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서 만나자
신소윤.유홍준.황주리 지음 / 덕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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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서 만나자

 


이틀 전에 눈이 내렸다. 그렇다고해서 하늘에 계신 어느 분의 후한 인심은 아니었다. 그냥 단지 이제 겨울이 왔다는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라라는 짧은 메시지 같은 것이었다고 할까. 그로 인해 남한산성에 있는 구멍가게? 는 못 가게 되었다. 운전하기 귀찮아하는 그에게는 좋은 일이었지만, 저렴한 가격에 옛날 빵 맛을 그리워하는 내게는 아쉬운 날이었나보다.

 


아쉬움. 아쉬움이라 적고 그 안에 그리움을 더한다는 표현을 생각한다. 책은 인사동에 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듬뿍 고인 이야기들이 실렸다. 우리들이 기억하고 있는 인사동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대들이 기억하는, 그렇게 또 기억하고 싶은 인사동의 모습은 어떤 색채의 것이었는지.

 


책은 인사동에 관련한 저마다의 추억 보따리를 풀어낸다. 그중에는 치과 원장 혹은 구청장의 자리나 화랑 대표의 자리에 서 있었던 이들도 있지만, 예술가들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라고 보면 좋겠다. 시인, 화가, 수필가, 민화 작가, 연극배우, 섬유공예가 등등 다양한 자리에서 그들 모두는 각자 자신의 기억을 소중하게 소환하고 있었다.

 


그들이 기억하는 순간들, 기억하는 공간들은 서로 달랐으나 어찌보면 또 같기도 했다. 비록 그들 모두가 한순간 같은 공간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각자가 기억하는 시간에 뜨겁게 기꺼이 그곳에 함께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함께 뜨거울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부러운 일이다.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천상병 시인과 관련한 일화들과 귀천. 아마도 귀천은 그 시절 문화예술인의 아지트 같은 역할을 해왔던 모양이다.

 


이들이 공감하는 인사동의 옛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그 인사동의 모습과 닮아있는 것일까. 내가 느꼈던 아쉬움의 얼룩들을 책 속에 이야기꾼들의 이야기에서도 언뜻언뜻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묘한 동질감과 함께 씁쓸함을 가져오는 순간이다.

 


언제부터인지 인사동은 멀게만 느껴지는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다녀온 지 십 년은 족히 넘은 듯한데. 마지막에 받았던 인상은 낯선 분주함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내 기억 속에 자리하는 인사동의 첫 시작은 중학교 1년에 가람이라는 호를 쓰시는 멋진 미술 선생님으로부터 시작된다. 인사동에 가면 제대로 된 화선지와 붓을 구매할 수 있다는 말로 어린 여학생들 가슴에 바람을 불어놓으신 그 잘생긴? 선생님 덕분에, 인사동에 가면 제일 먼저 화선지를 파는 곳부터 눈에 들어오던 시절들이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인사동의 멋을 알게 된 시기는 대학시절이었다.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귀천이라는 카페는 처음에 한곳이었는데 어느 해였는지 2곳으로 확장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내 기억에 귀천은 사람들로 늘 북적였고, 조금 어두웠던 것 같기도 했다. 더 자주 찾아갔을 법하지만 사람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더 작은 규모의 조금 더 조명이 밝은 곳을 선호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둠이 내린 인사동 뒷골목 어느 음식점 다락방에서 처음 보는 한치회를 사주시던 교수님 생각이 먼 시간을 뚫고 불쑥 달려든다. 어쩌면 내 기억과 추억조차도 과거의 어느 시간 어느 곳에서 인사동에 있었던 이들과 함께 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허물어가는 담벼락에 붙어있던 너저분한 광고전단조차 가로등 불빛에 멋진 예술작품으로 승화되어 보이던 그 시절, 내가 간직해왔던 인사동의 민낯은 얼마나 따뜻하고 소박했는지 모른다. 이제는 번화함과 화려함으로 지워진 인사동만의 순박한 가치가 아닐까.

 


큰길 거리 양쪽으로 들어선 세련된 건물 보다는 구석구석 좁은 골목길 사이에 숨어있는 귀한 공간을 찾아가는 일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함께 실린 많은 사진들을 참고해서 직접 발품을 팔아 찾아가도 즐거운 일이겠다. 음식점, 화랑, 공방, 카페 등등 소소하지만 귀한 안내 자료들이 함께 실렸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인사동 이야기다. 각자의 추억 속에서 인사동을 그리워하는 이들, 혹은 새로운 인사동을 만나보길 원하는 이들 모두에게 잠깐이라고 좋은 시간을 할애해줄 만한 책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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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나사의 회전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6
헨리 제임스 지음, 민지현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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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회전


 

헨리 제임스의 소설이다. 책날개에 그의 흑백 사진이 실렸다. 기분 탓일까. 살짝 옆으로 고개를 기울인 듯한 그의 표정에서 뭔지 모를 우수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소개하는 글에서 19세기 리얼리즘 소설의 대가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소설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는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쓰인 작품이라고 알고 있는데 어쩐지 아이러니한 것 같기도 하다. 리얼리즘과 의식의 흐름? 기법이 갖는 관계가 과연 어떻게 형상화될 수 있었을까.

 


첫 번째 질문은 리얼리즘과 의식의 흐름의 어떤 조화로움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을 던져보자. 책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물고 늘어져야 했던 질문은 바로 제목의 상징성이었다. 왜 작가는 제목을 나사의 회전이라고 했던 것일까.

 


출판사 미래와 사람에서 새로운 기획으로 출간된 이번 책은, 난해한 해석에서 벗어나 독자의 이해도를 높이려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같은 작품의 기존 번역물을 만나보지 못한 까닭에 차이점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이 한계이긴 한데, 사실 이번 책만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는 그다지 난해하다는 인상을 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말이다. 한가지 아쉬움이 남는 게 있다. 작품에 대한 해설이 빠졌다는 점이다.

작품 해설은 관점에 따라 장단점을 지닌다. 그러나 작품 나사의 회전이 지니는 상징성 혹은 열린 결말? 과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해설에서 여러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말이다. 이 또한 지나친 욕심인가?


 

이쯤에서 작품의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왜 사람들은 공포 이야기를 즐기는 걸까. 유령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는 않으나 때때로 그런 부류들이 자아내는 공포심에서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간 한계의 한 자락을 엿보는 듯한 이런 분위기는 동서양 어디에서나 만연한 듯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번 소설 역시 비슷하게 시작된다. 무리의 남녀가 있었고, 이들은 서로 공포 이야기를 하며 흥분과 소란함을 즐긴다. 누구 이야기가 더 무서운가. 마치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승자, 라는 놀이를 즐기는 듯하다.

 


그리고 여기에 회심의 일격을 가할 것 같은 사람 더글라스가 등장한다. 그는 비밀스럽게 전해졌다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시골 목사의 딸이었던 어느 가정교사의 경험담으로, 그녀가 본 유령과 이들 불온한 존재들과 교감하는 어린아이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작품에서 가장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무엇보다도 인물들의 심리묘사라고 생각한다. 시점이 가정교사의 일인칭 시점으로 변형되어 진행되는데, 자신의 심리와 주변인들의 심리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내면의 깊이 있는 불안감과 의구심에 대한 묘사들은 작품 전체를 안정적으로 받쳐주고 있어 보였다. 어쩌면 이러한 요소들이 이번 헨리 제임스의 소설을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명명하게 된 까닭일지도 모를 일이다.


 

유령의 존재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다. 하물며 유령과 대면해야 하는 대상이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라고 할 때, 이를 접하게 되는 우리의 상상력은 또 얼마나 암울해지게 될까.

소설에 등장하는 중심인물인 가정교사의 심리변화는 다소 기복이 심해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아이들을 지켜내야만 한다는 책임감과 함께, 불온한 존재와의 경쟁 혹은 정신적 싸움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막중한 과제를 떠안은 인물로 그려진다. 그로 인해 때때로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대조적으로 묘하게 강해지는 아이들의 이미지를 발견한다는 점이다.

 


유령과 아이들, 그리고 여선생과 그녀의 조력자인 그로스 부인의 이야기 결말은 어떻게 될까. 이건 내가 처음으로 내보는 퀴즈다. 이 유령 출몰 이야기의 끝은 과연 어떻게 끝나게 될까?

열린 결말이라고도 했으나,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번 결말은 다소 허무함을 남기는 듯하다. 무언가 생동감이 담긴 열린 결말은 아닌 듯싶다. 아니, 아니다.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될 것만 같다. 책을 읽을 미래의 독자가 내릴 몫으로 남겨둬야 할 것 같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 무슨 이유에서인지, 생각에 생각을 더하게 되는 문장을 기록으로 남겨본다.


 

[내가 하려는 가혹한 일이 평범하거나 달갑지 않은 방향으로 아이를 압박하는 일이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며, 보편적인 인간의 도덕성을 한 번 더 조이는 정도일 뿐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p194


 

[그렇게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난 아이가 우수한 지능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도움을 마다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자신을 구제하는 데 쓰이지 않는다면 영리한 사고력을 타고 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러니 나는 낚싯대를 드리우듯 그의 인성에 팔을 뻗어 그의 마음에 도달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p195

 


어쩌면, 인용한 문구에서 제목의 상징성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도 같지만 혼자만의 생각이니 부끄러움 뒤로 보내야 할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사설이다. 밤에 책을 읽을 때 조금 두려웠던 것 같다. 그동안 봐왔던 공포영화, 유령 관련 영화들이 줄줄이 기억 속에서 떠오르기도 했었다. 백주에 등장하는 유령이라니. 환한 낮에 등장하는 유령조차도 이렇게 무서울 수가 있겠구나 싶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걸 두고 밀당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일까? 생각했던 것도 같다. 유령과의 밀고 당김?

각설하고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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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파수꾼

[책장파먹기 9-9]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다한동안 그의 작품을 읽지 않으려 했고 사실 또 외면했던 것도 사실이었다왜 그래야만 했을까생각해보면 그리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그냥 혼자 가지고 있었던 근거 없는 잡념이 그 발단이었고뒤를 이어 작동했던 고집과 아집이 뒤를 따라 생겨났던 까닭에서였다.

뭔가 색다른 글을 읽고 싶었던 욕심이 앞섰던 것 같기도 하다히가시노 게이고의 글 중에서 뭔가 기존에 써왔던 것과는 다른 글들을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물론 이런 욕심은 개인의 욕망에서부터 나온 사심이겠지만따지고 보면 알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그의 글 중에서는 이따금 정말이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스토리와 구성으로 중무장해 내 편으로 와락 달려드는 순간들을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옮긴이의 말 중에서 소설이 몇몇 나라에서 동시에 출간했던 작품이라는 소개가 있었다동시 출간이 의미하고 있는 것을 생각했던 것 같다작품에 대한 작가의 자신감과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첩보 영화를 찍듯 비밀리에 원고 텍스트를 받아 번역 작업을 했다는 역자 양윤옥의 후기도 시선을 끈다어쩐지 묘하다이 또한 작가의 의도였을까번역을 거치는 그 과정마저 작품의 이미지에 맞게 비밀스럽고 신비로워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가벼운 상념이 떠오른다.


 

주인공 레이토는 자신의 어머니와 이복 자매의 관계에 있던 치후네라는 여성을 만나게 된다출신에 대한 비애와 자신의 삶에 모습에 품었던 자격지과 어떤 단단한 의지 없이 살아가던 레이토에게어느날 갑자기 치후네라는 나이든 여성이 나타나 손을 내밀어주는 스토리가 표면적인 이야기이다그리고 레이토가 치후네의 제안으로 야나기사와 가에 전해오는 녹나무의 파수꾼으로 일하게 되면서작가는 한 집안이 오래도록 지켜낸 거대한 녹나무의 전설을 독자에게 서서히 보여준다.

 


소설을 읽으면서 종종 한 나무를 연상했던 것 같다양평 용문사에 있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내가 아는 가장 오래된 나무가 용문사에 있는 은행나무 하나뿐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천년을 살아낸 은행나무를 생각하다 소설 속 녹나무를 그려보며 동시에 생각하기를 정말 소설에 등장하는 녹나무와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혼자 생각에 잠겨있었던 것 같다.

실은 길고 긴 세월을 살아낸 은행나무를 볼 때마다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면 이상하게 보이려나 싶기도 하다.

웅장한 모습과 흐드러지게 핀 노란 은행잎의 멋진 모습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직접 가보면 은행나무 주변에도 그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염원을 담아 쪽지를 매달아 놓은 것을 볼 수 있다생각해보면 소중함을 간직하고 싶고무언가를 바라는 사람들의 심리는 어딘들 다르지 않은가보다.

 


녹나무의 파수꾼은 결국 감동으로 독자에게 여운을 나누어준다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역작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연상되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그런 이야기가 작가적 상상력에 의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책이다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의 전개가 어색하지 않게 다가오는 까닭을 생각한다그것은 어쩌면 비밀을 간직한 녹나무 이야기 전개 안에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인정하고느끼고깨달으며그렇게 감동이라는 어휘를 언급하게 되는 공통분모가 작용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환상과 현실의 조화로움이란 결국 인간애로 귀결된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시내에 작은 서점에서 아들이 사달라고 졸라서 샀던 책이었다그런 까닭에 아들이 먼저 읽고 한참 후에엄마가 읽은 책이다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이 책은 여느 책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다 싶다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작가만의 독특한 상상력과 따뜻한 인간애는 다시 한번 책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해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담고 있는 메시지는 자못 심오하나 스토리를 풀어가는 데 있어 난해함 없이 잘 읽힌다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함께 청소년들이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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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
김종해 지음 / 북레시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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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

 


김종해 시인의 산문집이다. 시와 함께 해온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보여지는 듯한 산문책인가 싶다. 일찍 타계한 아버지. 홀로 자식들을 키워낸 어머니. 동생 김종철 시인. 시인의 첫사랑과 문학청년 시절의 이야기. 많은 문인들과 함께 해왔던 추억들이 담겼다.

 


오랜 시간을 버티며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 듣는 사람들을 어떤 겸허의 감정으로 빠르게 옮겨놓는 듯하다. 정치인이든 작가든 예술가든. 하물며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어느 누군가의 이야기가 됐든간에, 그 지난한 삶을 견디어냈다는 것에 대한 의미는 그만큼의 가치가 존재하지 않겠는가.

시인의 이야기 속에서 잊혀진 사람들의 이름들이 호명되는 것을 본다. 참 오래전의 이야기인데, 요즘 세대에서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들은 유난히 무리를 지어 함께 결속하는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작가란. 시인이란. 외롭고 힘겨운 직업이다. 그러니 서로 곁이 되어주고, 격려하며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각박한 세상에서, 치열한 문학 마당에서, 마음에 맞는 지기 한 명 얻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날로그적 향수가 가득 배어나는 책이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전한 시대가 아니었던지라, 궁금하면 얼굴을 직접 만나 안부를 묻고, 누군가의 글이 궁금하면 인터넷이 아닌 출간된 책을 들고 그를 찾아가던 그런 시절들의 이야기가 정감있게 다가온다.

 


시인은 1963년 자유문학에서 신인문학상을 시작으로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정식 등단하게 된다. 이때 심사위원으로는 박목월과 조지훈 선생님이었다고 기억한다. 책에는 그에게 등단의 기쁨을 안겨준 시 [내란]이 함께 실렸다. 그 이후 시인은 현대시 동인으로 활동했다고 전한다. 고은 시인과 이어령 선생을 만났다는 에피소드도 보인다.

한편으로 시인은 책에서 앞으로 끊임없이 나아가야 할 한국 시단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그가 언급한 파벌주의가 그 대목이다.

 


파벌주의와 편식주의, 시류와 인기에 영합하는 상업주의로 인해 위축된 우리 문학의 다양한 발전을 위해서, 우리는 지난 시절 한국문학이 보여온 폐쇄적 병폐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p161

 


이들의 유난한 결속문화가 파벌주의와 폐쇄된 분위기의 원인이 되었는가도 싶다. 신춘문예로 등단한 어느 시인은 이러한 문단의 분위기가 싫어, 문단에서 떠났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으니 가벼이 넘어갈 만한 부분은 분명 아니었던가싶다. 헌데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시인의 추억 보따리를 읽어가면서 자연스레 개인의 보따리 매듭도 같이 풀려가는 걸 느끼곤 했다. 학교에 다닐 때 한두 번 그들 시인들의 모임에 삐죽하니 슬쩍 구경갔던? 적이 있었더랬다. 그들은 하나같이 떠들기 좋아했고, 잘 웃었으며, 서로의 술잔에 얼굴을 묻는 것을 즐겨했었다. 하늘 같은 작가들. 시인들과 조무래기 학생들의 대면식이었다. 어쩌면 그건 김종해 시인이 풀어내는 추억의 한 소절처럼 그 무리에 자연스레 흡수되어가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은 무심하게 잘도 흘렀다. 그래서 다행이다. 거룩한 시인은 시인의 마을에서 시를 쓰고, 우리네 같은 평범한 독자들은 영원히 예리한 독자로서의 직분을 다하면 된다.

시란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쓰는 게 아니어서, 시가 내게로 가까이 다가왔을 때 비로소 시로 형상화할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그런 까닭에 시인 김종해도 여유롭다.

어느 해 어느 순간쯤이 지나갔을 무렵에, 그의 시를 다시 접해볼 수 있기를 기다린다.

 


책 속에 함께 실린 짧은 시 한 편을 여기에 옮긴다.


 

봄은 화안하다

봄이 와서 화안한 까닭을 나는 알고 있다

하느님이 하늘에다 전기 스위치를 꽂기 때문이다

30촉 밝기의 전구보다 더 밝은 꽃들이

이 세상에 일시에 피는 것을 보면

, 나는 하느님의 능력을 믿는다

봄은 눈부시고 화안하다

사람과 세상이 제 모습을 감추고 있는

긴긴 겨울밤은

하느님이 아직 스위치를 꽂지 않으셔서

어둡다고 생각한다

오늘 아침 느닷없이 봄은 와서

내 눈을 부시게 한다

 


-느닷없이 봄은 와서-p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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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4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 / 북로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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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책장파먹기9-8]


남자는 경찰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그는 누군가에 의해 가족을 살해당하고 탐정의 신분으로 범인을 찾아나서게 되는데.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의 이름은 데커였다.

신의 축복일까. 아니면 외면일까. 모든 기억을 끌어안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미식축구 선수였던 그는 충돌사고로 인해 후천적 과잉기억증후군에 걸리게 된다. 그의 뇌세포 어딘가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설정이다. 그로 인해 소설 속 주인공 이 사람은 좋은 기억은 물론이거니와 나쁜 기억 하나하나까지 빠짐없이 스캔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소설은 의심 가는 사람을 먼저 공개한다. 이런 설정을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미스터리가 아닌 뭐라고 하던데...

범인을 먼저 공개하고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과 범인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나중에 공개하는 방식이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어쨌든, 애매하게도 이번 소설은 범인인 듯, 아닌 듯한 한 인물을 초반에 공개하며 이야기를 끌고간다.

아내와 딸 그리고 처남의 죽음을 알고 있던, 범인이라고 자백한 세바스찬 레오폴드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범인으로 주목되는 레오폴드와 데커와의 두뇌싸움이라고 할까.


 

데커 가족의 살해사건과 그가 졸업한 고등학교에서의 총기난사사건의 연관성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소설의 재미가 돋보인다는 생각을 했었다. 소설은 전개속도가 빠르고 짧은 진행의 반복으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고 본다.

반면 개인적으로는 깊이 파고드는 성향을 좋아하는데, 이번 소설은 뭐랄까 주변으로 자주 확장되어만 간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성의 없이 등장했다가 빠지는 인물들이 너무 많다) 빠른 속도감과 확장력은 주위를 환기하는데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때로는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는 건 개인적인 생각이다.

영화로 치자면 뭐랄까. 깊이감이나 작품성보다는 흥미 위주의 헐리우드 식의 스릴러나 미스터리 영화 한편을 본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하면 정리가 될 듯싶다.

 


또 한가지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은 바로 번역이었다. 원문 자체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원작의 느낌과 번역의 느낌이 어떻게 다가올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맛깔스러운 번역이 좋았다는 점이다. 같은 대화체를 번역할 때도 역자마다 분위기가 다를법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소설은 뭐랄까, 번역만으로도 쉼없이 가열차게 달려가는 에너지가 넘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적고 싶다. 물론 개인의 취향이다.


 

과잉기억증후군이라. 차라리 선택적 기억상실증을 앓고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시험에 나올 것들을 외워야 할 시기도 지나갔다. 아이들 핸드폰 번호라든지 현관문 자동화 장치의 숫자들이라든지, 주민번호 같은 번호만. 아니다. 그 외 몇가지 더..를 가져오자니 여전히 기억해야 할 것들이 많아보이기는하다. 그래도 우리의 뇌는 비워낸 만큼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그 말을 나는 여전히 믿는다. 완전한 리셋까지야 필요없겠지만 말이다.

 


미세먼지가 극성이지만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한다. 나름 신선한 척?하는 공기가 들어온다. 언제부터인지 순간순간 의미를 부여하며 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바람이 참 고마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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