요리들이 소개되고 있었다. 설탕의 시초가 되는 사탕수수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해 다양한 과일들이 등장한다. 때론 익숙하지 않은 재료들도 등장하곤 하지만 당황하지는 말자. 재료가 어떤 것인지 사진과 함께 설명이 덧붙여져 있으며, 고서에 등장하는 단위는 현대적 표기에 맞게 그람(g) 또는 미리리터(ml)의 개념으로 다시 친절하게 보여주니 말이다.

당전과 편에 등장하는 재료만 적어봐도 다양한 재료들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매실, 산사, 연씨살, 모과, 비자, 오미자, 메주콩, 메밀 등등 정말이지 많기도 하다.

 

당전과편이 설탕을 이용해 절이고 졸이며 숙성시키는 방법을 활용하는데 비해, ‘포과는 자연바람과 자연 햇빛에 말려 사용하는 조리과정이 우선적으로 선행되는 방식을 말한다. 여기에는 과포, 어포, 육포가 포함되는 듯했다. 흔히 생각하는 건조식품과는 뭐랄까 깊이감이 다른 음식들이 등장하는 것 역시 집중해서 몰입해봐야 할 이유라면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여유에 따라 말리고 건조한 음식을 다시 메밀짚이나 볏짚으로 싸서 재우는 과정 역시 인고의 과정이 아니었을까. 음식은 그렇게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인내가 함께 만들어낸 빛깔 고운 결과물이 아니었던가 싶다.

 

책 속에는 싱그러운 유자 사진과 함께 유자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실렸다. 차가운 계절이 올 때마다 여전히 애용하는 유자가 등장하니 더 반가운 기분이 드는 건 지극히 사소함을 담은 취향이다. 각설하고 유자의 순 기능이 스트레스와 피로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생기와 활력, 건강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통()하는 이야기인 듯도 하다.

 

포과편 후반부에서는 뒤로 갈수록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만들어보는 다식을 소개하기도 한다. 인간의 길흉화복에 따라 개개인의 염원을 담아 조각해낸 다식판에 대한 이야기도 약방의 감초처럼 읽어보면 재미가 있다.

 

마지막 장은 현대편 당전과와 포과의 활용에 대한 내용을 실었다. 전통 문화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는 표기인 쿠키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도 하고, 꿩 육골을 재료로 한 꿩엿을 새롭게 접해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다양한 음식들 중에 유채꽃 사탕이 시선을 끌기도 한다. 현대와 옛것의 조화로움을 만나볼 수 있다고 해야 할까. 재료와 조리과정도 나름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는 인상을 받는다. 생강과 편미, 산사를 이용한 에너지 사탕이라든지, ‘술지게미 피자는 현대적인 감각과 아이디어가 옛 전통음식 문화와 만나 이루어내는 새롭게 다가오는 문화를 보여주는 듯 신선했었다.



책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요리책이다. 그러나 결코 단순하게 다가오지 않는 그런 묵직한 책인 듯도 하다. 문화라 명명되었던 것이든, 명명되지 못한 그 어떤 것이든 오래된 것들이 품고 있는 것들은 각각의 무게를 담아내고 있다. 이 보이지 않는 무게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월의 묵직함과 그 무게를 지고 이고 살아낸 많은 이들의 시간이, 음식에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음을 생각한다. 그런 까닭으로 자못 진지하게 다가가야 할 것 같은 숙연함마저 드는지도 모른다.

추석이 지나고 가을이 곱게 익어가는 중이다. 따뜻한 차 한잔 앞에 두고 천천히 생각하며 들여다보고 싶은 책들이 많아지는 계절인가보다

 



ps. 이곳에 사진 올리기가 너무 어려워요. 크기도 좀 줄이고 하고 싶은데 사진 편집 기능을 제가 잘 몰라서.. 헤매다 포기했습니다. 아쉬워요..사진을 통해 분위기를 공유해보고 싶었는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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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의 방 이금이 청소년문학
이금이 지음 / 밤티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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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의 방

 


청소년 창작 문학 소설 물이다. 실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많이 접해보진 않았다. 내 집에 청소년이라 불리는 사춘기 아이들이 두 명이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무심했던 것일까. 책은 틈만 나면 서로 으르렁대는 남매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욕심에? 집어 들었던 것도 한 이유가 될 것 같지만, 딸아이와 함께 진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던 까닭이 더 큰 이유가 되어야 했다.

 

작품 속 주인공 소희는 열다섯이다. 우리집 사춘기 소녀도 열다섯이다. 어쩐지 동질감?을 마구 만들어봐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인가. 그런데 말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소희의 이야기는 뭐라고 할까. 조금 무겁게 시작되는 듯하다.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해 소희는 어려서부터 시골 달밭마을에서 할머니의 보살핌 안에서 유년시절을 보낸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작은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는 동안에도 편치 않은 환경이었지만 늘 의젓하고 속 깊은 아이로 성장한 소희였다.

그랬던 주인공에게 친 엄마의 등장은 복합적인 심리작용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사건으로 다가온다.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을 버리고 떠난 친 엄마가 소희를 찾아오고, 소희는 새로운 가정을 이뤄 살아가는 엄마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야기는 오랜기간 떨어져 있던 엄마와 소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겨나는 자잘한 사건과 극복의 과정을 보여주며 이어진다. 낯선 가족구성원간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충돌과 상처, 친엄마에 대한 불신, 새 친구들과의 관계 등이 소설의 주요 골격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 소설의 주된 요지는 ‘성장’이라는 모티브다.

 

책을 접하면서 들었던 생각들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작가의 현실감이 느껴지는 감각. 물방울이 통통 튀는 듯한 현실적인 감각이 좋았다는 말을 하고 싶은가보다. 당연히 아이들(청소년)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니, 이들이 쓰는 대화법이나 표현, 전체적인 문맥들 역시 이들다워야 한다는 게 맞는 말이다. 스마트 폰으로 문자를 주고받고, 길게 완벽한 문장이 아닌 축약된 표현과 그들만의 은어로 대화를 하는 모습들이 자주 등장한다. 세대가 변했으니 당연한 일이고, 어쨌든 문학은 시대에 맞게 변화된 새로운 문화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창이 아닌가 말이다.

 

그럼에도 오랜 시절과 현재와 달라지지 않은 몇 가지는 분명히 존재했다. 뭐랄까. 빈부의 차이, 사회에 익숙해져 있는 차별을 인식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 심리적으로는 자기방어적 기제, 충돌과 타협 같은 것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마지막으로 봤던 청소년 문고에서는 양말 공장이 등장했었다. 어려운 환경에 처했던 주인공이 초등학생 신분으로 양말 공장에 들어간다는 설정이었다. 80년대 중후반의 시기였으니 양말 공장이란 설정은 그 무렵의 기준에서도 역시나 조금은 옛날 분위기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어쨌든 그 소설에서 아직도 내가 기억하는 문장은 단 하나의 문장이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에 인색해하지 마!”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자신의 환경에 좌절하지 말고 극복해 앞으로 나아가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던 그 이야기는 말이다. 어쩐지 몇 십 년이 지난 요즘 청소년 소설과 비교해도 여러 면에서 닮은 구석이 많이 보이기도 하더란 말이다.

 

 

딸아이와 주고받았던 말들이 생각난다. 내용이야 어쨌든 결말이 해피엔딩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했었다. 그랬더니 들려오는 대답이 간당하고 명료하다. 언제나 그렇다는 것이다. 청소년 소설의 줄거리는 비슷비슷한데, 어려운 환경을 딛고 극복하며 결국은 좋은 마무리로 결말이 지어진다는 게 딸이 해준 청소년 소설의 주요 골자였다. 이미 닳고 닳은 독자의 대답이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머쓱해져 그냥 웃기만 하고 있는 내게, 아이가 하는 말은 ‘원래 그래’ 였다. 그리고 자신이 읽었던 소설 세 권을 엄마가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정주행을 해야 한단다. 정주행이 뭐냐고 물었더니 한번 시작하면 쉬지 않고 보는 거라는 말을 해준다. 네이버 사전에도 나와 있는 ‘정주행’ 이라는 단어를 어렴풋하게 의미는 알고 있었지만 정말 사전에 나와 있을 줄은 몰랐다.

나이가 들수록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드는 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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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9-17 0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딸이 추천해주는 소설 세권은 먼가요? 저는 청소년 소설 좋아하거든요 ㅎ
 
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 지음, 이수영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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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카타의 세 사람


 

-누가 완벽할 수 있을까.

 


작가의 이름이 무척이나 생경스럽다. 메가 마줌다르. 작가의 이름이다. 그의 독특한 이름에서 느껴지듯 인도 출신 미국작가라는 소개가 눈길을 끈다. 사실은 이렇다. 인도 출신의 미국작가여서라기 보다는 이 작품이 그의 첫 처녀작이라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는지도 모른다.

번역의 과정을 거친 문장이지만 늘어짐 없이 단백하다. 애초의 이 작가의 글이 어떤 색일지, 어떤 성격의 그림들을 실어 왔을지 느낌이 온다. 그는 아마도 가늘고 긴 것보다는 굵고 짧은 문체와 더불어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그 어떤 것들을 좋아할 것만 같다.

 


메가 마줌다르. 그가 내놓은 첫 번째 작품은 ‘콜카타의 세 사람’이다. 작품은 뭐랄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다. 소설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어떤 정의로움과 이와 대조적으로 세상에 이미 만연해져있는 부조리에 대해 다시 집요하게 붙들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야속한 순간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세 사람의 이야기부터 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내 잡다한 생각들을 먼저 풀어내는 게 좋을까. 고민이 이어진다.

 


세 사람은 한 명씩 독립된 주인공인 동시에 서로 연결고리로 이어진다. 어려운 집안 환경으로 학교를 다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취업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어린 여학생 지반, 이 학생을 눈여겨보며 살폈던 체육 선생, 그리고 지반에게서 영어를 배웠던 트랜스 여성(히즈라) 러블리가 바로 세 사람으로 등장한다. 사건은 기차역 폭발 사건으로 인해 지반이 범인으로 몰리며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면서 이어진다.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각각의 인물들은 상징성을 내포한다. 특히 체육 선생의 존재감은 이 세 명의 주인공 중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특별한 것 없이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체육 과목의 선생님일 뿐이다. 그랬던 그가 정치와 정당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그의 삶에서 정체성의 혼란과 변화가 오기 시작한다. 이 인물은 이를 개혁과 점진적 발전이라고 생각했었을까. 그러나 사실 체육선생은 대중의 군중심리와 정치적 술수에 빠져 이용당하는 인물로 비춰진다. 정의를 위해서 거짓 증언을 하고, 아무 죄 없는 사람을 그저 정황만으로 감옥에 보내기 위해 가짜 증인으로 나서기를 반복하는 그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불안해 보인다.

 


러블리는 어떨까. 러블리는 남자이지만 여자의 삶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사회적 편견과 멸시를 극복해가며, 자신만의 꿈꾸는 삶도 가치가 있다는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녀는(그는) 배우의 꿈을 품고 연기 수업을 받는다. 언젠가 화려한 무대 위에 서게 될 것을 고대하며 이상을 갖고 사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불운한 주인공 지반은 어떤가. 정부에 의해 사는 집에서 쫒겨나고 열악한 환경에 아버지는 몸을 다쳐 더 이상 경제적 도움을 줄 입장이 되지 못한다. 야밤에 물건을 떼어와 파는 어머니와 아픈 아버지를 보면서 학교를 그만둘 결심을 하게 되는 지반은 사회적 경제적 약자의 대표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묘하게도 나는 성경의 한두 장면을 연상했었다.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힌 지반을 위해 러블리와 체육선생의 첫 번째 선택은 비교적 옳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적 편견과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자신의 신념을 져버리고 정의를 외면하게 된다. 대중의 심리적 압력과 정치적 입지에 따른 거대한 압박이 개개인의 신념을 너무나 가볍게 흔들어버린다는 의미가 담긴 이 작품에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성경 속 인물 베드로와 예수에게 사형을 언도한 빌라도를 떠올린다.


 

-당신은 예수라 불리는 사람과 함께 있던 사람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나는 그를 모릅니다.

 베드로는 세 번 예수를 부인했다.

 


사람들이 러블리에게 훌륭한 배우가 되려면 테러리스트와의 관계를 정의롭게? 옳게?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을 때와 체육 선생에게 자신의 제자였으니까 더 잘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라며 압력을 넣었던 순간, 사실 이들에게는 베드로가 질문을 받았을 때처럼 약간의 흔들림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이들의 두 번째 선택은 군중심리가 바라는 대로, 혹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완전히 바뀌게 된다.

특히 체육선생이 윗선의 압력에 결국 자신의 신념과 정의를 포기하고 맹목적인 추종자로서의 삶만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은,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하며 대중이 원했던 결과대로 일을 처리했을 뿐이라는 ‘자기 합리화’의 모순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불어 동시에 유대인들과 빌라도가 주고받았던 이야기가 생각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는 위선의 ‘거대 완장’을 차고 철저하게 거듭나려는 욕망에 빠져간다. 러블리 역시 찬사와 명예, 그리고 인기를 얻고 싶어하는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물론 주변 인물로 등장하는 지반의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결국 희생자는 지반이다. 지반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사회가 만들어낸 부조리의 결과이고, 정치적 입지에 의해 달리 해석되는 낡은 결과물이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은 더 현실적인 동시에 비판적이지만 사뭇 애잔함을 몰고 온다.

 


우리가 꿈꾸는 모든 것은 결국 허상일까. 우리는 불의 앞에서 매번 용감해질 수 있을까. 선택의 문제는 늘 어렵고 그 결과물은 참담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딴은 누가 과연 러블리와 체육선생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 어디에도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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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9-17 0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수님은 베드로가 배신하게 될지를 알고 계셨잖아요...물론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예수를 부인하지 않은 제자들도 있었지만,예수님은 어쩌면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이 베드로 같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으실가요? 저는 물론 정의를 위해서 목숨까지 희생하며 신념을 지키는 사람들도 위대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인간은 그 자체로 괜찮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비록 실수 하고 배반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존재이고..그렇게 예수는 인간을 수용하고 받아들여주신 분이셨던 것 같아요.

월천예진님은 어떻게 책 고르시나요? 이런 책을 어떻게 선택하시나요? 그리고 리뷰도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시고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리뷰입니다. ㅎㅎㅎ

월천예진 2021-09-23 23:47   좋아요 0 | URL
한국은 막 추석연휴가 끝났습니다. 아줌마이고 며느리이고 엄마의 신분이다보니 명절은 늘 분주하네요. 댓글이 너무 늦었습니다. ㅡ.ㅡ
올려주신 내용을 보다보니 저도 생각이 많아지네요. ^^♡ 저 역시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지요.♡♡♡
인간은 그 자체로도 괜찮을 수 있다는 말씀에 갑자기 조르바가 생각이 나네요. 그리스인 조르바~~ 그 사람은 정말 그냥 그 존재 자체로도 괜찮은 사람인듯 해요.

저는 생각할 거리?가 있는 책을 고르려하는데 때론 무심하게 읽고 싶어 다른 유형에 빠지기도 하지요. 그냥 읽어요. ㅎㅎ


월천예진 2021-09-23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신 곳은 어떠신지. 이제 자연의 위협은 좀 사그라졌을까요? 이곳은 갈수록 하늘이 높아져가는 중입니다. 가을이네요. ~~~♡
 
하피스, 잔혹한 소녀들
에이버리 비숍 지음, 김나연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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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피스, 잔혹한 소녀들

-괴물은 만들어진다?

 

 


폭력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다. 그 말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들은 뭐랄까 잔혹한 소녀들이라는 제목과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이 소녀들의 잔혹성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지만, 어찌보면 이러한 아이들을 키워온 이 사회가 더 잔혹한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밀곤 했던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폭력은 어떤 경위를 통해서든 모델링의 과정을 통해 대물림? 되며, 이를 정화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은 늘 한켠에서만 강조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건 지나친 자괴감일까.

 


이러한 폭력성을 동물사회학 안에서 인간의 폭력으로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차피 인간 역시 동물이니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더 보태어 생각해볼 요소는 인간은 뭐랄까, 다른 기타의 동물보다도 집단의 사회회가 가장 잘 구성되어 현재까지 이어져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현대 사회에 들어서 이 집단적 사회에 반기를 드는 이론과 요소들이 더욱 늘어나며 강조되고 있다는 점을 외면해서도 안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집단폭력은 이를 통용시하는 사회적 또는 집단적 인식이 가지고 온 불온한 선택이었으며 행동의 결과라고 보았던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자잘한 이야기를 차치하고서라도 작품에서 등장하는 폭력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것들이라는 현실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야기는 주인공 에밀리가 어머니를 통해 중학교 동창생의 자살 소식을 접하면서부터 시작된다. 하피스(여자의 머리와 몸에 새의 날개와 발을 가진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괴물’-옮긴이P36)는 그녀와 친구들이 함께 했던 무리의 명칭? 이었다. 두려움과 잔인함을 상징하는 의미의 하피스처럼 그녀들의 선택은 갈수록 폭력성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무리의 우두머리 격인 매캔지, 그리고 에밀리와는 초등학생부터 친구였던 엘리스, 올리비아와 코트니, 데스트니와 주인공 에밀리 그리고 전학 온 그레이스가 하피스의 멤버였다.

 


소설은 이들 하피스 무리가 그레이스에게 가했던 폭력으로 인해 14년이 흐른 어느 시점에서 그레이스로부터 보복을 받게 된다는 설정으로 이어진다. (물론 독자들이 기대하는 반전은 후반부에 등장한다) 인적 없는 어두운 숲에서 벌어진 폭력으로 인해, 그 순간부터 피해자였던 그레이스의 시간과 운명은 달라졌던 것일까. 잠깐이긴 하지만 이번 작품은 폭력의 가해자와 더불어 피해자의 경계는 무엇인지. 아이러니하게도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처럼 양극단으로 치닫는 명제를 나누는 ‘명료한 기준’은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하게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이 기준은 과연 불변하는 것일까. 라는 것 말이다.


 

서두에 나는 그런 말을 적어두었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 고 말이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과거에 본인들이 행했던 폭력을 깊이 뉘우치고 반성한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곤 한다. 사실 이런 설정이 좀 거북했던 것도 사실이다.

보통의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의 비해 문제적 인식이 크지 않다는 점. 폭력으로 생각하지 않고 단지 장난 혹은 실수라고 치부하고 외면하고 돌아서는 경향이 크다는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작품의 내용과 미묘하게 오버랩되었는지도 모른다. 작품에 너무 깊이 몰입했던 것일까. 어쨌든 모든 것은 작가의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이며 소설 속 개연성이겠지만, 지금 어디에선가 비슷한 사건사고가 벌어지고 있을 것만 같은 씁쓸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엘리스의 마지막 행동과 동기부여는, 탄탄하게 짜여진 구성과 달리 조금 어색했던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적어본다. 어쩌면 작가가 그레이스라는 인물을 더 부각시키기 위해 엘리스라는 인물로하여금, 작품 구성면에서 약간의 허점이 드러나는 희생?을 치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부분은 작가의 몫이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라고 생각하는 걸로 만족하고 즐기면 될 일이 아닌가.

 


이제 마지막으로 ‘괴물’은 만들어진다는 것에 한 표를 던지며 잡다한 생각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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