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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ㅣ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평점 :
우리와 당신들 -우리가 갖는 거대한 힘
인간은 성장한다. 아이였을 때는 당연히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스무살이 되고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어도 내적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누구 말마따나 겉멋이 제대로 들어서 이 표현을 평생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주 쓰곤 한다. 물론 시덥지 않은 잔소리에 잘 끼워 맞추는 걸로 만족하지만 말이다. 사이후이(死而後已)라 했으니, 죽을 때까지 멈추지 말아야 할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자신(자아)에 대한 성장이고 성찰이고 삶의 대한 관조적인 깨달음이 아닐까.
이 외국인 저자가 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줄곧 묘한 초조함과 달뜬 기분에 시달려야 했다. 어느 누군가의 인생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투쟁과 화해와 성숙함이 가져오는 진통을 본다. 또 이 진통이 다시 다른 누군가의 인생에서 거대한 성장의 파동을 이어주는 모습을 들여다본다. 서로 타인이었지만 절대적 타인이 아닌 그들 서로는 비슷하고 닮은 내면의 모습을 안고 살아가는 이웃이며 친구들이었다는 것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많은 사건들과 묘사와 내면의 갈등이 교차되는 가운데, 진실 그리고 삶의 이면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감동이다. 치졸한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모든 것은 뭉클하게 다가오는 인간다운 감성이다, 라고 정의를 내려본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아는 사실들 가운데 최악을 꼽으라면 우리의 삶이 그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저마다 백 가지로 다르지만 남들 눈에는 우리가 그들과 한 팀인지 아닌지 그것만 보인다.
1. 두 개의 성(城)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크게 아이들과 어른으로 나뉜다. 이들은 각각의 가족과 가족이기도 하다. 하키를 좋아하는 두 마을에 하키 팀이 있었고, 이들은 서로 앙숙처럼 으르렁거린다. 한쪽은 베어타운으로 곰, 다른 한쪽은 헤드로 황소를 트레이드마크로 달고 한쪽은 초록, 다른 한쪽은 붉은 색을 상징으로 내걸고 있다.
책은 십대의 이야기에서부터 어른들의 이야기까지 폭넓게 담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소설이 어느 한 인물이나, 사건에 초점을 맞추었다기보다는 두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서있는 성에 갇힌 사람들처럼 보인다. 서로 다른 쟁점과 갈등으로 완전히 돌아서버린 채 성문을 굳게 닫아버린 것처럼 보인다.
이웃한 마을이면서도 극도로 서로에 대한 반감을 갖는 이들의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로서 사실은 너무나 비슷해서 같으면서도 또 다르다. 감정의 이해와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건은 한 여학생이 팀 주장이었던 남학생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가해자는 도망치듯 베어타운을 벗어났고 어쩌면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는 곳이었던 마지막 장소인 헤드의 하이츠로 이주한다. 베어타운 쪽에서는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서 마야가 남겨진다. 그리고 이 생존자를 위해 증언하고 비겁하지 않은 까닭에 사실을 사실로 인정했던 아이들이 망가지고 버려진 채 낙오되어 베어타운에서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아이들은 단순히 이해관계에 다른 해석으로 인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하면서 모든 것들의 선입견(배신자. 혹은 호모)과 자신들을 향해 퍼부어지는 관심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굳건히 견디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서 우선적으로 마야와 그녀의 친구 아나를 비롯한 벤야민와 아맛과 같은 아이들이 내적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기 안에 혼돈이 있는 자만이 춤추는 별을 탄생시킬 수 있다.
-쓸모 있는 팀원이 돼라, 보보. 그러면 그들에게 존경 받을 수 있어.
2. 남자들의 이야기.
하키는 남자들의 스포츠다. 라는 말을 책은 참 많이도 이야기한다. 물론 여자하키 팀도 있지 않은가, 라고 딴지를 걸고도 싶지만 살짝 조용히 지나가자. 하키가 남자들의 전유물이라고 자꾸만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경렬하고, 또 공식적으로 인정된 몸싸움이 많기도 하거니와 사실은 이 대목에서는 어른의 문턱에 막 다다른 십대 후반의 뜨거운 열정과 반항에 휩싸인 사내아이들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중심에는 하키가 있다. 베어스타운에서의 하키와 헤드에서의 하키가 이들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갈등하게 하며, 반목하게 하고 서로를 증오하게 한다. 그러나 소설은 단순히 이들의 경쟁과 겉으로 드러나는 자극적인 요소가 결합하여, 인간 개인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이들이 서로 어떻게 마지막 이야기를 풀어가는가를 보면 알 수 있기도 하다.
아이들은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다. 하키 선수는 하키를 잘하면 그만이며 하키 경기장에서 열심히 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실 아이들을 하키가 좋아서 친구로 이어졌고, 얼음 위에서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존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벤이, 아맛, 보보, 문제아였던 비다르, 그리고 빌리암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그들은 뭐라도 하잖아요. 아빠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데요.
-우리는 너를 싸움꾼으로 키우지 않았어.
-이 집에서 누군가는 싸워야 하는데 아빠는 너무 겁이 많잖아요.
3.결탁과 결부
정치인으로 기회를 엿보며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만 계획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계획을 관철시키기 위해 그 자신은 다른 사람들을 이용한다. 그 결과 이용당하는 사람의 절망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런가하면 홀리건이라고 하지만 마을을 위해 서로를 결속시키고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며 서로 의지할 수 있도록 자신의 어깨를 빌려주는 이들도 있다. 비열한 정치인과 인간적인 홀리건 중, 우리는 어느쪽의 손을 더 부드럽게 잡을 수 있을까. 작가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듯싶다.
어쨌든 그건 손을 잡아야하는 사람의 선택이다. 책은 이 마을에 있는 두 개의 다른 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선택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치밀하고 감동적이게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정의란 무엇인가. 정말 모든 이들이 함께 동의하고 공유할 수 있는 그런 보편적 의미의 정의는 무엇일까를 생각했었던 것 같다.
정의가 정의롭지 못할 정도로 그 자리에서 흔들리는 것도 사실은 각각의 인간군상이 마음에 숨겨두고 있는 불안 때문이라는 것을 작가는 지적한다.
-네 아빠처럼 될 필요는 없어, 벤야민. 네 눈은 아빠를 닮았지만 나는 네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게 그 아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일지 모르지. 모두에게 짐이 되는 것. 혼란을 야기하는 것.
-하키가 그 아이의 도피처였어. 그 아이는 오로지 방판 위에서만 남들과 같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을지 몰라. 그걸 그 아이한테서 뺏으면 쓰나.
4.다시 어른의 이야기
작품에서는 아이가 소녀가 여자로, 소년이 남자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의 상처로부터 떳떳하게 걸어나오려고 노력한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용기를, 그리고 서로에게 용기를 심어준다. 이 아이들 곁에, 혹은 불안한 어른의 모습을 보이는 인물 페테르 곁에는 든든한 지원군들이 자리를 지켜준다. 이 지원군들은 주변인 같은 평범한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 소설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페테르의 스승인 수네가 그랬고, 펠센의 라모나가 그랬고, 또 한편으로는 코치였던 사켈과 아이들에게 무술을 가르치던 예아네테와 많은 이웃이 그랬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소설의 중심을 잡고 잘 이어갔다. 적절한 순간에 불안해하고 고민하는 인물들에게 평범하지만 의미 있는 말로, 그들의 흔들리는 어깨를 잡아주는 역할을 해낸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다시한번 이웃으로 살아가는 어른이라는 존재의 무게감이 돋보이는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형제, 모두가 내 형제야. 그들은 내 편이고 나는 그들 편이야.
-다들 기다리고 있잖아요.
뭘?...선배를요.
-가족이 생겼을 때 제일 힘든 게 뭔가 하면 끝이 없다는 거야.
5.영원한 시간을 함께하는 가족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설은 가족들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는다. 영원한 시간이라는 표현을 소설에서 여러 번 보았다. 작가가 아니 역자가 그랬을까. 그런 표현을 좋아하는가보다. 영원한 시간이라는 표현은 무언가 애틋하면서도 끌리는 게 있는 표현이다.
베어스타운과 헤드 쪽에도 각각의 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에게 큰 상처로 남는 사건으로 인해, 그들 가족이 더 이상 자신들의 가족만이 아닌 이웃의 가족들 돌아보는 용기와 힘을 실어주게 된다.
그들은 가족과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경계를 허물고, 하키라는 이름으로 그 순간에 존중과 배려가 살아있는 스포츠, 즉 그 어떤 이기와 정치로 물들지 않는 오로지 순수하게 경기에 몰입하는 분위기를 새롭게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들은 용기가 생겼던가보다.
서로를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용기. 바로 그런 용기가 아니었을까.