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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기억, 지도 - KBS 특집 다큐멘터리 지도에 새겨진 2,000년 문명의 기억을 따라가다
KBS <문명의 기억, 지도> 제작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마흔 아홉번째 서평
문명의 기억. 지도
지도를 통해 바라보는 세계사
책 한권 오롯하게 지도 이야기가 가득찼다.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다시 책으로 만나는 기회다. 책은 다양하고 값진 사진들을 함께 싣고 있어,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감흥을 책에서도 충분하게 보태고 있다. 비록 나레이션이 잔잔하게 읊어주는 청각적 자극이야 아쉬운 부분으로 남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책은 꼼꼼하고 상세하게 저술하고 있다
지도를 통해 세계를 접해볼 수 있을까. 세계를 만나러 가는 통로가 바로 지도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세계사는 좋아했지만, 세계지리는 좋아하지 않았었던가 보다. 이 무슨 이율배반적 사고인지는 모르겠지만, 세계지리가 총괄적으로 세계사에 속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도에는 유난히 약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지도에 대한 책을 읽고 있으려니 자연적으로 책상 위에 지구본이 자주 그 얼굴을 보여준다. 책에서 말하는 <말라카 해협>은 어디쯤인지, 삐딱하게 선 지구본을 이리저리 굴려보며 자잘한 글씨 속에서 해협이란 글씨를 찾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들었던 생각은 이런 것들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세계사에 맞게 변화해가는 새로운 지도의 필요성이 아니었을까. 20세기 이후 독립을 해오고 있으며 지금도 진행 중인 신생국가와 그들이 오롯하게 지켜낸 땅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세계지도를 바라보는 관점도 역시 수정과 변화를 감당해가며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라는 혼자만의 속절없는 생각들이다.
이쯤에서 각설하고. 이번 문명의 기억, 지도는 ‘지도’라는 하나의 매개체를 통해 들여다본 세계사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고대부터 시작된 지도 만들기와 읽기, 중세를 거쳐 정해진 세계사의 흐름에 따라 지도는 발전이란 것의 경험을 누렸다. 늘 조금씩 보태졌으며, 수정되었고, 때로는 그대로 필사되었으며, 그것으로 인해 새로운 문명의 힘을 전파했다.
이를테면 과거에 지도가 지녔던 의미는 생존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인류가 발전함과 동시에 지도의 의미는 문화의 전파, 내지는 정복이란 야욕의 긴밀한 수단으로 차용되기도 했다는 말이 된다.
책은 <달의 산, 프톨레마이오스, 프레스터 존, 지도 전쟁>이라는 타이틀로 각 시기별로 지도의 특성과, 지도가 지니는 의미와 영향력, 주변국 혹은 그 너머의 대륙을 가로지르는 지도상의 표시된 땅들 사이에서 갖가지 진귀하고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 보여주고 있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시작으로 계속 영향을 주고 받았던 다양한 지도를 찾아 긴 여정을 떠났던 사람들은 스페인과 이집트, 터키 등으로 지도와 관계된 지역을 두루두루 살펴사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한 지역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를 중심으로 동으로 서로 역사적 흐름의 추이를 따르기 때문에 이야기는 재차 반복되기도 하고 그 중간에 백여 년 이라는 시간의 공백까지 보태진 까닭에 책은 지도와 나라 그리고 오래된 역사라는 다양한 측면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셈이다.
실제로 <프레스터 존>에 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하는데,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고 읽는다면 혼란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1246년 에 등장하는 <프레스터 존>의 이야기는 주로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와 중국에 관한 이야기지만, 1439년에 등장하는 <프레스터 존>의 이야기는 중국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포르투갈과 에티오피아를 거론하고 있다. 같은 프레스터 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년도의 차이에 따라 또는 프레스터 존의 존재를 갈망하는 제국의 다양성과 특성에 따라 그 이야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독자는 혼돈 없이 잘 읽어내기를. 문제는 증명되지 못한 <프레스터 존>에 대한 환상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도 이야기가 이렇게 다양할 줄이야. 이렇게까지 역사가 깊을 줄이야. 어느 한 분야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가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하나를 알게 되는 순간은 다시 새로운 지식의 시발점이 된다. 꼬리에 꼬리는 무는 호기심과 무한한 자극을 채워주는 순간이 바로 지금 현실이 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었지만 마지막 순간만큼은 넘쳐나는 인식 속에서 과학적 내지는 인류학적 지식에 휘둘려 잠시 혼란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세계사는 어느 것 하나가 동떨어져진 게 아니라는 생각에서 세계지도 역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어떤 지도가 더 잘 만들어졌다, 더 의미가 크다, 는 식으로 비교 분석에만 국한할 것은 아닌 듯싶다.
지도와 더불어 끊임없이 고군분투하며 살아낸 인류의 보편적인 존엄과 그들이 이어온 문명에 대한 가치가 중요하지 않은가. 아무렇지도 않은 평이한 오늘 하루도 문명이라는 거대한 이름하에 여전히 이 ‘문명의 힘’은 이어진다. 문명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