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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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우리가 갖는 거대한 힘

 

인간은 성장한다. 아이였을 때는 당연히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스무살이 되고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어도 내적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누구 말마따나 겉멋이 제대로 들어서 이 표현을 평생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주 쓰곤 한다. 물론 시덥지 않은 잔소리에 잘 끼워 맞추는 걸로 만족하지만 말이다. 사이후이(死而後已)라 했으니, 죽을 때까지 멈추지 말아야 할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자신(자아)에 대한 성장이고 성찰이고 삶의 대한 관조적인 깨달음이 아닐까.

 

이 외국인 저자가 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줄곧 묘한 초조함과 달뜬 기분에 시달려야 했다. 어느 누군가의 인생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투쟁과 화해와 성숙함이 가져오는 진통을 본다. 또 이 진통이 다시 다른 누군가의 인생에서 거대한 성장의 파동을 이어주는 모습을 들여다본다. 서로 타인이었지만 절대적 타인이 아닌 그들 서로는 비슷하고 닮은 내면의 모습을 안고 살아가는 이웃이며 친구들이었다는 것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많은 사건들과 묘사와 내면의 갈등이 교차되는 가운데, 진실 그리고 삶의 이면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감동이다. 치졸한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모든 것은 뭉클하게 다가오는 인간다운 감성이다, 라고 정의를 내려본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아는 사실들 가운데 최악을 꼽으라면 우리의 삶이 그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저마다 백 가지로 다르지만 남들 눈에는 우리가 그들과 한 팀인지 아닌지 그것만 보인다.

 

1. 두 개의 성(城)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크게 아이들과 어른으로 나뉜다. 이들은 각각의 가족과 가족이기도 하다. 하키를 좋아하는 두 마을에 하키 팀이 있었고, 이들은 서로 앙숙처럼 으르렁거린다. 한쪽은 베어타운으로 곰, 다른 한쪽은 헤드로 황소를 트레이드마크로 달고 한쪽은 초록, 다른 한쪽은 붉은 색을 상징으로 내걸고 있다.

책은 십대의 이야기에서부터 어른들의 이야기까지 폭넓게 담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소설이 어느 한 인물이나, 사건에 초점을 맞추었다기보다는 두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서있는 성에 갇힌 사람들처럼 보인다. 서로 다른 쟁점과 갈등으로 완전히 돌아서버린 채 성문을 굳게 닫아버린 것처럼 보인다.

이웃한 마을이면서도 극도로 서로에 대한 반감을 갖는 이들의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로서 사실은 너무나 비슷해서 같으면서도 또 다르다. 감정의 이해와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건은 한 여학생이 팀 주장이었던 남학생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가해자는 도망치듯 베어타운을 벗어났고 어쩌면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는 곳이었던 마지막 장소인 헤드의 하이츠로 이주한다. 베어타운 쪽에서는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서 마야가 남겨진다. 그리고 이 생존자를 위해 증언하고 비겁하지 않은 까닭에 사실을 사실로 인정했던 아이들이 망가지고 버려진 채 낙오되어 베어타운에서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아이들은 단순히 이해관계에 다른 해석으로 인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하면서 모든 것들의 선입견(배신자. 혹은 호모)과 자신들을 향해 퍼부어지는 관심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굳건히 견디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서 우선적으로 마야와 그녀의 친구 아나를 비롯한 벤야민와 아맛과 같은 아이들이 내적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기 안에 혼돈이 있는 자만이 춤추는 별을 탄생시킬 수 있다.

-쓸모 있는 팀원이 돼라, 보보. 그러면 그들에게 존경 받을 수 있어.

 

2. 남자들의 이야기.

하키는 남자들의 스포츠다. 라는 말을 책은 참 많이도 이야기한다. 물론 여자하키 팀도 있지 않은가, 라고 딴지를 걸고도 싶지만 살짝 조용히 지나가자. 하키가 남자들의 전유물이라고 자꾸만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경렬하고, 또 공식적으로 인정된 몸싸움이 많기도 하거니와 사실은 이 대목에서는 어른의 문턱에 막 다다른 십대 후반의 뜨거운 열정과 반항에 휩싸인 사내아이들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중심에는 하키가 있다. 베어스타운에서의 하키와 헤드에서의 하키가 이들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갈등하게 하며, 반목하게 하고 서로를 증오하게 한다. 그러나 소설은 단순히 이들의 경쟁과 겉으로 드러나는 자극적인 요소가 결합하여, 인간 개인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이들이 서로 어떻게 마지막 이야기를 풀어가는가를 보면 알 수 있기도 하다.

아이들은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다. 하키 선수는 하키를 잘하면 그만이며 하키 경기장에서 열심히 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실 아이들을 하키가 좋아서 친구로 이어졌고, 얼음 위에서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존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벤이, 아맛, 보보, 문제아였던 비다르, 그리고 빌리암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그들은 뭐라도 하잖아요. 아빠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데요.

-우리는 너를 싸움꾼으로 키우지 않았어.

-이 집에서 누군가는 싸워야 하는데 아빠는 너무 겁이 많잖아요.

 

3.결탁과 결부

정치인으로 기회를 엿보며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만 계획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계획을 관철시키기 위해 그 자신은 다른 사람들을 이용한다. 그 결과 이용당하는 사람의 절망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런가하면 홀리건이라고 하지만 마을을 위해 서로를 결속시키고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며 서로 의지할 수 있도록 자신의 어깨를 빌려주는 이들도 있다. 비열한 정치인과 인간적인 홀리건 중, 우리는 어느쪽의 손을 더 부드럽게 잡을 수 있을까. 작가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듯싶다.

어쨌든 그건 손을 잡아야하는 사람의 선택이다. 책은 이 마을에 있는 두 개의 다른 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선택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치밀하고 감동적이게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정의란 무엇인가. 정말 모든 이들이 함께 동의하고 공유할 수 있는 그런 보편적 의미의 정의는 무엇일까를 생각했었던 것 같다.

정의가 정의롭지 못할 정도로 그 자리에서 흔들리는 것도 사실은 각각의 인간군상이 마음에 숨겨두고 있는 불안 때문이라는 것을 작가는 지적한다.

 

-네 아빠처럼 될 필요는 없어, 벤야민. 네 눈은 아빠를 닮았지만 나는 네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게 그 아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일지 모르지. 모두에게 짐이 되는 것. 혼란을 야기하는 것.

-하키가 그 아이의 도피처였어. 그 아이는 오로지 방판 위에서만 남들과 같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을지 몰라. 그걸 그 아이한테서 뺏으면 쓰나.

 

4.다시 어른의 이야기

작품에서는 아이가 소녀가 여자로, 소년이 남자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의 상처로부터 떳떳하게 걸어나오려고 노력한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용기를, 그리고 서로에게 용기를 심어준다. 이 아이들 곁에, 혹은 불안한 어른의 모습을 보이는 인물 페테르 곁에는 든든한 지원군들이 자리를 지켜준다. 이 지원군들은 주변인 같은 평범한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 소설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페테르의 스승인 수네가 그랬고, 펠센의 라모나가 그랬고, 또 한편으로는 코치였던 사켈과 아이들에게 무술을 가르치던 예아네테와 많은 이웃이 그랬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소설의 중심을 잡고 잘 이어갔다. 적절한 순간에 불안해하고 고민하는 인물들에게 평범하지만 의미 있는 말로, 그들의 흔들리는 어깨를 잡아주는 역할을 해낸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다시한번 이웃으로 살아가는 어른이라는 존재의 무게감이 돋보이는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형제, 모두가 내 형제야. 그들은 내 편이고 나는 그들 편이야.

-다들 기다리고 있잖아요.

뭘?...선배를요.

-가족이 생겼을 때 제일 힘든 게 뭔가 하면 끝이 없다는 거야.

 

5.영원한 시간을 함께하는 가족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설은 가족들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는다. 영원한 시간이라는 표현을 소설에서 여러 번 보았다. 작가가 아니 역자가 그랬을까. 그런 표현을 좋아하는가보다. 영원한 시간이라는 표현은 무언가 애틋하면서도 끌리는 게 있는 표현이다.

 

베어스타운과 헤드 쪽에도 각각의 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에게 큰 상처로 남는 사건으로 인해, 그들 가족이 더 이상 자신들의 가족만이 아닌 이웃의 가족들 돌아보는 용기와 힘을 실어주게 된다.

그들은 가족과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경계를 허물고, 하키라는 이름으로 그 순간에 존중과 배려가 살아있는 스포츠, 즉 그 어떤 이기와 정치로 물들지 않는 오로지 순수하게 경기에 몰입하는 분위기를 새롭게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들은 용기가 생겼던가보다.

서로를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용기. 바로 그런 용기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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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저택 그린 노위 일공일삼 34
루시 M. 보스턴 지음, 김옥수 옮김, 피터 보스턴 그림 / 비룡소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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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저택 그린노위

 

-신비로운 친구들.

 

가끔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책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한다. 그 시절 나는 어머니가 어렵게 마련해주신 에이브 전집과 세계명작 전집을 보고 성장했다. 물론 빨리 읽지도 못했고, 누구처럼 많이 읽어내지도 못했다. 그러나 정말 좋아하는 책이 한 두권 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가 되어서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매일 밤 옛이야기를 들려주곤했다.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전래동화 녹음테이프를 기억하면서 효녀심청전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 은혜 갚은 호랑이 이야기도 해주곤 했었는데 아이들은 다 기억하지 못한다. 어제는 옛 시절을 회상하며 다시 장화와 홍련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제 중학교에 들어가는 사춘기 아들아이도, 12살이 되는 딸아이도 엄마가 들려주는 장화 홍련 이야기는 식상하지도 유치하지도 않는 눈치다. 날이 밝아서 이방 호방 예방 등 아전들이 모여 관을 짜야 한다는 등 저희들끼리 수런거리고 있었던 거야. 그때 새로 부임한 젊은 사또가 헛기침을 하고 소리를 쳤지. 게 아무도 없느냐....

그리고 이제는 비밀의 저택 그린노위의 이야기를 해줄 차례다. 이 신비로우며 비밀스러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 밀려드는 오묘한 이야기를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주인공 소년 토즐랜드는 새로 결혼한 아버지를 떠나서 낯설고 먼 곳 페니소키를 찾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소년의 증조 할머니인 올드노 머니가 토즐랜드(톨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곁에는 새어머니가 있었지만 소년은 줄곧 기숙학교에서 살았다. 톨비 입장에서 이번 여행은 어쩌면 부모와의 매끄럽지 못한 생활에서 일종의 탈출구를 찾은 셈이었다. 그런데 단 한번도 본적이 없는 증조할머니와, 이곳 페니소키의 풍경 앞에서 소년은 긴장하게 된다. 홍수가 나서 모든 세계가 물에 잠겨버렸다. 물에 잠긴 마을이 풍기는 분위기는 도대체 어떤 분위기일까. 톨리는 할머니의 집에까지 가는 길에 마차를 타고 가다, 배로 옮겨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마중나온 보기스라는 하인이 톨비를 안내한다.

 

아이를 둘러싼 대 저택 그린노위(그린노아)는 많은 비밀을 안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살았다던 가족들의 초상화가 톨리를 내려다보는데, 이상하게도 그림 속에 아이들이 톨리를 자꾸 쳐다보는 것만 같다. 밤마다 아이는 꿈을 꾼다. 아이가 잠을 자는 방에는 아이의 침대뿐만이 아니라 세 개의 침대가 더 준비되어 있었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방에는 새장도 있고, 인형의 집도 있으며, 목마도 있고, 아이가 잘 때마다 주머니에 넣고 자는 쥐 모양의 조각인형도 있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는 집을 탐험하며 먼 시간 속에서 잊혀졌던 것들의 조각들을 발견하게 된다. 나무로 된 바닥 틈에서 낡은 열쇠를 찾아 상자를 열고 그 안에 있던 것들을 찾기도 하고, 구유에서는 말 이름이 쓰여진 깨진 조각을 찾기도 한다. 정원에 나가서 거대한 성 크리스토퍼를 찾기도 하고, 그림 속 아이들만의 장소였던 비밀스런 곳을 발견하기도 한다.

홍수로 들어찼던 물이 빠지면서 풀이 돋아나고, 다시 눈이 내리고 눈의 갑옷을 입은 듯한 정원의 모습이 펼쳐지는 풍경은 아이의 시선으로 쓰여져 있지만 매우 서정적이면서도 이쁘게 묘사되고 있었다.

 

톨리는 계속 무언가를 느끼고 싶어하고, 찾고 싶어하며, 그리고 보고 싶어한다. 그들을. 톨비의 곁에서 올드노 할머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한다. 토비, 알렉산더 그리고 막내 리넷의 이야기까지.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과정에서 톨리는 드디어 아이들과의 교감을 느끼게 되면서 결국 마법처럼, 마술처럼 세 아이와 함께 하게 된다.

 

소설은 한 소년이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예상치 못했던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수백 년 전에 역병으로 죽은 아이들의 영혼이 현재까지 그 집에 존재하면서, 순수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아이를 만나게 되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 함께 한다는 스토리라고 하면 정리가 되는 걸까.

 

어찌보면 공포물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니콜 키드만이 주연했던 영화 ‘디 아더스’가 연상되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이 책은 초등 중학년 이상 청소년 대상의 소설로 출간되었다. 주인공을 여덟 살 아이로 설정했고, 유령의 대상 역시 어린 아이들로 설정했다. 유령의 출현을 괴기스럽다거나 공포스럽게 묘사하지 않고, 호기심과 사랑 그리고 따뜻함과 연민의 시선으로 초점을 맞춰 소설을 써나가고 있기 때문에 전혀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소설은 아픈 여동생을 위해 의사를 부르러 가는 토비의 용기와 담대함을,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를 좋아하는 알렉산더는 자신의 재능을 겸손하게 사랑하는 법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의 긍정적인 모습이 인간의 선함을 상징화한다면 블랙 페르디는 악을 상징화한다. 집시 출신으로 말 도둑이었던 블랙 페르디와 그의 어머니 이야기는 소설에서 등장하는 두려움의 대상이자 저주를 만들어내는 시작점이 되고 있다.

 

자. 그러면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되는걸까. 언제나 그렇지만 이야기의 끝을 다 말해버리면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결말이 또 그렇게 거창한 것도 아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끝이 나는 이야기다. 그래도 말이다 사춘기 남매에게도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 각자 생각해보는 숙제를 내주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

지난 여름방학 때 선물로 사준 책이었건만, 딸아이는 분위기가 음산하다고 아직까지 이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내가 딸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 말이 아닐까.

 

- 신비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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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남의 집 귀한 딸인데요
악아 지음 / 봄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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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남의 집 귀한 딸인데요.

-이 땅의 동기들에게, 지혜롭게 살아가기를.

 

책을 설 지나고 볼걸 그랬나보다. 아쉽다. 뭐가 그리 아쉬운가. 그냥 마음이 편치가 않은 것 같다. 시집살이는 어느 집이건 녹녹치 않은가보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왜 변하지 않는 것일까. 무슨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한 이들의 관계를 우리는 고부관계라고 말하곤 한다. 이 관계를 잘 들여다보면 승자가 있고 그 반대편에는 반드시 패자가 있다. 당연하게 승자의 쾌감이 공기의 흐름을 점령하게 되면, 한 곁에서는 패자의 낭패감과 분노와 서글픔이 질척인다. 이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질문을 할 차례다. 당신은 이 질긴 싸움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습니까.?

 

과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존재하는 걸까.

책을 쓴 저자는 악아라는 예명으로 글을 썼다. 악아는 아가라는 소리에서 파생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듣는 입장에서는 아가와 악아가 비슷한 발음으로 들리기도 해서 아가가 악아로 뒤바뀌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 쉬운 변화일수도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악아를 惡兒(나쁜 아이)로 스스로 이미 번역을 완결 짓고 있었다.

책을 읽고 글을 남기는 지금 이 순간 나는 고민한다. 책에 대한 느낌과 평가만을 오롯하게 기록할 것인가, 아니면 저자가 풀어놓은 이야기에 몰입한나머지 내 안에 있는 온갖 스트레스를 다 풀어낼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런데 나는 이 고민이 가지고 올 윤리적 딜레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벌써부터 짐짓 뒤로 내빼려는 모양새인가.

 

매순간 선택을 하고 그 결과에 대해 순응하거나 불순응하면서 인간은 자신의 세월을 살아간다. 결혼 역시 선택이다. 과거의 결혼처럼 집안이 짝을 맺어주거나 원치 않는 결혼을 한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현대에 와서 결혼은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좋아서 결혼을 했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들어왔고 나 역시 수없이 경험해왔다. 사실 결혼이라는 선택은 상당히 많은 결과물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투쟁하듯 극복해야하는 것인 동시에 받아들이고 순응해야하는 우울한 결과물의 대부분의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저자가 이야기하듯 장성한 남녀의 결혼생활에 개입하려드는 시월드의 부조리함일지도 모른다. 별의별 시어머니들도 많은가보더라. 그냥 단순히 ‘∼하더라’, 라고 넘어가는 까닭은 일일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결혼한 여자들은 다 알고 있지 않은가말이다.

 

저자는 직장을 다니는 맞벌이 신참 며느리였다. 며느리의 입장에서 바라본 결혼생활과 며느리생활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확고하다. 때로는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비장하면서도 근엄하기까지 하다. 너무 깊이 관여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선을 유지해가는 게 지혜롭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결혼생활 16년차인 나에게도 그 적절한 선이란 무척 중요한 것으로 다가온다. 어느 사회나 어느 조직이나 너무 깊이 들어가다보면 문제점들이 자꾸만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까닭에 보기 싫으면 외면하면 그만이라고 잘라 말하지는 말자. 책을 읽다보면 단박에 알 수가 있는 분위기는 이런 분위기다. 그 말은 너무 무책임한 표현이라는 분노의 반론과 함께 냉소에 푹푹 절은 비웃음을 살수도 있는 다소 무서운 분위기를 말이다.

 

이제 살짝 지혜를 더 모아보자. 시간을 약으로 삼으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말이다. 아무리 시간이 가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도 들어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상대가 변하든지 아니면 차선책으로 내 자신이 변해가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변화를 포기로 받아들일지, 실패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최후의 승리로 받아들일지는 그야말로 어려운 내적 선택의 문제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는 생각이 있으면 자기안의 상처에서 결국은 걸어나와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책은 한 여자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암울한 분노와 부조리에 대한 고발로 시작되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악아는 점차 악아(惡兒)가 아닌 아가의 모습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건 어쩌면 단순히 남편이 취하는 행동의 변화에서 오는 긍정의 효과일 수도 있다. 그런데 말이다. 남편이 몰고오는 이 변화의 시작은 남편을 비롯해서 시댁식구들 그리고 항상 피해의식에 빠져있는 며느리들에게도 변화의 씨앗을 깊이 심어주는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사실 책이 아닌 현실에서의 많은 가정에서 이 변화의 바람이 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싸우기 위해 결혼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요즘 같아서는 결혼이란 것이 의무도 그 어떤 것도 아닌 그냥 과거의 한 유산과 같은 것으로 치부될 것 같은 분위기다.

각설하고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 결혼준비가 되어 있는 않은 이들은 결혼을 유보하라, 는 말은 해주고 싶다. 남녀를 불문하고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힘든 것이 결혼생활이다. 특히나 남편의 역할은 더 진중할 것을 부탁한다. 결혼을 하고 아내를 거느리면 가장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치마폭으로 자진해서 들어가는 남자는 아직 성장이 더 필요한법이다. 남편의 역할은 신의 역할이다. 아내에게는 남편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일주일마다 시댁에 전화를 걸었던 것을 9개월 동안 나는 모든 것을 중단했었다. 16년만에 처음으로 나는 침묵했었다. 일방적인 모욕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었고, 방황이었으며, 정당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무언의 일침이었다. 그리고 나는 따로 상담을 공부한 인생 선배들에게 진지한 상담을 받았다. 중요한 것은 상처받은 자아를 바로 들여다보고 위로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내 상처로부터 회복되기까지 다행스럽게도 그 아무도 내게 가타부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오랜 고심 끝에 먼저 시댁에 전화를 걸었다. 이쯤되면 해피엔딩인가. 물론 두 시간가량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들어야하는 수고가 뒤따르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이번 설에 당당하게 시댁에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세상에 며느리로 살아가는 삶의 동기들이여. 기죽지 말고 당당하자. 그렇다고 요란하게 시끄럽게 냄비를 뒤엎을 필요도 없다. 철없이 자의식만 주장해도 좋지 않더라. 부드럽고 강렬하게 자신의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현명한 방법인 것 같더라. 우리 꼭 지혜롭게 살아가자. 아 그런데 이 솔직함에 대한 딜레마를 어쩌면 좋을까. 그냥 왜 사냐건 묻는다면 웃는 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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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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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이웃

 

-관계와 화해

 

내가 사는 곳은 서울과 인접한 경기도지역이다. 이곳은 같은 경기도권이라고 하더라도 비교적 개발이 늦게 시작되어 삼사년 전부터 부쩍 전입인구가 많아지는 추세다. 국도변에 위치한 아파트에 살면서 삶의 주된 소비생활은 시내 쪽으로 들어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아직도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번거로운 여정이 가끔 우리를 과거로의 여행처럼 호기심으로 자극하기도 한다. 아들이 수선을 피우며 말하기를

“지금 우리는 70년대로 막 접어들었습니다.” 하면, 동생은 절대 질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로 되받아친다. “아니야. 70년대는 무슨, 전설의 고향이냐.”

 

아이들이 그런 우스갯소리를 하며 걸어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시내라 하더라도 키작은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하나 둘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예전의 모습들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왕복 2차선 좁은 도로에 버스는 유난히 천천히 오고 간다. 키 작은 건물에 들어선 낡은 사진관, 농협이나 축협 같은 금융기관. 확실히 시내라 하더라도 좀 외진 곳임에는 분명했다. 이런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구경이라도 할라치면, 엄마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길치였으며, 저희들은 신세계를 구경하고 있는 운 좋은 아이들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과거가 잘 버티어주지 않았다한들 현재가 존재했을까, 라는 의문을, 그 의미와 가치를, 아이들은 알까.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일까.

 

박완서 선생님의 짧은 소설이 개정판으로 ‘나의 아름다운 이웃’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다시 우리 곁에 찾아왔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꾸만 과거로의 여행을 생각하곤 했었다. 마치 타임슬립처럼 말이다.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를 생각했었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생각했던 것일까.

 

책은 작품 자체만으로도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고, 옆에 있는 이들과 책 내용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있음에도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먼저 이 책이 주는 따스한 고향 같은 느낌을 먼저 말하고 싶어진다. 우리의 어머니와 그 어머니, 이모와 고모들. 말해놓고 보니 여성에 대한 관심이 집약된 듯하다. 책을 통해서 그만큼이나 다정하면서도 나긋나긋하고도 또 동시에 단호한 여성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박완서 선생님의 짧은 소설들을 읽고 있노라면, 이것이 바로 여성문학의 진수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란 말이다. 여성에 의해 형상화된 작품인 동시에 불만과 불평을 지적하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사람들의 여론을 모으려는 거북한 의식이 담겨진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가만히 다가와 말을 건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모나지 않으면서도 튀지 않는 의식과 행동들, 말모양새, 삶의 진솔한 모습들. 그리고 여자인 동시에 한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어느 누군가의 이야기. 그 곁에서 함께 울며 웃으며 고군분투를 함께 겪어나가는 남자와, 부모, 자식, 그리고 이웃의 이야기가 차분하게 들려온다.

 

책 속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인 남녀의 문제는 과거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 양성평등 같은 사상과 페미니즘의 영향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시기를 살고 있는 지금이고, 이성간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분명 벌써전부터 존재하기 시작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간에 변화는 이미 시작된 지 오래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말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전통적인 성향의 수동적 모습이 아니다. 물론 각자의 갈등과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함에 있어 주저하지 않는 적극적인 성향의 여성성을 표출하고자 노력한다. 결론적으로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여성들이 갖는 현실인식은, 한편으로는 안쓰러우면서도 냉정한 사회의 부조리와 낡은 인식에 대응하는 따끔한 자극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싶다.

 

물론 한권의 책이 모두 남녀의 문제, 부조리에 대한 것들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작가의 예리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심미안은 작품마다 유연하면서도 강렬한 작가만의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는 것도 적어두고 싶어진다. 탈무드에 등장하는 삶의 진리와 같은 이야기하며, 인간의 이중적인 내면을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대목의 이야기도 등장하고 있다. ‘완두콩만 한 아이’는 뱃속에 태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당시 소설이 쓰여진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이러한 소재와 주제는 상당히 신선하고 작가의 직관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작품들을 뒤로 한 채, 유난히 시선을 붙잡는 작품은 ‘땅집에서 살아요’, ‘노파’, ‘노을과 양떼’라는 작품들이었다. 이 작품들은 서로간에 그 성격이 많이 다른 작품으로도 보인다. 그럼에도 유독 기억하려하는 것에 대한 까닭으로, 인간과 인간사이의 따뜻한 무엇인가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는 소박하기에 이를데없는 개인의 변명을 늘어놓아야 할 것 같다.

 

제목을 잠시 빌려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들이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늘 행복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각자의 삶을 열심히 잘 견디어 살아왔고, 여전히 소박한 행복을 꿈꾸며 잘 살아내고 있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소중하다.

 

여담이긴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옛것들을 불러모으는데 재미를 붙였다. 오래전 유년이라는 시간을 살았던 옛집, 일본사람이 지었다던 그 옛집은 마당에 일본식 정원이 있어서 녹슨 철문을 열자마자 장미나무와 석류나무가 낯선이를 반기던 집이었다. 석류나무에 들어붙어 있던 검지손가락만한 크기의 애벌레를 나무젓가락으로 서툴게 집어 들어올리며 비명을 지르던 어린시절이 갑자기 와락 달려들기도 하더라. 그 때 그 순간에도 나는 내 어머니의 시집살이를, 내 어머니와 내 할머니의 조용한 분쟁과 타협을, 역시나 조용하게 지켜보며 성장했던 것을 기억한다.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이를테면 모든 이들과의 혹은 모든 관계된 것들 사이에서의 화해와 양보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마치 상처받은 아이의 등을 토닥여주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한 사람의 딸과 한 사람의 여자, 아내 그리고 며느리와 엄마로 살아가고 있는 나 혹은 우리들에게 편하게 두 다리 내려놓고, 같이 속내도 내놓으며 수다나 한판 늘어놓고 가라는 듯한 작가의 말붙임이 정겹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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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백년 가게
이인우 지음 / 꼼지락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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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백년 가게

-어여쁘고도 견고한, 그 무게감.

 

옛 것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시작됐다. 이 여행에서 숨은 그림을 누가누가 더 잘 찾아낼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저자는 어쩌면 카메라 한 대를 어깨에 비스듬히 둘러메고 걷기 편한 신발을 신고 길을 떠났을 것 같다는 생각. 그리고 사람들을 기다렸다가 함께 여행을 떠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곳은 마치 과거로 떠나는 완행열차에 막 발을 올려놓은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분위기다.

 

서울의 백년을 돌아보는 완행열차에 올라타면 신문사에서 몸담고 있다는 저자 이인우의 안내가 이어진다. 그의 목소리는 늘어지는 것 없으면서도 담백하고 매끄럽다.

목소리로 비유를 했지만 사실 이인우의 글쓰기가 무척 좋았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한마디로 앞뒤 할 것 없이 문장이 깔끔했다는 인상을 주는 것 같다. 책 중간중간 인터뷰가 들어가고 사진이 들어가서 실제로 그 장소에 함께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 까지. 그와 함께 떠나는 서울 백년가게의 여행은 한편으로는 낭만적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측은함과 애잔함이 물든 여정이기도했다.

 

책 속에서 그는 다양한 곳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소재불문 장소불문이다. 다방, 여관, 다양한 음식점을 비롯해서 서점, 재즈클럽, 악기상가, 극장, 미용실까지. 다 열거하지 못할 정도로 세밀하게 서울 곳곳을 누비며 숨겨진 하나의 조각이라도 찾아 독자에게 보여주려 발품을 판 저자의 노력이 엿보인다.

물론 그가 다니고 기억하는 곳을 다 소개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중 대표적인 곳만을 책으로 엮지 않았을까. 더 들어가고 더 살펴보면 서울에서 잠자고 있는 백년가게는 아직도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싶다.

 

일절하고 그런데 말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는 시간보다도 더 기나긴 시간을 같은 일을 이어가며 살아올 수 있었을까. 백이라는 숫자가 가져오는 무게감이 내게는 정말 거대한 바위가 내리누르는 압박감으로 느껴지더란 말이다.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세월의 무게감은 보이지는 않지만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 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책은 가는 곳마다 다양한 빛깔의 사연이 흘러넘치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를테면 오래된 것이 주는 것은 향수이다. 그런데 사실 이 향수 뒤에는 기나긴 시간을 버텨낸 고된 삶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슬며시 꺼내놓더란 말이다. 그건 아마도 백년이라는 시간이 전해주는 어여쁘고도 견고한 무게감일지도 모른다.

이들 가게를 지켜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들만의 긍지와 자존심과 같은 어떤 자기만의 철학을 갖고 있어보였다. 그것이 그들이 대를 잇게 하고, 또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는 원동력이지 않았을까.

 

백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사회가 달라지고, 거리가 변하고, 사람들의 옷차림이 바뀌는 시간동안 이들 ‘오랜것들(오래된 것들)’에게도 변화가 찾아온 것은 당연하다. 어느 가게는 건물이 팔리거나 헐릴 위험을 넘겨 오늘까지 이어오기도 하고, 어느 가게는 그 변화를 이용해 옆 건물까지 확장해 번창해가는 적극적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입맛을 따라 계속 연구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오래된 전통을 아직까지 고수하는 가게도 있어보였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그건 어디까지나 백년을 지켜낸 이들의 소신의 문제이다.

 

학교시절 늘 인사동을 돌아다니며 봤던 낙원악기상가의 커다란 간판이 생각난다. 그런가하면 잘 돌아가지 않는 뇌세포대신 기억력을 불러내는 사진 한장으로 내가 어쩌면 갔을법한

오래된 카페의 붉은 비로드? 천으로 싸인 쇼파를 생각해낸다. 한때 명동으로 매일같이 오고갔으면서도 어쩌면 나는 그 미용실을 단 한 번도 인지하지 못했을까. 덕수궁 정문 앞에서 상대에게 보기좋게 바람을 맞고 하염없이 혼자 걸어오면서도 딴 곳으로 튀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어리숙한 오래된 내 모습이 겹쳐보인다.

 

이십대를 거쳐 삼십대를 정신없이 보내고 사십대 중반을 오늘 내 어깨에 이고 걸어가는 요즘이다. 어찌된 까닭인지 아날로그적 향수가 무척이나 그리운 시절임을 느낀다. 이쯤되면 새로운 기계 앞에서 아이들이 내게 기계치 소리를 퍼부어도 그냥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게 뭐 어때서. 나도 이만큼이나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남은 시간이 이제 막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다고 위로 받고 싶어진다.

딴은 오래된 시간동안 세대가 서로 교류하고 이어져온 배려를 비단 내 집에서 무 자르듯 잘라낼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긴 겨울방학이 이어진다. 조만간 남매를 데리고 서울구경 한번 떠나봐야겠다는 욕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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